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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GLOBAL 500] 폭스바겐 개혁의 새 해결사

이 독일 자동차 대기업은 배출량 조작(디젤케이트) 스캔들을 뒤로 한 채, 문화를 전면 손질하고 전기차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By Vivienne Walt

  • 기사입력 2018.09.07 09:39
  • 최종수정 2018.09.21 13:02
  • 기자명 Vivienne Walt 기자

▲기업 프로파일: 세계 500대 기업 순위 7위, CEO 헤르베르트 디스HERBERT DIESS 

중부 독일의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 한 남자가 흰 가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발 밑에 깔린 도톰하고 보풀보풀한 카펫에 발을 묻은 후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4월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중 한 곳인 폭스바겐의 신임 CEO로 취임한 헤르베르트 디스 Herbert Diess(59)였다. 큰 키의 디스는 몸을 숙여 선홍색 금속 물체 안으로 들어갔다. 핸들이나 페달, 기어 등 일반적인 차에 있을 법한 부속 장비가 하나도 없다는 것만 빼면, 자동차를 무척 닮은 물체였다. 이 매끈한 물체의 정체는 폭스바겐이 지난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콘셉트카 I.D. 비지온 I.D. Vizzion이었다.

I.D. 비지온은 바퀴 달린 거실이나 단순한 실험 이상이다. 디스에 따르면, 비지온은 곧 다가올 무인주행차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창이다. 회사는 비지온이 대표하는 비전에 따라 전략을 세우고, 수억 달러를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에 투자하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디스는 자율주행이 폭스바겐의 미래 생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 믿다 있고 .

디스는 “마차에서 차로, 화학적 사진술에서 디지털 사진술로 전환될 때를 돌이켜 보자”고 말했다. 그와의 만남은 볼프스부르크 Wolfsburg에 위치한 폭스바겐의 거대한 공장 본사에서 이뤄졌다. 이 곳은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약 225km 떨어진 인구 12만 5,000명의 조용한 소도시다. “엄청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났다. 기존 강자 중 아주 소수만이 살아남았다. 코닥은 생존에 실패했고, 스스로도 다가올 운명을 알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CEO에 취임한 디스의 안내를 받으며, 필자는 폭스바겐의 비밀 혁신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벨벳 커튼으로 방의 일부는 시야에서 차단하고 있었다. 디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이 곳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극단적인 혁신 없이는 폭스바겐이 발 빠른 경쟁업체들에 뒤처진다는 위기 의식이었다. “우리에겐 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오늘날, 자동차 업계만큼 기술적 대격변의 기로에 선 산업도 드물다. 업계는 그 동안 점화 엔진이라는 하나의 발명에 기대 100년 넘는 시간을 버텨왔다. 현재 자동차 업계의 전체 연간 판매량은 약 8,000만 대다. 작년 기준으로 그 중 1,080만 대가 폭스바겐, 약 1,040만 대가 도요타였다. 도요타는 수 년간 고수해 온 판매량 1위를 내줬다. 폭스바겐 그룹은 포르쉐, 스코다 Skoda, 아우디, 폭스바겐 등 12종의 브랜드를 보유 중이며, 그 중 폭스바겐의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 해 폭스바겐 그룹은 매출 2,600억 달러로 신기록을 세웠다. 덕분에 올해 포춘 500대 기업 순위에서도 도요타에 이어 7위를 차지했다.

아마 수백만 운전자들은 앞으로도 수 년간 자동차에 연료를 채울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서서히 전기차로의 장기적 전환에 진입하고, 많은 국가에서 탄소배출량 감축목표가 기존 운전 습관을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도 대격변을 직면하고 있다. 차량공유의 유행 또한 향후 10년 내에 도시와 자동차 소유에 극단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사진=포춘US] 포츠담에 위치한 폭스바겐 미래센터 유럽의 R&D 연구소 소속 디자이너들이 가상현실의 도움을 받아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사진=포춘US] 포츠담에 위치한 폭스바겐 미래센터 유럽의 R&D 연구소 소속 디자이너들이 가상현실의 도움을 받아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런 혁신의 와중에서, 미국 시장의 지배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미국은 유난한 차 사랑으로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시장에서 자동차 업계의 전략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대신 전 세계 신차 구매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한편, 양산형 전기차 생산에 전력하는 중국이 이제는 더 중요하다. 중국은 폭스바겐의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디스는 “변화가 임박했다”고 전망한다.

