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5월호에 실린 외고(外稿)입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먹어보기 전에는 어떤 맛 초콜릿인지 알 수 없듯이 인생에서도 끝까지 해보기 전에는 무슨 일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어” 영화 ‘포레스트 검프’ 명대사에 등장하는 초콜릿은 전 세계 사람들의 고단한 하루를 달콤하게 녹여주는 디저트다. 그리고 초콜릿을 만들려면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바로 카카오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카카오 시장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 김인오 매일경제신문 기자◀
[Fortune Korea] 최근 한 달 새 카카오 시장이 눈에 띄게 출렁였다. 2분기를 연 4월에는 런던 ICE 거래소 선물 시장에서 카카오값이 올해 기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첫 거래일인 1월 4일 카카오 선물(7월 인도분)은 1메트릭톤(mt)당 2,495달러(약 280만 원)였다가 3월 초 2,651달러로 올라 올해 최고 가격을 기록했는데, 불과 한 달여 만인 4월 중순에는 9.96% 떨어져 2,387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시카고 소재 RJO퓨처스의 피터 무세스 파생상품시장 전략가 겸 선물·옵션 트레이더는 “2021년 선물 시장에선 카카오 가격이 3,000달러 선으로 오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수요가 중요한 변수이고 극심한 변동장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물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은 시장이 카카오 공급에 비해 앞으로 수요가 더 적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선물 시장은 물건이 직접 거래되는 ‘현물 시장’과 달리 거래자들이 미래 특정 시점의 가격을 예상해 매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카카오 선물 7월 인도분의 경우 거래가 4~6월에 이뤄져도 실제 물건은 7월에 최종 구매자에게 인도되는 식이다.
카카오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는 수요·공급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발 코로나19 대유행 여파가 핵심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진 지난해 이후 카페와 글로벌 호텔 체인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디저트’ 초콜릿과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수요가 빠르게 줄었다. 일례로 벨기에 유명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는 북미 지역에서 모든 카페형 매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를 보면 특히 유럽 지역 타격이 두드러졌다. 아시아에서는 카카오 가루(분쇄 카카오) 가공량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2% 줄어든 21만7,546mt를 기록했다. 감소율 예상치(-9.0%)보다는 나은 수준이다. 북미지역은 오히려 카카오 가공 규모가 1년 전보다 7.0% 늘어나면서 분기별로는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공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2.5%)과 다른 움직임이다. 반면 유럽은 사정이 좋지 않았다. 유럽카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유럽 카카오 가루 가공 규모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1% 떨어진 34만4,151mt를 기록했다. 분기 기준으로 4년 만에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1분기부터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 식당·카페·관광업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은 있었다. 초콜릿 가공 부문 열두 개 주요 기업이 공동 설립한 수출협회 GEPEX는 “2021년 2월 코코아 분쇄 규모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8% 늘어난 4만5,087mt로 집계됐다”고 3월 11일 밝혔는데, 이를 전후해 선물 시장에서는 카카오 가격이 2,500~2,600달러를 오가며 비교적 높은 시세를 형성했다.
GEPEX는 카카오 분쇄 주요 기업들이 설립한 협회다. 스위스 바리칼레보를 비롯해 싱가포르 올람 인터내셔널, 미국 카길 등 업계 ‘6대 공룡 기업’이 속해 있다.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서는 카카오 콩을 수확한 후 볶아서 분쇄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런데 초콜릿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은 잠깐뿐이었다.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에 변종 바이러스가 퍼져 ‘제3차 유행’이 시작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보급·확보 작업이 기대처럼 빠르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유럽 주요국이 지난 3월 이후 하나둘 또다시 봉쇄(락다운) 강화 조치에 들어갔다.
◆ ‘국제코코아기구’는 OPEC 같은 카르텔이 될 수 있을까?
