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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바이오칩 이식, SF를 넘어 현실이 되다

  • 기사입력 2019.03.05 15:52
  • 최종수정 2019.03.07 09:31
  • 기자명 Vivienne Walt 기자

생체칩의 인체 이식이 단순히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열쇠나 비밀번호 분실 걱정을 영원히 없애줄 실용적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는 바이오칩 산업을 살펴봤다. BY VIVIENNE WALT

바르바렐라 Barbarella는 스웨덴 항구도시 예테보리 Gothenburg의 한 좁은 뒷골목에 위치한 피어싱 가게다. 피어싱과 문신 시술을 받으려는 인근 주민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다. 이 가게는 지역 최고의 귓불 삽입형 피어싱과 노즈 링(코찌)을 판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11월 어느 추운 저녁, 이 가게에 평소와 사뭇 다른 신체 삽입물이 등장했다. 바로 바이오칩(생체 칩)이었다. 인구 약 60만의 예테보리에 어둠이 깔릴 무렵, 티셔츠에 야구모자를 쓴 요반 외스텔룬드 Jowan ?sterlund가 가게에 들어섰다. 그의 작은 벤처기업 바이오핵스 인터내셔널 Biohax International의 새 고객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외스텔룬드는 배낭에서 비닐로 포장된 주사기를 꺼냈다. 이 평범해 보이는 포장 속엔 그의 소중한 상품이 들어 있었다. 주사기 안에 든 어두운 색의 소형 마이크로칩은 육안으로 간신히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외스텔룬드는 현재 IT업계 비주류만 관심을 쏟는 바이오칩이 언젠가는 초대형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고 있다. 외스텔룬드은 “바이오 칩 이식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행동과, 현존하는 데이터보다 훨씬 더 가치가 큰 신종 데이터를 창조한다”며 “지금은 일종의 문샷 moonshot *역주: 구글이 추진하는 혁신적인 개발 프로젝트이지만, 장기적으론 반드시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스텔룬드는 피어싱 실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클라에스 라도예브스키 Claes Radojewski의 피부에 주사기를 꽂았다. 라도예브스키의 왼쪽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 살에 용량 1kb의 마이크로칩이 이식되는 순간이었다(그는 에릭손·볼보 등을 고객으로 하는 자동차업계 전문 혁신센터 모빌리티엑스랩 MobilityXLab의 프로그램 매니저다). 라도예브스키는 몇 초 만에 자신이 선구적 바이오 해커가 됐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그는 “문신 가게에 와 본 것조차 오늘이 처음”이라며 “곧 30대가 되는데, 그래서 심적으로 힘든 건 아니냐고 여자친구가 묻더라”고 말했다. 사실 라도예브스키는 생체 칩에 대해 알게 된 몇 년 전부터 이식을 희망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상에서 신기술을 사용하길 좋아한다.”

칩을 이식한 외스텔룬드에 따르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바이오칩 이식을 희망하고 있다. 그 증거로 외스텔룬드는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 앱을 보여주었다. 멀게는 호주와 멕시코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요청을 보내고 있었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관심 있는 투자자들이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이처럼 적극적인 호기심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회사 성장은 더딘 편이다. 2013년 바이오핵스를 창업한 외스텔룬드는 2016년이 되서야 회사 경영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매출은 지금도 미미한 수준이다. 그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해 “그럭저럭 할 만하다. 부자가 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미래에는 부자가 될까’라고 묻자 그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8세인 외스텔룬드는 실제로 거대한 파도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별도 기기로 처리하는 기능이 신체에 이식되는 사례가 점점 더 증가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 리서치 MarketsandMarkets Research가 작년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오칩 시장은 2020년까지 177억 5,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2018년에는 미래지향적 비전으로 유명한 기업인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 소재 벤처기업 뉴트럴링크 Neuralink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트럴링크는 뇌에 전극을 이식해 생각을 읽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외스텔룬드의 바이오핵스는 이미 작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 스웨덴 등 유럽 여러 국가에서 4,000명 이상이 바이오핵스의 칩을 이식 받았다. 바이오칩 개발자들이 대체로 심박 수나 혈당량 측정 같은 건강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외스텔룬드의 칩은 지병이 없는 사람들을 공략하고 있다. 바이오칩은 쇼핑부터 문 개폐와 보안절차 통과까지, 사실상 플라스틱 카드로 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외스텔룬드는 “기술이 몸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현재 바이오핵스 칩의 이식은 문신 매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포춘US
현재 바이오핵스 칩의 이식은 문신 매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포춘US

