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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렉스, 사우디를 즐겁게 하다

넷플릭스는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TV 및 영화 제작사들과 잇따라 계약을 성사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대기업들과 석유 왕국 사이의 관계 급상승의 또 다른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음모의 위험은 커 보인다.

  • 기사입력 2021.09.17 15:01
  • 최종수정 2021.09.24 13:33
  • 기자명 Vivienne walt

[포춘(FORTUNE)=Vivienne walt 기자] 수은주가 화씨 110도(섭씨 43도)까지 치솟던 리야드의 무더운 여름 끝자락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의 한 사교 홀에서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미르콧의 제작진과 임원들이 떠들썩한 배우들과 일러스트레이터, 스태프들에게 피자와 샐러드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 다음 대형 TV를 켜고, 6월 30일에서 7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정확히 풀린 넷플릭스 최신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작년 9월 넷플릭스와 5년 계약을 맺고 자신들이 제작한 첫 작품인 8부작 <마사미어 카운티>를 열심히 시청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미르콧은 이 스트리밍 거인을 위해 오리지널 영화와 TV 프로그램들-사우디 생활과 관련된 줄거리를 담아 아랍어로 제작된다-을 만들 예정이다.

시사회 후 몇 시간 만에, 미르콧 제작진들은 축하할 일이 더 생겼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풍자하는 이 시리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이 지역의 다른 몇몇 국가에서도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사교 홀에서 열리는 피자 파티는 지구 최대의 석유 강국이라는 위상을 앞세워, 막대한 부를 창출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준으로 볼 때 초라한 이벤트다. 하지만 이번 시사회는 사우디 왕국과 미국 중심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 간의 다면적인 금융 관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관계에서 양방향으로 상호 투자된 수십억 달러는 두 거물들의 이익과 맞물려 있다. 한편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보통 MBS로 알려져 있다)가 있는데, 밀레니얼 세대답게(8월 31일 36세를 맞았다) 그의 취미에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다.

사우디 경제-국내 총생산의 42%를 석유 수출에서 얻는다-를 시급히 다변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MBS는 사우디가 영화와 대중음악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수십 년 된 규제를 완화했다.

다른 쪽 끝에는 진보적인 이미지가 사우디의 군주제 통치와 상충하지만 스트리밍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신규 시장과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급증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있다.  

[포춘코리아(FORTUNE KOREA)=Vivienne walt 기자] 올해 포춘 글로벌 500 명단에 첫 진입한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업체 넷플릭스만큼 갈증을 느끼는 기업은 드물다.

190여 개 국가에서 2억 9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전 세계가 사우디 아라비아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아랍어권에서 가장 부유한 시청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두바이 소재 정부관계 기업인 메나 캐털리스트-사우디 시장에 진출하는 미국 기술회사들에 조언을 제공한다-의 샘 블랫티스 CEO는 “사우디 엔터테인먼트 경제는 놀라운 소비력을 가진 거대하고 비옥한 젊은 영토”이라고 말한다. 

그 영토에 공을 들이는 미국 회사는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워너 뮤직 그룹은 지난 2월 리야드에 본사를 둔 로타나 뮤직의 소수 지분을 2억 달러 가까운 투자로 인수했다. 영화관 소유주인 AMC는 2030년까지 사우디 전역에 100개의 극장을 열기 위해 약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세계 최대 테마파크 운영업체 식스 플래그스(텍사스 주 그랜드 프레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도 사우디 정부와 손잡고, 리야드에서 28마일 떨어진 곳에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키디야를 짓고 있다.

