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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수급부터 경쟁·유통 방식까지…명품시계 산업, 전방위로 진화한다

  • 기사입력 2021.03.31 14:08
  • 최종수정 2021.03.31 14:10
  • 기자명 정희경 대표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4월호에 실린 외고(外稿)입니다.>

▶전 세계 팬데믹 상황에서 고군분투 중인 여러 업계와 마찬가지로 시계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동안 시계업계는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지, 현재와 미래 전망은 어떤지 살펴봤다. / 정희경 매뉴얼세븐 대표◀

이미지=셔터스톡
이미지=셔터스톡

◆ 도구의 진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는 낮과 밤, 달의 형태, 계절의 변화, 천체의 운동을 기준으로 오랜 시간 서서히 진화했다. 그림자를 이용한 그노몬, 물의 양으로 측정했던 클랩시드라, 천체도를 정교하게 재현한 플래니타리움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태엽과 톱니바퀴라는 기계식 부품 기관으로 지난 500여 년 동안 건물 꼭대기에서부터 손목 위로까지 점령해 나갔다.

보다 정확한 시계를 제작하려는 연구는 20세기 초 발명된 전기와 충격을 가하면 전기적 진동을 일으키는 압전소자의 발견으로 한층 발전하게 된다.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연구는 동력을 보다 작은 단위로 분배할 수 있는 음파, 쿼츠, 원자 등을 이용해 아주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시계업계는 쿼츠 파동이라 부르는 격동의 시기를 맞이했다. 기존 기계식 시계들은 도태되고 많은 제작사가 파산했고 기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기술을 재빨리 도입해 변화에 적응하고 이를 토대로 유구한 전통과 노하우를 뚝심 있게 보존한 회사만이 살아남았다.

20세기 후반 시계는 기계식과 전자식이라는 두 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들로 양분됐다. 대량생산으로 저렴해진 전자식 동력 시계들은 패션성이 강조된 모습으로 진화했고, 한때 사라질뻔한 기계식 동력 구동 시계들은 도구보다 가치의 대상으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보다 전통, 역사, 예술, 공예의 산물로 수집품의 경지에 이르렀다.

◆ 부활, 그 이후

과거 영광을 되찾은 기계식 시계 시장은 1990년대 기지개를 켜고 2000년대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기점으로 확산된 사태 탓에 타격을 받긴 했지만 스위스의 경우 2010년 이후 수출액이 증가했고 2014년에는 시계업계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제 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는 휴대폰, 컴퓨터 등 전자기기들이 대체하고 있다.

한때 파산 위기에 놓였던 시계 회사들은 오늘날 스와치, 리치몬트, LVMH 등 그룹사 지붕 아래 흡수되면서 그 수혜를 받았다. 개별 브랜드의 독창성이 무너졌다는 견해도 있지만, 한층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기반을 확고히 했다.

리치몬트 그룹을 예로 들면, 예거 르쿨트르처럼 무브먼트 제조사로 출발해 기술력이 뛰어난 브랜드는 까르띠에를 포함한 타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공급하거나 기술을 전파했고, 반대로 디자인과 마케팅에 뛰어난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브랜드 대표와 핵심 인력으로 투입돼 정체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혁신을 이뤄냈다. 이는 전체 시계 시장 매출에서 그룹 산하 시계 브랜드들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소속 브랜드도 나머지 30%를 잘 지키고 있다. 시계업계 매출 1위도 무소속 브랜드다. 바로 시계업계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확보한 롤렉스다. 하이엔드 시계업계의 가치를 높여준 파텍 필립, 여전히 후손이 이사진으로 남아 있는 오데마 피게, 시계와 주얼리 두 분야를 아우르고 있는 쇼파드,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리차드 밀, 전문가 도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실생활로 파고들어 폭넓은 컬렉션을 내놓고 있는 브라이틀링 같은 브랜드들은 독립 시계브랜드로 상위 매출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모건 스탠리 리서치에서 럭셔리 팀을 이끌고 있는 에드워드 오빈 Edouard Aubin이 럭스컨설트 LuxeConsult와 함께 만든 ‘시계 분야에 관한 모건 스탠리 연례 보고서’는 아예 제목을 ‘왕 롤렉스 King Rolex’라 표기할 만큼 롤렉스가 전체 매출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오메가, 까르띠에, 파텍 필립, 론진, 오데마 피게, 리차드 밀이 그 뒤를 이었다. 유한회사나 독립시계브랜드들은 오너의 의지에 따라 때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각기 차별화된 강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알루미늄, 레진 소재로 한층 가벼워진 몽블랑 스마트 워치.
알루미늄, 레진 소재로 한층 가벼워진 몽블랑 스마트 워치.

