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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컴퓨팅’ 시대 여는 왓슨 한국의 새 산업지형 만든다

“AI 슈퍼컴 왓슨은 지금 한국어 열공 중 암 진단·쇼핑 어드바이저로 맹활약 기대”

  • 기사입력 2017.05.08 10:56
  • 최종수정 2018.08.30 18:16
  • 기자명 하제헌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국IBM이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1967년 국내 최초로 인구센서스용 컴퓨터 ‘IBM1401’을 도입해 이를 계기로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그런 의미에서 1967년은 한국 IT산업의 원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IBM은 이후에도 국내 기술업계를 이끌며 한국 IT 산업에 ‘국내 최초’라는 이름이 박힌 굵직한 족적들을 많이 남겨왔다. 1969년 금성사(현 LG전자)와 함께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전산화 사업을 추진해 컴퓨팅 붐을 일으켰고, 1974년에는 대한항공에 기술을 지원해 국내 최초로 국제항공 예약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국민은행(현 KB국민은행)과 함께 국내 최초로 뱅킹온라인시스템을 가동하기도 했다.
그런 한국IBM이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로 한국 기술업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애플, 구글, MS,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AI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 기술의 선두주자인 IBM은 세계 최고 AI 컴퓨터로 평가받는 ‘왓슨(Watson)’을 무기로 국내 산업 전반에 강한 인상과 미래 가능성을 각인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BM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통해 국내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하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지난 반세기를 넘어 또 다른 반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IBM의 현주소와 미래 청사진을 깊숙히 들여다보았다.
 

장화진 한국IBM 사장. IBM은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의 약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푸른색 IBM 로고는 1972년 제작된 것이다. IBM의 속도와 활력을 의미한다. 사진=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장화진 사장은 올해 초 한국IBM 사장에 부임했다. 그런데 그의 어깨는 지금 가볍지가 않다. 10년 만에 매출 1조 원 아래로 떨어진 한국IBM을 부활시키라는 무거운 책무가 그에게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화진 사장은 이를 헤져나가는 데 요긴한 엄청난 무기 하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왓슨이다. 기존 산업 지형도를 완전히 바꿀 파괴력을 가진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이 이미 국내 기업과 병원 등에 도입돼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장 사장은 지금 그 가능성을 실제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서울시 여의도동 IFC 빌딩에 있는 한국 IBM 본사에서 장화진 사장을 만났다. 그는 25년 이상 IT 업계에서 활약한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IT 업계 종사자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그의 첫 인상은 멋쟁이 신사였다. 외교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해외 생활을 한 경험과 세련된 취향 덕분인지 옷을 무척 잘 차려 입고 있었다. 그는 학력 배경도 매우 뛰어났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항공우주와 기계공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장화진 사장과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항공우주와 기계공학을 전공해서인지 ‘탈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장 사장은 자신의 취미를 얘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비행기 조종 면허를 취득해 하늘을 날아다녔어요. 부모님께 항공우주 공부를 하려면 비행기도 몰 줄 알아야 한다는 핑계를 댔죠.” 그는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았다. “포르쉐 파나메라가 좋더라구요. 속도가 올라가면 트렁크 끝 부분에서 날개가 나오는데 참 멋있어요.” 기자와 장 사장은 포르쉐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함께 웃었다.

한바탕 유쾌한 대화가 오고 간 후 한국IBM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IBM은 지난 2015년 10년 만에 매출액이 1조 원 이하(8,197억 원)로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액도 그 보다 조금 못 미친 8,141억 원에 머물렀다. 올해 초 한국 IBM에 합류한 장화진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는 매출 하락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듣고 싶었다. 장화진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본사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업 구조 재편의 영향 때문입니다. 2005년 IBM이 PC 사업부문을 중국 레노버에 판 건 아시죠? PC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할 것이란걸 미리 알고 취한 조치였죠. 한국IBM도 본사 방침에 따라 2014년 ‘x86 서버 사업부’를 레노버에 매각했어요.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왓슨을 상징하는 로고. 이미지=IBM

IBM 최고경영자 지니 로메티는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IBM은 인지 컴퓨팅(Cognitive Computing) 솔루션과 클라우드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라고 사업방향을 새롭게 정의한 바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을 IBM에선 ‘인지 컴퓨팅’이라고 부른다. 인지 컴퓨팅 솔루션은 가정은 물론, 기업, 공공, 의료 등 실제 비즈니스 환경에 인지 컴퓨팅을 적용해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하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만족을 안겨주는 것을 의미한다.

