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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중고거래시장 진출, 독이 될까 약이 될까?

  • 기사입력 2021.04.26 07:51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롯데가 중고나라 우회인수를 통해 중고거래 시장에 한 발을 내디뎠다. 수년간의 고민 끝에 내린 신중한 결정이다. 하지만 확신을 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 e커머스사업 부진에 빠진 롯데는 최근 다양한 시도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사진=롯데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 e커머스사업 부진에 빠진 롯데는 최근 다양한 시도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사진=롯데

[Fortune Korea] 유통사업 부진에 빠진 롯데가 중고나라 우회인수에 나섰다. 지난 3월 투자은행발 소식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롯데쇼핑을 투자 주체로 내세워 유진자산운용, NH투자증권, 오퍼스PE(기관투자형 사모펀드)와 공동으로 중고나라 지분 95%를 인수하는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거래금액 1,150억 원 가운데 롯데가 300억 원을 투자했다.

중고나라 인수는 지난해부터 추진됐다. 유진자산운용을 중심으로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s)로만 진행되던 이 거래는 인수 막판에 롯데가 전략적 투자자(SI·Strategic Investors)로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동 투자자 가운데 전략적 투자자는 롯데가 유일하다. 롯데는 나머지 재무적 투자자들의 지분을 인수할 권리(콜옵션)도 함께 가져갔다.

◆신동빈 회장의 아이디어

중고나라 인수 막차를 타긴 했지만, 롯데가 중고거래시장 진출을 저울질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롯데의 중고거래시장 진출 고민은 3년 전인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아이디어는 당시 영어의 몸이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한테서 나왔다. 10여 명 임원과의 면회자리에서 신 회장은 중고거래시장 진출 이야기를 꺼냈다. 같은 해 일본 중고거래앱 운영사인 메루카리 メルカリ가 기업공개를 통해 도쿄증시에 상장, 8조 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신 회장의 지시로 그룹차원에서 즉시 검토가 진행됐지만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시장이 협소하다는 것과 이 협소한 시장에 대기업이 들어가겠다고 하면 롯데 이미지가 크게 실추될 것이란 우려였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사업이란 게 시장을 체크하면서 가는 건데, 시장 스케일이 안 나왔습니다. 일본은 예전부터 오프라인 중고거래시장이 되게 컸어요. 웬만한 레토릭 상점들이 모두 중고 코너를 운영할 정도였고, 소비자들도 중고로 파는 상황까지 고려해 새 물건을 살 정도로 인프라 상황이 좋았습니다. 이 인프라를 배경으로 메루카리가 등장해 온라인으로 시장을 흡수한 거고요.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큼 중고거래시장 규모와 인식이 올라왔지만, 2018년만 해도 중고거래 플랫폼 가운데 100억 원 이상 투자받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신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사업부를 통해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긍정적인 답변이 나올 때까지 계속할 태세였다. 그룹 차원에서 여러 방법을 통해 외부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사업에 착수할 정도의 긍정적인 답변은 듣기 어려웠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말한다. “회장님께서 계속 욕심을 내셨던 이유가 중고거래사업이 유통사업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거였습니다. 특히 밸런스 맞추기가 좋아요. 불황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면 유통사업이 시들한 대신 중고거래사업이 잘되고, 구매력이 올라오면 중고거래사업이 시들한 대신 유통사업이 살아나거든요. 어떤 방향이든 헤지가 되는 겁니다. 불황이든 아니든 기업은 꾸준한 이익을 낼 수 있죠.”

