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체불임금’ 지급부터 해결해야

체불임금 규모 2조 넘어… K-방역에 동원된 의료진도 185억 체불 중

2021-07-14     이규복 기자
연일 내년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선되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이후 연일 내년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임금인상은 노동력에 대한 현실반영의 일부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의 가중일 수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선되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점이다.

기업이 부채를 갚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파산하듯이, 근로자들도 매월 받아야 할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가계의 부채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가정이 붕괴될 수도 있다. 가정의 붕괴는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붕괴된 개인의 삶은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적 비용이 늘어 기업과 나라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2022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최저임금보다 5.0% 인상된 시급 9160원으로 결정됐다. 협상 중이던 민주노총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공익위원 단일안인 시급 9160원으로 확정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9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2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공익위원 단일안인 시급 9160원으로 표결을 거쳐 의결했다.

올해 최저시급 8720원과 비교하면 5.0%(440원)가 오른 결과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 40시간 기준 유급 주휴를 포함해 월 209시간 근무할 때 191만 4440원으로 올해보다 9만 1960원이 오른 수준이다.

앞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최초 요구안으로 시급 1만 800원과 현행 최저임금 8720원의 동결안을 제출한 뒤 3차례의 수정을 거쳐 시급 1만원과 8850원을 3차 수정안으로 내놓았다.

여전히 1150원의 격차를 둔 채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으로 시급 9030원~9300원을 제시했다. 노사 양측 모두 이에 반발하며 공익위원들에게 구간 폭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고, 공익위원들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진 표결에서 반대의견 없이 찬성 13표, 기권 10표로 공익위원 단일안이 의결됐다.

노동자측인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라며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용자측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9160원은 최저임금의 주요 지불주체인 영세·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명백히 초월한 수준"이라며 "벼랑 끝에 몰려있는 소상공인과 중소·영세기업들의 현실을 외면한 것에 대해 충격과 무력감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익위원들은 "올해 어려움이 있음에도 내년에는 경기가 정상화되고 회복될 가능성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판단을 주효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값 4.0%와 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값 1.8%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을 빼는 방법으로 결정 근거를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노사 모두가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추진했던 ‘최저임금 1만원’은 실패로 끝을 맺게 됐다.

문 대통령은 2020년, 2021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2.9% 인상에 그치면서 관련 공약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최저임금 의결안이 확정, 고시되면 문재인 정부의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7.2%를 기록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평균 인상률 7.4%보다도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됐던 2018년에는 16.4%, 2019년은 10.9%로 2년 연속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2.9%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됐고, 올해는 1.5% 인상에 그친 바 있다.

노사 양측이 인상률을 놓고 대립하고 있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임금체불액은 2015년 1조 3000억원에서 2018년 1조 6400억원, 2019년 1조 7200억원으로 최저임금 상승과 맞물려 매년 급등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1월~11월 임금체불 노동자는 31만 9000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7월까지 누적된 체불액은 9800억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0년 체불임금은 연말까지 2조원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회사가 경영상의 문제로 도산해 임금지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사업주의 비윤리적 행태로 상습적인 체불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파견된 의료진에 대한 임금 체불액도 185억원이 넘어 문제로 지적된바 있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이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파견 의료진에 대한 미지급 금액 누계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파견 의료진에 대한 지난 1월까지의 체불액은 총 185억 2400만원에 달했다.

파견된 의료진은 의사 255명, 간호사 760명, 간호조무사 165명, 지원인력 251명 등 총 1431명이었다.

정부는 국비가 부족해 이런 사태 발생했다고 해명했지만 조명희 의원실은 지난 5월에 또 한번 임금체불 문제를 지적했다.

조 의원실에 따르면 경기도 288명(15억 7800만원), 충청북도 6명(2억 2200만원), 경상북도 1명(600만원) 등 코로나 파견 의료진 총 295명의 3월분 인건비 18억 600만원이 미지급됐다.

당시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관계자는 "행정 인력들의 업무 과부하, 휴직 증가 등으로 임금 지급 업무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체불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한바 있다.

이번에는 예산 부족이 아닌 행정 지연이라는 해명이었다.

국가기관에서도 체불에 대해 핑계만 대는 현 상황에서 얼마를 올린다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