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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정년' 시대 시동건 일본…노령층 노동시장이 급변한다

  • 기사입력 2021.04.27 09:52
  • 기자명 김동환 박사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5월호에 실린 외고(外稿)입니다.>

▶근로자가 원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지난 4월 1일 일본에서 발효됐다. 저출산ㆍ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급감하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정부의 고육책이다. 한국의 현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이는 이 법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봤다. / 김동환 국가균형발전위 전문위원◀

이미지=셔터스톡
이미지=셔터스톡

[Fortune Korea] 2021년 4월 시행된 ‘개정고연령자고용안정법 改正高年齢者雇用安定法(일명 70세 취업법)’ 덕분에 장수 국가 일본의 근로자들은 사회생활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게 일자리가 없으니 죄악감에 시달리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외로워지고요. 취업박람회를 전전하던 7년 전, 어렵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부동산과 리모델링 사업을 전개하는 도쿄의 한 회사에 근무하는 와타나베 씨. 현재 나이 78세. 주택 등 시공 현장의 안전대책을 확인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주3일 출근이긴 하지만, 정규직원으로서 건설 현장 최전선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젊은 시절 와타나베 씨는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50대에 큰 질환에 시달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관둬야 했다고 한다. 자기 관리에 힘쓴 결과, 건강을 되찾으나 안타깝게도 회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옛 동료들과 새 회사를 꾸렸지만 이마저도 실패해 버렸다. 

"70대가 되어 충분히 연금도 받고,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집에만 있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우연히 알게 된 지금의 회사는 면접 당일 채용이 확정되었습니다. 너무 기쁘더라고요."

"연령만을 이유로 우수한 인재를 포기하는 게 과연 회사에게 득이 되는 일인가“

사실, 회사의 정년은 당시 70세로, 정년을 넘긴 와타나베 씨의 채용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면접 심사를 한 인사 담당 직원이 1급 건축사와 주택건설거래 국가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경험이 풍부하고 의욕이 넘치는 와타나베 씨를 높게 평가하였고, 이 상황을 회사 대표에게 보고하자 대표는 그 자리에서 채용을 지시했다고 한다. 

회사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와타나베 씨의 채용 이유를 그의 출중한 능력이라 평했다. 와타나베 씨의 채용을 확정하면서 회사의 정년제도도 폐지해 버렸다. 이후 와타나베 씨처럼 70세를 넘기고도 업무를 이어가는 사원이 늘고 있다. 회사의 정년 제도 폐지의 계기가 된 와타나베 씨의 채용. 그는 "100세까지 일하는 것이 목표"라며 해맑게 웃었다. 

◆ 반년마다 목표 성과 평가를 통해 급여 결정

물론 시니어(senior; 연장자/손윗사람)가 회사에서 이토록 환영받으며 입사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시니어가 일할 기회는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시니어가 중요한 노동인구로 기대를 받고 있는 인구사회적 요인, 그리고 4월1일 시행된 '70세 취업법'이라는 법적 요인 때문이다. 

'70세 취업법'은 기업에게 사원이 희망할 경우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전 법 내용은 65세까지 정년 연장, 재고용, 정년 폐지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의무화하고 있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65세로 정해진 정년이 70세까지 연장되었으며, 새롭게 다른 회사로의 재취업 지원, 업무위탁계약 체결, 창업 지원,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참가 지원 등 네 가지 대응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업들은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YKK그룹(도쿄 치요다구)은 정년제를 4월부터 아예 폐지했다. YKK 집행위원인 카메야마 인사부장은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해 왔지만, 연령만을 기준으로 자동적, 일률적으로 퇴직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격렬한 변화의 시대에는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며, 풍부한 경험을 가진 시니어는 다양한 인재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연령에 관계없이 회사가 요구하는 역할과 직무를 축으로 평가와 활용을 할 수 있는 회사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화학품과 정보시스템을 다루는 상사 미타니산업(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도 4월부터 65세를 상한으로 하던 정년퇴직을 사실상 폐지했다. 사원이 희망한다면 원칙적으로 무기한 근무가 가능하다. 65세 이후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이지만, 반년마다 목표 달성을 하게 되면 상여금도 상승하게 된다. 반대로 평가가 떨어지면 급여는 줄어들 수 있다. 자신의 실력을 반년마다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서, 회사가 요구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계약을 갱신할 수 없다. 