 

우선 외스텔룬드를 비롯한 ’칩 이식기업들(chippers)‘은 개인정보 보호부터 의료윤리까지 각종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칩이 비활성 상태인 만큼 이론적으론 무해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몸은 개인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는 드문 영역이다. 인터넷과 연결되는 기기가 자기 몸 안에 영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몸에 대한 통제권 상실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바이오칩 사용에 대한 사소한 소식조차도 공분을 산다. 영국 바이오칩 기업 바이오테크 BioTeq는 지난해 11월 국내외에서 약 150개의 마이크로칩을 이식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영국 기업인 협회 BCI는 “읽기에 너무나 불편한 발표문”이라고 반발했다. 영국의 전국 단위 노동단체 노동조합의회(Trades Union Congress)도 바이오칩이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갖는 권한과 통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벌어진 한 사건에서도 각별한 감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for Investigative Journalists)는 최근 보고서에서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없는 환경에서, 환자가 ’제대로 된 시험을 거치지 않은 생체 삽입물‘(바이오칩만을 뜻하지는 않는다)을 이식 받았다가 부상을 입은 사례가 많은 나라에서 보고됐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오칩에 매료된 개인들이 초기 실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칩 이식을 위해 또 한 명의 고객이 바르바렐라를 찾았다. 올해 29세인 구조공학 엔지니어 아니 셸손 Annie Kjellson은 18개월된 아들이 탄 유모차를 끌고 나타났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몇 년 동안 이식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SF적 기괴함이 주는 불편한 느낌이 있지만, 바이오칩에는 피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바로 엄청난 편의성이다. 내가 어깨에 매고 다니는 가방 속 지갑은 헬스장 회원증, 기자증, 은행 2곳과 카드사 1곳의 카드 등 각종 플라스틱 카드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의 비밀번호를 늘 기억하지 못한다. 가방에는 건강보험 세부사항, 이용하는 항공사, 단골 슈퍼, 지난번에 간 미용실 등의 정보를 담은 카드들도 들어있다. 거기에 열쇠도 한 꾸러미다. 문, 옷장, 물품 보관함 등을 여는 데 수천 년간 사용된 이 원시적 도구들은 현대에도 사람들의 일상에 밀착돼 있다. 스웨덴에서 귀국한 다음날엔 테니스를 치기 위해 서두르다가 아파트 열쇠를 두고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 호주머니에 든 열쇠를 받기 위해 8km나 택시를 타는 복잡한 여정을 감내해야 했다.