◆ 스마트 워치의 공격

2013년 삼성전자, 소니, 퀄컴 등 IT업계에서 스마트 워치를 내놓았고, 2015년에는 애플까지 이 대열에 가세하자 시계업계는 또다시 술렁거렸다. 1970년대 쿼츠 파동처럼 새로운 위기에 처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상당했다.

애플 워치가 1세대 출시를 알린 그 해 4월 바젤월드에서 많은 브랜드 대표들은 ‘스마트 워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협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등의 공통의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파텍 필립의 티에리 스턴, 반클리프 아펠의 니콜라스 보, 티쏘의 프랑스와 티보 등 각 브랜드 대표들의 답변은 비슷했다. ‘요즘은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마트 워치 착용으로 손목이 적응하게 되면 이후 자연스럽게 좋은 시계에도 관심이 갈 것이다.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심지어 당시 위블로 대표, 장 클로드 비버는 ‘스마트 워치는 전자기기일 뿐 시계와는 다른 분야’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짧은 충전 시간, 낮은 방수 성능 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스마트워치는 구입 후 서랍장에 보관되는 애물단지가 된 경우가 더 많았고 마치 평행선을 이루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스마트 워치가 진화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2021년 7세대를 바라보고 있는 애플워치는 3세대 이후 느린 처리 속도와 반응을 개선했고, 애플페이 같은 결재시스템을 제공하거나 심박계부터 혈류 산소포화도 측정계를 탑재하며 건강지키미로 자리잡았다. 고속 충전 시스템, 길어진 충전 능력, 수영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방수 성능, 손쉬운 스트랩 교환, 커스텀 다이얼 교체 등 향상된 장점으로 점차 기존 시계 시장, 특히 200~300만 원 이하의 시계 시장의 파이를 점령하고 있다.

미국 리서치회사 스트래티지 어낼리스틱스 Strategy Analytics 보고서는 2020년에 3,000만 대의 애플 워치가 판매돼 전세계 스마트 워치 점유율 55%를 차지했고, 그 뒤를 삼성과 가민이 따라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건강과 운동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스마트 워치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났다. 이제 기존 시계업체가 긴장해야만 하는 시기가 도래한 셈이다.

시계업계도 반격하고 있다. 비슷한 가격대의 쿼츠 탑재 시계들은 더욱 더 시계다운 면모로 스마트 워치와 비교되지 않는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예컨대 티쏘 PRX는 1978년 모델을 복각한 모델로 배터리 수명 종료를 표시하는 ETA의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마감, 100m 방수 성능, 결이 있는 무광 마감 처리, 통합형 스틸 브레이슬릿 등 고급 시계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면서도 45만 원의 매력적인 가격대로 출시, 빠르게 품절되고 있다.

한편 스마트 워치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프레데릭 콘스탄트 오를로지컬 스마트워치, 파슬 그룹 산하 패션 시계들은 아날로그 시계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한 채 앱과 연동시킬 수 있는 칩을 탑재했다. 일종에 하이브리드 스마트 워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계는 앱을 통해 만보계 등 유용한 기능을 제공하면서 쿼츠 시계처럼 배터리로 구동,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추었다.