◆ 중고나라 우회인수

2019년 6월 메루카리의 한국시장 진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롯데그룹에선 또 다시 중고거래시장 진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기업의 중고거래시장 진출이 딱히 눈총받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됐던 덕분이다. 하지만 메루카리가 한국시장 진출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롯데의 중고거래시장 진출은 또다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같은 해 9월 중고거래앱 운영사인 당근마켓이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인 알토스벤처스와 굿워터캐피탈 등으로부터 총 400억 원을 투자유치하면서 상황이 반전했다. 2015년 설립된 당근마켓의 이전 총 투자유치 금액은 80억 원에 불과했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예감한 벤처캐피탈이 과감히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2020년대 들어 또 다른 중고거래앱 운영사인 번개장터가 경영권 이전 및 560억 원 투자유치에 성공하면서, 또 롯데아울렛 광교점, 광명점에서 운영한 리퍼브 매장이 상당히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롯데는 중고거래 사업성에 확신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롯데는 같은 해 유진자산운용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던 중고나라 경영권 인수 검토작업에 들어갔고, 올해 2월 신동빈 회장 최종보고를 마지막으로 재무적 투자자들과의 공동투자를 결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롯데는 자기 이름을 내세워 중고거래 시장에 진출하는 걸 상당히 부담스럽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중고나라 건도 굳이 우회인수라는 걸 강조하고 회사 공식 입장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잖아요. 물론 롯데의 우려가 기우는 아닙니다. 처음 중고나라 인수 소식을 접했을 땐 대기업이 중고거래까지 손대야 한다는 게 참 웃기고 서글프더라고요. 시장 관계자들 속마음이 다 비슷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몇 주 만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좀 늦은 것 같아요. 최근 e커머스사업 부진도 그렇고 일각에선 신동빈 회장의 인사이트를 밑에서 받혀주지 못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중고나라 앱. 중고나라 역시 최근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사진=중고나라
중고나라 앱. 중고나라 역시 최근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사진=중고나라

◆ 조심스러운 접근

중고거래 시장 진출에 대한 롯데의 공식 입장은 ‘당장’ ‘구체적인’ ‘직접’ 계획은 없다이다. 다만 ‘중고나라 운영을 지켜보면서 시너지가 날만한 부분이 있다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았다. 중고나라 인수로 중고거래시장 진출에 한 발을 내디뎠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롯데는 실제로 중고나라 경영진 구성에서 한 발 떨어지는 등 중고거래시장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투자은행발 소식에 따르면, 공동투자자 측이 인선한 중고나라 신규 인력 가운데 롯데 측 인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CEO를 비롯한 대부분 신규 경영진은 IT업계에서 차출됐다. 각 투자자가 비슷한 규모로 출자한 것이나 중고나라 운영에 롯데의 유통 경험이 도움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롯데 측 인력이 정말 없는지는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고나라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게 롯데 e커머스사업이나 롯데·중고나라 시너지 부문을 찾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롯데 인력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알려진 신규 경영진 구성을 보면 네이버 같은 곳에서 온 인물들이 많던데,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롯데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중고나라가 IT 관점으로 운영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관계자는 덧붙인다. “최근 유통업계에 재밌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롯데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거나 성공하려면 ‘롯데’를 빼야 한다고요. 이 말이 (새 인력 투입에) 적용된 것도 같습니다. 온라인 쪽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준 적 없는 롯데잖아요. 롯데가 중고나라 경영에 참여하는 게 다른 투자자들이 보기에 껄끄러웠을 수 있습니다. 수익을 내야 하는 냉철한 FI들이니까요. 롯데 색깔이 들어간 방식으로는 운영하기 어렵다 생각했을 겁니다.”

롯데와 중고나라는 예전 위상과 달리 최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003년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한 중고나라는 자타공인 우리나라 넘버원 중고거래 플랫폼이었으나, 최근 후발주자인 당근마켓과 번개장터에 가려 과거 위상이 빛이 바랬다. 모바일 중심 변화에 뒤처져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다. 롯데 역시 국내 최대 덩치를 자랑하는 유통강자였으나 e커머스 전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 수수료 모델 전환?

롯데는 중고나라 인수 이후 ‘넥스트 스텝’ 관련 질문에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대내외적인 메시지도 통일된 모습이다. 오프더레코드를 통해 홍보실과 상반된 멘트를 내놓기도 했던 몇몇 취재원 역시 노코멘트나 모르겠다는 반응으로 일관한다.

