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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홍수환 복싱 전 세계 챔피언 "4전5기 정신이면 코로나 극복 가능"
인터뷰 - 홍수환 복싱 전 세계 챔피언 "4전5기 정신이면 코로나 극복 가능"
  • 정동철
  • 승인 2020.10.29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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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인원 5회 기록한 골프마니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수환아 장하다. 대한국민 만세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적지에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에 승리한 뒤 국제전화 내용이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울려 퍼진 모자 간의 감동 스토리다. 1년 뒤에는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면서 군인정신이 빠졌다는 이유로 1주일 군 영창까지 가야하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1977년에는 파나마에서 헥트로 카라스키야에게 4차례 다운 당한 뒤 극적인 KO승으로 45기의 신화를 쓰며 국민영웅에 올랐던 홍수환(70).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홍수환 스타 복싱 체육관에서 그를 만나 조강지처와 이혼 후 유명 여가수 옥희 씨와의 재혼과 이혼, 그리고 재결합, 골프 마니아이면서 유명 강사와 TV 출연 등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혼돈의 시대 삶의 지혜를 들어봤다.

코로나19 시기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난 1월 이후 강연이 거의 없다가 최근 지방 대학에서 한 강연이 올해 처음이다. 예전같으면 1년에 160회 이상 강연했으니 이틀에 한 번꼴로 한 셈이다. 비단 나만의 어려움이 아닌 만큼 코로나 덕분에 재충전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강연은 줄었지만 방송 출연 등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평소 강연 핵심 내용은.

프로정신과 도전이다. 꿈이 없으면 도전도 없고 프로정신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일할 때 제대로 일하고 쉴 때 쉬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복싱도 한 라운드 3분에 휴식 1분이 주어지지 않나. 모든 일도 마찬가지며 자기가 하는 일에 프로정신을 가져야 한다.

기업체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강연을 해왔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코로나 시기에 온갖 역경을 이겨낸 사람으로 슬기로운 극복 방법을 조언한다면.

마스크 쓰기, 거리두기 등 모든 사람들이 화합하고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으면 이것 또한 지나가게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득실이 있고 음양이 있기 마련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포기할 이유는 없으며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1977년 카라스키야전 45기가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요즘같은 어려운 시절에 필요한 마음가짐 또는 자세는.

건강하지 못해 좌절하면 안된다. 지킬 것 지키고 건강해야 멋지게 복수하고 살수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규칙을 잘 지켜 이겨내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얻은 교훈이 하나있다. 나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카라스키야는 비록 경기에서는 나에게 졌지만 인생에서는 자신이 이긴 인생 챔피언이라 부르고 싶다. 파나마에서 국회의원, 시장직을 지냈으며 내 챔피언 탄생 40주년 기념식 때는 한국에 직접와서 축하까지 해줬다.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한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인생으로 재기하고 남을 포용하는 여유가 부럽다.

특히 청년 등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방탄소년단 등 K팝은 물론 스포츠 등 많은 분야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 많은 젊은이들이 힘들게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길을 찾으면 방법은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부인 옥희씨와 함께

골프 마니아로 알고 있는데 골프실력은.

1987년 미국에서 골프에 입문해서 1년 만에 싱글을 기록할 정도였다. 베스트 스코어는 2언더파 70타다. 예전에는 드라이버샷 거리가 260야드에 달했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220~230야드 정도 나가는 것 같다. 평소 스코어는 85타 정도다.

홀인원도 여러 번하지 않았나.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운좋게도 5차례나 했다. 1994년 경기 용인의 골드CC에서 첫 홀인원을 기록 한후 이듬해 경기 광주의 뉴서울CC, 2002년 청주 그랜드CC, 2003년 미국 LA의 한 골프장, 그리고 2011년 경기 광주의 남촌골프장에서 기록한 게 마지막이다.

홀인원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홀인원은 행운을 상징한다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51월 뉴서울CC에서 두 번째 홀인원을 한 뒤 2개월 후 1979년 이혼했던 부인 옥희 씨와 16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아내를 만나 재결합 한 것은 가장 큰 축복이며 모든 게 골프덕분이다. 신혼 초 한때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헤어졌다가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잉꼬부부로 잘 살고 있다.

부인 옥희 씨와는 골프 동반자이자 라이벌이라고 하던데.

두 사람 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 필드에 자주 나가지는 못하지만 사랑의 매개체가 골프 일 정도로 재미있는 동반자이기도하다. 내가 한 홀에 1타씩 잡아 주는 식으로 간단한 내기 골프를 하는데 돈은 보기 플레이어인 아내가 번번이 따는데 긴장감도 있고 재미있다. 스코어 차이는 나지만 승부에서는 한 치 양보없는 라이벌이다. 몇 년전에는 우리 부부가 불멸의 연인이라는 제목의 음반도 냈다.

골프와 복싱의 공통점은.