대형 건설기계 업체 코마츠(도쿄 미나토구)는 '선택정년제'를 올해 4월 도입했다. 일률적으로 60세였던 정년을 개정하여, 일반직일 경우 '60세 또는 65세', 관리직일 경우 '60세 또는 62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년 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재고용 사원에게는 부업도 허용한다. 

가전 판매 회사 노지마(요코하마시)는 작년 7월 65세 정년 후 재고용 계약을 '최장 80세'까지 연장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본사 사무직과 점포 판매원 등 사원 약 3,000명을 대상으로 한다. 사원이 원하면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애초에 아르바이트, 계약 사원을 포함해 정년인 65세를 넘긴 사원의 고용연장을 위해 애써왔는데, 그것이 정식 제도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 최고령 사원은 79세 여성 판매원이라고 한다. 

◆ 유연한 근무체계...학업과 부업도 병행 가능

후코쿠 생명은 작년 3월 인터넷을 통해 20~60대 일본인 남녀 1,25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몇 살까지 근무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70세 이상'이 18%, '65~69세'가 17%, '60~64세'가 24%였다. 60세를 넘겨서도 일하고 싶다는 사람은 60%에 가까웠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이라고 답한 비율 24%를 더하면 80%를 상회했다. 

손해보험 재팬(도쿄 신주쿠구)에서는 파견 사원이 된 70대 남성이 20대 여성 상사 지휘 하에 근무한다. 남성 사원은 현역 회사원 시절, 손해보험 재팬의 컴퓨터 시스템 개발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다. 70대 남성 사원은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연장자의 역할이다. 그렇게 하면 젊은 사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형성된다”고 했다. 여성 상사 역시 “지시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점은 없다. 벽이 생기지 않으면 업무는 원활하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손해보험 재팬은 약 2만 5,000명의 사원 중 60대 이상이 6%를 차지하는데, 2018년 4월부터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년은 60세이지만, 65세까지 '전문가(expert) 사원'으로서 현역 시절의 60~70% 정도 연봉으로 근무할 수 있다. 본인 희망에 따라 주3일 근무 혹은 1일 4시간 근무 등 유연한 근무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남성 사원은 주 4일 단축근무를 선택해 대학원을 다니면서 외부로부터 의뢰받은 기업연수 강사직을 부업으로 한다. 66세 이상일 경우, '행동 평가'와 '업무 평가'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근무할 수 있다. 실제 대상자는 상위 20% 정도의 우수한 사원에 한정된다. '나이 어린 상사'나 '나이 많은 부하'라는 연공서열의 틀에서 벗어난 상하관계가 생겨나지만, 사원 상호 간에 '-상'(일본어로 “-상さん”이라는 단어는 성이나 이름에 붙여 쓰는 호칭으로 상사에게도 쓸 수 있다. 한국어로는 –씨에 해당하지만 한국에서 상사에게 [-씨]라고 호칭하는 경우는 회사를 때려치울 상황이 아니고서는 본 적이 없다)이라 호칭하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위화감 없이 회사 내에 뿌리내리게 된다. 물론 상사였던 때의 의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면 스스로 회사를 나가기도 한다. 