이 정도 규모의 지각 변동은 어떤 기업이라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런데 폭스바겐의 경우, 이 대전환이 희대의 디젤가스 배출량 조작 스캔들(일명 ‘디젤게이트’)에서 겨우 회복되는 시점과 겹쳤다. 회사 일부 경영진은 이 사건을 80년 전 아돌프 히틀러의 명에 따라 나치의 생산기지로 볼프스부르크 공장이 건설된 이래 “최대의 트라우마”라 일컬었다.

디젤게이트는 2015년 9월, 미 환경보호국(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폭스바겐의 디젤차 약 60만 대에 대한 탄소배출량 검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숫자는 수백만 대로 늘었다. 회사 엔지니어들이 5년 넘게 엔진의 일산화질소 배출량을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자동차에 부착했던 것이다. 이들 차량의 실제 배출량은 미국법상 상한선의 최대 40배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MIT의 연구진은 이렇게 배출량을 조작한 엔진에서 나온 유독 화학물질이 유럽에서만 약 1,200명, 미국에서 60여 명의 조기 사망을 유발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약 3년간, 폴크스바겐은 법적 합의금으로 약 300억 달러를 지불했으며 1,10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리콜 혹은 수리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폭스바겐의 울리히 아이히호른 Ulrich Eichhorn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끔찍한 일이지만, 아직도 가끔 옛날 소프트웨어에서 우리도 몰랐던 기능이 발견된다”고 고백했다. 이에 더해 회사는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수십 건의 소송에 휘말린 상태인데,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난 3월 발표한 전년도 연차보고서에서, 폭스바겐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목록을 공개했다. 디스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이 얼마냐고 묻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폭스바겐은 6월 말 포춘을 볼프스부르크 본사로 초청했다. 80년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변화의 순간을 맞은 회사 모습을 심층 취재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폭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 본사는 모나코 공국이나 애틀랜타 공항 정도의 면적을 자랑하며, 연간 80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공장의 단조로운 붉은 벽돌 건물은 1930~40년대 나치가 공장을 처음 설립했을 때 지어졌다. 현재는 첨단 기술이 도입된 로봇 생산라인 바로 밑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폭격 대피소가 남아 있다. 현재 이 대피소는 나치 시절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감시 하에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한 강제노동자 및 수용소 인력 약 2만 명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공교롭게도, 포춘이 볼프스부르크를 방문한 때는 1938년 히틀러가 진행한 공장 개소 8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 주간이었다. 현재 회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2박 3일 방문을 신입사원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한다.

폭스바겐 측은 디젤게이트를 다시 언급하기보다는 미래를 논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거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포춘이 볼프스부르크 본사를 방문하기 2주 전, 독일 수사당국은 디젤차 배출량 조작을 이유로 10억 유로(약 11억 7,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독일의 대표기업으로 손꼽히는 회사가 자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 폭탄을 맞은 것이다. 며칠 후 독일 경찰은 아우디 CEO 루페르트 슈타들러 RupertStadler의 가택 수색을 실시하고, 그를 조작 연루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이 압류한 문서 중에는 로펌 존스 데이 Jones Day의 뮌헨 사무소가 작성한 디젤게이트 관련 보고서도 있었는데, 폭스바겐은 그 동안 이 내부문건의 공개를 거부했다. 7월 초, 회사는 이 보고서의 기밀 유지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폭스바겐 경영이사회 *역주: 독일법상 상장기업은 경영이사회(Vorstand)와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이중 지배구조가 의무적이다 내 유일한 여성으로, 윤리경영 및 법무 업무를 총괄하는 힐트루트 베르너 Hiltrud Werner는 “2차 대전 이래 독일 역사상 최악의 산업스캔들”이라고 평했다. 베르너는 디젤게이트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해 회사가 영입한 인물이다. 그녀는 “이 사건은 폭스바겐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은 일찍이 없었다”고 밝혔다.

재무적 손실도 매머드급이었다. CTO 아이히호른은 지금까지 지급한 300억 달러(향후 더 늘 것이 분명하다)에 대해 “호황기 3년간 버는 돈 정도인데, 호황이 매년 오진 않는다”며 “내 회사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본사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와 별개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현재 폭스바겐은 녹색기술 도입을 위해 (뒤늦게) 서두르고 있다. 과연 회사는 현재의 엄청난 영향력과 기존 자동차 업체의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발 빠르게 혁신에 성공할까?