장화진 사장이 한국IBM에 합류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장 사장이 IT 업계에서 25년 동안 쌓아온 경력을 살펴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장 사장은 대학원 졸업 후 미국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플라이드 머트리얼스(Applied Materials)’라는 반도체 회사였다. 이후 그는 ‘애자일 소프트웨어(Agile Software)’로 옮겨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당시 아이포드와 맥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 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사용했다. 장 사장이 말한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났더니 실제로 고객이 이 제품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현장 구축 업무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컨설팅 업무까지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영업에까지 손을 대게 됐습니다.” 그는 홍콩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뒤 곧이어 아시아태평양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다 2007년 삼성 SDS로부터 스카운트 제안을 받았다. 삼성전자에서 PLM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해당 분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장 사장은 삼성SDS로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겨 PLM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장 사장은 당시 만든 PLM 소프트웨어가 지금도 삼성전자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SDS에서 9년 동안 일하며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이끌었다. 스마트타운 사업, 스마트물류 사업,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을 거쳐 글로벌사업 본부장(전무)까지 승진했다. 솔루션 개발과 컨설팅, 영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장 사장의 능력이 높게 평가받은 덕분이었다. 장사장이 말한다. “저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3년마다 말레이시아, 미국 시카고, 한국,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사를 다녔어요. 7살 때부터 그런 생활을 했죠. 그래서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환경이 바뀌는 일이 두렵지 않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성격이 형성된 것 같아요. 삼성SDS와의 궁합이 잘 맞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IBM은 현재 인지 컴퓨팅으로 무장한 컴퓨터 시스템 왓슨에 미래를 걸고 있다. 왓슨은 클라우드(IBM의 클라우드 이름은 ‘블루믹스Bluemix’다)에 있는 수많은 정보를 모아 스스로 분석한 뒤 의미 있는 연결 고리들을 ‘인지’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블루믹스와 왓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얘기다. 왓슨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연어’를 이해할 수 있다. 사투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8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왓슨은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삼성SDS에서 근무하던 장 사장은 지난해 한국IBM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그때에 대해 “IBM이 한국 사업을 이끌 인물을 찾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걸려든 거였죠”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왓슨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한국 IBM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IBM 외부 출신 인사가 한국 IBM 사장에 선임된 건 장화진 사장이 처음이었다.
 

현재 IBM은 왓슨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미지=IBM

새로운 한국IBM 이끌 적임자
1년 전인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바둑대결을 펼쳤던 구글 ‘알파고’는 한 판을 제외하고 모든 대국에서 승리함으로써 AI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해 있는지를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그 사건은 애플, 구글,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AI 분야 선점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한 기폭제가 되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AI 시스템 시장에 관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지 컴퓨팅 및 AI 시장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연평균 55.1%의 급격한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AI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470억 달러에 달할 것을 예상된다.