2015년 비버 대표는 바젤월드에서 LVMH 그룹이 인텔, 구글과 손잡고 럭셔리 스마트 워치를 개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후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워치를 시작으로 2017년 루이 비통 땅부르 호라이즌 커넥티드, 2018년 위블로 빅뱅 e 등을 차례로 출시했다.

리치몬트 그룹 내에선 현재 몽블랑에서만 스마트 워치를 소개하고 있다. 2015년 1월 1일 깜짝쇼처럼 기존 시계 스트랩에 끼울 수 있는 e-스트랩 스마트 기기를 내놓았고, 2017년 서밋이란 이름으로 스마트 워치를 소개, 현재 2세대까지 발전시켰다.

스와치 그룹도 일찌감치 준비는 했다. 이미 30여 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해놨는데, 실제로도 2019년 티쏘 T-터치 커넥트 솔라를 내놓으면서 이 분야 진출을 알렸다. 태양 전지를 사용해 충전 없이도 6개월 사용 가능한 동력 장치를 갖췄다. IT업계에서 만든 것들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한 기능에 더 높은 가격이었지만, 무엇보다 기존 시계와 거의 유사한 형태와 마감, 골프 코스나 여행 안내와 같은 특화된 정보 등을 담아 차별화했다.

골프 코스 측정을 할 수 있는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골프 에디션.
골프 코스 측정을 할 수 있는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골프 에디션.

◆ 기술의 평준화

기계식, 쿼츠, 스마트 시계라는 삼파전이 시작되었지만 전통 시계 시장의 미래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스마트 워치의 걸림돌은 짧은 사용기한을 가진 소모품이란 점이다. 휴대폰처럼 매년 새로운 세대로 진화하기 때문에 성능 저하 시계를 2~3년 이상 보유하기가 힘들다.

기존 시계들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고, 특히 500~1,000만 원 이상의 하이엔드 시계 시장은 시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 산업협회(Federation of the Swiss Watch Industry)의 통계에 따르면, 스위스 시계 수출액은 최정점을 찍었던 2014년 이후 주춤하며 감소세로 접어 들었으나 2016년 이후 재상승했다.

역사와 기술력을 갖춘 브랜드들은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미닛 리피터 등 기계식으로 구현하기에 난이도가 높은 기능들을 탑재하며 선의의 경쟁을 했다. 많은 시계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공급했던 ETA가 2002년 더 이상 반조립 상태의 에보슈 무브먼트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ETA 의존도에서 벗어나고자 한 브랜드들은 자사 무브먼트 생산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보다 다양한 기능과 형태의 시계들이 나올 수 있었다.

까르띠에와 샤넬, 에르메스와 같은 주얼리, 패션 분야에서 출발한 브랜드들도 무브먼트 제조사와 협업하거나 설비를 늘려 자체 독점 무브먼트를 생산, 기계식 시계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엔트리 레벨급 시계들을 소개했던 태그호이어, 티쏘, 해밀튼과 같은 시계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은퇴한 잭 호이어 Jack Heuer 태그호이어 명예 회장은 2009년 인터뷰에서 “우리는 뚜르비용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진입하기 좋은 가격대의 시계를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만들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태그호이어에선 뚜르비용을 탑재한 까레라 시계를 만날 수 있다. 하이엔드급 브랜드 모델과 비교하면 아주 저렴한 금액대로 뚜르비용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기술과 장비의 발달은 제작이 어려운 기능과 구조를 누구나 도전할 수 있게 보편화시켰다. 그 결과 기계식 시계에 대한 입문이 쉬워졌고 하이엔드급 브랜드들은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소수만 작업할 수 있는 예술 공예를 더하면서 격차를 벌려가고 있다.

