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전쟁, MS의 중재안은 ‘하이브리드 워크’

김형규 한국MS 인사부문장 인터뷰

2023-03-24     문상덕 기자

국내외 기업들이 쫓기듯 원격근무 종료를 선언하고 있다. 이에 직원들은 퇴사를 불사한다. 더 나은 대안은 없을까. 오피스를 만드는 사람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안에서 답을 찾았다.


김형규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인사부문장. 20여년간 채용과 교육, 보상, 노무, 인수합병 등 분야에서 인사업무를 경험했다. 홍콩과 한국에서 로레알 인사 총괄 역할을 역임하다 2021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해 인사 부문을 맡고 있다.

원격근무 종료를 두고 회사와 직원간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회사는 원격근무가 사무실 근무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고 본다. 반면 직원들은 이제 원격근무를 양보하기 어려운 근무조건으로 여긴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업무동향조사에서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원격근무 일자리 공고를 내면 사무실 출근직에 비해 조회수는 2.6배, 지원자는 3배 많았다고 밝혔다.

오피스 전쟁의 최전선엔 콘텐츠, 테크기업들이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하던 산업군이다. 단적으로 넷플릭스 창업자는 원격근무를 두고 “부정적 효과만 있다(a pure negative)”고 잘라 말했다. 월트디즈니는 최근 일주일 중 나흘은 출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직원 2300여명이 “결정을 재고해달라”며 청원을 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카카오는 오는 3월부터 사무실 출근으로 전환한다. 이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주요 게임사는 지난해 일찌감치 사무실 출근으로 전환했다.

타협안을 택한 직장도 있다. 원격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혼합하는 식이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워크’다. 오피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오피스, MS도 2021년 이를 방향으로 잡았다. 
그러나 혼합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일하는 방식은 통근시간의 총합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국MS의 인사업무를 총괄하는 김형규 부문장도 생각이 같았다. 김 부문장은 “제도와 문화, 기술은 인사의 세 가지 기둥”이라며 “이를 바꾸지 않으면 부작용만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Q 말은 때때로 정치적입니다.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라는 말의 뉘앙스 차이도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배경이 달라요. 팬데믹 때 재택근무가 유행했죠. 안전이 목적이었으니까요. 원격근무는 이전부터 종종 썼던 말이에요. 팀원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 원격근무를 했죠. 

Q 부문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재택근무라는 말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보통 반드시 집에서, 그것도 독립된 공간에서 일하도록 하거든요. 이런 규정 때문에 재택근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Q 사무실 근무보단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MS 조사를 보면, 전체의 20%는 사무실 출근을, 또 20% 정도는 완전 원격근무를 선호했어요. 연령이나 성별, 자녀 유무 등과 관련 없었고요. 결국 개인의 취향이란 뜻이죠.

 

“생산성 저하? 사실은 인사평가 일의 생산성”

Q 관리자들은 원격근무를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조사에서 근로자의 87%는 생산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관리자들은 12%만 그렇다고 답했어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일의 생산성이라기보단 인사평가 일의 생산성이죠.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눈에 다 보이니 평가하기 수월하겠죠. 전형적인 사무실을 보면, 부장님이 한눈에 모든 구성원을 볼 수 있게 설계돼 있잖아요. 통제 관점에서 효율적이죠.

김형규 인사부문장이 하이브리드 워크 회의실을 소개하고 있다. 김 부문장이 디지털 화이트보드에 필기한 내용이 팀즈 화면에 곧바로 노출됐다.

Q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하던 기업들까지 근로자들과 사전 협의 없이 비대면 근무를 종료하는 모습이 뜻밖으로 여겨졌습니다. 

조직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지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관리자 입장에선 잘하고 있나, 조바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대면 근무에 익숙해진 직원이 많다 보니 조금씩 되돌리긴 어렵다고 봐서, 다소 과격하게 제도를 바꾸려고 한 것 같아요. 

Q 이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시계 보급과 함께 이뤄졌단 말도 있거든요. 시간을 기준으로 직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거죠. ‘9 to 6’ 근무처럼요.

아마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신 기업들이 재택근무 종료를 선언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선택과 주도권에 점점 더 중요한 가치를 두게 될 거라고 봅니다. 

Q 직원들이 절박한 이유 중 하나는 집값이 아닐까 합니다.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통근 시간은 길어지고. 실리콘밸리에선 회사 근처에서 노숙하는 근로자도 있다고 들었어요.

집값에 더해서, 미국은 주별 생계비 수준이 달라요. 그걸 반영해서 사무실과 거주지 간 거리에 따라서 급여를 줄인 곳이 있어요. 삭감 당한 직원 입장에선 돌아가기 어렵죠.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이 다른 주로 이사 가버리면, 몇 년씩 출근을 안 하거든요. 업무에 몰입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거죠.

Q 마이크로소프트는 하이브리드 워크를 대안으로 말하고 있죠. 사무실 근무와 원격근무 사이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킨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요?

핵심은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내가 사는 곳, 일하는 장소, 일하는 시간을 직원이 정하도록 하자는 것이죠. 내가 선택해서 일하느냐, 남이 시켜서 일하느냐는 아웃풋이 달라요. 번아웃과도 관계가 깊어요. 강제된 틀 안에 계속 노출되면 번아웃이 오기 쉽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마음이 떠나 ‘돈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뜻의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트렌드로 등장하기도 했죠.