대우 면에서도 배려가 있다. 다이와하우스공업(오사카시)은 2013년 '65세 정년제'를 도입하여 2015년에는 정년 후에도 연령 상한을 두지 않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재고용제도를 마련했다.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재고용제도는 원칙적으로 주4일 근무. 급여는 월 20만엔(한화 약 200 만원) 정도로 언뜻 보기에 낮지만, 60~65세의 '시니어 사원'은 회사의 연금 제도를 통해 현역 사원들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업적과 평가에 따른 상여금도 연 2회 지급된다. 

다이와하우스공업 키쿠오카 인사부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재고용제도는 도입 후 5년이 지난 지금, 전 사원의 50~70%에 해당하는 150여 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주택, 건설업계는 호흡이 긴 업무가 많고 기술자로서 갈고 닦은 경험과 기술이 결과로 이어집니다. 모든 업계가 우수 인재 확보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게 시니어 인재의 활용은 비용이 아닌, 중요한 투자입니다.”

업무 의욕을 높이는 것은 고민거리 중 하나다. 70세 취업법 시행에 맞춰 정년 연장 등을 검토 중인 대기업 한 인사담당자는 “스스로는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니어들이 많지만, 회사로서는 후진양성의 의미에서라도 관리직 양보를 강요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에서의 역할과 급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업무 의욕을 높일 것인가가 과제”라 털어놓았다. 

앞서 언급했던 손해보험 재팬은 시니어 커리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시니어가 활약하려면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손해보험 재팬은 '세컨드 커리어 지원 프로그램' 등의 연수를 통해 사원 자신이 어떻게 일하며 인생을 보낼 것인지 결정하게 한다. 시니어 사원도 현역 세대와 마찬가지로 목표를 세우고 평가하며, 평가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구조다. 시니어 역시 목표와 평가가 없다면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 국가자격증 소지자가 유리

일본 테이코쿠 데이터뱅크의 조사에서 나타난 70세 취업법에 대한 기업의 대응을 살펴보면, '70세까지의 고용제도 도입'이 25.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70세까지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제도의 도입'(6.9%), '정년제 폐지'(5.1%), '70세까지 정년 연장'(3.4%) 순이었다. '법 개정 이전에도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고 답한 비율도 16.4%에 달했다. 

단, 개정법은 어디까지나 '노력 의무'에 그치고 있다. 70세까지의 근로를 강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법 시행에 의해 기업은 지금까지의 정년 연장과 재고용 등 직접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로의 재취업 지원 등 70세 정년 시대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시니어가 원하는 업무를 계속 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개정법에 우호적인 직장이라 해도 원하는 회사, 원하는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되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존재하게 된다. 시니어 인재는 현역 사원 이상의 전투력을 갖추었는지 평가받아야 한다. 

채용이 많은 분야는 회계, 세무, 시공관리, 자동차 정비, 간호, 의료사무 등 명확한 기술이나 국가자격을 요하는 분야이다. 전문적 지식은 물론,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호기심과 의욕이 넘치며, 나이 어린 상사, 동료들과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겸허한 자세와 유연성도 요구된다. 

◆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빚어낸 궁여지책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조사에서 2020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년보다 30만 명 증가한 3,617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전체 인구의 28.7%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것이다. 1995년 일본의 시니어 비율이 14.6%였음을 감안하면 2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시니어 비율의 증가는 청장년 인구 감소를 의미이며, 경제활동인구의 축소를 뜻한다. 

일본의 총인구 감소는 2007년부터,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1999년부터 시작되었다. 총인구가 2006년까지는 증가했음에도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한 이유는 젊은 세대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생산 잠재력의 성장을 방해하고,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침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기도 한다. 

경제활동인구의 장기적 감소로 일본 기업들은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 위기 이전인 2018년에 일본이 완전고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건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더해 베이비붐 세대가 일제히 은퇴하면서 빚어진 일손 부족의 결과였을 뿐이다. '70세 취업법' 역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일손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장기침체와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 그러나 일본 경제에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다. 과연 '70세 취업법'은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일으켜 일본 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이 글의 필자 김동환 박사는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정책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책 전문가로,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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