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6월호에 실린 외고(外稿)입니다.>
▶메리츠 3사 주가가 급락했다. 전형적인 고배당주로 꼽히던 업체들이 배당성향을 줄이겠다고 공시한 데 따른 후폭풍이었다. 시장에선 의구심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Fortune Korea] ‘별도 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10% 수준 배당을 유지하고, 자사주 매입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방안을 실행할 예정.’
지난 5월 14일, 금요일 주식시장 마감 직후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이 똑같은 공시를 나란히 올렸다. 이 공시의 제목은 ‘중기 주주환원 정책’. 그런데 그 다음 거래일인 17일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15.56%, 메리츠증권은 13.83%, 메리츠화재는 16.78% 급락했다. 메리츠 3사가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일제히 내던진 것이다. 이 공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에 주가가 뚝떨어졌을까.
◆ 배당 축소 발표에 ‘실망 매물’ 쏟아져
메리츠가 발표한 계획의 핵심은 배당을 크게 줄이는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추진해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원래 메리츠 3사는 전형적인 ‘고배당주’였다.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의 비중을 배당성향이라고 부른다. 최근 3년 동안 메리츠금융지주의 평균 배당성향은 66.2%였고 메리츠증권은 38.4%, 메리츠화재는 35.0%에 달했다. 금융주 특성상 미래성장성보다는 두둑한 배당을 기대하고 돈을 넣은 투자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당성향을 10%로 깎겠다고 했으니 시장이 놀랄 수밖에 없다.
어지간해선 매도(sell) 의견을 내지 않는 국내 증권사들조차 비판적인 리포트를 쏟아냈다. KB증권은 주주환원 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이유를 들어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하향했다. 두 회사의 목표주가 역시 각각 16.7%, 20.9% 내린 4,000원과 1만 7,000원으로 조정했다. 증권사가 발간하는 리포트에서 동종업계 주식을 “팔라”고 권하는 일은 흔치 않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높은 배당수익률이 메리츠화재와 증권의 중요한 투자 포인트였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배당성향은 2018년 49.9%, 2019년 59.5%, 2020년 89.3%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메리츠화재는 35.2%, 34.9%, 34.8%였고 메리츠증권은 39.9%, 22.7%, 52.5%의 배당성향을 보였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주주환원 정책을 기반으로 높은 배당성향을 보여왔는데, 이를 10%로 축소하겠다는 것은 시장 트렌드와 차이가 있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 자사주 소각은 추상적, 배당 축소만 구체적
메리츠의 이번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인 게 사실이다. 꾸준히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이 전격적으로 배당 축소를 발표하는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주주환원 정책은 국내외 투자자들의 오랜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이번 방안이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자사주 매입·소각이 배당보다 주주가치 제고에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메리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적잖이 나오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주식 수가 줄면서 주당순이익(EPS) 등이 늘어 주식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는 기간에 적정한 매수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주가를 떠받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메리츠 3사가 배당금 규모보다 더 많거나 비슷한 규모로 자사주를 소각한다면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절세 효과를 노리는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배당을 받으면 배당소득세 15.4%를 내야 한다. 반면 자사주를 소각하면 지분율이 그만큼 올라가는데, 높아진 지분율만큼 주식을 팔아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문제는 배당성향 축소 계획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자사주 매입·소각은 규모와 시기에 대한 설명 없이 두루뭉술하게 언급됐다는 점이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적으로 배당 축소를 동반한 자사주 매입·소각은 주주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당분간 투자심리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들과의 ‘세심한 소통’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흐름과 맞물려 주주친화 경영을 강화하는 기업이 늘고 있고,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인 것은 맞다”면서도 “메리츠의 조치는 주주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다줄지가 아직 불확실하다”고 했다.
◆ 자기자본 확충 위한 포석인가
메리츠가 고배당 정책을 뜯어고친 배경을 두고 업계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최희문(증권), 김용범(화재), 존 리(자산운용) 등과 같이 적극적 성향을 지닌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 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보상 체계를 도입해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런 ‘공격 경영’ 과정에서 자본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뒤따라온 것도 사실이다. 메리츠증권과 화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분야의 고금리 대출을 많이 취급해 왔는데, 최근 금융당국은 부동산 PF의 부실 위험에 대한 밀착 관리에 들어갔다.