Q 선택권을 주자면 회사의 가치관을 수용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제도와 문화, 기술 세 가지 기둥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도입하면 부작용만 생겨요. 정말 일하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웹캠을 켜 놓게 하거나 마우스가 움직임을 체크하는데요. 그런데 마우스를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결국 서로 불만족하는 근무만 되는 겁니다.

Q 하이브리드 워크를 지탱하는 제도부터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도는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의하는 거죠. 기자를 예로 들면, 기사의 질로 평가를 할 수도 있고 자리에 앉아서 조사하고 기사 쓰고 있는 모습을 평가할 수도 있겠죠. 하이브리드 워크를 정착시키려면, 결과물을 평가해야 합니다. 회사가 허용하는 가치관과 절차, 규정을 준수하면 일하는 과정은 당신의 자유라는 겁니다. 

그런데 결과와 과정을 같이 보겠다. 혹은 결과로 평가하겠다고 하지만 은연 중에 액티비티를 보기 시작하면 하이브리드 워크가 비생산적이죠. 보이지가 않잖아요. 

MS에서는 결과물을 ‘임팩트’라는 이름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 일에서 어떤 임팩트를 만드는가에 대해서만 집중하다 보면 협업을 피하게 돼요. 그래서 내가 동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함께 봅니다. 이런 부분을 갖추지 않고 원격근무를 한다고 하면 어떤 액티비티를 하는지 모르고, 그러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관리자들은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변화에 필요한 문화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리더의 언행이에요. 직원들은 언행에서 진정성을 느낍니다. 하이브리드 워크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 직원들의 죄책감이에요. 집에서 논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스스로 더 엄격한 거예요. 사무실 근무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그런데 임원 분이 집에서 회의에 접속하고, 뒤쪽에 가족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봤을 때 구성원들도 변화를 더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Q 기술이 남았습니다.

기술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 다음 하이브리드 워크로 가면서 유지하기 어렵거나 바뀐 것을 발굴하고, 기술적으로 극복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게 일과 삶의 경계가 너무 얇아지는 것입니다. 팀즈(Teams)의 비바(Viva) 솔루션 중에 가상 통근 기능이 있어요. 퇴근시간이 되면 내일 일정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오늘의 기분을 물어봐요. 감정을 스스로 평가하는 게 번아웃을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마지막으로 1분 명상을 하고 퇴근합니다. 이렇게 일과 삶 사이, 퇴근을 하는 것 같은 의례를 만들어줍니다.

 

“하이브리드 워크, 챗GPT로 더 강력해질 것”

Q 비바는 팀즈와 다른 플랫폼인가요?

팀즈 안에 여러 종류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솔루션이에요. 업무 적응부터 협업,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을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요. 단적으로 ‘비바인사이트’는 팀즈 활동이력을 바탕으로 업무 현황을 보여주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줍니다. 관리자에겐 팀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일하는 정도, 미팅 빈도 등을 분석해서 보여주고요. 개인 식별은 불가능합니다. 

Q 시행착오도 있었나요?

주로 기술적인 문제였습니다. 오디오가 물린다고 하잖아요. 두 명이 동시에 말하면 소리가 끊기는 거죠. 기술적으로 불안정해서 이걸로 계속 회의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불편함이 없어진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이외에 소소한 기능이 많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카메라를 끄면 통화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는데요. 이제 아바타 기능으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아바타가 립싱크도 해줍니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Q ChatGPT 기능을 적용한 ‘팀즈 프리미엄’도 최근 출시했습니다. 

하이브리드 워크 부작용 중 하나가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해요. 소외될 수 있는 두려움이죠. 비대면으로 일하다 보면 화상회의 횟수가 늘다 보니, 다 들어갈 수는 없어요. 그런데 안 들어가면 흐름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내가 참여 못한 미팅 내용을 요약해주는 ‘인텔리전트 리캡(Intelligent recap)’ 기능을 만들었습니다. 1시간짜리 회의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죠.

Q 팀즈를 쓰지 않는, 다른 조직과 협업할 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팀즈를 안 쓰는 조직과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토픽이죠. 지금은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웹으로도 접속할 수 있게 해서 팀즈의 기능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기술적인 허들을 낮추려고 하는데, 서로 어떻게 호환하고 협업할지는 앞으로 더 풀어가야 할 이슈라고 봅니다.


하이브리드 워크를 도입한 뒤 한국MS의 사무실도 바뀌었다. 회의실엔 실내 인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카메라, 화이트보드에 필기한 내용을 디지털 화면으로 옮겨주는 카메라 등 매끈한 모습의 장비들이 즐비했다.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면서 규모도 줄였다. 12층 절반을 다른 회사에 내줬다. 

김 부문장은 하이브리드 워크와 함께 “공간이 재정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사무실은 정말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혹은 독서실에 가듯 집중하고 싶어서 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조직 내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있었다. 한국MS 광화문 사무실에서 변하지 않는 건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경복궁 일대의 풍광뿐인 듯했다. 

/ 포춘코리아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