바이오해커들은 이런 구시대적 습관이 비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전에는 매일같이 열쇠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손만 대면 문이 열린다.” 바이오핵스 칩을 손에 이식한 이스라엘계 스웨덴 미래학자 아릭 드로미 Aric Dromi의 말이다. 드로미는 빅데이터 기술을 스웨덴의 모든 공공서비스에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스웨덴 정부 산하기관 핵 포 스웨덴 Hack for Sweden의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기자는 외스텔룬드와 함께 예테보리에서 바이오핵스의 거점인 해변도시 헬싱보리 Helsingborg행 열차를 타고 가면서, 스웨덴 정부의 노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좌석에 검표원이 도착하자, 외스텔룬드는 손을 내밀어 바이오칩에 내장된 표를 제시했다. 검표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를 확인했다. 스웨덴이 이미 전국 철도망에 바이오칩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스웨덴 전국에서 운영 중인 헬스장 체인 노르딕 웰니스 Nordic Wellness의 172개 지점 중 상당수 지점에서도, 직원과 회원들은 손으로 회전문과 사물함의 잠금을 해제하고 모니터에서 운동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전 세계 헬스장들도 전자 카드로 같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바이오칩은 회원들이 카드를 소지하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테보리에서 만난 드로미는 에스프레소 잔을 앞에 두고, 수백만 명이 미래(어쩌면 근시일 내)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칩의 합리성에 비하면 비밀번호와 열쇠를 계속 새로 만들고 보관하는 일이 너무나 반복적이기 때문이란 게 그 이유다. 그는 생체 칩이 지갑보다 보안성도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자의 파리 아파트처럼 전자 도어록이 설치된 경우에도 그럴까? 드로미는 “직접 한번 해 보겠다”고 말했다. 내가 도어록 열쇠를 꺼내자, 드로미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근거리무선통신(NFC) 리더를 가져다 대더니 1,528km 떨어진 파리 아파트의 이중 문을 개방할 수 있는 데이터를 휴대전화 화면에 띄웠다. 그는 “5분이면 복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바이오칩의 보안성이 훨씬 높을 때가 있다. 예컨대 인터뷰 장소 근처에 있는 드로미 집에 침입하려면 그를 끌고가 바이오 칩이 체내 어디에 이식됐는지를 알아내 문에 달린 NFC 리더기에 갖다 대야 한다. 바이오 칩의 기술적 바탕인 NFC 리더는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자동차 제조사와 애플·삼성 등 기술기업들의 모임인 자동차 커넥티비티 컨소시엄(Car Connectivity Consortium)은 지난해 6월 스마트폰 앱으로 자동차 문을 열고 엔진을 켤 수 있는 표준 디지털 키 시스템 개발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소비자 체내 칩에 자동차 키 정보를 내장하느냐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우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기자가 스웨덴에서 만난 바이오해커 모두는 “열쇠를 잃어버리는 게 지겨워 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바이오 칩은 초소형 안테나와 전자 리더기에 접근하면 데이터를 전송해주는 회로를 내장하고 있으며, 외부는 의료용 유리로 감싸고 있다. 현재 바이오핵스 칩의 저장용량은 1kb에 불과하지만, 향후 칩의 기능성이 확대되면 그 용량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사실 바이오해커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현재의 생활 방식에서 비합리적인 부분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된다. 병원 접수처가 보관함에서 개인 의료기록 파일을 꺼내는 모습이나, 승객이 차에 탈 때 종이 승차권을 판매하는 버스 기사의 모습 등이 그런 것들이다. 식당에서 팁을 주려고 잔돈을 찾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쌀알 한 톨 크기의 바이오 칩이면 이 모든 것은 물론, 수천 가지를 처리할 수 있다. 바이오해커는 바이오 칩이 없는 이 끊임없는 행동 양식을 “저항(friction)”이라 통칭하고 있다. 시를 쓰거나, 아이들과 놀아 주는 등 더 좋은 목적에 활용할 수 있을 시간과 집중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SF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바이오 칩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004년 플로리다 주 델레이 비치 Delray Beach에 소재한 어플라이드 디지털 솔루션 Applied Digital Solutions 사의 신체 삽입형 칩을 승인한 바 있다. 팔 위쪽에 이식하는 이 칩에 저장되는 의료기록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아무런 신분 증명 서류 없이 의식불명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에도, 의사가 칩 스캔을 통해 혈액형·의료기록·장기기증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FDA 승인 3년 후, 이 회사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자료에서 칩을 판매할 시장을 찾을 수 없었다고 적시했다. 아울러 ’시장의 인정을 받거나, 명목상 혹은 보통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어플라이드 디지털 솔루션은 환자들이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의심했고, 의사들도 환자와 이 칩에 대해 대화하길 꺼렸다고 설명했다.