지금까지의 회복 신호는 긍정적이다. 회사의 최근 판매량과 매출은 기록적인 수준이다. 디젤게이트 발발 이듬해인 2016년에는 도요타를 제치고 판매량 기준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국까지, 세계 각지에서 조직 유연성과 민첩성, 폭스바겐에 뒤지지 않는 역량을 갖춘 신생 경쟁업체들이 나타났다. 이들 또한 자동차 업계의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

역설적이게도, 회사가 승리할 희망은 디젤게이트에서 나온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폭스바겐은 내부의 심각한 문제점을 정면에서 마주했고, ’변화하지 않는 한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디스는 2015년 BMW AG에서 폭스바겐으로 이적했다. 디젤게이트 발발 2개월 전이다. 그는 BMW에서 비용절감 및 새 아이디어와 기술전략 도입을 담당했다. 폭스바겐이 당초 그를 영입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재 디스의 임무는 적폐를 과감히 청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문화를 심는 것이다. 그는 “업계 상황을 고려할 때, 이 회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확신은 이전부터 있었다”며 “하지만 디젤 사태로 인해 변화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고 설명한다.
 

1930년대 나치가 폭스바겐 본사를 볼프스부르크에 세운 이유는 인근의 풍부한 노동력 때문이었다. 현재도 볼프스부르크 시민의 절반 정도가 폭스바겐에서 일하고 있지만, 조립라인의 자동화율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사진=포춘US

디젤게이트 당시, 폭스바겐의 초동 대응에서는 긴박함이나 해결 의지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2015년 9월 18일, 미 환경보호국은 폭스바겐에 사전 통지 없이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근래 최대의 기업 사기 사건을 발표했다. 약 6,437km 떨어진 볼프스부르크 본사에서는 한마디로 날벼락을 맞았다. TV에 직접 출연한 장수 CEO 마르틴 빈터코른 Martin Winterkorn이 독일어로 미적지근한 첫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소수의 실수였다”고 주장하면서, 사측의 책임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결국 빈터코른은 며칠 후 사임했다. 지난 5월, 그는 디젤게이트에 대한 미국측의 오해를 유도했다는 혐의로 디트로이트 법원에 기소됐다.

당시 이미 폭스바겐의 경영이사였던 디스는 스캔들 발발 당시 스페인에서 휴가 중이었다. 그는 하루가 꼬박 지난 후에야 귀국 비행기를 탔다. “당시 나는 이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비용은 어느 정도가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전혀, 조금도.”

놀랍게도, 조작은 순전히 우연으로 인해 세상에 밝혀졌다. 시작은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대학원생들의 간단한 연구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폭스바겐 차량으로 LA 인근 고속도로를 오가며 배출량을 기록했다. 수상한 점을 찾아낼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은 이들이 탄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상태였다. 일정 조건의 시험주행 환경에서만, 미국 대부분 주가 요구하는 우수한 배출량이 나오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우연히 국제적 추문과 맞닥뜨렸다.

학생들이 시험 결과를 캘리포니아와 미 연방 당국에 제출하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디젤 차량은 폭스바겐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지난 몇 년간, 회사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자사 디젤 차량이 새롭고 친환경적인 ’클린 디젤‘이라고 홍보했다. 사실상 그 정체는 돌팔이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웠다. 미 당국은 볼프스부르크 본사 경영진이 배출 조작에 대한 내부적 의혹 제기를 막으려 했으며, 우려를 표한 엔지니어들에게 조용히 업무를 계속하라고 지시했음을 밝혀냈다. 당국이 이 자료를 제시하자, 회사 측은 아는 바가 없다며 부정했다.

섬처럼 고립된 볼프스부르크 본사 밖의 다른 자동차업계 경영진에게는,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분명했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범죄집단처럼 행동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너무나도 태평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폭스바겐의 토마스 제드란 Thomas Sedran 그룹전략 담당 수석부사장은 “’세상에,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순진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쉐보레 유럽지사 대표였던 제드란은 2015년 말 폭스바겐으로 옮긴 후, 현재는 디젤게이트 이후 회사의 변신에 일조하고 있다. 어느 날 오후 볼프스부르크 본사 내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제드란은 아직도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사람들을 속이고선 안 들킬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라고 자문했다. “심지어 발각된 후에도 거짓말을 계속 했다. 이해가 안 된다.”

