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이슈|⑤ '미래 국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FORTUNE Cover Story|The Future Issue The Future of SOCIETIES|⑤ Welcome to tomorrow land

2017-07-17     Vivienne Walt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미지=US 포춘


낙관주의자는 갈망하고 비관주의자는 두려워한다. 하지만 개인적 성향과 관계 없이, 미래는 인간에게 매혹적인 대상이다. 포춘은 내일의 세계를 만들어갈 사고와 기술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이번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제약·미디어·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향후 세상을 바꿀 기업 41곳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만 성공한다 해도 미래를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질 미래의 이슈 것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인구 130만 명)에선 사실상 모든 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스타트업 창업도 붐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 대국들은 경제 소국 중 한 곳인 이 나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스타십 테크놀로지스의 CEO 아티 헤인라가 회사의 배달 로봇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2003년 에스토니아에서 설립된 스카이프의 창업 팀 멤버였다. 사진=US 포춘


어느 봄날 오후, 필자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Tallinn 외곽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래에선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때 검은 색 바퀴 위에 탑재된 크림색 플라스틱 컨테이너가 모퉁이를 돌더니, 보행자 사이를 주행하기 시작했다. 그 기기는 마치 아이들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는 스타십 Starship이라 불리는 최첨단 배달 로봇이었다. 엄청난 수익창출 잠재력을 가진 그 차세대 발명품은 유럽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미니어처 같은 작은 설국-예상을 뛰어넘는 도약을 하고 있다-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타십 테크놀로지스Starship Technologies의 공동 창업자 겸 CEO인 아티 헤인라 Ahti Heinla는 “앞으로 20년 후 공상과학영화에선 사람들이 식료품을 직접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로봇들이 집까지 배달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실이 공상과학을 따라잡았다”며 “우리는 이미 2년 전에 이 같은 미래의 모습을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의 미래상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엽서처럼 아름다운 인구 40만 명의 이 도시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을 듯하다. 도시의 구불구불한 중세풍의 골목이 현재의 디지털적인 모습과 멋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헤인라는 “요즘엔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에스토니아의 주력 프로젝트”라며 “그것이 점점 더 핵심 사업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US 포춘