사막 위의 성. 텍사스에 본사를 둔 식스 플래그스는 사우디 정부와 손을 잡고 키디야. (사진은 현재 장소의 모습, 아래 그림은 조감도)에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사막 위의 성. 텍사스에 본사를 둔 식스 플래그스는 사우디 정부와 손을 잡고 키디야. (사진은 현재 장소의 모습, 아래 그림은 조감도)에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사막 위의 성. 텍사스에 본사를 둔 식스 플래그스는 사우디 정부와 손을 잡고 키디야(사진은 현재 장소의 모습, 아래 그림은 조감도)에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단지 조감도. [사진=포춘]

이런 자본집약적 투자들에 비해, 넷플릭스와 사우디의 계약은 자금 규모면에서 미미한 수준이다(넷플릭스와 파트너들은 금액 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넷플릭스는 2021년 전체적으로 콘텐츠에 17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거래들은 모로코에서 오만까지 4억 2,000만 명의 인구로 이뤄진 아랍어 사용권 세계에서 넷플릭스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가입자와 매출 증가가 주로 미국 외 지역에서 발생하는 넷플릭스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은 상징적인 중요성도 갖고 있다. 외국인들이 좀처럼 왕국의 보수적 문화를 연상시키기 어려운 목소리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미르콧과 계약한지 한 달만인 작년 10월, 또 다른 리야드 소재 제작사 텔파즈11과 5년 계약을 했다. 이 회사도 미르콧처럼 수년간 유튜브 채널에 청소년들을 겨냥한 장편 영화를 업로드해 왔다. 사우디 왕국에서는 이런 영화들을 상영할 다른 장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텔파즈11은 넷플릭스에서 상영할 영화 8편을 개발·제작할 예정이다.   

이 스트리밍 대기업은 2019년부터 다양한 시리즈와 영화를 통해 사우디 콘텐츠를 늘려왔다. 그중 일부는 사회적 규범을 둘러싼 긴장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유명한 사우디 여성 영화제작자 하나 알 오마이르가 연출한 사우디 드라마 <위스퍼스>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가족이 경영하는 한 기업의 어두운 비밀을 다루고 있다. 넷플릭스 중동·북아프리카·터키 지역의 콘텐츠 담당 책임자 누하 엘 타예브는 포춘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히 여성 영화인을 찾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리적 문제와 기업의 이미지 측면에서 함정에 빠질 엄청난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의 통치자들은 오랫동안 활동가들과 정치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인권에 대한 태도, 여성들의 자율성에 대한 제한(여성의 운전 금지 같은 일부 조치는 최근에야 철폐됐다), 예멘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군사 활동 등이 주된 이유였다.

특히 2018년 10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의 끔찍한 살인 사건 이후,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미국 CIA는 MBS 왕세자가 이 살인을 승인했다고 결론 내렸다(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 살해 혐의로 사우디인 8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MBS는 사전 인지나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게 문제는 (정치가 사업을 위협할 수 있는) 사우디 시장의 전망이 명성에 대한 위험보다 더 큰가 하는 것이다. 이는 수십 년간 서구 기업들이 균형을 유지해온 문제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종종 매우 높은 수익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기업 리더들이 언론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사우디 계획에 대한 경영진의 코멘트를 거부했다(홍보 담당자는 회사가 왜 인터뷰를 피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전혀 논란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 언급된 AMC와 식스 플래그스 및 기타 업체의 홍보 담당자들도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수 차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투자전략을 총괄하는 사우디 관리들은 막상 인터뷰를 약속하고 침묵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기회의 땅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3,400만 명의 인구 중 약 3분의 2가 35세 미만으로, 심지어 MBS 왕세자보다 젊다.

이들은 요르단과 이집트, 그리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들의 같은 연령대 인구에 비해 가처분소득도 더 높다. 그들은 인터넷 보급률이 95%에 달하고 고속 와이파이가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 출시된 넷플릭스는 인터넷 세계에서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미르콧의 임원 아메르 아부 엘하이자(32)는 “이것이 생활 방식이 됐다. 휴대폰을 사용하고, 차와 커피를 마시고, 넷플릭스 가입을 하는 것 말이다. 그게 바로 새로운 사우디다”라고 설명한다.  