제드란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기업의 욕심이나 해외 법에 대한 오해에 있는 게 아니다. 여러 내·외부 관계자들은 기업 문화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약 7만 5,000명(볼프스부르크 시 거주자의 절반 이상)이 일하는 본사에서 수십 년간 구축된 폭스바겐의 기업 문화는 수직적이며, 배타성과 경직성이 유독 강하다.

지난 수십 년간 회사는 직원들의 이의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인 경영진이 장악해왔다. 그리고 이들의 제왕적 리더십은 독일에서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폭스바겐을 위해 여러 차례 개입, 규제 완화를 요구할 정도였다. 현재 미국에서 시행하는 수준의 일산화탄소 배출규정에 대한 EU의 규제 완화도 이렇게 이뤄졌다. 

볼프스부르크의 존재 자체는 정치에 기원을 두고 있고, 폭스바겐이 이런 지형을 지배하고 있다. 

이상적인 공업지대 부지를 찾던 나치 정부는 독일 중부라는 위치와 풍부한 노동력을 이유로 볼프스부르크를 택했다. 오늘날에도 폭스바겐 공장은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작업 라인의 교대 시간에 따라 교통 체증이 발생할 정도다. 1부 리그 소속인 볼프스부르크의 프로축구(독일어로는 ’푸스발 Fussball‘)팀 홈 경기장도 회사가 건설했다. 폭스바겐이 2000년 개장한 아우토슈타트 Autostadt *역주: ’자동차의 도시‘를 뜻하는 독일어는 새로운 전시가 꾸준히 열리는 자동차 테마파크 겸 전시장이다. 매년 여름 개최되는 국제 서커스 페스티벌과 콘서트 등 일년 내내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린다.

포춘이 만난 전문가와 내부 관계자들은 디젤게이트와 폭스바겐의 경직된 문화 간에 직접적 연관성을 언급했다. 배출량을 조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 중간급 관리자와 하급 근로자들이 상부 결정에 함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베르너는 독일의 다른 기업들처럼, 폭스바겐에서도 “회의가 있으면 모두 입을 다물고 가장 높은 사람의 발언을 기다린다”고 지적했다. 성비 불균형 등 다양성 부족으로 인해, 회사의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는 것이 그녀의 진단이다. 경영이사회 내 유일한 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떤지 묻자, 베르너는 외국인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외국에 가면 살기 위해 현지인들의 말을 배워야 한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남자들의 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때로는 자신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도록 끼어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도 업계에서 27년이나 잔뼈가 굵었고, 그들처럼 DNA에 자동차가 새겨진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해야 할 때가 있다.”

경영진을 감독하는 회사 감독이사회의 구조는 1960년대 이후 아무 변화가 없다. 의결권의 20%는 (볼프스부르크가 소재한) 니더작센 Niedersachsen 주 정부의 최고위 관료들이 갖는다. 이들은 전략적 결정에 대해 상당 부분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다. 창업주인 피에히 Pi?ch 가문과 포르쉐 가문도 영구적으로 이사직을 보장받는다.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는 독일 법에 의거, 나머지 절반은 노동자 위원회에서 온 대표들이 차지한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폭스바겐의 직원 수가 (생산량이 거의 같은 도요타 대비 3분의 1 가량 많은) 64만 명이나 되는 한 가지 이유로 이 같은 지배구조를 든다. 2016년 폭스바겐의 노동자 대표 및 지역 정치인들은 경영진과의 긴 협상 끝에, 전 세계적으로 인력 3만 명을 감축한다는 데 동의했다. 런던의 리서치업체 에버코어 ISI Evercore ISI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리서치부문 총괄인 아른트 엘링호르스트 Arndt Ellinghorst는 “분석해 보면, 극단적인 비효율성이 보인다”고 평했다. 2000년대 초반 볼프스부르크 본사에서 관리자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그는 “이것보단 훨씬 나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그는 5월 발간한 투자자 대상 연구보고서에서, “폭스바겐의 낡은 기업구조는 향후에도 주주 정서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디젤게이트를 살펴본 이들은 폭스바겐이 길을 잘못 든 또 하나의 주요 원인으로 이런 기업구조를 지적한다. 2017년 4월, 미 법무부가 회사의 독립 감시역으로 임명한 래리 D. 톰슨 Larry D. Thompson 전 미 법무부 부장관은 디젤게이트를 “나쁜 사람과 나쁜 문화의 결합이 낳은 사건”이라 평했다. 폭스바겐과 미 정부 간 법적 합의의 일환으로, 톰슨이 이끄는 60여명의 팀은 현재 볼프스부르크 본사의 내부 개혁을 감시하고 있다. 그는 폭스바겐의 문화가 “전문 관리자가 문제를 인지하거나,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해도 정직하게 말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수십 년간 굳어진 관행을 깨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디스는 “사고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위 임원 다섯 명, 아니면 CEO의 입에만 온 관심이 쏠린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 리스크를 감수하고, 책임감과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애널리스트들은 변화를 가져올 사람으로 디스가 최적이라 믿는다. 회사에서 평생 잔뼈가 굵은 인물과 비교할 때, 외부인으로서 이점이 특히 크다는 것이다. 엘링호르스트는 “디스가 회사에서 갖는 중요성은 놀라울 정도로 크다”며 “엄청난 기회다. 그가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평했다. J.P. 모건 런던 지사의 자동차주 리서치 전문가인 호세 아수멘디 Jos? Asumendi도 디스가 “독일 자동차 업계 최고의 CEO”라며 이 의견에 동의했다.

