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미국 하버드대의 골딘(Claudia Goldin) 교수와 카츠(Lawrence F. Katz) 교수는 2008년 ‘교육과 기술의 경주: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교육이 산업기술의 발전을 선도하는 시기에는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어 안정과 번영이 이루어졌다.
반대로 교육이 산업기술의 발전보다 뒤쳐지는 시기에는 소득격차가 커지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어 사회적 불안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골딘과 카츠는 ‘디지털 혁명’이 진행되는 현재가 바로 그렇다고 진단했다. 즉 산업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기업은 성장하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격차로 인해 사회가 병들어간다. 우리 사회가 교육의 질적인 변화 및 발전을 이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도 저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에서 “불평등의 심화를 피하려면 교육제도가 새로운 유형의 교육과 그 교육 결과에 따른 새로운 기능들을 빠른 속도로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 교육의 중요성 더 커져
코로나19 팬데믹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근간이 되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메타버스, 사물인터넷(IoT) 기술들과 융합할 수 있는 에듀테크(EdTech)를 적극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하게 교육에 기술을 접목하는 게 아니라, 교육에 선도적인 기술을 결합하지 않고는 사회·경제적으로 필요한 교육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이러한 위기감으로 인해 유치원, 초·중등, 직업, 기업, 실버, 평생학습 등 교육의 전 분야에 걸쳐 에듀테크의 도입이 빨라지고 있다.
에듀테크의 도입은 ‘기술만 적용한다’라는 뜻이 아니며 기술 도입에 따른 시스템 변화와 교육 전체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해 학습 환경을 완전히 새로운 기반 위에 놓이게 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새로운 교육 시스템 및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는 ‘왜 에듀테크인가?’, ‘에듀테크의 도입이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구체적으로 지금 필요한 것을 실행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에듀테크 도입, 교육 시스템 및 생태계 변화를 의미
미국의 인재개발협회(ATD)은 ‘70:20:10 학습개발 모델’을 검증했는데 학습의 70%는 업무경험에서, 20%는 컨설팅이나 멘토링을 통해, 10%만이 교실수업과 같은 전통적인 정규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발표했다. 정규 교육 과정이 아닌 업무 경험이나 멘토링을 통해 비정규 학습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정형 학습에서는 작은 단위(small learning unit), 짧은 기간(short-term), 한 번에 소화 가능한(digestible) 학습 콘텐츠와 액티비티를 제공하는 마이크로러닝(Micro-Learning)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 기반의 교육 활성화 필요… 학위, 자격증 취득 제도적 개선이 우선돼야
디지털 기반의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이 같은 비정규적인 학습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같이 발전하고 있다.
마이크로러닝은 단순하게 짧고, 단편적인 지식의 전달이나 학습과정을 지원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기 완결성을 갖춘다는 것이 중요하고, 나아가서 이런 학습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그에 따른 인증제도가 활발해진다. 단기교육과정 인증제도(Nano Degree)를 제공하는 온라인 공개 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 MOOC) 서비스나 구글의 ‘Grow with Google’이 가장 대표적이다.
유명 대학의 강좌를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는 MOOC플랫폼인 코세라(Coursera)가 올해 3월 상장하면서 시가총액은 7조원에 이르렀고, 유데미(Udemy)가 상장 준비에 들어가면서 한국에서도 기존의 한국형온라인공개강좌(K-MOOC)를 재검토하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한국 대학을 중심으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이러한 요구는 해외에서 기업들 중심으로 디지털 러닝 뱃지(badge) 발급 등 단기교육과정인증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인증제도는 향후에 진학, 취업, 이직 등에 실질적이고 강력한 자격증명의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이나 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학위나 자격증 취득 과정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수요와 용도가 활성화되면 제도적 지원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투자위험도가 커서 투자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 개선을 선행해 물꼬를 터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번들링(unbundling: 이용자에게 일괄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부분적으로 분해해서 제공하는 형태)은 비즈니스 전략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것은 플랫폼 서비스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학교와 교육에서도 언번들링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하버드대학이 다양하고 포괄적인 언번들링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버드대학은 식당, 물품 배달과 같은 비교육 분야 뿐만 아니라 입학, 도서관, 연구나 강의의 일부를 외부에 맡기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아웃소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점은 강점을 지닌 기관이나 기업에 특정 영역을 맡김으로써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급식이나 대학입시전형 온라인 접수와 같은 업무들이 그러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중앙집중식 서비스 체제에서 분산형 서비스 체제로의 전환이다.