이 AI 기술의 원조가 바로 IBM이다. IBM에는 왓슨 이전 ‘딥 블루(Deep Blue)’가 있었다. 딥 블루는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왓슨의 원형이다. 이후 IBM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만든 것이 현재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왓슨이다. IBM 첫 회장인 토머스 J. 왓슨에서 이름을 따온 왓슨은 IBM의 ‘DeepQA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됐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지 컴퓨팅 시스템을 통해 자연어 형식의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인공지능 슈퍼 컴퓨터 왓슨의 탄생 배경은 이랬다. 2004년 IBM 연구팀 매니저 찰스 리켈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TV 퀴즈쇼 ‘제퍼디’를 시청하느라 침묵에 빠져있는 것에 주목했다. 식사 중이던 레스토랑 손님들이 모두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이를 전해 들은 IBM 연구팀 이사 폴 혼이 2005년 찰스 리켈에게 개발자들을 배정해 주면서, 제퍼디 쇼에서 인간을 이기는 AI 시스템(왓슨)을 개발해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후 2006년 IBM 개발부서 수석 매니저 데이비드 페루치가 최초로 왓슨을 테스트했다. 왓슨은 당시 제퍼디 쇼에서 500개의 단서를 받았지만, 테스트 과정에선 제한된 시간 내에 정답 15% 만을 맞출 수 있었다. 반면 인간 경쟁자는 95%를 풀었다. 그러나 왓슨 개발팀은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 15명을 배정받아 3년 이상을 매달렸다. 2008년이 돼서야 개발팀은 제퍼디 챔피언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의 왓슨을 개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2011년 제퍼디에서 인간 경쟁자를 이기고 우승할 수 있었다.

현재 왓슨은 IBM 클라우드 센터 50곳에 모이는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왓슨은 기억력이 굉장히 좋아 한번 받아들인 건 모두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왓슨은 서로 조금 다른 장단점을 갖고 있다. 인간은 특정한 분야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왓슨은 다양한 영역을 커버하면서도 지식의 정도는 인간만큼 깊지 못하다. 이 때문에 왓슨과 인간의 뇌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장화진 사장은 말한다. “왓슨도 인간처럼 학습해야 똑똑해집니다. 입력되는 데이터들이 많아질수록 스스로 분석하면서 더 고도화된 사고를 할 수 있어요. 왓슨에게 질문을 하면 왓슨은 그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50~60가지 다른 방향으로 분석을 합니다. 왓슨은 지금 우리가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계속 학습을 하고 있어요.”
 

한국IBM의 ‘코그니티브 보안 관제센터’ 모습. 이미지=IBM

현재 IBM은 왓슨에게 산업 관련 지식을 학습시키고 있다. 실제로 왓슨은 유전자 연구나 암, 생물학, 화학 분야는 물론, 요리 레시피 개발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이미 왓슨은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지만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두 가지다. 바로 의료와 쇼핑이다. 그 중에서도 왓슨은 특히 암 진단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IBM은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사들여 왓슨의 인지능력 향상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장화진 사장이 말한다. “IBM은 암을 진단하는 왓슨에게 특별히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 친구는 24시간 내내 암 관련 논문을 읽고 있습니다. 암과 관련한 정보가 업데이트 되는 대로 실시간으로 공부를 하는 거죠. 이는 국내에도 이미 도입되어 있어요.”

현재 한국에선 가천대학교, 부산대학교, 건양학교대, 계명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가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했다. 특히 부산대학교 의대는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까지 도입했다.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왓슨 포 지노믹스는 현재 방대한 의학 문헌, 의약품 정보와 함께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들에게 개별 환자에 대해 고려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을 추천해주고 있다.

