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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끝까지 잘 견디는 가민

GARMIN GOES THE DISTANCE

  • 기사입력 2020.05.29 15:58
  • 기자명 DANIELLE ABRIL 기자

PERSONAL TECHNOLOGY
개인용 기술

실리콘밸리와 거리가 먼 이 장치 제조업체는 GPS 전문기술에 집중했다. 그리고 애플과 구글 등이 가한 맹공의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BY DANIELLE ABRIL

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투자한 모든 시간과 노력, 자금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많은 최고 아이디어들은 내부에서 나온다. 19세기 프록터 & 갬블의 한 화학자는 욕조에 떠 있는 비누 한 조각이 목욕을 더 재미있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아이보리 비누가 탄생했다. 1970년대에 3M 직원은 자신의 찬송가에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원했고, 몇 년 전 동료가 발명했지만 상업화하지 않은 접착제에 수정을 가했다. 이렇게 포스트잇은 3M을 상징하는 성공 스토리가 됐다. 그리고 캔자스 시 교외에서 보트와 비행기, 자동차용 항법 장치를 만드는 가민 Garmin에서, 달리는 것에 집착하는 한 무리의 직원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취미에 적용했다. 그건 ‘한방’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었다.

그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당시 가민은 정부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 기기를 만드는 틈새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경쟁사 톰톰 TomTom과 함께 차량 용 내비게이션 기기 시장을 장악했다. 내비게이션은 접이식 지도의 종말을 알리는 게임 체인저였다. 하지만 개인 운동용 GPS는 가민의 사내 조깅 모임에서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는 인기가 없었다. 가민에서 31년간 잔뼈가 굵은 CEO 클리프 펨블 Cliff Pemble은 "그들은 ‘우리는 모든 GPS 기기를 만든다. 러너들을 위한 GPS 제품이 있으면 어떨까?'라고 건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서 가민은 지난 2003년 첫 피트니스 웨어러블 포어러너 101 Forerunner 101을 선보였다. 직원들의 프로젝트로 탄생한 이 제품이 거의 20년간 이 회사를 대표하게 됐다. 특히 아이폰과 구글 맵의 치명적인 기술 조합이 가민의 핵심 자동차 사업을 붕괴시킨 후 더욱 그랬다. 오늘날 가민은 실리콘밸리와 거리를 둔 흔치 않은 기업이다. 회사는 기술업계의 거물들로부터 타격을 입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경쟁하면서 번창해왔다. 시계와 기타 웨어러블 제품은 지난해 가민이 올린 매출 38억 달러 중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회사는 현재 15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물론 경쟁사인 애플과 알파벳, 삼성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 자체로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가민이 그 맹공을 극복한 비법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전문분야를 고수하고 있는 회사의 사례연구라고 할 수 있다. 가민의 경우, 한 가지 핵심기술인 GPS 장치에 연동된 제품들이다. 아울러 모든 혁신이 햇빛에 빛나는 북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지역(실리콘밸리)에서만 탄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가민의 겸손한 중서부 기질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끈기는 회사의 지구력을 설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엄청난 시총의 경쟁사들이 다소 운 좋게 킬러 앱이 될만한 제품을 발견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펨블은 "아마 우리가 과소평가한 것은 웨어러블의 중요성이었을 것"이라며 "그 당시 우리는 그 제품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사업분야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고 시인한다.

물론 거대 기술회사들은 여전히 가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은 스마트워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알파벳의 구글은 가민의 경쟁사인 핏비트 인수를 추진 중이다. 시장 조사업체 NPD 그룹의 애널리스트 스티븐 베이커 Stephen Baker는 “대중에게 스마트워치를 팔려면 가민의 현재 제품과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그런 식의 도약을 할 수 있었거나, 시도했던 예도 많지 않다"고 분석한다.