최근까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 왕국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필자가 2017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취재활동을 했을 때, 거의 35년간이나 운영 중인 영화관이 없었다. 영화와 세속음악은 이 나라가 오랫동안 고수해온 와하비 이슬람의 보수적 원칙 하에서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은 인근 두바이행 비행기를 타거나, 바로 인접한 바레인으로 차를 몰고 가서 디스코 파티를 하고 할리우드 개봉작을 봐야 했다. 호텔 로비에서 차를 마시며 인터뷰를 하던 중 한 취재원이 천장을 가리키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도 “최근 이뤄진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 프로그램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넷플릭스의 쇼 페이지(오른쪽)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풍자적인 사우디 만화 마사미어 카운티(왼쪽)가 1위를 차지했다. [이미지=포춘]
전 세계 프로그램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넷플릭스의 쇼 페이지(오른쪽)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풍자적인 사우디 만화 마사미어 카운티(왼쪽)가 1위를 차지했다. [이미지=포춘]

왕세자의 주도 하에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다. MBS가 2015년 아버지 살만 국왕으로부터 권력을 계승한 후, 그의 주된 임무는 경제의 압도적인 석유 의존도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그는 2030년까지 GDP를 두 배로 늘리고 6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비전 2030’이라는 대규모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매킨지 컨설턴트들을 동원했다.

이 계획은 민간 기업을 대대적으로 키워 의료, 물류 및 기타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울러 완전히 새로운 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조성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문화적 엄격함으로 유명한 이 왕국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은 커다란 화제가 됐다. 2018년 4월 AMC가 운영하는 사우디 최초의 새 영화관이 리야드에 문을 열고, 디즈니 마블의 우주 히어로물 <블랙 팬서>를 상영했다.

애덤 에런 AMC 최고경영자는 이날 사우디 VIP 시사회에서 초청객들에게 “위대한 나라를 혁신하는 젊은 왕자의 이야기”라며 “여러분 중 몇몇에게는 익숙하게 들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수십 개의 극장이 운영 중이고, 종종 만원을 이룬다.

에런은 2019년 당시 “리야드의 AMC 극장이 미국이나 영국 극장들에 비해 11배나 더 많은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POP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POP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

정부는 또한 처음으로 라이브 팝 음악을 널리 접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2019년 K팝 메가 스타 방탄소년단이 6만 석 규모의 국립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머라이어 캐리와 블랙 아이드 피스도 공연을 펼쳤다.

정부 당국은 또한 129 평방 마일 규모-미국 월트 디즈니 월드의 두 배 크기다-의 엔터테인먼트 및 스포츠 단지 식스 플래그스의 키디야도 착공에 들어갔다. 사우디 관리들은 키디야의 기반 시설에만 8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사우디의 엔터테인먼트 확장을 둔화시켰지만, 이 왕국이 해외에서 기회를 추구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작년 3~4월에 유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사우디 중앙은행은 400억 달러를 거대 국부펀드 PIF-왕세자가 의장을 맡고 있으며, 운용 자산이 4,000억 달러가 넘는다-에 송금했다.

이 조치에는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팬데믹의 여파로 폭락한 미국 주식을 매수하기 위함이었다.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는 당시 투자자들에게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 펀드는 작년 4월 라이브 네이션에 5억 달러를 투자하며, 세계 최대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지분 5.7%를 취득했다. 이어 12월에는 미국 게임회사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에 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갑자기 PIF가 사우디 젊은이들의 기분전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회사들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게 된 것이다. MBS의 개혁을 분석한 <비전 혹은 신기루: 기로에 선 사우디아라비아>의 저자이며, 영국 주재 미국 외교관을 지낸 데이비드 런델은 “팬데믹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그것이 끔찍하고 무모하다고 비판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MBS가 천재였던 것처럼 보인다”라고 평가한다. 