◆ 생산과 판매 감소, 그리고 회복

팬데믹 여파에는 예외가 없었다. 스위스의 경우 작년 3월에서 5월까지 사망자가 증가하다가 이후 감소세를 보였지만 10월 말부터 2배 가량으로 다시 증가했다. 현재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전염성이 50% 높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에 대한 위험은 여전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스위스 시계 공장도 4~5주간 공장을 폐쇄해야만 했고 부티크도 문을 닫아야 했다. 한때 수출도 막히면서 결국 2020년 스위스 대외 무역은 2017년 수준으로 감소했다. 직원 감원, 구조조정도 단행됐다.

사실 이미 2019년부터 이런 조짐은 보였다. 홍콩과 프랑스의 시위 사태, 영국의 브렉시트, 미중 무역 전쟁 등 시계를 수입소비하는 주요 국가들이 침체기에 돌입하면서 수출액이 마이너스 성장을 찍었다.

이런 와중에 하이엔드 시계시장이 제일 먼저 복귀를 알렸다. 우선 중국의 경기가 회복하고, 특히 면세 쇼핑 정책을 수정하면서 명품의 내수 시장이 성장했다. 실제 2020년 말 스위스시계산업협회의 대수출국 현황의 순위를 보면 상당 기간 홍콩이 1위를 유지했지만, 작년 말 중국이 1위로 올라섰다. 2위 미국, 3위 홍콩 순이다. 4위 일본, 6위 싱가포르, 7위 아랍 애미레이트 등 전체 시계 시장에서 아시아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 2021년 2월 통계를 보면, 대선 이후 기준 금리 동결, 정부 지원금 부양책 등의 정책 덕분인지 미국이 중국을 딛고 1위에 올라서며 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11위에서 9위까지 올라갔다가 관광객 유입 축소로 다시 11위로 떨어졌지만 시계업계에선 여전히 중요한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 떠오르는 온라인 시장

2017년 시계업계 최대 규모 행사인 바젤월드는 탄생 100회를 축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참여 브랜드와 관람객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기존 1,500여 개 참여 업체가 600여 곳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스와치 그룹도 돌연 불참을 선언했고, 2019년 ‘타임투무브 Time to Move’라는 별도의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바젤월드 주최 측은 분골쇄신의 각오로 2020년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 무산됐다. 주최측은 2021년 1월로 행사를 옮기겠다고 발표했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히려 불만을 표시한 파텍 필립, 롤렉스와 튜더, 쇼파드, 샤넬 등 그나마 남아 있던 주요 브랜드들이 탈바젤월드를 선언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주얼리쇼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현재, 바젤월드는 아워유니버스 HourUniverse란 새로운 이름을 내걸고 있다.

LVMH 워치 위크란 독자적인 행사를 일찌감치 치른 불가리, 제니스, 위블로 등을 포함한 바젤월드 탈출 브랜드들은 제네바에서 열렸던 또 다른 시계행사인 국제고급시계박람회(Salon de la Haute Horlogerie, 이하 SIHH)로 넘어갔다. SIHH는 일반인을 받지 않고 초대된 소매상, 수집가, 고객, 기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폐쇄적인 행사였지만, 2년 전부터는 마지막 날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시작했고, 실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신제품을 실시간 접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동영상 채널을 통해 생방송과 녹화 방송으로 송출했다.