대부분의 미국인이나 유럽인도 지도상에서 이 나라를 콕 집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발틱해의 작은 이웃나라 라트비아 Latvia와 거대한 러시아 사이에 끼여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 인구는 댈러스나 뉴욕시 브롱크스 행정자치구와 비슷한 130만 명 정도다. 작은 국토 면적과 외진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 나라의 영향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헤인라를 포함한 한 무리의 친구들이 바로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인터넷 전화 플랫폼 스카이프 Skype를 만들어냈다.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감안할 때, 스카이프가 이 곳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꽤나 역설적이다. 25년 전 미국인들이 휴대폰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에스토니아는 구소련의 전초 기지로 세상과 단절돼 있었다. 일반 전화를 배정 받는데 10년을 기다리는 게 다반사였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하자, 이 나라는 ‘시간 왜곡(Time Warp)’ 상태에 빠져들었다. 당시 학생 운동을 했던 에스토니아군 사령관 리호테라스 Riho Terras 장군은 “우리에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는 제로상태에서 재시동을 걸어야 했다. 테라스는 “당시 모든 시민이 10 유로(10.6달러)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우리 모두가 10유로에서 시작했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한 세대가 지나자, 에스토니아는 또 다른 종류의 시간왜곡에 빠져들었다: 극단적인 디지털 생활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에스토니아는 한 나라가 오래된 아날로그 시스템을 포기하고, 전면적인 온라인 시스템을 선택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그런 인식 상의 변화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싱가포르, 일본, 인도 등 세계 각국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디지털 국가로의 변신을 적극 꾀하고 있다. 대개는 예산을 감축하고 서비스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일부 국가는 시민들을 더욱 철저하게 감시하기 위해 디지털 변신을 진행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온라인 시스템이 매년 GDP를2% 끌어올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탈린에 도착하자마자, 필자의 휴대폰이 도시의 무료 와이파이(도입된 지 15년이 넘었다)와 연결돼 소리를 냈다. 그러나 일반적인 에스토니아인들의 극단적인 디지털 생활은 잘 눈에 띠지 않았다. 이 곳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11자리의 디지털 고유 번호를 부여 받는다. 이는 평생 동안 삶의 모든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디지털 식별 번호 역할을 한다-21세기형 사회보장(Social Security) 번호인 셈이다. 그리고 모든 생활의 디지털화는 어릴 적부터 시작된다: 에스토니아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다. 그 중 많은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이 교육과정을 시작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000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을 (음식과 주거처럼) 기본 인권으로 선언했다. 같은 해 디지털 서명을 필기 서명과 동일한 효력으로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단일 조치로 종이가 전혀 필요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 어느 누구도 펜으로 서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납부와 계좌개설, 대출수령, 처방전 받기, 그 밖에 대부분의 일반 업무(결혼과 이혼은 예외) 처리 과정에서 종이 서류가 사라졌다. 초기 단계의 비상장 스타트업에게 투자거래 플랫폼을 제공하는 펀더빔 Funderbeam의 CEO 카이디 루살렙 Kaidi Ruusalepp(41)은 “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20분만에 회사를 차렸다”며 “세무서나 사회보장기관, 그 어떤 곳도 방문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에스토니아인들은 몇 분 내로 온라인 세금 신고를 할 수 있다. 모든 공공 등기소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그들은 소득과 부동산, 자녀 수 등이 기재된 세금신고서에 손쉽게 로그인할 수 있다. 필요한 수정을 하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게 끝난다(미국 외의 국가에서, 이런 식의 신고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지난해 당시 총리였던 타비 로비아스 Taavi Roivas는 데일리쇼 Daily Show에 출연, 쇼호스트 트레버 노아 Trevor Noah에게 룩셈부르크 공항에서 남는 몇 분 동안 개인 아이패드로 세금을 신고한 사실을 소개해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필자가 에스토니아 의회 집무실로 로비아스(37)를 방문했을 때, 이상하게도 그 곳에는 종이가 없었다. 거의 3년 동안 총리로 일하면서 그가 잉크를 사용한 유일한 경우는 기념식 방명록에 서명했을 때 뿐이었다. 그는 “이론적으론 정부가 전쟁터로 군대를 파견할 때에도 온라인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어떠한 법안도 내 손으로 직접 서명한 적이 없다. 정말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2005년 대통령 선거 때 최초로 온라인 투표를 했다. 당시 당선된 대통령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Kersti Kaljulaid에게 지난해 11월 선거 때 어디서 투표를 했냐고 묻자, 그녀는 필자의 질문이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집에 있는 컴퓨터로 투표를 했다.” 이웃 국가인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탈린으로 가는 선상에서 필자는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헬싱키에서 양국의 디지털 신분증을 동시에 인정하는 합의안에 서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합의로 양국 국민들은 상대국 병원에 내원할 때, 의료 기록을 자동으로 불러올 수 있게 됐다(모든 정보는 온라인에 저장돼 있다). 그녀는 “우리는 17년 간이나 디지털 인증서를 사용해왔다”며 “국민들이 시스템을 신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소련 시절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공장 지대 한 오피스 빌딩에 그려진 거리 미술. 사진=US 포춘