[사진=포춘US]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는 사방에서 찾을 수 있다. 눈에 잘 안 띄는 변화도 있다. 직원들이 서로를 부를 때 격식 있는 2인칭인 ’Sie‘ 대신 가벼운 ’du‘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폭스바겐 최초의 전사적 행동강령도 발표됐다. 인권, 성평등, 환경보호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베르너는 윤리경영 담당자로서 새로운 가치를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제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는 능력도 그 일부다. 6월 말 어느 아침, 필자는 밝은 색으로 도색된 ’윤리경영 버스‘에 탑승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초대 받은 직원들을 태우고 볼프스부르크 본사 주변을 한 시간 동안 도는 버스였다. 직원들이 고위 임원과 함께 중립적인 위치에서 불안과 걱정을 털어놓는 자리로, 사내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시도였다. 이 날, 버스에는 기술 엔지니어들이 타고 있었다. 베르너는 이들이 사내에서 디젤게이트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고 말했다. “매일 점심 구내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회사가 250억(유로)의 벌금을 내게 만든 주범이라는 눈초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견디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 차 안에서, 한 직원이 “회사에 대한 강한 비판 때문에 괴롭다”라고 털어 놓았다. 베르너는 이 직원에게 회사가 변하고 있으며,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마 생애 주기가 한 번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도 얘기했다.

변신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디스 CEO는 폭스바겐이 향후 10년간의 변혁에서 살아남아 성장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본부와 중앙에서 내린 결정에 심각하게 의존하는 현 기업문화로는 살아남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다소 느려져도 말이다.”

작은 도시 볼프스부르크에서, 폭스바겐의 수직적 문화는 느리게나마 바뀌고 있다. 마른 몸매에 말수가 많고, 활동적 에너지가 넘치는 디스는 사내에서 ‘공유’와 ‘협력’ 같은 단어를 유행시키고 있다. 요즘 직원들은 이 화두에 따라, 조금씩 회사 생활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전면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디스는 미로처럼 복잡한 회사를 4개 부문으로 정리했다. 양산차, 고급차, 럭셔리카(슈퍼카 브랜드 벤틀리 Bentley와 부가티 Bugatti), 트럭·버스 부문이다. 트럭·버스 부문은 조만간 분사해 내년 중 상장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 12개 브랜드는 이제 소속 부문 내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최종 결정권자의 승인을 받기 위해 경쟁할 필요 없이 웬만한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다. 이 개편은 디스의 표현에 따르면 “사고 방식”의 변화는 물론, 수십억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도 목적으로 한다.

폭스바겐의 변신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는 전기차 시장의 글로벌 강자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간소화가 필수적이다.