SIHH는 시계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랩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현장 사진을 #SIHH2019 태그를 달아 SNS로 올리도록 유도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고급시계만 한정한 행사에서 탈피하기 위해, 2020년 홍콩과 마이애미 전시 개최 때 사용한 이름인 워치스 앤 원더스 Watches and Wonders로 바꾸었다. 박람회 개최가 취소되자 발빠르게 웹 소통 플랫폼으로 전환해 참여 시계 브랜드의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게 대응했고, 2021년에는 디지털로 행사를 열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덕분에 기존 하이엔드 & 독립시계제작사 외에도 바젤월드에 참여했던 크로노스위스, 노모스 클라슈테, 모리스 라크르와 등 중가 브랜드들이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탈박람회 현상은 잡지나 신문과 같은 매체 없이도 자체 홈페이지, 유튜브,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출구가 있었기에 나타났다. 팬데믹 이후 웹은 유용한 도구로 성장했다. 매체 대상 프레젠테이션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개최하는 일이 일반화됐고, 직접 고객들을 만나는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브라이틀링은 웹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조지 컨 대표가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펼쳤고, 이를 공식 채널에 남겨놓아 누구든 볼 수 있게 해놓았다. 파네라이는 #OwnYourTime이란 태그를 걸고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커뮤니티 회원과 신규 고객들을 위한 이 새로운 플랫폼은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는데 2020년 4월 8일에는 남아공 출신 탐험가인 마이크 혼, 4월 12일에는 야생 동물 사진작가 말런 뒤 투아 등 앰버서더에게 문답할 수 있도록 미리 시간을 공지해 소통했다. 당시 영상은 지금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한편 부티크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경험한 이후 새로운 대책도 내놓았다. 그간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들은 전자 상거래 확장에는 소극적이었다. 몇백에서 수억 억이나 호가하는 제품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구입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국내에도 병행 수입업체, 중고 거래 사이트만 있을 뿐이었다.

현재는 정보를 알리는 공간으로만 활용했던 사이트에 구매 버튼과 장바구니가 추가되고 있다. 오메가는 미국, 영국 외에도 유럽 전역에 전자 상거래 사이트를 열었고 피아제도 이를 준비 중이다. 국내의 경우 구찌, 루이비통 외에도 5월 까르띠에, 6월 에르메스, 이후 몽블랑, 티파니, 불가리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시계 외 가방과 주얼리 등 액세서리가 많은 브랜드부터 차례로 시작되고 있다. 시계 분야에선 자체 플랫폼 외 SSG.COM 같은 대형 쇼핑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국내 플랫폼으로도 확장 중이다. 론진, 오리스, 티쏘 등이 그 예이다.

2021년 워치스 앤 원더스 시계 박람회 포스터.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2021년 워치스 앤 원더스 시계 박람회 포스터.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영민한 고객층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까닭에는 구매 계층 변화도 있다. 전쟁을 겪은 7080세대, 그 후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좋은 시계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시계는 그저 정확하면 됐고, 때 마침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한 아날로그 다이얼 시계들과 전자시계가 출현했기 때문에 기계식 시계에 대한 가치 기준을 높일 이유가 없었다. 이 세대의 경우 저렴하고 품질 좋은 시계들을 마음껏 즐긴 세대들이다.

기계식 시계들의 부활과 함께 성장한, 구매력을 가진 X세대, 그리고 Y세대나 1990년대 이후 태어난 Z세대가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컴퓨터와 모바일폰 사용에 능숙하며 이메일과 실시간 채팅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그들은 유행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시계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갔다.

그들에게는 스마트 워치라는 친숙한 선택지도 있지만, 소비지향적인 그들은 자기만족, 가치 충족을 위해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브랜드와 제품에 관심이 높다. 브랜드 홍보대사도 막연한 스타보다는 각 분야에서 획을 그은 인물들에 공감을 하기 때문에, 시계 브랜드들이 스포츠 스타, 패션 디자이너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여겨지는 홍보 대사를 찾는 일이 더 까다로워졌다.

적절한 기능, 합리적인 가격, 브랜드의 역사와 명성, 그리고 누구나 알아볼 만한 디자인을 기준으로 시계를 고르는 그들 덕분에 엔트리 레벨급 시계 컬렉션이 늘어났다. 특히 스틸 브레이슬릿 모델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파텍 필립 아쿠아넛과 노틸러스, 바쉐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 롤렉스 서브마리너 등 이미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스틸 시계는 오래 기다려야 구매할 수 있을 정도다. 랑에 운트 죄네 오디세우스, 쇼파드 알파인 이글처럼 기존에 스틸 브레이슬릿 모델을 소개하지 않던 브랜드까지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통합형 브레이슬릿의 경우 교환이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가죽이나 러버, 나토 스트랩 등으로 자가 교환이 가능하도록 스트랩 접합부에 퀵 체인지 시스템을 도입한 제품들이 늘어면서 보다 편리하게 착용할 수 있게 됐다.

