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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속의 시계 | 브레게] 투르비용 개발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시계 속의 시계 | 브레게] 투르비용 개발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 김타영 기자
  • 승인 2020.02.2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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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0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투르비용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Abraham-Louis Breguet가 창안한 가장 기발한 기계식 시계 장치로 꼽힌다. 중력의 영향을 분산시켜 시간 오차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개발됐으나 그 아름다운 움직임 덕분에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로도 유명하다.◀

581 칼리버 투르비용.
581 칼리버 투르비용.

[Fortune Korea] 브레게. 기계식 시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손목에 올려보고 싶은 동경해 마지 않는 브랜드이자 위대한 시계 발명가의 이름이다.

용기를 내 브레게 시계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어차피 가정인 거 좀 더 욕심을 내 (비교적 현실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면 어떤 모델을 고르는 것이 좋을까?

아마 대부분은 투르비용 기능이 들어간 시계를 떠올릴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다. 투르비용은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시계 마니아들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투르비용으로 향한다.

◆ 투르비용의 탄생

투르비용은 시계가 받는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시계는 특정 방향으로 쏠려 있을 때가 많은데 이 때문에 중력의 영향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시계의 정확성도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투르비용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투르비용의 탄생은 17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시테 섬의 어느 특별한 시계공방에서 한 워치메이커가 중력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 개발에 골몰 중이었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를 무려 2세기나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 워치메이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기계식 시계는 매우 예민한 장치였다. 브레게는 1790년 외부 충격이 시계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파라슈트를 창안했지만, 그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외부 충격은 어쩌다 한번 영향을 주지만 중력은 항상 시계에 불균형하게 힘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95년부터 시작된 그의 고민은 1800년대가 되어서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레게는 1801년 6월 26일 프랑스 내무부로부터 중력의 영향을 분산시키는 새로운 레귤레이터 장치 특허권을 취득했다. 밸런스 스프링과 밸런스 휠, 팔레트, 이스케이프먼트 휠로 구성된 레귤레이터를 캐리지(새장과 비슷하다고 해서 케이지라고도 한다)에 넣어 회전하는 방식으로 구동되는 장치였다.

1801년 특허 받은 투르비용 설계도 드로잉.
1801년 특허 받은 투르비용 설계도 드로잉.

◆ 쉽지 않은 상용화

브레게는 이 장치의 이름을 투르비용으로 명명했다. 투르비용은 프랑스어로 회오리(Tourbillon)를 뜻한다. 풀렸다 감기기를 반복하는 밸런스 스프링을 품고 캐리지가 도는 모습이 흡사 회오리를 연상케 해 붙은 이름이다. 캐리지가 계속 회전하면서 중력을 골고루 분산시키도록 한 이 아이디어는 시계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투르비용은 많은 워치메이커와 공학자를 감탄케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훌륭한 아이디어에 기초한 투르비용이지만 실제 제작이 극도로 까다로웠다. 지금이야 초정밀 기계로 나노미터급 부품도 만들 수 있지만 1800년대 초반은 그렇지 못해 생긴 문제였다.

이 때문에 투르비용 상용화는 대단히 더디게 진행됐다. 브레게가 특허 등록을 위해 1800년 프로토타입의 제282호 시계를 완성한 이후 나온 첫 모델이 1805년 작품일 정도였다. 브레게는 투르비용 상용화를 위해 특허 등록 이후에도 1805년까지 4년 동안이나 투르비용 연구를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레게가 개발한 1805년 투르비용 모델은 1806년 파리 국립 산업박람회에 공개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일반인이 접한 첫 투르비용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인 현재에도 투르비용 시계의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내는데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브레게는 1823년 작고 전까지 총 35개 투르비용 모델을 제작해 판매했다.

◆ 현재도 고난도 기술

투르비용은 현재에도 굉장히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200여 개 부품을 0.3g 이하로 제작·조립할 수 있어야 하며 신뢰도도 높아야 한다. 단순 장식품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복잡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워치메이커는 전 세계적으로도 120여 명에 불과하다. 세부 기능에 따라선 투르비용 1개 제작에만 1년이 넘어가는 모델도 있다고 하니 그 난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투르비용 생산량은 극히 한정적이다. 날고 기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조차도 2000년대 초반까지 1년에 겨우 1~2개 모델을 내놓을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최근엔 더 많은 브랜드에서 투르비용 생산 공정을 갖추고 또 독자적인 투르비용 기술도 개발해 접근이 쉬워졌지만 그래도 아직 대중화하지는 못해 가격이 매우 비싸다.

그렇다고 아주 구매를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준명품 브랜드에서도 하이엔드 수준의 독립 매뉴팩처와 손잡고 가뭄에 콩 나듯 투르비용 모델을 종종 내놓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이에 맞게 각각의 부품을 디자인하는 ‘제조 공정이 일원화된’ 브랜드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확실히 소장할 만한 가치는 있다.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77. 무브먼트 두께 3mm, 케이스 두께 7mm로 2013년 출시 당시 세계에서 제일 얇은 오토매틱 투르비용으로 화제가 됐다.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77. 무브먼트 두께 3mm, 케이스 두께 7mm로 2013년 출시 당시 세계에서 제일 얇은 오토매틱 투르비용으로 화제가 됐다.