회사의 전기차 전환 계획 규모는 현기증이 날 만큼 크다. 예산도 결코 적지 않다. 디스는 주주들에게 향후 4년간 전기차 생산에 약 4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5년까지 전체 자동차 생산량(수백만 대 수준) 중 전기차 비중을 25%로 높이고,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10~1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16개 공장(미국 1곳, 중국 5곳 등)을 4년 내에 변경 혹은 확장해야 한다. 또한, 아이히호른 CTO의 말처럼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 Gigafactory(네바다 주 소재, 규모 약 511만㎡)급 배터리 공장도 10년 내에 6곳을 건설해야 한다. 아이이호른은 “우리는 점화엔진 기술을 선도했듯 전기차 기술에서도 선구자가 되려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허비한 시간을 메우려 서두르는 중이다. 회사는 디젤게이트 사태 후인 2016년에야 전기차 전략을 발표했다. 일론 머스크 Elon Musk가 테슬라를 창립한 지 13년이 지난 후다. 제드란은 “디젤 위기가 아니었다면 전기차 플랫폼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무적으로만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재무적 성공에 취해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사고 방식은 극적일 만큼 크게 바뀌었다. 디스 CEO는 폭스바겐이 늦긴 했지만, 투자만 충분히 한다면 점화엔진차 시장에서 수십 년간 누렸던 지위를 바탕으로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에겐 판매망과 시장이 있다.” 그는 테슬라와 비교하며, “백만장자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 수백만 명을 위한 전기차를 만들 것이다. 차종 생산량을 1만 대에서 100만 대로 끌어올리는 것? 우린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회사의 신규 프로젝트 중에는 과거 이사회가 반대한 아이디어도 있다. 2020년 전 세계 출시를 목표로, 내년 독일에서 시작하는 전기차 차량공유 사업이 그런 경우다. 6월 말 필자가 볼프스부르크를 방문했을 당시, 임원들은 콜로라도 로키 산맥에서 며칠 전 열린 브래드무어 파이크스 피크 Broadmoor Pikes Peak 자동차 경주 결과에 기뻐하고 있었다. 폭스바겐의 주문제작형 전기차인 I.D. R 파이크스 피크 I.D. R Pikes Peak가 8분 이상의 기록 차로 우승했던 것이다. 폭스바겐 브랜드 최고전략책임자(chief strategyofficer) 미하엘 요스트 Michael Jost는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상당했는데, 우리가 해냈다!”며 기뻐했다.

경쟁사들에게 한번 뒤처진 상황에서, 폭스바겐은 이제 전기차 다음 대세인 자율주행차에 집중하고 있다. 디스는 불과 수 년 내에 인도나 중국의 신도시에서 자율주행차 상용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상상 속 이야기 같지만, 자율주행 콘셉트카는 이미 설계 단계다. 아우토슈타트에 위치한 미래도시 모형 전시관에서는 차 주인이 볼일을 보거나 사무실에 있을 동안 주차장을 돌며 차를 충전하는 모바일 로봇들을 볼 수 있다. 폭스바겐이 독일의 로봇 제조업체 쿠카 KUKA와 함께 협업 중인 아이디어다. 디스는 이에 대해 “우리에겐 완전한 신세계”라며 “신기술을 충분히 빠르게 소화, 우리 정체성이 소프트웨어 업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인가가 화두”라고 설명했다.

이런 첨단 발명은 대규모 비용을 수반하고, 폭스바겐의 현 주력사업도 아니다. 하지만 3년간의 시련을 겪은 회사에 낙관적 분위기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었다. R&D 총괄이사 악셀 하인리히 Axel Heinrich는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힘찬 어조로 “보여줄 게 많다”고 말했다. 그의 소개로 회사가 보유한 600명의 과학자·엔지니어 중 일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발명품 중에는 동물이 아니라, 버섯뿌리나 버려진 바나나 껍질로 만든 자동차 가죽시트가 있었다. 또, 계기판에 설치해 운전 중에 복잡한 쌍방향 대화를 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감형 어시스턴트‘도 있었다.

베를린 서쪽 포츠담 Potsdam 시에는 폭스바겐 유럽 미래센터가 있다(베이징과 실리콘밸리에 한 곳씩 더 있다). 센터는 회사의 자율주행차 제드릭 SEDRIC의 변형 모델 등 여러 미래형 자동차의 실물크기 스티로폼 모델을 전시 중이다. 센터를 운영하는 자동차 디자이너 페터 보우다 Peter Wouda는 “우리는 여러 가지 ‘미래들’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초단위로 수정할 수 있는 폭스바겐의 새 가상현실 플랫폼을 필자에게 시연하던 중이었다. 그는 “‘먼 미래’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차를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스는 ‘먼 미래’가 현실이 될 무렵, 폭스바겐이 자동차 제조 못지않게 기술 기업으로도 자리매김하길 꿈꾼다. 회사는 이제 막 변신을 시작했으며, 디젤게이트 이후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디스는 “고객들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 때까지, 새로 거듭난 폭스바겐은 최고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릴 것이다.

번역 김화윤 whayoo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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