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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S EXPERT] 안병민의 ‘경영 수다’

비워야 혁신한다

  • 기사입력 2019.09.02 14:07
  • 기자명 포춘코리아 기자

▶진정한 혁신을 위해선 내가 만든 ‘나의 틀’을 깨야 한다. 내 식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해석해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 수 없다. 그래서 혁신의 전제는 ‘비움’이다.◀

혁신의 전제는 ‘비움’이다. 사진 셔터스톡

손바닥 들여다보듯 모르는 게 없다 여겼던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생경함이랄까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부분이었습니다. 글이 주는 임팩트가 무척이나 컸던 이유입니다. 화천 산천어축제는 국내 최대 지역축제 중 하나입니다. 매년 방문객 숫자가 200만명에 육박하는, 성공한 지역축제의 대명사입니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 이면을 보여주는 기사들을 본 겁니다.
비판의 핵심은 ‘동물학대’입니다. 단지 산천어를 먹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말초적인 재미를 위해 수많은 산천어를 인위적으로 한 장소에 몰아넣고 죽이는 상황이 문제라는 겁니다. 예컨대 소나 돼지를 먹으려고 이들을 한 군데에 몰아넣고 재미로 죽이지는 않습니다. 축제의 전 과정이 산천어에게는 학대랍니다. 전국 양식장에서 자란 산천어는 축제를 앞두고 며칠을 굶깁니다. 그래야 고객 입장에서 느끼는 산천어의 입질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축제를 전후하여 3주동안 약 76만 마리의 산천어가 사라진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쯤 되면 산천어 입장에서는 집단학살이나 다름없습니다. 물고기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보호법에서는 어류도 엄연한 동물로 규정하며, 동물을 유흥의 목적으로 상해를 입히거나 공개된 장소 혹은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물학대의 현장이 아이들에게 과연 교육적일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환경과 생태, 윤리라는 관점에서 재고가 필요하다는 게 글의 요지였습니다.
산천어축제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요컨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부’만 보고 ‘전체’인 줄 알았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던 겁니다. 눈을 가린 채 코끼리를 더듬고는 코끼리를 다 아는 냥 어쩌니, 저쩌니 떠들어 댄 격입니다.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입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려서입니다. 영화 ‘라쇼몽’은 인간의 본원적 이기심과 그로 인한 진실의 실종을 지적합니다. 산길을 가던 사무라이 부부를 협박하여 그 아내를 겁탈하고 사무라이 남편을 살해한 산도적의 이야기. 그러나 각자가 털어놓는 진실은 제각각입니다. “겁탈을 당한 여자는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했고, 나는 정당한 결투를 벌여 사무라이를 죽였다.” 도적의 말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말은 다릅니다. “나를 범한 도적은 도망가고 남편은 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 경멸의 눈길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였다.” 이미 죽은 목숨인 사무라이는 무당의 입을 빌려 당시를 설명합니다. “도적은 아내를 범한 후 아내를 설득해 함께 도망가자 했다. 아내는 그에 동의하며 대신 나를 죽이라했다. 도적은 거절했고 아내는 도망갔다. 자괴감에 나는 자결했다.” 다들 살인(혹은 자살)을 자인하지만 속내는 다릅니다. ‘추한 살인’이 아니라 ‘명분 있는 살인’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겁니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거짓, 이른바 ‘라쇼몽 효과’입니다. 모두가 진실을 말한다며 모두가 거짓을 얘기합니다. 심지어는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다는 나무꾼의 얘기에서도 거짓이 불거져 나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토머스 홉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의, 모두에 대한 거짓”입니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입장으로 바라보니 진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진실은 하나지만 저마다의 해석에 따른 ‘나의 진실’은 세상 모든 사람의 숫자만큼 많습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진실이 ‘진짜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산천어축제 논란’과 ‘영화 라쇼몽’에서 건져올린 지혜입니다.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견뎌내기 힘들어하는 인간은 속단과 맹신의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살얼음 밟듯 신중해야 합니다. 세상은 모순이 공존하는 곳이라서입니다. ‘성인위복불위목(聖人爲腹, 不爲目)’,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얘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눈은 ‘구분’을 의미하고 배는 ‘본질’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감각과 판단의 오류를 경계하는 표현입니다. “확신하지 않는 힘이 내공”이란 말이 가진 통찰을 새삼 곱씹게 됩니다.
이런 통찰은 오롯이 기업경영으로도 이어집니다. 어느 조직이나 혁신이 화두입니다. 초연결, 초지능, 초경쟁 등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상전벽해의 변화가 한창이라서입니다. 마케팅과 리더십을 포함한 경영의 ABC가 송두리째 바뀌는 배경입니다. 하지만 변해야 산다는 절박한 외침을 가로막는 혁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세상만사, 그저 내 식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해석하고 고집하는 겁니다. 내가 만든 나의 틀입니다.
그 틀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틀은 깨지기 위해 있는 겁니다. 그 틀을 깨는 것을 우리는 혁신이라 부릅니다. 혁신의 전제는, 그래서 ‘비움’입니다. 내가 구축해놓은 ‘나’라는 성(城)을 부숴야 합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했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버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꾸 알량한 나의 ‘눈’을 고집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에서의 지엽적 판단은 진실을 왜곡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를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는 그 자리에 혁신의 씨앗이 싹을 틔웁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비극적 역사의 한 자락을 담았습니다. 사도의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적 창의력을 한낱 “칼장난과 개그림”으로 치부해버리는 영조. 그래서 기억에 남는 사도의 한 마디는 “(과녁이 아니라)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냐?”입니다. 그리고 “공부가 그리 좋으냐?” 물어보는 아버지 사도에게 답하는 세손의 말. “공부가 좋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아버지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저도 싫습니다.” 빗나간 아버지 영조의 애정은 절대비극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이른바 ‘SKY캐슬 부모’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게, 부모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니 저렇게 뒤주에 갇혀 죽는 거 아냐.” 저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삽니다. 봐야 하는 대로만 보고 삽니다. 제대로 된 혁신이 요원한 이유입니다. 보여지는 대로 봐야 합니다.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부박하기 짝이 없는 ‘나의 진실’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을 거두어야 합니다. 명확하고 확고한 믿음은 절대 미래지향적일 수 없습니다. 결코 변화지향적일 수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다름에 대한, 변화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포용이 세상의 온전한 모습, 진실을 드러나게 합니다. ‘나의 성(城)’에 갇힌 채 맞는 변화는, 혁신의 기회가 아니라 봉변의 위기일 뿐입니다. 비워야 혁신입니다.

■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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