에스토니아인들은 오늘날의 모든 ‘IT 마법’을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구소련 붕괴 후 경제적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한 가지 큰 장점을 얻었다: 빈손으로 모든 걸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보안회사 가드타임 Guardtime의 대표 마틴 루벨 Martin Ruubel(41)은 과거 군대 막사를 개조해 만든 탈린의 한 사무실에 앉아 “사람들이 현금을 지급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든 가드타임은 국가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개발한 업체다(잠시 후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하겠다). 어느 국민도 수표책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구소련이 무너지자 에스토니아는 펜과 종이가 필요한 수표를 건너뛰고 곧바로 은행 카드를 발급했다. 그 결과 비용 절감과 함께 또 다른 강점을 가질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인들이 빠르게 온라인 사회를 수용하게 된 것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새 지도자들은 국가 통합을 위해 통신 산업도 빠르게 민영화했다. 현재 에스토니아 은행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마트 라르 Mart Laar(57)는 “그 작업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그는 구소련 체제 이후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에스토니아 첫 총리가 되었다). 집 전화를 가진 국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대신 휴대폰을 구입했다. 역사학자인 라르는 “나는 컴퓨터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최신 기술로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핀란드가 자국보다 더 가난한 이웃인 에스토니아에게 아날로그 전화를 무료 교환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에스토니아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정부는 펀더빔의 현 CEO 루살렙-그녀가 고작 스무 살의 대학생이었을 때였다-을 첫 IT변호사로 고용했다. 그녀는 “당시 나는 법학 학위도 없었고, 기술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첫 과제는 다른 나라들보다 몇 년 앞서 디지털 서명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루살렙은 “우리는 나라를 바꾸고 싶었다. 두뇌는 있으니 행동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그런 초기 결정들이 오늘날 번영하는 IT환경의 토대가 됐다. 2003년 탈린에서 창업한 스카이프는 한 세대의 IT 전문가와 예비 기업가들을 탄생시켰다. 탈린에 기반을 둔 투자 펀드 테라 벤처 파트너스 Terra Venture Partners의 안드루스 옥스 Andrus Oks는 “사람들은 ‘만약 에스토니아인들이 스카이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면, 나 또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11년 85억 달러에 스카이프를 인수하자, 이 회사 출신들은 탈린의 새로운 신생기업에 다시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미국업체들의 투자로 이어졌다. 스타십의 헤인라를 포함해 스카이프 창립 개발자들은 앰비언트 사운드 Ambient Sound라는 벤처 캐피털 펀드를 런칭하기도 했다. 스카이프 공동창업자 야누스 프리스 Janus Friis와 함께 스타십을 설립한 헤인라는 “스카이프 효과는 대단했다”고 강조했다. 주요 투자자들은 다임러 A.G. Daimler A.G.와 실리콘밸리 기업 샤스타 벤처스 Shasta Ventures, 매트릭스 파트너스Matrix Partners 등이었다.

지금 당신이 캘리포니아 주 레드우드시 Redwood나 워싱턴 D.C.에서 도어대시 DoorDash나 포스트메이츠 Postmates를 통해 중국 배달음식을 주문하면, 스타십이 시운전하는 배달 로봇이 ‘문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와 함께 음식을 배달할지도 모른다. 스타십은 스위스 베른과 런던에서도 시험 배달을 하고 있다. 도미노 피자도 스타십을 통한 일부 배달을 함부르크에서 곧 실험할 계획이다.

스카이프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1년 스카이프의 첫 직원이었던 타베트 힌리쿠스 Taavet Hinrikus가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라는 온라인 송금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현재 탈린의 건물 4개 층을 쓰고 있는 이 회사는 월 10억 달러를 전 세계로 송금 처리하고 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 Andreessen Horowitz와 피터 틸 Peter Thiel의 발라 벤처스 Valar Ventures 등이 이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러시아가 작은 속국이었던 에스토니아와 조만간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는 IT 허브로 성장하겠다는 계획과 상관없이, 구소련 붕괴 후 서둘러 나토와 EU에 가입했다.

2007년 마침내 러시아의 보복이 시작됐다. 이 사건은 에스토니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구소련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기념비를 탈린 중심부에서 근처 전쟁 묘지로 이전한다는 결정을 내린 후 벌어진 일이었다. 친러 성향 시위자들이 며칠 동안 폭동을 벌이며 바리케이드를 불태우고 상점을 약탈했다. 당시 에스토니아 은행과 의회, 그리고 일부 공공서비스 기관들의 인터넷 접속이 갑자기 끊기기도 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서비스 거부(Denial-of-Service) 공격 *역주: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반복적으로 요구해 컴퓨터를 다운시키는 사이버 공격 이 에스토니아를 겨냥한 것이었다. 2007년 자행된 이 사이버 공격은 에스토니아에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가드타임의 루벨은 “우리는 ‘정말’ 온라인에 의존하고 있었다. 문서 원본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에스토니아는 지금도 러시아가 그 공격의 배후라고 믿고 있다.

