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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 CEO를 찾아서] 정순일 새한주식회사 대표

  • 기사입력 2018.02.12 17:45
  • 최종수정 2018.09.21 13:54
  • 기자명 하제헌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새한주식회사는 국내 가구용 나사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새한주식회사는 과거 새한그룹 계열사인 새한전자를 모태로 하고 있다. 정순일 대표가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부품 생산 업체였던 새한전자를 2009년 인수한 뒤 가구용 부자재 생산업체로 업종 변경에 성공했다. 정순일 대표를 만나 부침 많았던 새한주식회사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정순일 새한주식회사 대표.
정순일 새한주식회사 대표. 사진=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새한주식회사 공장은 규모가 제법 컸다. 공장 안에는 캐비닛 크기 만한 기계 수 십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둥글게 말려 있는 철사가 풀리며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사를 삼킨 기계는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기계는 철사를 작은 나사로 만들어 연신 토해냈다. 나사가 통 안에 떨어지며 ‘투두둑~’하는 소리를 냈다. 정순일 새한주식회사 대표는 시끄러운 기계 소리를 이기려는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1분에 나사 250개를 만드는 기계입니다. 일반 기계보다 2배 더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게 특별히 주문 제작했습니다.” 

새한주식회사는 세계 최초로 ‘무보링용 직결피스’를 개발했다. 두꺼운 합판에 구멍을 뚫지 않고도 바로 박을 수 있는 나사다. 한국·미국·일본·중국에 실용신안 등록까지 마친 제품이다. 이 나사는 가구 조립작업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모두 줄였다. 기존에는 가구용 합판에 나사를 박으려면 드릴로 먼저 나사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다음 합판 간 구멍을 맞춰 나사를 조여야 했다. 새한주식회사는 나사 끝을 쐐기처럼 깎고 나사 머리 아래에 날개를 달았다. 나사 자리를 미리 만들어놓지 않아도 합판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게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나사 머리 밑 날개는 합판 표면을 깎아내는 역할을 한다.

정 대표는 말한다. “무보링용 직결피스 개발 전에는 나사를 월 1,000만 개밖에 못 팔았어요. 지금은 무보링용 직결피스만 월 4,500만 개를 판매합니다. 저희가 만들고 있는 나사 종류만 1,500개인데 전체 판매량은 월 1억 5,000만 개입니다.” 
 

 

사진=새한
다양한 무보링용 직결피스 제품. 새한주식회사는 이 제품만 월 4,500만 개 판매하고 있다.
다양한 무보링용 직결피스 제품. 새한주식회사는 이 제품만 월 4,500만 개 판매하고 있다. 사진=새한

 

새한주식회사는 가구용 나사를 한샘, 현대리바트, 퍼시스 등에 납품하고 있다. 국내 가구용 나사 시장 점유율은 60%. 최근엔 가구 부자재 생산 전문 기업으로 완전히 자리 잡기 위해 한창 준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플라스틱 서랍이다. 새한주식 회사는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서랍 사출에 성공했다. 정 대표는 말한다. “플라스틱은 휘어지는 성질이 강해 길이 1m 이상인 대형 서랍을 만들기 힘듭니다. 저희는 플라스틱 재질을 바꾸고 설계·디자인을 새롭게 해 가볍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플라스틱 서랍은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목재 서랍보다 생산원가가 월등히 낮다. 저질 합판에서 나오는 유해성분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이런 장점 때문에 가구업계 반응이 뜨겁다. 새한주식회사는 올해 1분기에는 가구용 경첩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도 시작한다. 정순일 대표는 “명실상부한 가구 부자재 생산 전문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5년 내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착실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한주식회사가 가구 부자재 생산기업으로 두각을 낼 수 있었던 데에는 탄탄한 기본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새한주식회사의 전신은 고(故) 이창희 회장(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2남)이 이끌었던 새한그룹의 계열사 새한전자였다. 새한전자는 비디오·오디오 테이프의 몸체인 플라스틱 케이스와 조립에 사용하는 나사 등을 직접 만들어 새한미디어에 납품했다. 나사 생산량은 월 2억 개에 육박했다. 새한미디어는 새한전자에서 부품을 받아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등 완제품으로 조립해 시장에 판매했다. 1990년대 초반 새한미디어는 전 세계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시장의 30%를 차지해 세계 1위에 오를 정도로 막강한 기업이었다. 1995년 그룹체제로 전환한 새한그룹은 재계 순위 26까지 오르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정순일 대표는 1975년 새한미디어 고졸 생산직 1기로 입사했다. 정 대표는 입사 후 3년간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그는 고졸 사원이었지만 이창희 회장의 신임을 받았다. 이 회장이 재직 중 군에 입대하는 그를 부를 정도였다. 정순일 대표는 말한다. “제가 열심히 일하는 걸 회장님이 눈여겨 보셨나 봅니다. 군 복무하면서 틈틈이 일본어 공부하라고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당시 새한은 TDK, JVC, 후지 같은 일본 업체와 OEM 사업을 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할 줄 알면 회사 생활에 큰 도움이 됐거든요.”

