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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HP를 인수하려는 제록스의 대담한 시도

INSIDE XEROX’S AUDACIOUS BID TO BUY HP

  • 기사입력 2020.05.29 15:54
  • 기자명 SHAWN TULLY 기자

20세기를 대표하는 거대 기술기업 두 곳이 2,000억 달러 규모 산업의 미래 성패가 달려 있는 적대적 인수전에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이 코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BY SHAWN TULLY

존 비센틴 JOHN VISENTIN은 마치 상대편이 100% 틀렸다고 100% 확신하는 사람처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독설을 쏟아냈다. 그는 “그들은 포이즌 필 poison pill /*역주: 기업이 인수를 막기 위해 취하는 주요 자산 매각 등의 방어 형태/로 우리를 막고 싶어한다. 투자자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만큼 똑똑하지 않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그 점이 정말 짜증난다!"고 씩씩거렸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그들’은 HP다. 그리고 유서 깊은 프린터 제조업체 제록스 홀딩스의 CEO인 비센틴은 최근 기업 역사상 가장 대담한 인수 시도 중 한 가지를 꾀하고 있다. 제록스는 작년 11월 몸집이 훨씬 큰 HP를 손에 넣기 위해 깜짝 입찰에 나섰다. 마치 작은 관상어가 고래를 집어 삼키려는 형국이다. 인수 가격은 현재 350억 달러로 책정돼 있다.  위임장 벼랑 끝 대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HP의 반격이 인수 설계자인 비센틴의 분노를 사고 있다.

캐나다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직설적인 비센틴(57)은 허세를 부리는 무모한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그는 기술업계에서 이력을 쌓은 인물이다. 그의 이력서를 보면, 특히 몇 년간 사모펀드에서 잘 나갔고 옛 HP에서는 부사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있다. 코네티컷에 위치한 특색 없는 제록스 유리관 본사에서 만난 그는 “인쇄산업은 오래 전에 통합했어야 한다”며 “비용 절감과 미래를 위한 투자 잠재력이 엄청나다. 하지만 HP는 주주들에게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약속함으로써 제록스의 뒤통수를 쳤다. 어떻게 그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인가?"라고 반문했다.

30년 전 만 해도 제록스와 HP 인수전은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노쇠화 하고 있는 이런 거인들의 사업은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수익성이 높은 인쇄 사업을 운영하며, 비센틴이 구상하는 혁신의 종류에 자금을 댈 수 있는 현금을 창출한다. 특히 그의 시도가 대담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제록스 규모의 회사가 훨씬 더 큰 경쟁자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19년 제록스는 9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 회계연도에 집계한 HP의 매출 588억 달러와 비교하면,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물론 한 사람의 '대담함'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다. 합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록스는 240억 달러의 새로운 부채를 떠안게 될 것이다. 메드로닉의 전 CEO이자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빌 조지 Bill George는 “그 모든 부채가 합병회사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합병을 반대하는 HP 경영진은 부채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티브 필러 CFO는 비센틴의 연간 20억 달러 비용절감계획에 대해 “달성하기 어렵다. 더욱이 그 정도 부채 수준으로는 경제 사이클을 헤쳐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제록스의 제안—현재 주당 24달러로 HP의 3월 중순 주가에 비해 약 20%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은 5월에 있을 HP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합병을 지지하는 측은 행동주의 투자업계의 거물 칼 아이컨이다. 그는 제록스의 지분 11%(약 7억 5,000만 달러 가치)를 보유한 최대 투자자로, HP 지분도 4.4%(약 13억 달러) 갖고 있다. 아이컨은 2018년 일본 후지필름 홀딩스의 제록스 인수를 저지하는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 후 그는 비센틴이 이끄는 새 경영진을 지원했다. 비센틴은 그 해 5월 제록스 CEO에 올랐다. 합병이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이익을 약속한다는 게 아이컨의 주장이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합병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싶다”며 “비센틴은 강인한 사람이고 그것을 운영할 적임자"라고 말했다.

제록스가 위임장 대결에서 승리하면, 신임 HP 이사회가 이 거래를 승인할 전망이다. 그러나 HP는 주주들에게 제록스를 거부하도록 설득할 수도 있고, 심지어 거꾸로 제록스를 인수하겠다고 설득할 수도 있다(바로 다름 아닌 칼 아이컨이 제안한 거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비센틴의 시도는 자동차에서 항공업에 이르기까지,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을 되살린 전략을 부각시킴으로써 기술업계에서 가장 뒤처진 분야를 뒤흔들 수 있다. 그 전략은 바로 합병이다.