얼마 후 유일하게 나토 승인을 받은 사이버방어 센터가 탈린에 문을 열었다. 올해에는 에스토니아가 세계 최초로 ‘데이터 대사관(Data Embassy)’을 룩셈부르크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 곳은 에스토니아 전체 데이터를 백업하기 위한 저장소로, 일반 대사관과 동일한 주권을 인정받게 된다. 또 다른 사이버 공격을 받을 경우, 에스토니아 인터넷 시스템을 원격으로 재가동할 수도 있다. 루벨은 “우리는 2007년 이후 외부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됐다”며 “다만 ‘시스템 내부에서 공격이 발생해 누군가가 데이터를 훼손하면 어떻게 될까’ 같은 우려는 있었다”고 말했다.

기술적 발전이 그런 걱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재 이 기술들은 가장 성공한 일부 스타트업들 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을 떠받치고 있다. 또 향후 몇 년간 국가 미래성장의 동력이 될 ‘블록체인’ 발전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가드타임의 사장 마틴 루벨이 탈린 소재 회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US 포춘


암호화된 화폐 비트코인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분산된 데이터 베이스다. 결코 지워지거나 다시 작성할 수 없는 ‘공공 장부(public ledger)’ 역할을 한다. 이 기술을 통해 에스토니아 엔지니어들은 암호화된 데이터를 강화할 수 있고, 에스토니아 국민들은 언제든지 정보의 훼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수많은 온라인 업무를 처리할 때, 두 단계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이 같은 보안조치들이 우리 시스템을 철벽에 가깝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미 국무부는 지난해 사이버범죄가 에스토니아에서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예컨대 이런 보안조치들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18개월 동안 미 국가안보국(NSA)을 상대로 계속 저질렀던 해킹과 대비된다. 칼리울라이드 대통령은 “스노든도 우리 시스템만큼은 뚫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들의 주장처럼 에스토니아의 기술이 안전한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 소행으로 의심되는 해킹이 벌어진 후 7년이 지난 2014년, 미시건대 엔지니어들이 에스토니아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 요원들처럼 작심한 해커들의 경우, 실제로 시스템에 침투할 수 있고,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 선거 조작용 허위 투표를 만들거나 전체 투표수를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보고서에 ‘에스토니아의 시스템은 선거 서버와 유권자 컴퓨터를 극단적으로 신뢰한다. 이들은 외국의 해킹에 매우 취약한 목표물’이라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는 “지난 여섯 차례의 선거에서 단 한번의 오류도 없이 투표가 이뤄졌고, ‘종이 투표용지보다 훨씬 뛰어난 안전성’도 갖고 있다”고 이를 반박했다.

에스토니아 국민 입장에선, 정부와 기업들을 위한 극단적인 디지털 시스템의 잠재력이 너무 커서 아찔함을 느낄 정도다(블록체인 활용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2015년 2,300만 달러 매출(추정치)을 기록한 가드타임-직원이 150명이다-은 세계 최대 블록체인 기업 가운데 한 곳이다. 전 세계에 고객들을 두고 있으며, 록히드 마틴, 미 국방부와도 거래를 하고 있다. 펀더빔은 공공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기반한, 소위 ‘색깔 코인 기술’을 활용해 거래와 투자를 추적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브로커와 교환 대리은행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루살렙은 “미국인들이 ‘종이 기록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펀더빔의 초기 투자자 중에는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팀 드레이퍼 Tim Draper도 있었다). 그녀는 “반면 에스토니아인들은 자신들의 의료 기록이 진료실의 종이 폴더 안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누가 당신 자료를 들여다 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이런 신뢰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덧붙였다.