코로나19에 따른 전 세계 락다운 여파로 시세가 급락한 건 카카오뿐만이 아니다. 세계 경제를 흐르는 ‘검은 피’ 원유는 지난해 마이너스 유가 사태를 맞기도 했다. 당시 원유 수요 급감에 놀란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비회원 주요 산유국 협의체)은 유가 관리를 위해 원유 생산량 조절에 들어간 바 있다. 카카오 시장은 어떨까.
카카오 시장에도 OPEC 같은 카르텔이 있다. 지난해 말 출범한 ‘코펙(COPEC)’이다.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 7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원유 시장의 OPEC처럼 카카오 시장에서도 코코아 생산국을 모은 코펙을 결성했다. OPEC과 비슷한 카르텔을 통해 가격 협상력을 높여 카카오 농가의 고질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두 국가는 농장 노동자 임금 보호를 위해 2020~2021년 거래되는 카카오 가격에 1mt당 400달러씩 고정적으로 가격 프리미엄(웃돈·LID)을 붙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코트디부아르는 세계 1위 카카오 생산국이고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카카오가 전체 무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위 생산국인 가나에서는 카카오가 금·원유를 잇는 3대 수출 품목이다.
지난 2016년 3,000달러를 웃돌던 카카오 가격은 2017년 들어 2,000달러 선으로 떨어진 후 좀처럼 3,000달러 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약 400만 명에 해당하는 카카오 농가 80%가 하루 3달러 미만으로 간신히 생활하고 있다.
코펙은 출범 직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10월 실제로 새로운 가격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선물 시장이 북적이게 됐다. 그동안 초콜릿회사들은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카카오 생산지에서 현물 거래를 해왔다. 그런데 코펙 출범 이후 현물 가격에 웃돈이 붙기 시작하자 초콜릿 제조업체와 트레이드들이 별도 웃돈이 붙지 않은 선물 시장으로 발을 돌리기 시작했다. 코펙의 취지는 카카오 가격을 좀 더 공정하게 책정해 농민들을 고질적으로 괴롭혀온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지만, 현물에 웃돈이 붙자 현물시장 수요가 되려 선물시장으로 빠져나간 셈이었다. 작년 11월에는 카카오 선물 가격이 단기 급등하고 현물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특히 카카오 최대 구입자인 글로벌업체 허시초콜릿이 선물 시장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구체적인 구매 경로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시 측이 최근 미국·영국 선물시장에서 카카오를 대량 매수했다고 전했다. 그간 선물시장을 가격 변동 리스크 헤지용으로 활용한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허시가 선물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선 데 대해 프랑스 상품 트레이드업체 '석던'의 데릭 체임버스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허시의 판단은 똑똑하고 지극히 합법적”이라면서 “다른 초콜릿 기업들보다 경쟁적 우위를 점할 뿐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는 코펙의 LID(웃돈) 조치가 하필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무리한 조치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카카오 수요자인 초콜릿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급감한 상황이니, 원료를 생산·공급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다.