바이오해커들은 칩 반대론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보고 있다. 바이오 칩은 비활성 상태이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사용자 위치를 끊임없이 전송하는 스마트폰보다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이런 반론에도 불구하고, 생체 칩이 소설 ‘1984’ 같은 통제사회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활개를 쳤다. 창작물 속 칩의 묘사도 암울한 미래상을 부채질했다. 외스텔룬드는 “SF영화에 나오는 체내 칩은 한결같이 추적장치 아니면 폭발장치”라고 지적했다.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코드명 J(원제: Johnny Mnemonic)’ 같은 영화를 보라. 칩은 늘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쁘거나 악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데 스웨덴만큼 좋은 장소는 드문 듯하다. 뉴욕 시보다 조금 인구가 많은 *역주: 약 1,000만 명 스웨덴은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 Skype,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Spotify, 세계 최초 휴대전화 제조사 중 하나인 에릭손 Ericsson이 태어난 곳이다. 전체 상품 구매에서 지폐와 동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1% 이하로, 현금 없는 사회를 거의 실현한 나라이기도 하다. 외스텔룬드는 이를 “문화적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신기술 보급이 빠른 편이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부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우리는 남한테 이용당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이오칩이 이미 널리 인정받는 분야도 있다. 스웨덴 등 여러 국가에선 실종을 대비해 반려동물 생체 칩을 도입했다. 바이오 칩의 일종인 심장박동기(페이스메이커)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상용화됐다. 그럼에도 디지털적 편의를 위한 칩 삽입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바이오 칩은 ‘기술을 위한 기술’에 불과하다.” 미 애리조나 주 메사에 위치한 결제전문 글로벌 컨설팅 업체 AZ 페이먼트 그룹 AZ Payments Group의 사장 리처드 오글즈비 Richard Oglesby의 지적이다. “칩 삽입은 몸에 칼을 대는 행위이고, 불필요하며, 그렇게 유용하지도 않다. 똑같은 기능을 쉽고 간편하게 제공하는 웨어러블 기기도 있다.”

바이오 칩이 아직 선풍적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이 기술의 지지자 일부가 기업 연구소가 아닌, 피어싱과 문신이라는 반(反)문화 세계 출신이라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바이오핵스의 외스텔룬드가 2004년에 했던 첫 창업은 커팅에지 Cutting Edge라는 피어싱 업체였다. 낙인 문신과 비중격/*역주: 코 중앙의 막/ 피어싱 등 파격적인 분야에 특화된 회사였다. 사실 외스텔룬드를 포함해 스웨덴에서 기자가 만난 거의 모든 바이오해커들의 몸에는 문신이 많았다. 외스텔룬드는 상체를 걷고 여성이 그려진 대형 복부 문신을 보여주기도 했다(그는 “나머지도 봐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들에게 바이오 칩은 피어싱이나 문신의 연장선이다. 스웨덴 서부 해안을 고속열차로 달리면서 외스텔룬드는 “스스로 내 몸의 기능을 바꿀 수 있다는데 아주 큰 매력이 있다”며 “내 몸이 기계와 말할 수 있게 된다니. 그리고 디지털 세상에선 아날로그인 것보다 디지털인 것이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물론 바이오 칩이 인기를 얻으려면 진정한 사업이 되어야 한다. 외스텔룬드는 바이오핵스의 투자 유치를 시작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시작했다. 그는 익명의 스웨덴 투자자가 지난해 12월 바이오핵스에 “수십 만 달러(six-figure)”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의 문신가게 수준에서 벗어나 공식 상업화가 완료되는 대로 바이오핵스 칩 이식을 담당할 의사·간호사를 약 100명 정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바이오핵스는 스톡홀름에 본사를 둔 기술 정보보안 업체 베리섹 Verisec과 제휴 관계를 맺었다. 외스텔룬드의 바이오 칩에 전자 ID 플랫폼을 공급하는 계약이었다. 이를 통해 바이오핵스는 직원식당 등 지정된 용도는 물론, 일반적인 전자결제로 사용처를 확대할 수 있고 운전면허증과 여권 등 신분증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외스텔룬드는 이 계약이 “성공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부 모니터로만 사용됐던 체내 삽입물을 통해 혈당수치·심박 수 등 각종 수치를 측정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몸 속 칩에 이런 기능을 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뉴욕시 금융서비스기업 제프리스 파이낸셜 그룹 Jefferies Financial Group 소속의 의료기술 애널리스트 라지 덴호이 Raj Denhoy의 말이다. 그는 향후 바이오 칩이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릴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치료 결과 향상을 위한 임상 데이터 활용은 앞으로 정말 크게 성장할 분야다. 바이오센서가 의료적 개입의 질을 향상하는 수준까지 분명 확대될 것이다.”