기존에 진행되던 비학습적 분야뿐 아니라 학습과 관련된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디지털 기반의 학습 환경에서는 언번들링 방식이 훨씬 간편하고, 효과적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역시 학습과정에 이런 방식이 도입되고 개발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본다면 유럽이나 북미 등에 비해 한국의 교육과 관련된 제도들은 경직도가 강하다. 이러한 경직도를 완화해 유연성을 높이는 것만이 미래교육의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K-에듀 통합플랫폼 구축 전략에 대한 시사점
초·중·고 학교 교육현장에 에듀테크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현재 교육부가 ‘K-에듀 통합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교사·학생이 민·관 교육 자료부터 수업을 지원하는 각종 에듀테크, 인공지능 맞춤형 학습 지원 서비스까지 한 번에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 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까지 모두 연계돼 있어 교사는 로그인 한 번으로 수업과 학사관리, 향후 교육자료 과금까지 모두 처리할 수 있다.
K-에듀 통합플랫폼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육 활동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해 교육 자원을 집중시킨 플랫폼이다.
한국형뉴딜사업인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일환으로 추진하면서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 중이며, 동시에 ISP 수립 작업을 해왔다.
K-에듀 통합플랫폼 구축 사업은 이해관계자들이 사용자(학교, 학생)-공급자(에듀테크 산업) 생태계 실현을 전제로 한 미래교육 대응이라는 비전, 목적,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강하다.
최근 발표된 ISP 결과물은 원래 취지와 동떨어진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공공과 민간 간에 크고 작은 쟁점에 대한 토론과 의견들을 거쳐 기존 정부주도의 중앙집중식 공급 계획수립에서 일정한 변화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구축방법론에 대한 쟁점도 선명해졌다. 핵심은 통합플랫폼은 ‘중앙집중식 물리적 학습운영시스템인가?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개방형 운영체계인가?’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장기적으로는 후자의 방법으로 갈 것이다. 지금의 e학습터를 아무리 발전시켜도, 중앙집중식 단일 시스템 기반의 LMS 서비스를 전국 학교에 제공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교육이 추구하는 LXP와 같은 서비스의 적용을 통한 학습과정의 다양성을 확보나 메타버스 LMS와 같은 새로운 기술 도입의 역동성과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현 단계에서 물리적인 시스템이 아닌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즉, 개방적인 운영체계로서의 통합플랫폼은 기술적인 구현은 가능하나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시스템이어서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 과제일 것이다.
이에 대한 공공과 민간의 갑론을박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ISP의 후속 설계 사업인 ISMP에서는 이러한 개방적 생태계 관점이 보다 강도 있게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ISP 결과물에서 제시하는 ‘학습격차 해소를 위한 학습 분석 결과 제공 및 응용 서비스의 정부 제공을 통한 학생별 맞춤형 학습 실현’이라는 방식은 미래교육을 대비한 생태계 실현을 위한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데이터센터’ 및 ‘콘텐츠센터’의 구축을 통해 다양한 가명 처리된 비식별 데이터의 개방과 공공 콘텐츠의 개방을 추진하고, 민간은 공개된 데이터와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창의적인 학습 분석·맞춤형·지능형 도구들과 서비스들을 개발해 제공하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관점 전환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모든 교육 서비스의 플레이어로 등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앱, 잔여백신앱, 백신예약앱 등에서도 공공과 민간의 훌륭한 협력적 경험을 상기해보자.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3차 클라우드컴퓨팅 기본계획을 포함한 디지털뉴딜 2.0 확산 정책을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공공부문 민간 클라우드 우선 이용(Public Cloud First)’, ‘소프트웨어 산업의 SaaS 전환’, ‘데이터센터 확충’ 및 ‘규제 개선’ 정책이 골자이다. 공공 정보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6대 분야에 행정, 국방, 제조, 농업, 의료, 재난안전이 특정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교육은 빠져 있다.
K-에듀 통합플랫폼에 마이크로러닝, 오픈뱃지, 언번들링, LXP, 메타버스 LMS, 데이터 개방, 콘텐츠 개방, 사설 클라우드(Private Cloud)가 아닌 공공 클라우드(Public Cloud) 인프라 도입 등은 어려운가? 정부가 LMS를 직접 개발하여 중앙에서 일선 학교로 직접 배포해야 하는가?
교육 데이터 개방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직접 AI 서비스를 만들어서 일선 학교에 배포해야만 하는 것인가? 제도 때문인가, 정책적 판단의 문제인가?
산업계는 스페셜리스트로서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는 창의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지도록 제네럴리스트(Generalist)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에서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는 교육 분야의 미래를 위해 이해관계자들의 자문(自問)과 성찰(省察)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