사우디 기업들도 TV와 영화에 대규모 지분 투자를 했다. PIF는 작년 5월 약 5억 달러 상당의 디즈니 주식을 매수했고, 12월에는 사우디 은행이 정부 지원을 받아 조셉 & 앤서니 루소 형제-사상 최대 흥행작 중 하나인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공동 감독을 맡았다-의 제작사 AGBO에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런 투자들은 양국의 장기간 구애활동-그동안은 지정학적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이 새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했다.

지난 2018년 4월 MBS와 그의 수행원들은 할리우드 경영진과 ‘사우디아라비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라는 이름의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베벌리 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을 예약했다. 분명 그 미래는 당시 LA에서 만들어졌다.

넷플렉스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은 문화적으로 엄격한 이 왕국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넷플렉스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은 문화적으로 엄격한 이 왕국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왕세자는 루퍼트 머독 폭스 회장의 벨 에어 저택에서 영접을 받았고, 이틀 뒤에는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의 집에 초대됐다. 이날 행사에는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 당시 디즈니 CEO였던 로버트 아이거, 유력 에이전시 윌리엄 모리스 엔데버의 애리 이매뉴얼 CEO 등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그것은 엄청난 인적 네트워킹의 자리였고, 6개월 뒤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때까지는 거래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MBS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 기자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 안에서 살해됐다.

모든 증거들은 사우디 정부로 향했지만, 당국은 살인 책임을 “불법을 저지른 요원들”에게 돌렸다. 여론의 분노가 일자, 에마누엘 CEO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끊고, PIF에 투자금 4억 달러를 반환했다. 사우디와 거래하는 기술 및 스타트업 기업들에 자문을 제공하는 이반 야코블예비치는 “많은 논의들이 중단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과 다른 서구 정부들은 살인에 연루된 사우디 관리들을 제재했다. 그러나 MBS를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왕국 내에서 사업을 하는 다수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미 있는 규제는 가해지지 않았다.

그 이후 무수한 뉴스가 나왔지만, 거의 3년이 지난 오늘날 카슈끄지 사건을 둘러싼 분노는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전 외교관 런델은 “자말 카슈끄지 사건이 장기적으로 사우디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기업들에게는 이런 윤리적 문제와 이익의 불안한 공존이 익숙하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사우디의 엄청난 석유 매장량과 공동의 적국인 이란에 대항하는 동맹 관계를 고려할 때 사우디 왕정을 자국의 이익에 중요하다고 여겨왔다.

군주제에 대한 반감을 애써 억누른 행동에는 이런 계산이 작용했다. 샘 블랫티스 기술회사 고문은 이 상황을 미국인이 아닌 일부 비미국 기업 경영진이 미국에 느끼는 감정에 비유한다.

미국 국적인 그는 “내가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해서 적법하지 않은 무인기 공격과 관타나모 수용소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신흥시장에서 성공해야 할 ‘수탁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미국 재계 지도자들은 사우디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연례 콘퍼런스-서구 언론은 “사막의 다보스 포럼”이라는 별칭을 붙였다-에 대거 참석하며, 이 시장에서 성공하려는 열망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올해 행사에는 아이거 디즈니 회장, 스티브 슈워츠먼 블랙스톤 CEO,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등 수 많은 미국 최고위 경영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는 이틀간 행사에 집중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리야드로 날아갔다. 온라인으로 참가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패널에는 AMC의 애런, 유튜브 CEO 로버트 킨클, 할리우드 영화 제작 및 배급사 STX엔터테인먼트의 CEO 밥 시먼즈가 있었다.

그후, 시먼즈는 런던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몇몇 영화배우들에게 알렸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엔터테인먼트 업계 창작자들과 소비자들은 그만큼 긍정적이지 않다. MBS는 작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럽 챔피언십 대회를 후원한다”고 발표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텐센트 자회사 라이엇게임즈가 보유한 e스포츠 게임이다. 그러나 라이엇게임즈는 선수들이 소셜 미디어에 분노를 표출한 후, 24시간도 안돼 계약을 파기했다.

