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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반도체에 올인하다

  • 기사입력 2017.10.13 02:57
  • 최종수정 2018.09.06 17:48
  • 기자명 Aaron Pressman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 Advanced Micro Devices(AMD)는 지난 10년 동안 혁신 기업에서 낙오자로 전락했다. CEO 리사 수 Lisa Su가 지금 부활을 위해 과감한 기술적 진보를 꾀하고 있다.
 

경쟁본능 : AMD의 오스틴 본사 내 연구소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리사 수. 반대편 사진: AMD의 고성능 CPU 라이젠을 확대한 모습. 사진=US 포춘

MD 오스틴 Austin 캠퍼스 4층 건물에 있는 리사 수의 사무실에는 넓은 창이 있어 본사 전경과 신형 반도체를 테스트하는 실험실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지난해 봄 자주 창 밖을 내다보며 문자, 메시지 앱, 전화로 눈 앞의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제플린 Zeppelin의 완성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때였다.

제플린은 AMD가 개발 중인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코드네임이었다. 개인용 컴퓨터와 기업 서버에서 모두 구동 가능하도록 설계된 이 제품에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공학박사인 수는 2014년 CEO에 취임했다. 당시 AMD의 매출은 폭락하고 있었다. 제플린은 AMD의 자구 노력이 내놓은 첫 결과물이었다. 까다로운 게이머부터 인공지능·머신러닝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IT기업까지, 고성능 컴퓨팅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기초부터 제품을 재설계했다. 제플린이 성공한다면 몇 년간의 적자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넘어 인텔과 엔비디아 Nvidia 같은 경쟁사의 그림자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제플린은 오스틴에 당도하자마자 재앙을 불러왔다.

시험을 감독한 루이스 카스트로 Louis Castro는 라이젠 Ryzen이라 명명된 제플린 프로젝트 첫 제품의 검사에 엔지니어 80명을 투입했다. 카스트로는 2016년 4월 검사가 시작되기 전날 밤 제플린 설계팀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설계 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미처 잡지 못한 결함이 나타나 오스틴으로 배송 중인 라이젠이 컴퓨터 부팅조차 불가능한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제플린의 출시 일정은 몇 주, 심하면 몇 달이나 지연될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수는 시차만 10시간, 거리는 약 1만 2,900km 떨어진 인도에 출장 중이었다. 카스트로는 “내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이 정도로 큰 사건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리에 앉아 도대체 어쩌면 좋을지 혼자 고민을 했다.”

제플린 담당 엔지니어 리 러스크 Lee Rusk는 AMD의 파운드리 *역주: 반도체 제조 전담 위탁업체 에 연락해 당장 생산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최고기술책임자(CTO) 마크 페이퍼매스터 Mark Papermaster가 CEO에게 이 나쁜 소식을 전했다. 긴급한 대화였지만, 두 사람은 모두 침착했다. 소식을 들은 수는 시험 일정이 늦어져선 안 된다고 즉각적인 결단을 내렸다.

수의 표현처럼, 그 때 AMD 담당자들은 재빨리 ‘아폴로 13호 모드 *역주: 산소탱크 폭발에도 불구하고 승무원 전원이 무사 귀환한 위기 대처의 모범 사례’ 로 들어갔다. 즉시 시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를 4개 조로 나눠 결함 해결을 위한 브레인스토밍에 돌입했다. 오스틴으로 돌아온 수는 실험실로 직행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녀는 “실패는 선택지에 없다”는 점을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물건이다. 5센트 동전만한 라이젠 프로세서 1개 안에 5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100층으로 쌓여 있다. 카스트로의 팀이 찾아낸 결함은 전체 회로의 0.01% 이하에 영향을 미쳤다. 만약 결함이 제품 아래쪽 깊은 곳에 있다면, 수리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희망적 소식이 들려왔다. 문제의 결함은 한 달 내에 파운드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카스트로의 팀은 그 한 달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결함을 피해 시험을 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AMD에게 얼마나 승리와 반전이 절실한지는 과장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난 10년간 AMD는 기본 사양 제품을 출시하고, 1~2년 주기로 제품을 소폭업그레이드하면서, 경쟁사보다 싼 가격을 제시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사 용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IT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2007~2016년 동안 PC용 CPU 시장에서 AMD의 시장점유율은 23%에서 10% 이하로, 서버용 프로세서의 점유율은 1% 미만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체 PC시장은 그 누구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축소됐다. 그 원인인 모바일 혁명에서 AMD는 대체로 소외되어 있었다. 회사는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2015년 매출도 최고점을 찍었던 2011년 대비 39%나 감소한 40억 달러 미만으로 하락한 상황이었다.