왓슨은 뛰어난 쇼핑 전문가이기도 하다. 장화진 사장은 최근 왓슨을 도입한 롯데쇼핑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앞으로 롯데쇼핑이 모바일폰이나 PC 혹은 키오스크에 왓슨을 탑재해 쇼핑 어드바이저로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사장은 말한다. “왓슨은 현재 롯데 쇼핑의 신입사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롯데쇼핑의 똑똑한 직원들이 왓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왓슨이 펼칠 앞으로의 활약을 설명해 볼까요. 쇼핑에 나선 주부가 왓슨에게 ‘우리 남편이 3주 뒤 한라산 등산을 가는데 어떤 등산 재킷이 좋을까요’라고 질문하면 왓슨은 곧바로 3주 뒤 한라산 날씨를 분석합니다. 그 날씨에 맞는 등산복을 찾는 거죠. 만약 비가 올 것 같으면 방수 기능이 뛰어난 옷을 추천해줍니다. 고객들이 왓슨을 쓰면 쓸수록 더 똑똑하고 정확한 쇼핑 어드바이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왓슨을 도입해 활용하려는 또 다른 한국기업 사례도 있지만, 계약 조건 때문에 공개하진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장 사장은 미국 산업계에서 왓슨을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고도 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초기 단계라며 앞으로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왓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화진 사장. 사진=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왓슨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세상
많은 사람들은 똑똑해진 AI가 인간을 지배하지나 않을까 우려를 한다. 하지만 장화진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왓슨이 사람들이 문제를 잘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억하게 해주고, 인간의 힘으론 찾을 수 없거나 찾기 힘든 관계를 추출해 도움을 주게 된다고 강조했다. 장화진 사장의 설명은 구체적으로 이랬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은행에 20년 근무한 베테랑과 입사 2년 차인 직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왓슨은 2년 차 직원이 베테랑 직원처럼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업무가 서툰 직원이 일 처리를 하기 위해 왓슨에게 질문을 하면 왓슨이 해결책을 찾아주는 식입니다. 그런데 진짜 어려운 업무에 부딪히면 사람이 결국 해결을 해야 합니다. 베테랑 직원이 필요한 이유죠. 왓슨은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더 똑똑해지고요. 그럼 신입사원들의 업무 능력도 그만큼 향상되는 겁니다. 왓슨에게 다시 물어보면 되니까요.” 결국 인간이 왓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장 사장의 요지였다.

IBM의 최고경영자 지니 로메티는 AI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노동계층이 생길 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화이트컬러와 블루컬러로 노동계층이 나눠져 있었지만, 앞으론 AI와 관련된 일을 하는 ‘뉴 컬러’가 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IBM은 미국에서 뉴 컬러 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2011년 IBM은 뉴욕 브룩클린에 P테크 스쿨(P-TECH School, Pathways in Technology Early College High Schools)을 만들었다. 9학년(우리 나라의 중학교 3학년)부터 입학할 수 있는 이 P테크 학교는 6년짜리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지만, 성적이 뛰어나면 조기 졸업도 할 수 있다. 졸업생들은 2년제 대학 졸업자들에게 수여하는 준학사 학위를 받는다. 이들은 IBM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도 부여받는다.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졸업생 8명이 현재 IBM에서 일하고 있다. P테크 학교에는 일반 학교들이 쓰는 교과서가 없다. 대신 P테크 학생들은 기초이론부터 실무교육까지 IT와 AI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운다. P테크 학교는 현재 뉴욕·일리노이·코네티컷 등 미국 전역 55곳으로 확장해 있다. IBM은 올해 연말까지 호주·모로코 등에도 P테크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장화진 사장은 달변가였다. 긴 시간 동안 복잡한 내용을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했다.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녹아 있는 듯했다. 한국IBM은 테크놀로지 서비스와 하드웨어 사업은 물론 컨설팅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컨설팅 사업은 그동안 한국IBM이 중요하게 밀어왔던 사업이었다. 왓슨으로 인해 컨설팅 사업이 소홀해진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장화진 사장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오히려 컨설팅 사업이 강화될 겁니다. 왓슨 때문이죠. 왓슨을 원하는 고객사에게 ‘자, 이제 전원 연결하고 네트워크 연결해서 쓰세요’라고 던져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왓슨 활용을 원하는 고객사가 어떤 분야를 특화시키고 싶은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일종의 맞춤형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죠. 우리 스스로가 컨설팅 업무를 통해 왓슨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해 정확한 교육 내용과 범위를 고객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장 사장은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IBM에 오자마자 ‘앤드류’s Bobb(밴드 오브 빅블루)’을 시작했다. 앤드류는 장 사장의 영어 이름이다. 장 사장은 말한다. “임직원들과 점심식사, 저녁식사를 계속 하고 있어요. 지방에 있는 사무소에도 찾아가 직원들과 밥을 먹고 있죠. 저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다 같이 모여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하는 게 매우 즐겁습니다.”