그러나 이런 반대는 예외에 가까웠다. 좀처럼 촬영 장소를 알리지 않는 영화 제작자들이 처음으로 사우디 영토에서 공개 촬영을 시작했다. 루소 형제는 올해 초 출시한 드라마 <체리>의 장면들을 사우디 고대 사막도시 알룰라 인근에서 찍었다.

사우디의 거대 언론사 MBC가 일부 자금을 댄 스파이 스릴러물 <칸다하르>도 올해 안에 아프가니스탄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12월 사우디 관계자들은 할리우드에서 경력을 쌓은 35세의 제작자 모하메드 알 터키가 이끄는 ‘제다 홍해 영화제’를 개막할 예정이다. 알 터키는 지난 7월 칸 국제영화제-당시 사우디 정부가 자국 영화산업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후원했다-에서 “우리는 이 모든 제작자들이 왕국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훌륭한 세금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며 “더 많은 영화 촬영들이 계획돼 있다”라고 밝혔다. 

점점 더 편안하게 적응하고 있음에도, 일부 영화와 TV 창작자들은 사우디의 정치적 감수성이 그들의 스토리를 제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우려한다. 카슈끄지의 죽음과 관련된 최근 두 가지 사건은 이런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먼저 2019년 넷플릭스는 하산 민하지가 주연을 맡은 새로운 스타일의 코미디 시리즈 <패트리어트 액트> 에피소드를 삭제했다. 민하지가 카슈끄지의 살인을 비난하는 동영상에 대해 사우디가 불만을 제기한 후였다.

이 에피소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삭제됐으며, 넷플릭스는 현지 법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하지는 굴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사우디에서 오류 404코드로 알려진 패트리어트 액트는 시청이 불가하다”고 밝히며, 자신의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번째는 작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반체제>가 상영된 일이다. 러시아의 올림픽 도핑 스캔들을 폭로한 브라이언 포겔 감독의 이전 작품 <이카루스>는 오스카상을 수상했고, 새 영화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널리 개봉되지 못했고, 주문형 비디오로만 시청이 가능했다. 포겔은 대형 배급업체들이 잠재적인 사우디 파트너들이 불쾌할 것을 우려해 <반체제> 영화를 기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00만 달러는커녕 1달러짜리 제안도 없었다”며 “이런 기업들의 규모가 더 커지면서 콘텐츠를 포함한 그들의 선택이 점점 덜 위험해지는 것을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영화 및 TV 제작자 그룹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 바로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우디인들이다.

미르콧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사미어 카운티>는 주로 검은색 테두리 선을 사용, 거의 초보적인 만화 기법으로 그렸다. 그 내용도 너무 순수해 보여 이 작품은 어린이용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이 애니메이션은 권력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권위주의 체제 하의 삶에 대해 씁쓸하고 때로는 유쾌한 통찰을 제공한다.

첫 편에서는 엄청나게 부유한 사우디인이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궁전을 몰래 빠져 나온 후 납치되는 장면이 나온다.

납치범들은 그가 광분한 지도자의 고함소리를 듣게 만든다. 그 지도자는 자신을 따르는 청중들에게 “서구와 그 수하들의 압제를 반드시 종식시킬 것”이라고 소리친다. 이 장면은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이 널리 보급되기 전 수년 동안, 사우디 국영 언론을 지배했던 민족주의 수사(修辭)에 대한 명백한 풍자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미르콧 작품인 <마사미어: 영화편>은 지난해 사우디 극장에서 개봉됐다. 이 영화 또한 사우디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풍자한다. 사우디의 거물을 위해 로봇을 만드는 천재 엔지니어 주인공은 다나라는 호리호리한 젊은 여성이다.