유통업계에서도 롯데의 향후 행보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말한다.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 건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롯데가 인수한 중고나라는 물론,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도 개인 간 거래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중고거래 자체를 수익사업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당근마켓을 예로 들면, 중고거래는 사용자 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 수익사업 모델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역 커뮤니티, 즉 로컬을 사업화 대상으로 삼더라고요.”

시장에선 수수료 모델이 유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중고나라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게 '개인 간 거래에서 일어나는 사기 문제에 개런티를 못 해준다'는 거잖아요. ‘휴대폰을 샀는데 벽돌이 담긴 택배가 왔다’는 이야기의 배경이 될 정도로 중고나라는 신뢰 문제의 아이콘으로 유명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롯데라는 대기업이 들어가 역할을 해준다면 수수료 구조 전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롯데가 중고거래 시장 진출을 고려하게 된 계기가 메루카리였음을 상기해 보면 위 관계자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메루카리는 판매자에게 거래금액의 약 10%를 수수료로 받아 수익을 챙긴다. 수익모델로만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오픈마켓과 유사한 형태이다.

당근마켓과 GS리테일의 ‘우리동네 플랫폼’ 협약을 벤치마킹하면 롯데의 수익화 모델 선택지는 더 많아진다. GS리테일은 지난 2월 당근마켓과 우리동네 플랫폼 협약을 맺고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당근마켓으로 소화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롯데 역시 같은 내용을 차용할 수 있다. 롯데는 GS리테일 대비 규모와 상품 다양성이 더 크고 신선식품 비중도 높아 훨씬 유용하게 중고거래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 중고나라 역시 롯데 유통기한 임박 상품 및 리퍼브상품을 이용해 모객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전국에 깔린 롯데 오프라인 점포들도 중고나라 수수료 구조 전환에 도움이 된다. 메루카리는 편의점 업체 등과의 협업을 통해 전국에 7만여 개 거점을 마련, 배송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롯데 역시 같은 방법으로 사용자 편의를 높여 배송 인프라 사용에 따른 수수료 부과를 생각해볼 수 있다.

◆ 경쟁자들에 대한 부담

시장에선 롯데의 중고거래시장 진출이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은 현재 롯데의 스탠스가 여전히 ‘간 보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한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지만 ‘재무적 투자자 같은 전략적 투자자’로 남을 확률도 크다고 봅니다. 중고나라를 총액 인수하지 않고 조인트 벤처 형태로 들어간 것 자체가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거잖아요. 롯데가 생각하는 부담이 재무나 운영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재 무서운 기세로 성장 중인 경쟁 플랫폼이나 향후 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중고나라와 함께 중고거래시장 빅3로 꼽히는 당근마켓, 번개장터는 성장성 면에서 중고나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는 중고거래 시장을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하며 여전히 웹 기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고나라와의 성장률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다. 모바일인덱스가 2020년 5월에서 올해 3월까지 10개월간 모바일앱 MAU(Monthly Active Users·한 달 동안 해당 서비스를 사용한 순이용자 수를 나타내는 지표) 변화를 비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는 50%에 가까운 성장률을 나타냈지만, 중고나라는 거의 제자리 걸음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고민 역시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중고거래시장 참여가 예상되는 곳으로 네이버와 쿠팡을 꼽는다. 네이버는 지난 3월 운동화 중고거래 플랫폼인 크림을 론칭하며 사실상 중고거래시장에 한 발을 밀어 넣었고, 쿠팡은 과거 행보에 비춰볼 때 시장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 및 업계에선 쿠팡의 비금융 데이터 사업화와 중고거래 시장 진출을 매우 높은 확률로 점친다. 네이버는 네이버 카페에 이용자 위치 기반 정보 서비스인 ‘이웃 톡’을 추가해 중고거래 플랫폼 전환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다른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일단 투자가 들어간 만큼 (롯데에게) 중고나라를 활용하려는 의지는 있을 겁니다. 롯데쇼핑 e커머스 플랫폼인 롯데온에 중고나라 서비스를 붙이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부터 사업부 융합까지 다양하게 생각해 볼 거예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참여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 고민이 깊다 보니 아직 명확한 청사진이나 신호가 안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중고거래 사업이 롯데 유통사업부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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