AMD의 악재는 실리콘밸리에게도 손해라고 할 수 있다. AMD는 반도체 업계의 무한 경쟁에서 늘 선두에 한참 뒤졌지만, 업계 최초로 1GHz급 CPU와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등 수많은 혁신을 일궈내기도 했다. 덕분에 컴퓨터 연산처리 능력이 필수적인 수많은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아이디어 흐름 증대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PC와 서버업계의 베테랑인 휼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의 CEO 메그 휘트먼 Meg Whitman은 “내 경험상 업계 내 경쟁은 반드시 혁신을 가져온다”고 역설했다. 그는 “반도체업계 전체를 놓고 볼 때, 생태계가 넓은 건 대체로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수의 존재 덕분에, 최근 AMD의 멸종 확률은 다소 낮아진 듯하다. 그녀의 전략은 우수한 슈퍼컴퓨터급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과 엔비디아를 추월할 수 있도록 급진적인 제품 재설계 작업을 하는 것이다. 동시연산능력과 컴퓨터 내부에 저장된 데이터 접근속도가 뛰어난 슈퍼컴퓨터급 프로세서 등이 이 같은 제품군에 해당된다. 그녀는 그와 동시에 PC 중심인 사업구조를 개편해 3대 비디오게임 콘솔업체(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닌텐도)에 부품을 공급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중국 업체와 서버용 CPU 설계 사용허가 계약을 맺어 재무제표를 개선하기도 했다. 수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엔지니어로서의 경력, IBM에서 10년 넘게 쌓아온 인맥, 애플에서 데려온 훌륭한 설계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라이젠은 올 3월 출시됐다. 초기 평은 우수하다. 성능은 ‘기존 제품 대비 속도가 40% 향상됐다’는 AMD의 자체 홍보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또, 인텔 CPU와 비슷한 성능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데스크톱용 최고급 제품인 라이젠 7 1800X의 판매가는 인텔의 코어 i7-6900K(1,089달러)의 절반도 안되는 499달러다. 투자자들도 만족하고 있다. 2016년 초 2달러를 하회하던 AMD의 주가는 현재 12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올 여름 신제품들도 추가될 예정이다: 다음 타자인 에픽 Epyc은 인텔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서버용 CPU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그 다음은 그래픽 처리장치(GPU)인 베가 Vega다. GPU는 게임 애호가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Alexa 같은 최첨단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구동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GE 같은 대기업의 ‘빅 데이터’ 흐름 분석에도 최적의 도구다. PC 시장의 계속되는 침체에도 GPU 수요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베가의 성능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애플은 6월 출시한 매끈한 검은색 PC인 신제품 아이맥 프로에 베가를 탑재했다.

그러나 신제품 성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기는 이르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 Bernstein Research의 베테랑 반도체산업 전문가 스테이시 래스건 Stacy Rasgon은 “수의 전략이 적절하고 재무제표도 개선됐지만, 아직 AMD의 부활을 선언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18개월 전만 해도 파산 기로에 놓였던 회사임을 고려하면, 수는 정말 잘 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을 말하기에는 AMD의 과거가 마음에 걸린다.” 수의 임무 중엔 이런 비관론에 맞서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AMD의 과거는 훨씬 더 큰 경쟁사인 인텔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두 회사 모두 반도체 업계 초기업체인 페어차일드 Fairchild의 임원 및 엔지니어가 설립했다. 로버트 노이스 Robert Noyce, 고든 무어 Gordon Moore, 앤디 그로브 Andy Grove가 1968년 페어차일드에서 나와 인텔을 창업했다. AMD는 그 1년 후 탄생했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South Side에서 온, 터프가이를 자처하는 마케팅 전문가 제리 샌더스 Jerry Sanders가 주축이었다. AMD는 80년대 승승장구했다. IBM이 개인용 PC 신제품을 인텔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위해 AMD를 제2의 공식 CPU 협력업체로 선정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AMD는 현재도 주요 제조사 중 유일하게 인텔의 x86 아키텍처와 호환 가능한 프로세서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PC 네 대 중 한 대 꼴로 자사 CPU가 탑재됐던 2000년대 중반의 최전성기에도, AMD는 인텔에 한참 뒤쳐진 2위였다.
 