제대 후 그는 새한미디어로 돌아왔다. 일본어를 익힌 그는 일본 바이어를 만나는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이창희 회장을 따라 다니며 사업을 배우는 쉽지 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회장은 결혼하는 정 대표에게 신혼집 얻는데 보태라며 직접 현금을 보자기에 싸 주기도 했다.

그러던 1991년, 이창희 회장이 백혈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회사가 처음으로 맞는 위기였다. 정 대표도 1992년 새한미디어 자회사인 새한전자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듬해 정 대표도 백혈병에 걸렸다. 정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이영자 회장님(이창희 회장 부인)과 회사 직원들이 절 살렸습니다. 회사에서 입원·수술 비용을 모두 지원해주고 직원들이 130번 넘게 헌혈을 해줬어요.”

정 대표는 투병 3년 만에 기적같이 회복해 새한전자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사이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새한그룹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IT 산업의 발전은 전통적인 저장매체들을 순식간에 구시대 유물로 만들고 있었다. 아날로그 저장매체인 테이프가 외면받으면서 새한그룹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터졌다. 결국 2000년 새한그룹 주력 계열사였던 새한미디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자회사인 새한전자도 부도위기에 몰렸다.

그 위기에서 당시 새한전자 생산·관리담당 부장이었던 정 대표가 2003년 대표이사로 긴급 수혈돼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사정이 나빠졌다. 70명이 넘던 직원이 15명으로 급격하게 줄 정도였다. 결국 그는 2007년 새한전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몸도 마음도 지쳐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날, 직원들이 정 대표를 찾아왔다. “2009년이었습니다. 새한전자를 살려보자고 하더군요. 고심 끝에 오너인 이영자 회장님을 찾아가 어렵게 얘기를 꺼냈습니다. 이 회장님이 ‘왜 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말리셨어요.” 그러다 며칠 후 이영자 회장은 자신의 보유 주식을 싼 가격에 정 대표에게 넘기기로 했다. 이 회장은 정 대표에게 새한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정 대표는 은행 대출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은 긁어모아 회사 지분 60%를 인수했다. 

정 대표는 회사를 인수한 뒤 기존 생산제품을 과감히 정리했다. 대신 새한전자가 가지고 있던 기술과 설비를 이용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용 나사는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었다. 

 

플라스틱 사출 서랍 제조 공정을 살펴보고 있는 정순일 대표.
플라스틱 사출 서랍 제조 공정을 살펴보고 있는 정순일 대표. 사진=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정 대표는 업종 변경과 함께 사업 다각화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새한전자 당시 LS산전에 OEM으로 납품했던 산업용 전자개폐기(일종의 전기 회로 스위치로 과부하 보호장치 등이 함께 부착돼 있다) 사업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 대표가 말한다. “2006년 첫 거래 당시 매출액은 60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 매출액이 180억 원까지 올랐어요. 제가 새한주식회사를 맡고 난 후 LS그룹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협력사 상생협력 프로그램인 ‘LS파트너십’을 통해 재무적 지원과 다양한 인력, 기술, 정보 등을 제공 받았으니까요.” 새한주식회사가 납품하는 산업용 전자개폐기는 품질 검수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LS산전이 매년 진행하는 협력사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 받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을 뛰어넘은 2016년, 정 대표는 30년 이상 써오던 회사명 새한전자를 새한주식회사로 변경했다. 가구용 나사와 전력기기 등을 생산·판매하는 전문 부품 업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새한주식회사는 ‘2016 기업혁신대상’에서 중소기업 부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설비 자동화는 물론, 직원들의 혁신적인 사고를 위한 투자도 꾸준히 진행했다. 나사 제조를 위한 단조·전조 설비 뿐만 아니라 조립·포장 등 대부분 공정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 비용 인상 위협 요인에 일찌감치 대처한 것이었다. 정 대표는 말한다. “지금은 많은 업체가 우리 회사를 벤치마킹하려고 방문을 할 정도입니다. 국내 대기업 뿐만 아니라 일본 부품 업체에서도 오고 있죠. 어떻게 사업을 전환했는지, 어떻게 자동화를 이뤘는지를 공부하고 갑니다.”

새한주식회사는 올해부터 도약기에 들어섰다. 지금까진 내수에 치중했지만, 일본과 베트남 시장 수출도 모색하고 있다. “50년째 가구사업을 하고 있는 일본업체가 저희 제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더군요. 그래서 거래를 시작했어요. 한샘 같은 국내 가구전문 업체들과도 공급계약을 확대할 겁니다. 회사 인수 후 과감한 업종전환으로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임직원들의 노력 덕분이에요.”

새한주식회사는 지난해 수출액 약 40만 달러를 포함해 매출액 390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도 매출액 312억 원 대비 25%가량 성장한 수치다. 올해는 매출 500억 원에 도전하고 있으며 달성이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강소기업 입지를 탄탄히 굳히고 있다. 새한주식회사의 굴곡과 변신, 그리고 도약. 사업 환경 변화로 어려움에 겪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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