메리츠증권의 전신은 메리츠종금증권이다. 지난해 종합금융업 라이선스가 만료되면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이 회사는 세계 금융위기 직후만 해도 업계 20위권이었지만, 부동산 PF를 주된 수입원으로 삼아 거의 매년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면서 업계 5위권까지 올라섰다. 메리츠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IB) 부문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초대형 IB가 되려면 자기자본을 4조원 갖춰야 한다. 메리츠증권은 이 요건을 충족한 상태이긴 하지만 훨씬 넉넉하게 자본을 늘려두려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대비할 필요성도 있다. IFRS17는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핵심으로, 장부상 부채가 지금보다 불어나기 때문에 국내 보험사마다 비상이 걸린 상태다. 증권가 관계자는 “메리츠증권과 화재는 자기자본 확충을 위해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발행하면서 주주환원 후퇴 우려를 불렀다”며 “배당성향까지 대폭 축소해 주주정책의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그룹의 지배구조와 연관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 3월 말 기준 조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72.17%)이며, 화재와 증권의 지분을 각각 56.09%, 47.06%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의 자녀는 이들 3사에서 1% 미만의 소수 지분을 갖고 있다. 임희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소각을 거치면 궁극적으로 대주주 지분율 확대가 예상된다”며 “완전 자회사화에 대한 개연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메리츠 측은 이번 조치와 대주주 지분율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배당도 자사주 소각도 늘린 한국 기업들
메리츠의 결정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중 어떤 것이 투자자에게 더 이득이냐는 오랜 논쟁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국내에는 주주 친화적 행보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서는 기업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선 상장사는 111곳, 소각한 기업은 17곳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매입과 소각을 공시한 기업이 각각 45곳, 11곳으로 평년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해 19%에 불과했던 소각률(자사주 취득 대비 소각 규모)은 올해 223%로 급등했다.
국내 기업들의 배당성향 역시 해마다 상승하면서 지난해 48.9%까지 올라왔다. 과거 한국 증시는 ‘짠물 배당’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익을 주주와 나누는 데 인색하다는 평가 탓에 해외에서 한국 기업 주식이 저평가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에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동주의 투자가 확산하고 ESG 흐름을 타고 주주환원 정책에 신경 쓰는 기업이 늘면서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의 현금 배당 총액은 33조1,638억 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1년 전보다 60.3%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배당금은 13조1,243억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 넘게 늘었다. 2년 연속 배당한 법인은 495곳, 5년 연속 현금배당에 나선 기업은 415곳에 달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거세지는 배당 확대 요구에 대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기적으로는 주주 요구에 부응하는 조치지만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신산업 영역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대표 기업의 주식을 외국인이 대거 들고 있는 상황에선 배당 확대의 혜택을 외국인 투자자가 집중적으로 누린다는 지적도 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등은 배당을 꺼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배당할 재원으로 투자를 늘려 회사를 키우는 것이 주주를 위한 길”이란 주장을 폈다. 이익을 배당으로 소진하기보다 기업의 미래 먹거리에 재투자함으로써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진짜 주주친화적 경영’이라는 것이다.
◆ “고배당이 주주에 유익” VS “자사주 소각이 낫다”
실제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중에는 현금 배당을 아예 하지 않거나 매우 소극적으로 단행하는 사례가 꽤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은 창사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현금 배당을 하지 않았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가 가진 자원을 조금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쓰고자 했다”고 강조했고, 이런 정책을 지지하는 주주도 많았다. 애플은 잡스가 숨지고 팀쿡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넘겨받고 나서야 첫 배당을 시작했다. MS 역시 현금 배당에 인색했던 게이츠의 영향을 받아 배당성향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다. 배당은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속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 증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배당성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 배당수익률은 여전히 1%에 그쳐 영국(3.1%), 대만(2.7%), 독일(2.6%), 홍콩(2.4%), S&P500(1.6%), 일본(1.4%)에 비해 낮다”고 설명했다. 배당은 증시에 예상치 못한 조정이 오더라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보유할 강한 유인이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메리츠 3사 주가가 17일 급락 이후 소폭 반등 조짐을 보이긴 했지만 투자자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증권가에선 이들 기업의 주가가 상승동력을 되찾기 위해선 자사주 매입·소각 일정은 물론 미래 성장전략에 대한 구상을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업은 통상 ‘저성장 업종’으로 인식되는 만큼 시장의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혀놓고도 내부·외부 사정에 따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례도 많다”며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메리츠는 자사주 매입·소각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향후 공시를 통해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