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상 제고에 상응하는 글로벌 전략컨설팅펌 역할 변화

2021-04-27     유현수 대표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5월호에 실린 외고(外稿)입니다.>

▶전략 컨설팅은 특정 기업의 의사결정을 돕고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 지원을 함으로써 그 보수를 받는 것을 기본 비즈니스 모델로 하는 업종이다. 특성상 대규모의 생산설비나 근로 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규모 자체로만 보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미미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업종이 아닌 이유도 특별히 대표할 만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 다양한 고객사의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 사회와 글로벌 경제에서 그 역할이 커지고 있어 컨설팅 업계 자체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유현수 피아스페이스 대표◀

이미지=셔터스톡

[Fortune Korea]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컨설팅업체들이 클라이언트(client)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전략컨설팅펌, 특화 분야 컨설팅펌, 로컬 컨설팅펌 등 전문 영역도 다양하다. 이 글에선 그 중에서도 글로벌 전략컨설팅펌 중심으로 업계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글로벌 전략컨설팅펌 중 BCG, 맥킨지, 베인 3사는 한국에도 오피스를 두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맥킨지, BCG, 베인 순으로 오피스를 오픈하며 한국의 주요 경제 분야 자문사(advisory)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이 IMF시대를 극복하고 닷컴버블과 리먼 사태를 경험하면서 글로벌 전략컨설팅펌들도 그 역할과 지위에 변화가 있어왔다.

무엇보다 한국 내 글로벌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각 컨설팅펌들 내에서 한국 오피스의 역할과 지위가 상승하고 있다. 최근 다시 한국의 전략컨설팅 업계가 새로운 호황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어떤 위치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경제 재편ㆍ체질변화와 함께하다

과거 10년간 한국 경제는 전통적으로 수출산업 비중이 높았던 탓에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그 규모나 성장률 면에서 횡보하면서 정체를 보여왔다. 중국과 동남아 주요 국가들이 제조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성장하거나 두각을 나타냈고, 북미의 IT 플랫폼 사업자들이 성장을 주도하던 형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제조업 분야, 그 중에서도 특히 하드웨어에만 집중된 역량과 투자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고,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변화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 철강, 플랜트 등의 사업들은 2008년 리먼 사태와 2014년 원유 가격 하락에 따라 고통스러운 역성장을 경험해왔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부침의 과정에서 서울에 오피스를 두고 있는 전략컨설팅펌들은 고객사의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는 턴어라운드 전략을 중심으로 고객사 기업들을 지원해왔다. 원재료 조달 단계나 제품 생산단계에서의 원가절감을 위한 오퍼레이션(operation) 전략,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프로젝트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철강산업과 석유화학 산업, 그리고 조선산업 등에선 경쟁력 확보 또는 생산능력 합리화를 위해 단일 기업단위가 아닌 산업 단위의 전략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급부상하는 주요 고객사

2021년 현재 한국은 다양한 산업 변화의 핵심 국가로 부상하며 과거와는 사뭇 다른 산업 경쟁력과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유통 분야에 매출이 늘어나거나 글로벌 기술 변화의 선두에 서있는 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고, K-팝과 한국 영화는 글로벌에서 가장 트렌디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크래프톤 그리고 하이퍼커넥트까지 한국의 IT 기업들도 전세계로 무대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위기에서도 한국은 주요 선진국 대비 우월한 대응을 통해 오히려 수혜를 보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선두권에 포진하고 있는 만큼 향후 경쟁 전략은 더욱 난이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 모두 다양한 산업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그 수혜를 온전히 누리고 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라는 말은 이제 전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의 조선업체들도 2014년 이후 시장 전체의 구조조정으로 공급 과잉 이슈가 줄어든 상황에서 새로운 해운업의 호황과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 증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분야 또한 대량생산 중심의 전통 제조산업을 넘어 모빌리티 산업이라는 새로운 기술발전의 핵심 영역으로 진화해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부가가치와 성장성 측면에선 가장 핫한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글, 애플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고, 테슬라는 단기간 몇 백조 원의 시가총액 증가로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모빌리티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국내 수요는 미미하나, 배터리와 완성차 제조, 자동차 부품 등에서 전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북미 대비 미미한 규모의 한국 유통 시장에서만 사업하고 있는 쿠팡도 최근 미국 내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그 가치를 100조 가까이 평가받았다.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든 한국 유통 사업자의 위상변화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제조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영역은 소프트웨어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이제 글로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 아티스트가 되었고, 기생충과 미나리 등에 힙입어 한국 영화는 유럽과 북미 주요 시상식의 최고 아이콘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세계 주요 국가의 넷플릭스 순위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한국 오리지날 콘텐츠 다수가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 넥플릭스가 5,500억 원을 한국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기로 한 결정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웹툰과 주요 서비스로 전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고,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으로 전세계 톱 매출 규모의 게임업체 중 하나로 부상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하이퍼커넥트도 중동과 유럽 등지에서 최상위 인기를 누리는 동영상 기반 글로벌 소셜 플랫폼으로, 수 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최근 매치그룹에 매각되기도 했다.

한국 경제의 위상 변화는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로 인해 위기를 맞으며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팬데믹으로 모두 봉쇄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도 제조설비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고 주요한 비즈니스 활동이 타격을 입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마스크와 방역복, 코로나 진단키트를 빠르게 생산해 체계적으로 보급, 초기 방역에 성과를 내며 전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최근에는 ‘최소잔여형’ 주사기로 전세계에서 러브콜을 받는 업체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한국경제의 위상 변화에 따른 컨설팅 업그레이드

맥킨지, 보스톤컨설팅그룹, 베인 등 글로벌 전략컨설팅펌들은 최근 한국 기업들의 요구사항과 고민들에 부응해 새로운 전략 프로젝트들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고객사의 요구사항과 질문들이 달라진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듯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CEO레벨에서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글로벌 전략컨설팅펌들은 과거 10년간의 주요 경영전략 이슈와는 다른 수준의 질문들에 답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전사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는 키워드는 신사업, 해외진출, 그리고 ESG로 정리할 수 있다. 너무 일반적이고 항상 있어왔던 고민이 아니냐는 반응이 있을 수 있지만 10년 전, 20년 전 신사업, 해외진출, 그리고 친환경 기업, 사회적 기업을 고민하던 때와는 그 깊이의 수준이 다르다.

간단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선 전세계가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발전과 사업모델 고도화를 경험하고 있다.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세계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뒤쳐져 기업으로서 위기를 맞을 공산이 크다. 두 번째는 한국 기업들이 전세계 시장을 목표로 최고의 사업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과 단계에 이르러 있다. 이미 반도체, 자동차, 조선과 해운, 에너지 등 전통 제조 영역에서 매출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 수준 또한 그에 상응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형 IT플랫폼 업체들이 해외 진출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시장만으론 더 이상 과거 수준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요 기업 대부분은 이제 해외진출과 신사업을 고민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안정적인 영업이익과 성장은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요 선진국 및 한국 정부의 투자 정책이 친환경 기업과 사회적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위 말하는 ESG가 핵심이 되고 있다. 많은 투자 관련 의사결정이 친환경 영역, 사회적 기여도, 기업의 거버넌스를 기준으로 이루어질 것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그에 발맞춰 한국의 주요 기업들도 ESG 관점에서 매력적인 사업과 내부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