바이오 칩은 천천히 주류에 편입하고 있다. 미 위스콘신 주 리버 폴스 River Falls에 소재한 기술기업 스리 스퀘어 마켓 Three Square Market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자사 직원 85명을 포함해 총 673명에게 칩을 삽입했다. CEO 토드 웨스트비 Todd Westby는 직원들이 체내의 칩을 “개인정보 저장 및 일부 출입문 통과”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웨스트비는 바이오핵스 칩에 내장된 기술을 최초로 시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은 기술을 개발하고 기능을 발굴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도쿄올림픽위원회의 일본 협력업체 대표들이 외스텔룬드를 찾아와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바이오 칩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온몸에 문신을 한 바이오핵스 인터내셔널의 창립자 요반 외스텔룬드는 생체칩 이식이 언젠가는 대중화될 것이라 믿고 있다.  사진=포춘US
온몸에 문신을 한 바이오핵스 인터내셔널의 창립자 요반 외스텔룬드는 생체칩 이식이 언젠가는 대중화될 것이라 믿고 있다. 사진=포춘US

 

자국 스웨덴에서도 외스텔룬드의 칩은 기업 행사의 단골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이식 받을 수 있도록, 그는 늘 주사기를 들고 나타난다. 그는 지난해 3월 스웨덴과 덴마크의 국경지대인 말뫼Malm?에서 세계적 회계감사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PwC) 임원들을 대상으로 바이오핵스 칩을 시연했다. 그때 PwC의 지역 마케팅 총괄 몬스 릴리엔로브 M?nsLiljenlov가 즉시 이식 신청을 했다. 이제 릴리엔로브는 손을 흔드는 동작으로 사무실과 사물함 문을 열고, 직장에서 점심 값도 결제하고 있다. 올해는 집 내부를 수리해 열쇠구멍 대신 칩 리더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헬싱보리에서 열린 고객 대상 행사에서 기자와 만난 릴리엔로브는 바이오핵스 칩이 고객과의 좋은 대화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명함을 달라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면 난 명함이 없으니 내 바이오 칩으로 링크트인 Linkedin 프로필을 확인하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한 손님의 스마트폰 액정에 손을 대자 화면에 링크트인 프로필이 나타났다. 그는 “‘(그렇게 하면) 네? 진짜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선 다들 내 손을 만져 보고 싶어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아무리 만져 봐도 피부 밑에 있는 칩을 느낄 순 없다).

다른 대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7년 10월, 외스텔룬드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여행업체 투이 그룹 Tui Group의 지역본부 초청을 받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바이오칩을 시연했다. 그는 엄청난 문의를 받았고, 주문량 전체를 소화하기 위해 두 번이나 더 스톡홀름을 방문해야 했다. 현재 500명의 직원 중 약 100명이 칩을 이식 받았다.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를 담당하는 투이노르딕 Tui Nordic의 알렉스 후버 Alex Huber 매니징 디렉터는 “아마도 내가 회사에서 가장 먼저 칩을 이식 받은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칩은 스톡홀름 사무실에 들어올 때, 점심값을 결제할 때, 사무실 프린터에서 문서를 출력할 때 사용할 수 있다. 후버는 바이오 칩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에 놀랐다고 말했다. “심리적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 휴대전화가 훨씬 더 많은 기능을 한다.”

현 시점에서 외스텔룬드의 과제는, 바이오 칩을 자체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대기업에게 밀리기 전에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영국과 독일에서 바이오 칩 출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바이오핵스가 “훨씬 앞서 있다”고 믿고 있다. 현재 바이오핵스 칩은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NXP반도체(NXP Semiconductors)가 제조해 중국 선전에서 조립한다. 외스텔룬드는 올해부터 스웨덴 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드로미는 이 단계를 전기차의 시작 시점에 비유했다. “바이오핵스가 과연 시장 1위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바이오핵스가 바이오 칩 대중화의 길을 열까? 그렇다.” 드로미는 한 번의 결정이 바이오핵스의 시장 위치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령 스웨덴 군 당국이나 이케아가 바이오 칩 도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엄청난 성공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 바이오핵스는 자체 시스템을 시험하고, 강화된 보안 및 개인정보 조항을 플랫폼에 설치하고 있다. 외스텔룬드는 “당장 다음 주부터 26개국에 제품을 출시해 판매할 수도 있지만, 그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물샐 틈 없이 견고한 플랫폼을 갖추고, 모든 사용자의 무결성(無缺性)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려고 한다. 이 분야가 무법지대로 변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필자가 권위주의적 정부나 기업이 칩 삽입을 통해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니냐고 묻자, 외스텔룬드는 “아, 안 되죠.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그런 가능성은 SF영화에 양보하는 게 좋겠다.