이 거물급 인물은 로봇이 자신이 원하는 불룩한 근육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불평하는 신경질적인 성차별주의자이다. 만화 세계의 최상위 계급에는 슈퍼히어로 망토를 두른 뚱뚱한 얼간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쓸모 있는 일을 다나에게 시키려고 “요리할 줄 알아?”라고 묻는다. 그러자 다나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무시하며 “몰라요”라고 답한다. 

이 작품은 가족 친화적인 영화로, 체제에 항의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우디 젊은이들은 이 캐릭터들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다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왕족에 대한 충성심에 의존하는 남성 중심의 권력체제가 성평등과 유연한 규범을 갈망하는 세대와 보조를 맞추느라 고군분투하는 사회를 담고 있다.

사우디 제작사 텔파즈11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알라 유세프 파단(42)은 “우리에게 단지 석유와 급진주의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2019년 넷플릭스가 처음 접촉했을 때 “서랍 속에 간직했던” 단편 영화 6편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넷플릭스는 재빨리 그 작품들을 사들인 후 <사막의 6개 창>이라는 이름을 붙여 방영했다. 이 영화들은 소설에나 등장할 것 같은 사우디의 실태를 신랄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연애와 성에 관한 보수적 지침 같은 우려할 만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일반 사우디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파단은 “우리가 단지 오해만 받는 게 아니다”라며 “세상이 우리를 전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다른 사우디 영화와 TV 프로들과 마찬가지로, 텔파즈11의 영화들은 사우디의 글로벌 이미지에 대해 활기 넘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작품들이 항상 ‘대안’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개방적인 사회를 원하는 사우디인들이 성년이 돼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현실을 더 면밀하게 반영할 것인지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넷플릭스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모두가 장기간 방영될 수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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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거래
코로나19 대유행이 낳은 경제적 혼란은 오히려 미국 기업들에 대한 사우디의 투자 확대를 촉발했다. 투자는 그 반대 방향으로도 이뤄졌다. 이런 추세를 이끈 원동력은 주식 포트폴리오와 석유 의존형 경제를 다변화하려는 왕국의 노력에 있다.

[사진=포춘]
[사진=포춘]

저가에 우량주들을 매수하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의장을 맡고 있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은 약 4,0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PIF는 작년 봄 팬데믹으로 인해 급락한 미국 주식들에 현금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미국 포트폴리오 규모는 이전보다 4배 이상 많은 98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서류에 따르면, PIF가 5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주요 기업들은 보잉과 시티그룹, 디즈니, 매리엇 호텔이다. 이 펀드는 이후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같은 비디오 게임 제작업체들의 지분도 사들였다. 현재 미국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약 150억 달러에 달한다.

육로와 해상에까지 투자하다
PIF는 대유행 직전 테슬라의 대규모 지분을 대부분 매각했다. 그 바람에 테슬라 주가의 급등에 따른 엄청난 수익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테슬라의 경쟁사 루시드 모터스에 투자한 29억 달러가 대박을 터트렸다. PIF는 루시드가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해 상장함으로써, 200억 달러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이 국부펀드는 막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루시드의 지분 약 60%를 장악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루시드가 자국에 공장을 설립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달러 기준으로 PIF의 단일 미국 최대 투자는 우버 지분 약 4%(7월 말 당시 35억 달러 규모)를 인수한 것이다. 한편,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카니발은 작년 3월 100여 척의 크루즈 여객선 운영을 중단한 후 매출이 0까지 추락하는 것을 지켜봤다. PIF는 재빠르게 4,350만주를 사들여 카니발의 2대 주주가 됐다.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다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팬데믹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온라인 서비스 수요를 가속화했고,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의 주목을 받았다. 알파벳은 작년 12월 현지 기업 고객들을 겨냥한 구글 클라우드 합작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국영 석유 대기업 사우디 아람코와 계약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아마존이 사우디 전자상거래 사업을 대폭 확장하기 위해 현지에서 1,500명을 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거래 모두 협상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협상은 2018년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중단됐다. 카슈끄지는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워싱턴 포스트’ 소속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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