◆ 그중 한 모델을 꼽는다면?

이제 다시 기사 서두의 질문과 답변으로 돌아가 보자. 하이엔드 브랜드 브레게와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투르비용의 조합은 그 자체로도 환상적이다. 게다가 브레게 역사에서 투르비용이 차지하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브레게는 현재에도 가장 많은 종류의 투르비용 워치를 개발하는 매뉴팩처로 유명하다.

브레게에는 워낙 다양한 종류의 투르비용 모델이 있어 이 중 특별한 하나를 선택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모델을 선택하든 훌륭할 테지만 그래도 좀 더 특별한 시계를 원한다면 ‘브레게 투르비용 데이’ 행사를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브레게는 2001년 투르비용 탄생 200주년 기념 축하 행사를 연 이후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상징적인 투르비용 워치들을 선별해 전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브레게 투르비용 데이에는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77(이하 5377)과 그 후속 모델인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67(이하 5367), 마린 뚜르비옹 에콰시옹 마샹 5887(이하 5887)과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스켈레트 5395(이하 5395) 등이 선보였다. 출시 순서로는 5377이 2013년으로 제일 앞서고 5887이 2017년으로 그 뒤를 잇는다. 이후 2018년 5367과 2019년 5395가 순차적으로 출시됐다.

5377과 5367은 레퍼런스 번호도 다르고 출시 연도도 2013년, 2018년으로 꽤 차이가 나지만 커플 같은 모델로 자주 분류된다. 581 계열 칼리버 중 가장 가까운 무브먼트를 사용해 시계 구조가 상당히 흡사하기 때문이다. 기요셰/그랑푸 다이얼 디자인과 8시 방향의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차이만 있다. 5377은 칼리버 두께 3mm, 케이스 두께 7mm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투르비용 시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5367은 그랑푸 에나멜 다이얼을 사용한 덕분에 케이스가 7.45mm로 좀 더 두껍다.

5887과 5395 모델에 대해선 아래를 참고하자.

 

 


 

◇ 마린 뚜르비옹 에콰시옹 마샹 5887

마린 뚜르비옹 에콰시옹 마샹 5887은 2세대 마린 컬렉션의 대미를 장식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로도 유명하다. 투르비용과 함께 퍼페추얼 캘린더, 균시차 및 태양 경로 표시 기능 등을 지원한다. 균시차는 우리가 사용하는 평균태양시와 시태양시의 차이를 말한다.

이 모델 역시 581 칼리버 계열인 581DPE 무브먼트가 사용됐다.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77과 그 후속 모델인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67에 쓰인 581DR이나 581 무브먼트와 비교하면 균시차를 작동시키기 위한 캠 사파이어 디스크가 투르비용 위에 올라갔다는 점이 다르다.

 


◇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스켈레트 5395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스켈레트 5395는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67을 스켈레톤화한 모델이다.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67에 들어간 581 칼리버를 변용시킨 581SQ 무브먼트가 사용됐다.

581SQ 칼리버는 플레이트와 브릿지의 절반가량을 덜어내 기계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무브먼트이다. 최소한으로 남긴 공간에도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플랫 오토매틱 5377 다이얼에 사용된 엔진 터닝 기요셰 장식과 클루 드 파리 패턴을 구현해 하이엔드 브랜드의 고고한 수준을 보여준다.

로마자 인덱스가 사용된 다이얼 외곽 플레이트는 크리스털 링으로 제작돼 스켈레톤 무브먼트와 최적의 조화를 이룬다.

 


<이하 박스기사>

◇ 투르비용이 e커머스에?

최근 e커머스 사이트에서는 투르비용 태그를 달아 판매하는 저렴한 가격의 시계들도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투르비용 모델이 아니다. 다이얼 일부를 드러내 밸런스 스프링과 밸런스 휠을 보여주는 오픈하트 모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둥글게 감긴 밸런스 스프링이 확장·수축하는 모습을 투르비용으로 착각한 판매자의 시계 기능 몰이해(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시계 초보들을 혹하게 하기 위한 그릇된 상술이거나)에서 비롯된 광고이다.

물론 밸런스 스프링이 풀렸다 감겼다 하는 모습도 시각적으로 매우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투르비용에 비할 바는 아니다. 투르비용은 밸런스 세트에 이스케이프먼트 구조물까지 통째로 회전시키기 때문이다. 즉 투르비용은 밸런스 스프링 운동에 더해 밸런스 휠 축을 따라 도는 이스케이프먼트 휠과 이들 전체의 회전 운동까지 볼 수 있는 셈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대기가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걸 보여주는 게 오픈하트라면 여기에 지구 주위를 도는 달과 지구 자전까지 보여주는 게 투르비용이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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