가민은 원래 대중시장 정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회사는 처음부터 보트 선수, 조종사, 오프로더 같은 마니아들을 위한 틈새상품에 초점을 맞췄다. 공동 설립자인 게리 버렐 Gary Burrell과 민 카오 Min Kao는 얼라이드 시그널 Allied Signal의 엔지니어였다. 이들은 GPS가 민간용으로 보급된 직후인 1989년 회사를 설립했다(남성적으로 들리는 가민이라는 사명은 단순히 두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값싼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취미 활동가들에게 마치 ‘계시’처럼 다가왔다. 이들은 이전에는 정교한 군사장비 사용자들만 특권처럼 누렸던 기술에 접근할 수 있었다.

회사는 1991년 GPS 100이라는 다소 따분한 이름의 첫 제품을 출시했다. 작은 배와 비행기를 겨냥한 이 제품은 가민이 연말에 수익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회사는 7년 후 단지 가민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차내 디지털 지도로 발전한 제품을 선보였다. 가민의 6호 사원인 펨블(54)은 "차량용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개척한 카테고리였다"며 “그 제품은 회사가 소비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엄청난 성장동력을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가민은 그 이후 줄곧 근면과 겸손에 바탕을 둔 기업문화를 강조하는 중서부의 강점을 활용해왔다. 전직 시스템 엔지니어 조세프 리드 Josef Reed는 “그들은 직원들로부터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민의 마케팅 애널리스트 출신인 스테퍼니 마운틴 Stephanie Mountain도 “그들은 끊임없이 직원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한다.

직원들과의 관계가 너무나 끈끈했기에, 회사는 밀어붙일 수 있었다. 지난해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버렐은 스스로를 “섬기는 리더”라고 지칭했고, 회사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2000~2016년 가민에서 일했던 릭 에번스 Rick Evans는 “그는 정말로 내 아내와 아이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라고 회상한다.

2000년대 후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며, 이런 끈끈함은 큰 힘이 됐다. 회사는 2007년 자동차, 트럭, 오토바이를 위한 40여 종의 차량용 GPS 모델을 출시하면서 급성장하고 있었다. 자동차 부문은 23억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했다. 전년 대비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전체 매출의 거의 74%를 차지했다. 그리고 애플이 그 해 중반 구글맵을 탑재한 아이폰을 출시했다. 아이폰의 첫 버전에는 GPS 칩이 빠져 있었다. 그 대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좀 더 초보적인 기술에 의존했다. 그러나 애플은 1년 만에 GPS를 도입, 아이폰을 가민의 독립형 기기를 다양하게 대체하는 제품으로 만들었다.

가민의 사업은 거의 곧바로 타격을 입었고, 금융위기로 인해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08년 주가는 폭락, 전년도에 120달러가 넘던 최고가에서 주당 16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월가가 우려했던 대로 2009년 매출은 5억 달러가 감소해 30억 달러를 기록했다. 비록 가민은 여전히 굳건하게 흑자를 유지했지만(그 해 회사는 7억 400만 달러의 이익을 올렸다), 투자자들은 당황했다. 15년간 가민을 담당해 온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 론 엡스타인 Ron Epstein은 “그 당시 투자자들이 와서 '회사가 망할 것 같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한다.

현재 가민의 회장으로, 당시 CEO를 역임한 카오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 사업의 비자동차 부분에 투자를 집중했다. 예를 들어, 가민은 이후 10년간 전 세계에서 25개 이상의 회사를 인수했다. 지리적 범위를 확장한 내비게이션 장비 유통업체가 대부분이었다. 회사는 또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할 비대면 결제기술뿐 아니라, 날씨정보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CEO 펨블은 가민이 성장해야 할 당위성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성장과 기회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돈을 절약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결코 효과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가민의 제품 혁신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회사는 2008년 누비폰 Nuvifone을 출시했다. GPS를 지원하는 이 자체 스마트폰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소매가가 300달러로 당시로는 다소 비쌌다. 특히 터치 스크린의 반응도가 매우 좋지 않았다. 화면을 옆으로 쓸어 넘기는 스와이핑과 두드리는 태핑 동작을 종종 혼동한 것이다. 카메라 화질은 낮았고, 동영상 기능도 없었다. 더욱이 가민은 사용자들에게 날씨와 교통량, 지역 행사 등을 체크하는 비용으로 6달러를 받았다. 애플과 다른 휴대폰 업체들은 무료로 제공한 기능들이다. 결국 회사는 2년 6개월 만에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가민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제품을 개발할 때 최고 실력을 발휘했다. ‘빨리 움직이고 빨리 실패하라’는 실리콘밸리의 주문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회사의 이런 장점은 시장 출시 시간보다 정밀도가 더 중요한 규제 산업(특히 항공 산업)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가민의 전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맷 론지 Matt Ronge는 “나는 애플에서 일했고 그들이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목격했다. 하지만 가민에서 일이 진행되는 속도는 전혀 달랐다"고 설명한다.