재생 페트병으로 만든 플라스틱과 천으로 제작한 브라이틀링 시계보관상자.
재생 페트병으로 만든 플라스틱과 천으로 제작한 브라이틀링 시계보관상자.

◆ 똑똑한 소재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수요 증가로 플래티넘, 니켈, 몰리브덴, 코발트 등의 소재들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시계에도 이런 소재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미 충분히 기술력을 보여준 회사들이 신소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플래티넘은 원자재 시장에선 골드보다 낮은 가격이지만, 시계업계에선 제작이 쉽지 않아 한층 높은 가격에 책정된다. 소수의 브랜드에서 한정판으로 출시되어 희소성도 높은 편이다. 골드의 경우 색상에 따라 유행이 있다. 1980년대 옐로 골드, 1990년대 화이트 골드를 거쳐 2000년대에는 로즈 골드 또는 핑크 골드가 대세를 이루다 몇 년 전부터는 옐로 골드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

팔라듐, 세라믹, 플래티넘을 더 많이 합금해 독자적인 골드를 제작하는 브랜드들도 늘어나고 있다. 오메가의 세드나, 문샤인, 카노푸스, IWC의 아머 골드, 랑에 운트 죄네의 허니 골드, 위블로의 매직골드 등은 색상이나 견고성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 각기 다른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계업계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경우, 알러지를 유발하지 않아 서지컬 스틸로 알려진 316L 스틸을 주로 사용하지만, 1980년대부터 904L을 사용한다고 말해온 롤렉스 등은 합금 함량, 소성 방식에 다른 소재들을 개발적용하고 있다. 2019년 말 쇼파드는 독일 철강회사인 보에스트알파인 뵈흘러 Voestalpine Böhler와 함께 316L보다 더 견고하고 마감 후 광택이 뛰어난 루센트 A233 소재를 독점 개발해 이를 알파인 이글 시계에 적용했다.

주조 방식을 달리해 더 견고하게 만든 소재도 적용되고 있다. 로저 드뷔는 마이크로 멜트 기술(합금을 고압 가스를 통해 분말 상태로 주입하고 고압과 고온으로 압착해 고밀도로 견고하게 만든다)을 적용한 코발트-크롬, 탄소함량이 다른 소재를 겹쳐 만드는 다마스커스 기법을 적용한 티타늄 소재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소재들도 공략하고 있다. 티타늄, 카본, 세라믹, 코발트, 탄탈럼 등 신소재도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탐험가 마이크 혼이 탔던 판게아 호 부품을 재생·사용한 파네라이 섭머저블 에코판게아 투르비용 GMT 50MM.
탐험가 마이크 혼이 탔던 판게아 호 부품을 재생·사용한 파네라이 섭머저블 에코판게아 투르비용 GMT 50MM.

◆ 현명한 소비

보복소비 현상은 시계업계에서도 나타나지만, 요즘 고객들의 소비성향은 대체로 가성비와 가심비 둘 다 취하는 추세다. 스포츠 활동을 즐겨한다면 순토나 카시오 같은 유틸리티 시계, 업무상 자리에는 IWC 포르투기저나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컬렉션 같은 무난한 시계, 그리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롤렉스 서브마리너 같은 스포츠 시계나 가성비가 뛰어난 론진, 해밀튼 등의 시계도 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선택한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기꺼이 큰 비용도 지불한다. 예전과 달리 몇억을 호가하는 미닛 리피터 등 고기능과 수공예 작업을 더한 예술 시계들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건 이를 보여주는 증거다. 현명한 소비의 기준으로 최근 떠오른 중요한 이슈는 윤리적 생산에 관한 문제다.

