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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S EXPERT] 안병민의 ‘ 경영 수다 ’

혁신가 한비자를 넘어서는 혁신

  • 기사입력 2020.03.30 13:07
  • 기자명 포춘코리아 기자

이 콘텐츠는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2020년 4월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법치주의를 주장하며 법가를 집대성한 한비자는 혁신가였다. 당시 한비자는 세상이 달라지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비자의 혁신을 살펴보자. 글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합비자 스케치.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한비자. 그는 법치주의를 주장하며 법가를 집대성했다.
합비자 스케치.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한비자. 그는 법치주의를 주장하며 법가를 집대성했다.

달리던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다. 이걸 본 어느 농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토끼를 잡을 수 있겠구나.” 그러고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 ‘한비자’에 나오는 얘기다. 어리석은 농부를 통해 한비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거다.
우연한 성공은 반복되지 않으니 경험의 감옥에 갇히지 말라는 거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책으로 갈아타라는 거다. 유가를 넘어 법가를 역설한 한비자의 얘기는 결국 혁신으로 이어진다. 한비자, 알고 보니 혁신가였다.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한비자. 그는 법치주의를 주장하며 법가를 집대성했다. 과거에는 인구도 적고 자원도 많아 다들 넉넉했지만, 세상이 바뀌어 지금은 생존경쟁이 치열해졌다는게 한비자의 인식. 그러니 현실은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피 비린내 나는 전쟁터다. 옛 성인들의 어진 정치를 따르겠다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한비자가 비판했던 이유다. 성군에 의한 왕도정치는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다는 거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듯 작금의 세상은 이상적인 덕치가 아니라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선 법치, 즉 생존의 정치가 필요하다, 한비자는 갈파했다.
인간은 마냥 선한 존재가 아니다. 이익을 좇고 손해를 꺼린다. 일꾼을 샀을 때 주인이 돈을 주고 밥을 맛있게 해주는 것은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일꾼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일꾼이 열심히 일하는 까닭 또한 그렇다.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열심히 일해야 품삯을 높이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의 모든 작용은 ‘나’를 중심으로 기획되고 실행된다. 사람은 그래서, 이익이 걸리면 적이라도 화해하나, 손해가 생기면 부모 자식 간에도 싸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원망에 ‘아빠 엄마가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라는 악다구니가 돌아온다. 그러니 인의를 들먹이지 말고 손익의 메커니즘에 충실하라는 것이 한비자의 얘기다. 한비자는 그만큼 적나라하다.
인간에 대한 한비자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 위나라 영공은 휘하에 미동(美童)들을 뒀다. 그 중 발군의 아이가 미자하였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으니 기고만장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김에 왕의 수레를 몰래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가 엄마를 만나고 온다. 당시 법령으로는 발뒤꿈치를 자르는 극형에 해당하는 죄다. 그러나 왕은 죄를 묻기는커녕 “처벌을 감수하고 어머니의 병문안을 다녀온 것을 보니 효심이 지극하다”며 외려 칭찬을 한다. 또 한번은 미자하가 과수원에서 임금과 산책을 하다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맛이 매우 좋았다. 이에 무심코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주었는데, 이 또한 불경죄에 해당하는 일. 하지만 이번에도 왕이 변호를 한다. “맛있다고 나에게 준 것이니 이 또한 충성”이라
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무상. 세월이 흐르니 왕의 마음도 변한다. 어느 날 미자하가 작은 죄를 짓자 왕이 꾸짖는다. “네 이놈. 너는 전날 내 수레를 함부로 훔쳐 탔고, 심지어는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지. 고얀 놈이로구나!”라며 중벌을 내린다. 상대는 변한 게 없는데 내가 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자기 중심적 욕망에 나부끼는 우리 인간의 민낯이다.
리더가 직원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두 가지가 있다. 이른바 ‘X이론’과 ‘Y이론’이다. X이론은 성악설에 기반한다. 인간은 본래 노동을 싫어하고 경제적 동기에 의해서만 일을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반면 Y이론은 성선설의 입장이다. 인간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해서 자기 실현을 지향하는 존재라고 본다. 엄격한 명령과 지시, 지배와 통제가 X이론의 뼈대라면, Y이론은 인간의 자주성을 중시하며 자율적인 목표설정, 자발적인 동기 부여를 강조한다. 과학적 경영관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일러는 ‘생각’은 관리자의 몫이고, 노동자는 단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라 생각했다. ‘관료제 조직론’이란 것도 늘어난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막스 베버에게서 나온 이론이다. 극단적인 분업과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한 헨리 포드나 사업단위 구분을 통한 현대적 대기업 시스템을 처음 고안한 알프레드 슬론도 경영의 합리화라는 관점에서 나름의 이론을 정립했다. 모두 다 ‘범X 계열’이다.
그러고 보면 한비자도 X계열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에 왕의 입장에서는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여 통치를 해야 한다 주장했으니 말이다. 물론 작금의 시각에서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부분이 많다.
세계 경영의 커다란 흐름은 Y이론을 기반으로 한, ‘통제’에서 ‘자율’로의 변화라서다. 그럼에도 한비자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현실에 굳건히 두 발을 대고 있어서다. 한비자는 인의나 도덕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정의는 덕이나 인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현실적인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물론 리더로서의 신의는 중요하다. 하지만 신의는 목적이 아니다. 치세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면서 강조한 세 가지 개념이 ‘법(法)’과 ‘술(術)’, 그리고 ‘세(勢)’다. 먼저 ‘법’이다. 법은 백성을 다스리는 도구다. 상벌로써 백성을 복종케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 즉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 것에서 권력이 나온다.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건 이빨과 발톱 때문이다. 그걸 개에게 내주고 나면 전세는 역전된다. 그러니 리더 입장에서 절대 놓아서는 안될 것이 상벌권이라는 게 한비자의 지론이다.
‘술’은 신하를 다스리는 것이다. 임금이 은밀히 마음에 숨겨두고 신하를 부리는 기술이다. 권신들로 하여금 군주를 두렵게 여기도록 하는 술수다. ‘법’과 ‘술’을 잘 활용하면 ‘세’는 절로 생겨난다. 백성은 군주의 덕 때문에 복종하는 게 아니다. 법과 술을 장악한 임금의 권세에 복종하는 거다. 한비자의 통치관이다.
‘Y이론’과 ‘진정성’, ‘일의 목적’을 토대로 한 현대경영의 관점에서 한비자는 동의하기 힘든 텍스트다. 인간을 ‘자아실현’의 존재가 아니라 ‘이익실현’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어서다. 뿌리차원의 ‘목적’ 중심 혁신이 아니라 전술과 테크닉을 기반으로 한 ‘도구’ 차원의 혁신이라서다.
리더십의 ‘이유(why)’로 상승하지 못하고 리더십의 ‘기술(how)’에 머물러서다. 그럼에도 무작정 귀를 닫을 수만은 없는 얘기다. 인간이란 존재의 태생적 이기심 때문이다. 죽을 줄 알면서도 불꽃을 향해 달려드는 ‘욕망의 인간’들이 있는한, 한비자를 찾는 이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작금의 리더들에게 한비자의 효용 그리고 한계는 뚜렷하다. 세상이 달라지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역설했던 혁신가 한비자의 말대로, 한비자를 넘어서는 또 다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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