제플린의 주역들 : 수가 연구소에서 AMD 제플린 프로젝트를 담당한 루이스 카스트로(라이젠 티셔츠 차림), 리 러스크(폴로셔츠) 등 엔지니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US 포춘

AMD는 샌더스와 그 후임인 엑토르 데 헤수스 루이스 Hector de Jesus Ruiz가 경영을 맡았던 1990~200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K6 등 속도와 혁신성을 겸비한 제품 덕분에 인텔의 ‘짝퉁’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AMD 주가가 2006년 42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다 같은 해 루이스가 GPU 제조사 ATI를 54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ATI의 기술은 AMD가 희망했던 상승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인수 이후 거액의 채무와 인수합병 상각이 동시에 나타면서 수 년간 적자가 발생했다. 2008~2011년 동안 AMD는 CEO를 4번이나 교체했다.

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CEO에 선임됐다. 타이완 태생인 수는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 시에 정착했다. 부모는 딸이 피아노 연주자, 의사, 엔지니어 가운데 하나가 되길 희망했다. 툭하면 남동생의 장난감 전기차를 분해해 재조립하던 소녀는 그 중 세 번째 길에 이끌렸다. 수는 명문고인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MIT에 진학했다. 전기공학과에 입학하면서 반도체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다. 이후 수는 같은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반도체 제조사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exas Instruments에서 잠시 경력을 쌓은 그녀는 IBM으로 이직했다. 10년이 넘게 일하며 반도체 처리 속도 향상과 비용 절감에 매진했다. 중앙처리장치부터 오리지널 PC까지 모든 분야에 관여했던 IBM의 전설 니컬러스 도노프리오 Nicholas Donofrio가 그녀의 멘토였다. 도노프리오는 신용카드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American Express에서 IBM의 신임 CEO로 이직한 루 거스트너 Lou Gerstner의 특별기술보좌역으로 그녀를 추천했다. 비전문가인 거스트너가 의사결정을 할 때 필요한 기술적 지식을 조언하고, 업계의 최신 기술 동향을 제공하

는 자리였다. 수는 당시에 대해 “대기업 CEO의 사고 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거스트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문제의 신기술이 실제 소비자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따져 선택지를 줄이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수는 경영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진 가도를 달리면서 IBM에선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성별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운이 좋아 성차별적 관념에 사로잡힌 상사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던 2007년, 프리스케일 반도체(Freescale Semiconductor)가 수에게 최고기술책임자 직을 제안했다. 모토롤라에서 분사한 이 회사는 달착륙선 아폴로호용 반도체까지 만들었지만, 당시 대대적 개혁이 필요로 하고 있었다. 수는 그 제안을 승낙하고 오스틴으로 이주했다. 그녀는 이후 프리스케일의 네트워크 프로세서 사업부(10억 달러 규모)를 이끌었고, 2011년에는 기업공개 준비에도 참여했다.

당시 IBM에서 은퇴한 도노프리오는 AMD 이사회에서 회사의 회생을 돕고 있었다. 이사회 참석차 오스틴을 방문한 도노프리오는 수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장소는 고급 리조트 바턴 크리크 Barton Creek였다. 두 사람은 수의 이직이 서로를 언짢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걱정을 했다. 도노프리오는 긴장을 풀리 위해 카베르네 종 포도로 만든 고가의 캘리포니아 와인 샤퍼 힐사이드 셀렉트 Shafer Hillside Select를 주문했다. 그들은 와인을 마시며 서운한 마음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수가 IBM을 떠난 이유를 기억해낸 도노프리오는 준비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AMD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훌륭한 기술 인력과 고유 지적재산권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그는 수에게 “시기적으로 적절해. 자네한테 딱 맞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2년 AMD로 자리를 옮겼고, 2년 후 CEO로 승진했다.