에스토니아 시스템을 구축한 기술진은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데이터 보안 관련 논쟁은 대부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보단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의 데이터에 누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뉴저지 주 레오니아 Leonia 출신의 에스토니아계 미국인 투마스 헨드릭 일베스 Toomas Hendrik Ilves는 “정말 중요한 문제는 입력된 자료가 변경·파괴되지 않는 ‘데이터 완전성(Data Integrity)’”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부터 작년 11월까지 에스토니아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현재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 및 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이자, 세계경제위원회의 블록체인 미래그룹(World Economic Council’s Future of Blockchain group)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일베스는 “미국의 여러 기관들이 중구난방으로 에스토니아식 블록체인 구조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나는 현재 실리콘밸리의 정확히 중간 지점인 스탠퍼드 대학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 곳의 창의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공공분야는 아주 많이 뒤처져 있다”고 꼬집었다.
 

틸린의 한 초등학교에서 코딩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사진=US 포춘


에스토니아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요한 태생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바로 소국이라는 점이다. 인구 130만에 불과한 이 나라는 ‘기름칠이 잘된 기계’처럼 작동을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그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구축된 시스템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에스토니아가 기술적 이점을 충분히 발휘해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더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에스토니아 기술자들은 “이론상 미국은 백지상태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재구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3억 명의 국민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얼음으로 뒤덮인 북유럽의 소국 에스토니아에겐 이민자들을 대거 유인할 수단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색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나라가 세계 최초로 이뤄낸 또 다른 성과로, 사람들에게 ‘가상 거주권(Virtual Residency)’을 제공하는 것이다. e-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이 권리는 직접 에스토니아를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50유로만 내면 신청을 할 수 있다. 신분증을 받은 사람은 온라인으로 법인 설립과 은행 거래 등을 처리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창업가인 타비 코카 Taavi Kotka(38)가 지난 2013년 정부 최고정보책임자에 오른 후 ‘가상 거주’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그는 인구의 빠른 증가 필요성을 강조한 정책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목표 인구를 2025년까지 1,000만 명으로 제안했다. 에스토니아 여성들이 각각 아이를 10명씩 갖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 대안은 세계 나머지 국가들에 제안할 수 있는 유인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둔 기업들처럼, 에스토니아의 전자 거주자들(E-Residents)은 멀리서도 자신들의 유럽 사업을 경영하고 유로화로 거래도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고 있는 코타는 “우리는 작은 기업들을 위한 ‘사무실’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에스토니아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고객들 없이는 결코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에스토니아의 첫 번째 전자 거주(E-Residency) 카드는 2014년 12월 발행됐다. 카드 내부에 마이크로 칩이 내장돼 있는 이 카드는 에스토니아인들의 디지털 주민 카드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투표나 연금 같은 일반 시민의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세금 납부 의무도 없다. 그렇다고 이곳이 세금 피난처는 아니다: 에스토니아는 전자 거주자들이 세금 발생 국가에 납세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수수료 145유로(약 154달러)만 내면, 전자 거주자들은 에스토니아에 법인 등록을 할 수 있다. 실제 거주지에 관계없이, 그들은 EU의 거대 공동시장(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약 4억 4,000만 명)에 자동으로 접근할 수 있다. 현재까지 등록한 전자 거주자 1만 8,000명 가운데, 약 1,400명이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설립했다. 각 기업은 월 평균 55유로(약 58달러)를 회계와 사무 행정 비용으로 쓰고 있다.

올해 정부는 전자 거주 프로그램 예산을 두 배로 증액했다. 2018년에는 그 예산을 다시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전자 거주자 수를 빠르게 확대하기 위해서다. 그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에스토니아가 제공하는 비즈니스 서비스도 함께 증가할 전망이다. 전 세계 관리들은 자체적으로 전자 거주 프로그램을 실시할 방법을 파악하기 위해 탈린으로 출장을 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카스파르 코르유스 Kaspar Korjus는 “매년 500명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다”며 “지금까지 국가 수입원은 세금이 유일했다. 하지만 1,000만 명의 전자 거주자들이 매달 100달러를 납부하면, 더 이상 세금을 거둘 필요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가능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 운영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이뤄지면서, 이론상 에스토니아는 현재 선보이고 있는 다른 발명품들(기술 및 아이디어)을 상품화 할 수 있게 됐다. 대규모 신사업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로비아스 전 총리는 “현재 에스토니아는 ‘정밀 의학’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의 ‘정밀 의학’은 질병 진단과 환자 치료, 맞춤형 의약품 제조를 개선하기 위해 국민 130만 명의 게놈 데이터를 활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상호 교환한 의료 데이터를 확실히 추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몇 년 내에 에스토니아의 아이디어가 수 십억 달러 사업으로 진화하는 건 상상 가능한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료체제’로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각이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으로 바뀔 것이다.