프린터는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간 2,06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기도 하다. 비록 고객들이 디지털 문서로 눈을 돌리면서 매출이 줄고 있지만, 상자 모양의 이런 가전제품들은 엄청난 현금 흐름을 창출한다. 종이와 유지 관리, 값비싼 토너 카트리지에 대해 고객이 수년간 계속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제록스의 비센틴은 과감한 비용 절감과 사진 속 이리데스 같은 대형 디지털 프린터에 대한 투자가 HP와 제록스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포춘US
제록스의 비센틴은 과감한 비용 절감과 사진 속 이리데스 같은 대형 디지털 프린터에 대한 투자가 HP와 제록스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포춘US

 

이 분야는 HP와 제록스, 일본 8개 기업 등 12개 주요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합병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우선 합병을 하면,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고 외주 부품과 서비스 가격을 낮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3D 프린팅과 맞춤형 디지털 프린팅 등 더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에 더 많은 현금을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이 성공한다면, 투자자들에게는 상당히 유리할 것이다. HP와 제록스 주식은 각각 잉여 현금흐름의 7.5배와 5.4배라는 매우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사업이 계속 위축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S&P 500의 평균 멀티플은 19이다. 성장률이 급등하면, 주가의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HP와 제록스의 합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재 양사가 각각 다른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억 달러 규모의 HP 인쇄 사업은 A4s라고 불리는 데스크톱 프린터 분야가 전문이다. 제록스는 기업들이 사용하는 다목적 대규모 모델인 A3에 주로 의존한다. 대부분의 경우, 회사는 계약에 따라 프린터를 임대하고 (종이 및 물품) 공급과 유지보수를 제공한다.

지난해 제록스는 13억 달러, HP는 40억 달러에 이르는 잉여 현금흐름을 창출했다. 비센티은 제록스와 HP를 합병함으로써, 20억 달러의 새로운 연간 절감 효과와 그에 따른 더 건강한 마진 및 투자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록스에서 비용 절감에 성공했다. 실제로 회사는 IT 관리, 급여, 의료비 청구 관리 등 아웃소싱에 드는 비용을 대폭 줄여, 지난해 총비용을 10% 가까이 절감했다. 현재 관건은 HP 투자자들이 그가 HP도 구조조정을 하도록 허용할지 여부다.

HP는 ‘현금이 왕’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지난 2월 24일에는 3년간 15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개하고, 주주들에게 현금흐름의 100%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엔리케 로레스 Enrique Lores CEO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비센틴의 입찰안은 HP를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회사 부채를 과도하게 늘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HP는 인수에 열려있다. 하지만 제품 믹스를 3D 및 디지털 프린팅 등 더 빠르게 성장하는 비즈니스 라인으로 전환함으로써, 합병 없이도 매출과 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그 주장에 회의적인 반면, HP의 반격은 일부 인사들의 입장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한 기관 주주는 “현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프로그램은 HP를 불리한 입장에서 약간 유리한 입장으로 바꿔 놓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투자자는 제록스가 주당 2~3달러씩 제안 가격을 인상하면, 우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많은 빚을 질 수 있다는 의미의 위태로운 제안이다.

주주총회 투표가 다가오며 제록스가 승리할 것처럼 보인다면, 역으로 HP가 제록스 인수시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HP는 2월 27일 위임장 서류를 제출하며, 그 인수 협상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했다. 이 서류에 따르면, 아이칸과 비센틴은 제록스를 주당 45달러에 HP에 매각할 것을 제안했다. 제록스의 3월 초 주가(32달러)에 비해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훨씬 더 큰 매출원을 가진 HP가 감당할 수 있는 조치다.

HP가 인수 주체가 된다면, 이사실 운영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HP는 기관 투자자들이 제록스 쪽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무책임하다고 맹비난을 해 온 바로 그 제록스 경영진에게 우호적인 합병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HP가 주주총회에서 적대적 인수를 통해 제록스의 이사진을 교체할 시한은 올해는 이미 지나갔다. 제록스 측 변호사인 킹 & 스폴딩 로펌의 짐 울러리 Jim Woolery는 자신의 고객에게 유리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한다. 

주주들에게 최선의 장기적 결과는 HP가 제록스를 인수하는 안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 합병회사는 부채가 훨씬 적어(아마도 회사가 보유한 100억 달러의 순 현금 액보다 적을 것이다), 더 많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더라도 연구개발과 인수에 투자할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것이다. 문제는 일부 주주들의 시각에서 HP가 인수하게 되면, 비센틴과 그의 "복사하지 말자, 재창조하자"는 도전 정신이 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통합의 이점은 제록스를 인수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윈 디슨 Darwin Deason은 그가 누구를 응원하는지 안다. 올해 80세의 이 텍사스 출신 억만장자는 2010년 아웃소싱 서비스 회사를 제록스에 매각했고, 여전히 그 주식의 4%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후지의 제록스 인수를 막기 위해 아이컨(84)과 협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슨은 “내 마지막 로데오에서 거물을 손에 넣기 위해 약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 즐겁다. 보통은 거의 항상 반대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황소에 올라 타고 있다”고 말한다. 이 황소가 따분한 프린터 산업의 판도를 뒤흔든다면, 두 명의 팔순 노인만 이익을 얻는 건 아닐 것이다.

▲숫자로 보는 양사 현황

15%
칼 아이컨(84)과 다윈 디슨(80)이 보유하고 있는 제록스 주식 지분 합계

201억 달러
HP의 프린터 사업부 연간 매출(2019년 10월 31일 종료 회계연도 기준)

240억 달러
제록스가 HP를 인수할 경우 지게 될 부채

출처: 회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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