반면 코트디부아르는 초콜릿 업계가 카카오 농장들의 빈곤 문제를 외면한다는 점을 문제 삼으면서 대립하는 분위기다. 코트디부아르 규제 당국인 카페카카오위원회의 이브 코네 국장은 지난해 11월 세계카카오협회에 서한을 보내 “최대 초콜릿 제조업체 중 한 곳이 카카오 농장들의 생계를 위한 LID 가격 체제에 반대해 카카오를 거래소에서 사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는 웃돈을 얹어서라도 최저가격을 도입한 우리의 취지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코코아 농장 최저임금도 부인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J게인스컨설팅의 주디 게인스는 “코로나19 탓에 카카오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코트디부아르와 가나가 자신들의 가격체계를 유지하려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선물시장 가격이 최근 들어서는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유럽 락다운 여파로 수요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카카오 대풍작이 이뤄져 공급이 늘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농장마다 창고에 카카오 콩이 쌓여가고 있는데, 수확철인 4월을 지나면서 또 엄청난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재고가 쌓일수록 생산자들의 가격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NKC 아프리칸 이코노믹스의 코부스 드 하트 연구원은 “원유와 카카오는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땅속에 매장된 원유는 생산량을 조절하면 되지만 코코아는 농부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기 때문에 가격을 떠받치겠다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 카카오가 손안의 달콤한 초콜릿이 되기까지
카카오는 어떻게 초콜릿으로 만들어져 우리 곁으로 다가올까. ‘카카오 팟’으로 불리는 카카오 열매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크리올로(Criollo)와 포라스테로(Forastero), 트리니타리오(Trinitario)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크리올로는 쓴맛과 신맛이 적고 꽃향기와 건과류 향이 있어 고급 초콜릿 원료로 쓰이는 데, 다른 두 종에 비해 생산량이 적다. 포라스테로는 아프리카와 브라질,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생산된다. 비교적 재배하기 쉽고 생산성이 높아 전 세계 재배면적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크리올로종에 비해 향이 떨어지고 쓴맛과 신맛이 강해 다른 카카오 열매와 블랜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트리니타리오는 크리올로와 포라스테로가 섞인 종으로 크리올로의 풍부한 향과 포라스테로의 생산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카카오 열매는 두껍고 거친 껍질과 달고 끈끈한 펄프로 채워져 있다. 펄프 안에는 아몬드 모양의 씨앗이 30~50개 들어있다. 이 씨앗은 지방함량이 많아 코코아 버터로 활용한다. 코트디부아르나 가나, 나이지리아 등 생산지 농장에서 카카오 열매를 수확한 후 열매를 나무통에서 발효시키면 붉은빛에 독특한 향기를 내게 된다. 발효된 열매를 건조한 것을 카카오콩(카카오 빈)이라고 부른다.
잘 건조된 카카오콩은 초콜릿 가공 공장으로 향한다. 초콜렛 가공 공장에서는 카카오콩을 씻은 후 일단 굽는다(로스팅). 구운 카카오콩은 껍질을 벗긴 후 가루로 빻는데 이를 ‘코코아 매스’라고 한다. 코코아 매스는 초콜릿에 쓰인다. 코코아 매스를 압착하면 기름 성분인 코코아 버터와 코코아 파우더를 만들 수 있는데, 코코아 버터는 화장품에 쓰이기도 하고 코코아 파우더는 과자와 빵, 음료, 아이스크림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하 박스기사>===---
◇ 코코아ㆍ초콜릿의 유래
코코아와 초콜릿은 어디에서 온 이름일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멕시코 원주민들이 마시던 음료가 힌트다. 멕시코 아즈텍족은 카카오 열매인 카카와틀(cacahuatl)을 가루로 빻은 후 걸쭉하게 만든 음료를 초콜라틀(chocolatl)이라고 불렀다. 고고학자들은 카카오라는 명칭이 카카와틀에서, 초콜릿은 초콜라틀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보고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기원전 1800년~300여 년 번성한 올멕(Olmec) 문명 때 멕시코 걸프만에서 처음 재배돼 멕시코 아즈텍(Aztec)문명으로 이어졌다. 올멕 문명권인 멕시코 타바스코주에서는 매년 11월 초콜릿 축제가 열린다.
◇ 카카오와 코코아의 차이
카카오와 코코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카카오는 멕시코를 침략했던 스페인을 통해 16세기 초 유럽에 들어왔고, 17세기 중반 유럽 전 지역에 퍼지게 됐다. 코코아는 1828년에 네덜란드의 콘라드 반 호튼이 만들었다. 그는 카카오 콩에서 지방(코코아 버터)을 발라낸 후 물에 잘 녹는 코코아 가루를 만들었는데 이 가루가 인기를 끌면서 ‘코코아’라는 상표도 만들어졌다. 현재는 네슬레와 허시, 캐드버리가 코코아 음료·초콜릿으로 유명하지만 반호튼은 여전히 코코아의 대명사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