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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해제에 숨은 과학과 기술

동북아 화약고 ‘한반도’의 탄도미사일 정치학

  • 기사입력 2021.06.30 16:45
  • 최종수정 2021.07.01 09:21
  • 기자명 전승민 과학기술전문 저술가 겸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2021년 5월 22일 우리나라가 미국과 맺고 있던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하 미사일지침)’이 마침내 해제됐다. 미사일지침은 우리나라가 미사일을 개발할 때, 미국과 서로 약속한 성능 이상의 것을 개발하지 않겠다며 맺은 약정이다. 이 지침이 해제된다는 건 자국의 주권 회복 차원에서 분명 기뻐해야 할 사안이지만 여기에 숨은 정치적 판단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탄도미사일의 전략적 가치
‘미사일’이란 ‘유도기능을 가진 로켓무기’의 총칭이다. 연료를 태워 뒤로 쏟아내고 그 반작용으로 앞을 향해 날아간다. 이때 유도기능이 없으면 그냥 로켓포, 로켓탄 등으로 부르며 목표를 추적해 가는 기술이 포함되면 미사일로 구분한다. 소형 미사일은 전투기나 차량, 군함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한 무기체계 중 가장 효과적이라 ‘현대전은 미사일 놀음’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지상에서 발사해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먼 거리를 날아가는 ‘탄도탄’도 미사일로 구분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적국의 주요 시설물까지 날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오차와 궤도를 수정하기 때문에 이 역시 유도기능으로 간주해 ‘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상 탄도탄이 아니면 수백 킬로미터 이상의 먼 거리를 날아가긴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미사일지침은 오롯이 ‘한국의 탄도미사일을 제한하는 지침’이었다.

물론 탄도미사일에도 종류가 있다. 사정거리 순으로 나누어 보면 300㎞ 이내의 근거리용은 전술 탄도미사일, 300~1000㎞ 사이를 날아가면 단거리 탄도미사일, 1000~3000㎞ 사이는 준중거리 탄도미사일, 3000~5000㎞ 사이면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구분한다. 그리고 그보다 사정거리가 더 길면 흔히 ICBM이라고 부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된다. 여담이지만 지구 둘레는 대략 4만㎞ 정도로, 지구 반대편을 노리려면 사거리 2만㎞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통은 사정거리 1만㎞를 전후해 고성능 ICBM으로 구분하는데, 냉전시대 미국과 러시아가 대서양을 건너 서로를 공격하기 충분한 성능이었기 때문이다. ICBM 단계가 되면 우주공간을 나갔다 들어와야 하므로 우주발사체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탄도탄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국가와 전쟁을 치를 때 비교도 할 수 없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다. 적군을 공격하는 방법이야 많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하늘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고, 장갑차량에 붙은 포를 발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상대도 방어할 여지가 있는데, 탄도미사일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막을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 즉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국가는 일단 적국의 통신, 항구, 비행장, 군 지휘소, 보급고 등의 주요시설을 먼 거리에서 파괴해 놓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미사일 방어시스템(MD)’이라고 해서 탄도미사일 요격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공격하는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다.

탄도미사일 요격은 어떻게 이뤄질까. 먼 거리를 날아가려면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ICBM의 경우처럼 먼 거리에서 날아오면 중력에 의해 가속을 받는 시간이 늘어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자세한 속도는 미사일마다 다르지만 최대 음속의 20배를 넘는 일도 있다. 이런 미사일을 다시 쏘아 맞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우주로 나가있을 때, 즉 포물선의 정점에 올라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므로 그 단계에서 요격을 시도하려고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국만이 러시아, 중국 등에서 발사한 미사일에 대응할 때 사용이 가능한 개념이다.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경우 다소의 대응이 가능한데, 미사일이 레이더가 닿는 거리에서 솟아올라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기 때문에 그 ‘길’을 예측할 수가 있다.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발사한 미사일 정도라면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으며, 고도 역시 높지 않아 요격할 여지가 생긴다. 물론 100% 성공하긴 어렵겠지만 절반 이상의 성공률도 의미가 크다. 한미연합군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사드, 패트리어트 등의 요격시스템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며, 그 전략자산을 놓고 주변국과 신경전을 벌어지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고성능 요격시스템 하나로 동북아의 양국의 군사적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지침에 맞춰 발전해온 한국 탄도미사일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의 역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는 ‘백곰 사업’을 진행하며 북한과 맞상대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 했는데 이때 우리가 미국으로 부터 제공 받은 것이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이었다. 이 미사일은 본래 하늘을 날아오는 적을 공격하는 ‘지대공 미사일’이었는데, 이를 개량해 사거리 200㎞ 수준의 ‘백곰 미사일(Nike Hercules Korea-1)’로 재차 개발한 것이다. 이 당시 미국은 ‘사거리 180㎞에 탄두 중량 500㎏으로 제한하라’고 권고하는데 미국으로부터 원형 미사일을 도입 받은 데다 양국 동맹 관계를 고려해야 했던 우리는 이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사거리 180㎞이면 휴전선 인근에서 평양까지는 공격할 수 있으니 충분하지 않냐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며 우리 측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사일지침도 여러 차례 개정해 왔다. 1999년엔 사거리 300㎞, 탄두의 무게는 500㎏으로 늘렸는데, 대전에서 평양을 노릴 수 있는 정도다. 이정도도 부족하다고 봤지만 대신 연구용 및 우주발사체 개발 과정에선 제한을 받지 않는 조건을 달았다.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길을 연 셈이다.

2012년엔 ‘유동적 사거리 제한’이 이뤄졌다. 사정거리를 800㎞로 늘리고 탄두 중량은 500㎏을 그대로 유지했는데, 대전 부근에서 북한 어디든 노릴 수 있는 거리다. 여기에 사정거리를 줄일수록 위력을 더 키울 수 있도록 했다. 500㎞의 경우는 1t, 300㎞의 경우는 2t까지 허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등 그 외 국가를 자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017년엔 사거리 800㎞ 제한을 그대로 둔 채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앴다. 단순히 중량 제한만 없앤것 아니고 볼 수 있는데 실용성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탄두 1t에 사거리 800㎞의 미사일을 일단 개발한 다음, 여기에 150㎏의 탄두로 바꿔 올리면 2000㎞ 이상을 날아갈 수 있다. 즉 암묵적으로 사거리 제한을 풀어준 것이다. 이 지침에 따라 한국에서 즉시 개발한 것이 ‘현무-4’ 미사일이다. 사거리 800㎞에 탄두 중량을 2t까지 올렸는데, 필요하다면 사거리를 더 줄이고 탄두 무게를 최대 4~5t 정도까지 올릴 수도 있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탄두 중량에 집착하는 건 핵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 핵탄두를 사용할 경우 탄두중량 100㎏ 정도로 히로시마에 사용됐던 원자폭탄의 10배의 위력을 얻을 수 있지만 재래식 폭탄은 충분한 위력을 얻기 위해 크기를 키울 필요가 있다. 광범위한 타격이 목적이 아니라 북한군 수뇌부가 숨어있을 수 있는 ‘지하벙커’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탄두 중량 2t 정도는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4~5t의 탄두중량을 확보한다면 북한에 있는 모든 지하벙커를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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