지난 1991년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던 이 나라가 국가라는 개념을 재창조하고 있다. 필자가 스타십 로봇들이 탈린의 회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CEO 헤인라는 “수십 년간 구소련의 지배를 받은 후, 에스토니아인들은 정부 운영 같은 업무처리의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도저히 타파할 수 없는 기득권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인들은 단순하게 새롭고 더욱 효율적인 것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더 낡고, 더 자기들의 방식에 고착화된 (그리고 더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나머지 국가들은 아직 에스토니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스타트업 핀더빔의 창업자 겸 CEO 카이디 루살렙(오른쪽)이 탈린 소재 회사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 모습. 사진=US 포춘


■ 부상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신생기업 3곳

수도 탈린에서 확산되고 있는 IT 창업 분위기가 전 세계 벤처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주목할만한 기업들을 소개한다.

스타십 테크놀로지스
스카이프 탄생에 일조했던 두 명의 에스토니아인 야누스 프릴스와 아티 헤인라가 2014년 공동 창업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현재 자체 음식배달 로봇을 런던과 함부르크,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같은 곳에서 테스트하고 있다. 자동차 대기업 다임러가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자바티칼
창업자 카롤리 힌드릭스 Karoli Hindriks는 “모든 사람들이 해외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녀가 2014년 설립한 이 회사는 전 세계 전문직 구직자들에게 해외 기업의 중단기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있다. 이 회사의 초기 투자자 중에는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도 포함돼 있다.

펀더빔
이 회사는 아마도 초기단계 비상장 스타트업을 위한 세계 유일의 온라인 거래 플랫폼일 것이다. 한때 에스토니아 정부 최초의 IT 변호사였던 카이디 루살렙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2013년 이 회사를 설립했다. 페임스 Fames 벤처캐피털의 팀 드레이퍼가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 ‘전자 에스토니아 (E-stonia)’를 향한 발 빠른 행보

에스토니아 정부는 국가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앞서 나가고 있는 4개 영역을 소개한다.

전자 거주 E-Residency
에스토니아는 2014년부터 외국인들에게 전자 거주 카드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거주지에 관계 없이, 해외에서도 에스토니아인들처럼 회사를 운영하고 온라인으로 서류에 서명을 할 수 있다.

전자 외교 Digital Diplomacy
올해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룩셈부르크에 ‘데이터 대사관’을 열 계획이다. 모든 국민들의 정보를 백업할 수 있는 자료저장 시설을 갖출 이 대사관은 실제 대사관과 같은 주권 지위를 갖게 된다.

광속 와이파이 Wicked Fast Wi-Fi
에스토니아는 내년부터 5G 네트워크 보유국 반열에 오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무인 자동차와 로봇 같은 기기들의 연결성을 크게 확장시킬 생각이다.

블록체인 구축 Blockchain Build-Out
에스토니아는 새로운 방식으로 디지털 기록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유전자 은행을 이용해 개인 맞춤형 약과 치료법을 제공하는 ‘정밀 의학’을 개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료 기록을 추적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미래의 이슈|① 디지털 의료혁명을 준비하라
미래의 이슈|② 헬스케어 업계를 바꾸고 있는 34인의 의료혁신 리더
미래의 이슈|③ 실시간TV의 흥미진진한 드라마
미래의 이슈|④ CEO 임금체계의 고리 끊기
미래의 이슈|⑥ 급구: 케케묵은 문제에 대한 참신한 해결책
미래의 이슈|⑦ 식량 안보를 위한 중국의 430억 달러짜리 거래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Vivienne Wa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