그 무렵 AMD에는 프로세서 제품군을 재창조할 수 있는 드림팀이 완성되어 있었다. 도노프리오는 마크 페이퍼매스터 현 CTO를 영입했다. IBM에서 오래 일한 그는 아이폰용 프로세서 개발을 위해 스티브 잡스가 직접 영입했던 인물이다. AMD에 온 페이퍼매스터는 다른 유명 개발자 영입을 지원했다. 2013년 합류한 라자 코두리 Raja Koduri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픽카드 부문의 선도자로 폭 넓은 명성을 얻은 코두리는 당시 애플에서 고해상도 레티나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코두리의 가족과 친구들은 당시 정점에 있던 애플을 떠나 고전 중이던 AMD로 옮기겠다는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중년의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두리는 반도체업계 혁신의 중심이 스마트폰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아이폰 액정 화면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 물건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기보단 늘 함께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기 담긴 정보에서 잠시도 멀어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 수단은 가상현실이나 AI를 활용한 ‘디지털 비서’일 수도, 그가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조합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성능 연산 능력과 새로운 프로세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임은 확실했다. 절박하게 부활을 꿈꾸는 AMD라면 그런 물건을 백지에서 부터 새로 개발할 수 있었다. 코두리는 “잃을 게 없다는 태도로 접근하면 꽤 흥미로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잃을 게 없다’는 바로 그 정신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AMD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7% 성장한 42억 달러를 기록했다. AMD는 올 연말까지 그래픽 부문의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2015년 수는 코두리가 지휘하는 AMD의 그래픽 부문을 래디언 테크놀로지 그룹 Radeon Technology Group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범시켰다. 이후 래디언의 직원 수는 60% 늘어 지금은 사내 최다인 3,200명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은 AMD의 PC용 CPU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래픽 프로세서도 주력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게 수의 설명이다.

베가의 여름 출시와 함께 이 전략은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있다. (수와 동일한 타이완계 미국인 엔지니어) 젠슨 황 Jensen Huang CEO가 이끄는 엔비디아는 그래픽, 특히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다. 엔비디아의 CUDA 플랫폼은 빅데이터 분석 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GPU 컴퓨팅”이라 부르는 이 시장은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래스건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5억 달러에도 못 미쳤던 이 시장은 2020년까지 9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AMD는 CUDA를 따라잡기 위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AMD 경영진도 인정하듯, 아직 갈 길이 매우 멀다.

 

한편, 인텔은 PC 및 서버 시장에서의 경쟁을 접을 뜻이 전혀 없다.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Brian Krzanich CEO는 데이터 센터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5월, 인텔은 데스크톱용 고급칩인 Core i9 시리즈를 출시했다. 인텔 CPU 사업부 수장으로 최근 취임한 그레그 브라이언트 Greg Bryant는 “이 분야에 박차를 가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말했다.

메그 휘트먼은 개인적으로 AMD가 일정 규모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휘트먼과 수는 포춘 500대 기업 CEO에 오른 몇 안되는 여성이다(AMD는 매출 부진으로 2015년부터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수는 CEO의 자세에 대해 휘트먼에게 초반부터 조언을 구했다. 휘트먼은 휼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의 핵심인 서버 사업이 AMD의 에픽 프로세서 구매로 큰 혜택을 볼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휘트먼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한 일을 수는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 후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나 비결은 단 한가지다. 수는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을 했다.”

수는 이런 성공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외를 방문하고 있다. 지난 6월 어느 맑은 날, 그녀는 오랜만에 보스턴에서 ‘잠재 고객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녀의 모교 MIT가 박사 학위를 딴 지 약 25년 만에 그녀를 초청해 약 500명의 박사 학위 수여자 앞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가졌다. 애플의 팀 쿡 CEO(학부는 오번 대학교, 대학원은 듀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는 다음날 전체 졸업식에서 축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박사학위 수여식에 초청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수였다.

대부분의 CEO는 축사 원고를 남에게 맡기지만, 수는 직접 연설문을 썼다. 그녀는 졸업생들에게 큰 꿈을 꾸고, 직접 행운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라고 주문했다. 그 연설에선 경쟁을 즐기는 그녀의 성격도 드러났다. “열심히 노력해서 하버드 MBA 졸업생이 MIT 박사 밑에서 일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연설을 마치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연설이 끝난 후, 수는 마치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렸다. 졸업생들이 앞다퉈 찾아와 셀카 촬영을 요청했고, 교수들도 반도체 설계와 무어의 법칙 *역주: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 등에 대해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

 

사진=US 포춘
리더십을 대물림하다 : IBM CEO 루 거스트너(위)와 함께한 수(2000년경). 아래쪽 사진은 지난 6월 MIT 박사과정 졸업식에 참석한 수. 사진=US 포춘

수는 셀카 요청에 기꺼이 응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눈 후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중식당으로 향했다. 학생 시절 단골집이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은 그녀는 메뉴판에서 가장 매운 음식 몇 가지를 주문했다.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수는 조금 전 연설의 의도를 설명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전쟁을 치르면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도 자기가 싸우고 싶은 전장을 선택한다면, 그 곳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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