시계제조에 사용되는 귀금속과 금속,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같은 원석, 악어부터 소가죽까지 여러 가죽 등을 어디에서 공급받는지, 원자재 공급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있는지, 인권을 보호하고 환경을 저해하지 않는 공정 무역을 통하는지 등 고객에게 전달되는 유통 과정까지 모두 재조명되고 있다.

애플이 제품을 수거해 그 안에 들어있는 알루미늄, 주석, 코발트, 희토류 등 14가지 재료를 재활용한다는 뉴스처럼 시계에도 재생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파네라이 섭머저블 에코판게아TM 뚜르비용 GMT 시계는 브랜드 홍보대사이자 탐험가인 마이크 혼이 탔던 요트, 판게아 호 구동축에 사용된 금속을 재생한 케이스로 만들었다.

쇼파드는 소재의 투명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RJC(Responsible Jewellery Council) 멤버로 등록, 공급망 전체에서 국제 규정에 맞는 책임 있는 수급을 실천하고 있다. 금은 페루와 콜롬비아에 위치한 광산에서 독점적으로 공급받고, 모두 SBGA (Swiss Better Gold Association) 시스템, 공정 채굴(Fairmined), 공정 무역(Fairtrade) 인증 제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만들어진 시계 케이스에는 페어마인드 골드라는 인증 마크가 들어가 있다.

석탄 덩어리가 오랜 시간 고온, 고압에 노출되면 가치가 높은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하나를 채굴하기 위해선 몇 톤의 흙을 파내야 할 정도로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만든 인조 다이아몬드 Lab Grown Diamond가 떠오르고 있다. 1950년대부터 연구실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인조 다이아몬드는 이제 천연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품질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조 원석을 만들 때 탄소배출량도 상당하다고 반박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합성 소재들의 사용 빈도나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통 과정에서도 윤리적 생산이 더해지고 있다. 오리스의 경우 FSC 인증 종이와 100% 재활용 판지, 재활용 패트병, 옥수수 폐기물, 플라스틱 과립과 해주류로 만든 종이 등으로 상자를 만들고 있고, 시계 스트랩도 크롬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무두질로 제작한 가죽이나 재활용 페트병과 재생 면소재 생산이 가능한 이집트 바이오 면화 소재로 점차 바꾸고 있다.

갈라파고스 군도 환경 보호를 위한 한정판 시계를 내놓기도 했던 IWC도 지속가능성 위원회를 설립, 2년에 한 번씩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2022년까지 수행할 로드맵을 살펴보면, 2014년 책임있는 보석위원회(RJC) 회원으로 가입한 IWC는 2021년에는 귀금속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게 문서화하는 CoC(Chain of Custody)를 받았고, 무분별한 산림 벌채 폐지를 실천하는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등을 통해 인증 임업 제품이 아닌 제품들의 단계적 구매 중단 등을 이행할 예정이다.

플라스틱을 줄인 포장재와 나무 펄프를 이용한 친환경 스트랩을 적용하는 시계도 있다. 브라이틀링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유통과정을 고려해 시계를 담는 상자를 업사이클 페트병으로 제작하거나 접어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크기를 줄인 형태로 소개했다. 리사이클과 업사이클 소재들로 생산된 제품 판매액 중 일부는 다시 환경을 보호하는데 이용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다른 방식의 선순환 구조도 재조명되고 있다. 까르띠에 트래디션, 바쉐론 레 컬렉셔너 컬렉션은 지난 100년의 역사 속 가치 있는 제품들을 고객이나 경매를 통해 본사가 구입해 수리를 해서 다시 고객에게 판매하는 컬렉션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재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환경 보호란 의미를 가지게 됐다.

워치스 앤 원더스 진행사이자 시계업계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고급시계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교육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어 지난 3월 초 전 세계 트레이너를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앞으로는 시계를 선택할 때 디자인, 가격, 역사와 전통, 기술 뿐만 아니라 환경에 얼마나 이바지했느냐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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