장 사장은 특히 신입직원들에게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최근 한국IBM에 입사한 신입직원들은 밀레니얼 세대다. 장 사장은 이들에게 AI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고 설명했다. “왓슨을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아요. IBM은 본사 차원에서 회사 사업 내용을 완전히 바꾸는 과정에 있습니다. 한국IBM도 마찬가지죠. 신입사원들은 앞으로 변할 한국IBM을 이끌 재목들입니다. 이들을 처음부터 제대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장 사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입직원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비디오 블로그를 찍어 직원들에게 보내면, 직원들은 장 사장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장사장은 한국IBM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는 “외국계 회사가 한국에 50년 동안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이렇게 말을이었다. “한국IBM은 1967년부터 한국인들을 위해 IT 기술을 도입하고 일자리를 창출했어요. 그런데 앞으로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습니다. 왓슨을 기반으로 펼칠 수 있는 사업 영역이 무궁무진하니까요. 왓슨은 심지어 드레스도 디자인하고, 작곡도 합니다. 엄청난 일이죠. 왓슨은 알면 알수록 재미가 있어요. 저희는 왓슨을 더 학습시켜 한국 사회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 겁니다.”

한국IBM이 걸어온 발자취

1967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국내 최초 컴퓨터 ‘IBM시스템 140’ 가동
1969 금성사(현 LG전자)에 한국 최초의 업무용 컴퓨터 시스템 ‘360-25’ 설치
1971 4벌식 한글 라인프린터 개발, 발표
1974 대한항공에 ‘4505 터미널’ 설치. 국내 최초 온라인 국제항공 예약시스템 가동
1977 국민은행 예금 온라인시스템 개발 국내 최초 가동
1985 국내 소프트웨어 지원. 제 1회 IBM 소프트웨어 전시회 개최
1988 서울 올림픽·서울 장애인 올림픽 공식 후원. 직원 220명, 1,240만 달러 상당의 전산장비 지원. 한국의 독자적인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에 기여
1990 IBM 초대형 컴퓨터 ‘3090-600J’ 국내 최초 설치
1993 IBM배 한일 컴퓨터 바둑대항전 개최
1996 포항공대 초고속 캠퍼스 통신망 구축
1999 중소기업 리엔지니어링센터 오픈(3년간 200억 원 지원)
2002 ‘국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외국기업’선정 (연세대 조사)
2003 한국 윤리경영대상 수상(인재양성 부문)
2008 서울에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 설립(전 세계 6번째)
2013 글로벌 IBM의 ‘스마터 시티 챌린지 (도시 문제 해결)’ 제주특별자치도 선정
2015 첨단 산업별 솔루션을 제공하는 ‘IBM 클라이언트 센터’ 개소
2016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설립. 인공지능 암센터 국내 최초 운영

● 향후 5년 내 인간의 삶을 바꿔줄 IBM 선정 5대 혁신 기술
인공지능(AI)은 앞으로 5년 내에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말과 글만으로 정신건강을 진단하고, 안갯속에서도 전방의 물체를 분석해 시야를 확보하는 신기술 등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IBM은 연례보고서 ‘IBM 5 in 5’를 통해 향후 5년 내에 인간이 일하고 생활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신기술들을 선정해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시장과 사회 트렌드, 전 세계 IBM연구소에서 개발된 새로운 기술들을 토대로 작성됐다. IBM이 선정한 5가지 미래 신기술들을 소개한다.