두 종목 다 인내심이 필요하며 복싱과 골프 스윙은 비슷한 면이 있다. 백스윙은 레프트 훅, 다운스윙은 라이트 어퍼컷 논리다. 백스윙 때 체중을 오른발에 실으며 왼 어깨를 회전하는 레프트 훅, 아운스윙 때 체중을 왼발로 옮기며 오른 어깨를 아래에서 위로 회전하는 라이트 어퍼컷이 너무나 똑같다. 어깨회전과 체중이동이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다만 복싱은 때리고 맞는 운동이지만 골프는 때리기만 하니 얼마나 좋은 운동인가.

복싱 입문 시기와 동기는.

복싱은 서울 중앙고등학교 2학년 때 복싱광인 부친의 권유로 시작했다. 당시 종로구 내수동 87번지에 살았는데 집 근처에 김준호라는 유명복싱 선수가 있었던 것도 영향이컸다. 시합 때 코피를 흘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덤비는 모습에 끌렸다. 열아홉 나이인 1969년 아마추어를 거치지 않고 프로 문을 두드렸다. 2년 만에 한국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고 1972년 동양태평양 타이틀도 획득했다.

아놀드 테일러전 승리 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한데.

1974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아놀드 테일러가 1차 방어전 지명선수로 나를 찍었다. 당시까지 내 전적은 2422패인 반면 테일러는 3615패로 경험이 풍부했다. 격전지도 비행기를 6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남아공이었다. 육군 일병으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대에서 군복무 중이어서 소속부대의 배려로 시합에 갈수 있었다. 모든 게 열세였지만 15라운드 중 4차례나 다운을 뺏은 끝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챔피언 벨트를 찼다. 그리고 국제전화를 통해 라디오로 중계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수환아 장하다. 대한국민 만세다라는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금의환향, 카퍼레이드 및 청와대 초청 일화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에 대한민국이 열광했다. 육군 일병이 김포공항에서부터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장면이 TV로 중계될 만큼 대단했으며 병사 최초로 군 사열까지 받았다. 그리고 복싱 경기를 즐긴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했고, 그 자리에서 육영수 여사는 특별 하사금 200만원을 건넸다. 당시 서울 시내 집 2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 돈은 한국권투위원회 발전기금과 국내 복싱시합 중 혼수상태에 빠진 문정호 선수의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당시 파이터 머니는 360만원이었는데 매니저와 반반인 180만원씩 나눴다.

군인시절 1주일 영창 사연은.

바로 1년 뒤 멕시코의 핵주먹 알폰소 사모라에게 타이틀을 뺏기자 시선은 또 다시 싸늘해졌다. 부대에서는 군인정신이 빠졌다라는 이유로 군대 영창에 1주일 집어넣더라. 상관들이 지나가면서 , 챔피언 빼앗기니까 좋냐?” 는 등의 괄시를 당하기도했다.

카라스키야전에서 45기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모라전 패배 이후 홍수환은 끝났다”, “막 내린 홍수환 시대등의 비아냥과 비판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지 않나. 오기가 생겼고 투지는 더 강해졌다. 27살이던 나는 197711월 체급을 올려 신설된 WBA 슈퍼밴텀급 사냥에 나섰다. 상대는 당시 18세에 불과했지만 1111승을 모두 KO로 장식한 파나마의 국민영웅 카라스키야였다. 나는 2회에만 4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른 시합 같으면 한 라운드에 3번 다운되면 자동 KO패였지만 경기를 앞두고 룰 미팅 때 프리 녹다운제로 합의한 상태여서 경기는 재개됐다. 그리고 314초 만에 마침내 45기의 신화가 이뤄졌다. 혹독한 연습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경기였다. 인생은 한 방이다. 197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카퍼레이드를 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 경기는 2주전 발생한 이리역 기차 폭발 사건으로 전국이 침울했던 시기에 꿈과 용기를 주기도했다.

이후 은퇴와 미국 이민, 그리고 귀국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19785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콜롬비아의 리카르도 카르도나와의 2차 방어전에서 12TKO로 패하면서 다시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고 5041(14KO)45패의 전적을 남기고 1980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1982년 도피하듯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택시기사, 미군부대 복싱 코치를 하는 등 10년 생활을 청산하고 1992년 귀국했다. 어머니 연세도 있고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귀국 후 사회분위기도 달라지고 45기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이 늘면서 존재감이 다시 부각됐던 것 같다. 기업체, 관광서, 군부대 등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면서 강사로 제2의 안정적인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혼했던 옥희 씨와 199516년 만의 재회는 하나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용기와 희망 잃지 않으면 코로나 등 모든 역경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악으로 깡으로 이겨야한다. 힘들 내십시오. 정부와 대한체육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프로복싱의 활성화를 위한 체육회 가맹단체 가입 등 지원책이 절실하다.

정동철 골프 대기자,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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