피트니스 시계만큼 회사가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한 분야는 없었다. 이 제품은 GPS를 활용, 운동 결과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고강도 선수들이 점차 선호하게 됐다. 초기에 가민의 포어러너 제품으로 돌아선 러너 겸 피트니스 장치 전문 블로거인 레이 메이커 Ray Maker는 “GPS 탑재는 매우 중요하다. 심장과 다리는 정말 당신이 어떤 페이스로 운동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가민의 강점은 여러 가지 제품 기능에 있다. 일반 아마추어 선수들은 이런 기능에 놀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가민의 피트니스 사업—시계를 넘어 야구 배트스윙 센서와 실내 스마트 자전거 트레이너 같은 기기까지 확장하고 있다—은 회사의 최고 매출 효자였다. 이 사업은 지난해 가민이 2008년 기록한 매출 35억 달러를 처음으로 초과 달성하는데 일조했다. 회사 주가도 폭등했다. 자동차 부문은 피트니스 제품과 비교하면 매출이 줄었지만, 항공 부문은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사업 중 하나다.

로버트 W. 베어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윌 파워 Will Power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장 기본적인 가민의 ‘블로킹과 태클’ 전략이 지구력의 원천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은 대체로 경쟁이 덜한 분야에서 정말 강력한 방어막을 구축한다.”

어떤 면에서, 가민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기업임에도 ‘틈새 선수’가 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민에 위치 데이터를 제공하는 지도회사 히어 테크놀로지스 HERE Technologies의 CEO 에드자드 오버빅 Edzard Overbeek은 “우리가 가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그룹에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투입하는 방식 때문"이라며 “그들의 사이클 시계를 책임지는 팀은 프로 사이클 선수들이다. 항공팀은 조종사들이다. 가민의 비법은 전문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회사는 자사 마니아들에게만 어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열린 CES에서는 대중시장을 겨냥한 피트니스 제품들을 선보였다. 30개 이상의 시계와 웨어러블 제품을 전시한 것이다. 70달러짜리 아동용 건강 추적기부터, 다수의 모터스포츠 기능을 탑재한 2,500달러짜리 멋진 마크 드라이버 Marq Driver 시계까지 제품군은 다양했다. 현재 가민은 러너와 수영 선수, 보트 선수, 조종사, 그리고 단지 자신들이 한 운동을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총 90개의 웨어러블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회사의 최고마케팅책임자 수전 라이먼 Susan Lyman은 “최대 과제는 대중시장에 우리가 그들을 위한 완벽한 시계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이라며 “손목에 아무것도 차지 않은 채 처음으로 5km를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미칠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모든 부문을 공략하려면, 10년 전 가민을 정점에서 끌어 내린 실리콘밸리의 거대 야수들에게 도전장을 던질 수 밖에 없다. 2014년 첫 선을 보였을 때 혁신적이지 못한 제품이라고 조롱 받았던 애플 워치는 현재 스마트워치 시장의 38%를 점유하고 있다. 곧 구글의 자회사가 될 핏비트는 7.5%를 차지하고 있다. 가민의 시계 제품은 모두 합쳐 점유율 6%를 약간 밑돈다.

그러나 훌륭한 중서부 기업으로 자리매김 해온 가민은 난공불락의 경쟁자를 물리칠 필요성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펨블은 “우리는 애플을 앞지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가민이 되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위기에 최적화 된 방식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구축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완벽한 내비게이션 장치가 있다고 해서 미래의 위기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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