- 말을 분석해 정신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인공지능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의 말과 글은 향후 5년 내에 정신적, 신체적 건강의 지표로 사용된다. 시스템이 사람의 말과 글을 분석해 패턴을 발견하면, 이 패턴이 초기 단계의 정신 및 신경계 질환을 알려주는 신호를 보내준다. 이를 통하면 의사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질환을 예측하고 감시하고 추적할 수 있다. IBM 과학자들은 현재 정신증, 조현병, 우울증 등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감시할 수 있는 머신 러닝 기법과 정신과 인터뷰 녹취록, 음성 자료를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약 300 단어만으로도 정신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 하이퍼이미징(Hyperimaging)과 인공지능을 통한 시각적 능력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전자파 대역을 분석할 수 있는 ‘하이퍼이미징’ 기술이 인공지능과 결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운전자와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도로와 교통 상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자동차가 안개나 빗속에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빙판과 같은 위험하고 잘 보이지 않는 도로 상태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전방에 사물이 있는지, 거리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줄 수도 있다. 인지 컴퓨팅 기술은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방의 사물이 쓰레기통인지, 도로를 건너는 사슴인지, 아니면 타이어 펑크를 초래할 수 있는 도로 구덩이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 매크로스코프(Macroscope)를 통한 지구 복잡성 이해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정보를 정리하는 ‘매크로스코프’가 지구 기후 등에 대한 이해를 돕게 된다. 매크로스코프는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하고 분석해 의미를 찾아내주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기후, 토양 상태, 수위 및 관개 등에 대한 데이터를 종합하고 정리해 올바른 작물과 적절한 파종 위치를 선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귀중한 물을 절약하면서도 최적의 생산량을 뽑아낼 수 있다.

- 메디컬 랩 온어칩((Medical labs on a chip)을 이용한 나노 단위 질병 추적
‘메디컬 랩 온어칩’은 나노 단위로 질병을 추적하는 건강 조사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체액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단서를 추적해 의사의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 즉시 알려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목표는 생화학 연구소에서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질병 분석의 모든 공정을 단일 실리콘 칩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 환경 오염을 감지하는 스마트 센서들
우리는 앞으로 5년 내에 천연가스 추출 유정과 창고 시설, 급유관의 보이지 않는 누출을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게 된다. 무선으로 클라우드에 연결된 IoT 센서망을 통해 천연자원 기반 시설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몇 분 내에 가스나 기름 누출을 발견해 오염 예방은 물론,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줄일 수 있게 된다. IBM 리서치의 과학·기술 담당 부사장인 다리오 길은 “과학계에는 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장비를 개발해온 훌륭한 전통이 있다. 예를 들어, 현미경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초소형 피사체를 볼 수 있게 했고, 온도계는 지구와 인체의 온도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며 “IBM은 인공지능과 나노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향후 5년 내에 우리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복잡한 시스템을 볼 수 있는 과학 기기를 발명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한국IBM
IBM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IBM 스마트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IBM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IBM은 ‘엣카르타’라는 한국 스타트업을 선정해 미국으로 보낸 바 있다. 엣카르타는 자체 개발한 스캐닝 기기를 이용해 부동산 내부를 VR 상의 가상환경으로 제작하는 부동산 중개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이다. 한국IBM은 엣카르타가 3D 모델링 데이터 관리·배포에 IBM 클라우드인 ‘블루믹스(Bluemix)’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을 해주었다. IBM과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LAUNCH’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IBM 스마트캠프는 전 세계에서 선발된 우수 스타트업들이 유명 투자자와 비즈니스 리더들로부터 투자와 멘토링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뉴욕, LA, 도쿄, 두바이, 서울, 암스테르담, 파리, 홍콩 등 전 세계 주요 20여 개 도시에서 지역 선발전을 거쳐 각 도시 대표 두 팀을 선발한 뒤, 40여 개 스타트업이 다시 치열한 경쟁을 치러 준결승 팀이 선정된다. 준결승전에 오른 10개 팀은 ‘LAUNCH 페스티벌’에 참가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와 함께 LAUNCH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 참가해 고객 유치, 세일즈 팀 구성, 사업 개발에 관한 컨설팅도 받게 된다. 이 중 온라인 선발을 거쳐 오르는 최종 3팀은 LAUNCH 페스티벌에 참여한 500여 투자자 앞에서 사업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최종 선발된 한 팀은 투자금 2만 5,000달러를 받는다.

준결승까지 오른 엣카르타는 안타깝게도 3위 안에 들지는 못했다. 엣카르타는 국내 언론을 통해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들과 투자자들에게 비즈니스 멘토링을 받고, IBM 개발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밝혔다. 장화진 한국IBM 사장은 “IBM 스마트캠프 행사에 처음 참가한 우리나라에서 준결승 진출 팀이 나와 기쁘다”며 “한국IBM은 앞으로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국내 스타트업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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