▲구조와 작동법
바이오 칩은 신용카드의 IC칩과 유사하며, 소형 안테나와 전송장치를 갖고 있다. 근거리무선통신(NFC) 리더를 통해 문 개폐·기차표 구매·운동량 확인 등 각종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이식 지점: 피부 아래에 이식한다. 예컨대 바이오핵스 칩은 엄지와 중지 사이 살에 삽입된다. 바이오칩은 평소 비활성 상태에 있다가 NFC 리더가 근처에 있을 때에만 작동한다.

-기능: 열쇠, 현금인출카드, 헬스장 사물함 전자키, 버스표, 직원 신원확인 등 플라스틱 카드로 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다.

▲SF 영화 속의 바이오칩
생체이식 칩은 현실에선 낯설지 몰라도 SF 팬에겐 친숙한 개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바이오 칩을 다룬 일부 대표 작품들을 소개한다. By Aric Jenkins

-엔더의 게임(1985년): 오슨 스콧 카드 Orson Scott Card가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쓴 소설로, 작품에 나오는 어린이들의 뒷목에 ‘모니터’가 달려 있다(2013년 영화화 됐다). 다가오는 외계인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우주훈련학교에서 각 훈련생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 모니터는 훈련생의 신경 자극을 측정해 그들이 고된 훈련학교 생활에 육체적·정신적으로 적합한지 판단했다.

-데몰리션 맨(1993년): 2010년 ‘대지진’이 발생하고 22년이 흐른 후의 샌 앤젤레스 San Angeles(LA, 샌디에이고, 샌타 바버라의 잔해에서 탄생한 복합 거대 도시). 언뜻 보기엔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도시로 보인다. 손에 이식된 무선주파수 ID칩이 각 주민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추적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칩에 내장된 돈으로 물건을 구매해 지폐가 사라진다.

-코드명 J(1995년): ‘매트릭스’ 세계에 뛰어들기 전, 키아누 리브스는 뇌에 인공두뇌 데이터 저장장치를 이식 받은 ‘기억 배달부’ 역을 연기했다. 뇌 속의 칩은 일반 컴퓨터 네트워크로 전달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비밀 정보를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가는 있다. 칩을 이식할 저장공간 확보를 위해, 주인공 조니는 어린 시절 기억을 뇌에서 삭제해야만 했다. 조니가 수술로 칩을 제거하고,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기로 결심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블랙 미러: ‘당신의 모든 순간’(2011년): 영국 앤솔러지 드라마/*역주: 특정 테마를 기준으로 연속성 없는 이야기들을 모은 작품/ 블랙 미러의 시즌 1 최종 에피소드. 귀 뒤에 이식된 ’그레인 grain‘이라는 칩에 시청각적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레인 사용자는 원하는 기억을 자유롭게 재생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언뜻 유용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와 화해하고 행복한 현재를 살고픈 한 커플(토비 케벨 Toby Kebbell과 조디 휘터커 Jodie Whittaker 분)에겐 고통을 안긴다.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년): 재러드 레토 Jared Leto가 분한 과학자 겸 사업가 니앤더 월리스 Niander Wallace의 귀에는 반짝이는 작은 구가 달려 있다. 자신이 생산하는 ‘레플리칸트’처럼 월리스 또한 로봇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외양을 하고 있다. 실제 월리스는 시력이 없는 인간. 귀에 이식한 칩이 눈을 대신할 드론을 조종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마이크로칩 기술의 가장 현실적인 적용법은 아닐지 몰라도, 악당의 특성으로선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다.

-업그레이드(2018년): 2018년 SXSW 영화제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강도들의 공격으로 몸이 마비된 한 기계공(로건 마셜 그린 Logan Marshall Green 분)이 AI 칩을 이식 받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스템 STEM’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칩의 효과는 걷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초인적 신체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은 (관객의 예상대로)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을 상대로 복수에 나선다.

/번역 김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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