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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잠자는 유통 잠재력 일깨울 수 있을까?

  • 기사입력 2021.02.25 13:56
  • 최종수정 2021.02.25 17:05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농협이 유통 혁신에 발 벗고 나섰다. 농협 유통 사업부는 만만찮은 과제들을 극복하고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사 전경. 사진=농협중앙회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사 전경. 사진=농협중앙회

[Fortune Korea] “딱하기도 하고 다행인 것도 같고…”

2019년 초 유통업체들이 한창 새벽배송과 신선식품 카테고리 강화에 힘쓰고 있을 무렵 기자는 한 유통업체 취재원에게 어느 기업이 가장 신경 쓰이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문득 하나로마트(농협) 이야기가 나오자 취재원은 위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잠재력에 비해 빛을 못 보고 있는 게 기업인 입장에서 딱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업체가 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웅크려 있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뜻이었다.

이로부터 1년이 더 지난 2020년 4월 농협은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출범하며 농축산물 유통혁신 방안을 수립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올바른 농축산물 유통혁신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고 올해 2월에는 유통혁신 평가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먼 길을 돌아왔지만, 비로소 농협이 자신의 잠재력을 표출시키려 하고 있다.

◆ 농협의 장단점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농협의 장점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전국 읍·면 단위까지 뻗은 전국 최대 규모 유통망과 국산 신선식품 콘텐츠이다. 하나로마트 매장은 총 2,200여 개로 롯데쇼핑이나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마트와 슈퍼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농축산물 취급 규모도 타 유통업체 대비 월등해 신선식품 분야에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농협의 단점은 관료제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유통 사업 조직이 여기저기 나뉘어 있어 속도감 있게 일을 진행하기 힘든 구조이다. 농협은 지방조직은 물론 중앙 조직 안에서도 업무가 분산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농협 하면 그냥 농협인데, 사업적으로 보면 조각조각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조직입니다. 일을 진행하는 데 매우 걸림돌이 많은 구조예요. 게다가 같은 농협 이름을 쓰면서도 아예 법인이 다른 세부 조직도 많죠. 이들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통합해 일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뜻밖의 속도전

농협 역시 이 같은 내용을 인지하고 지난해 9월 열린 이사회에서 ‘농축산물 유통 혁신 추진 방향’ 보고를 통해 유통 체계 및 비효율 개선 문제를 4대 추진 전략 가운데 하나로 비중 있게 다뤘다. 나머지 세 가지는 △스마트 농축산물 생산·유통 환경 조성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 △협동조합 정체성에 부합하는 농축산물 판매 확대 등이었다.

이날 보고 이후 농협은 뜻밖의 속도전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농협경제지주 한 관계자는 말한다. “(보고회 이후 두 달 만인) 지난 11월 1일 농산물도매분사를 출범했습니다. 농협경제지주와 하나로유통에 분산돼 있던 농산물 도매조직을 통합한 거예요. 상품 판매와 공급을 농산물도매분사로 일원화해 판매유통 허브를 구축하려는 목적입니다. 올해는 이 농산물도매분사의 전문 MD와 안성, 영남, 호남 3개 물류센터를 적극 활용해 농축산물 유통체계를 더욱 개선할 생각입니다.”

농협은 농산물도매분사 출범으로 거래 투명성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농산물도매분사 주도로 계약 재배를 확대하고 산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가격 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한 덕분이다. 농산물도매분사는 농협경제지주 산하 조직이다.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건물에서 열린 '올바른 농축산물 유통혁신 실천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성희(왼쪽 다섯 번째) 농협중앙회 회장과 주요 관계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농협은 4대 추진 전략을 공개하고 실행에 나섰다. 사진=농협경제지주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건물에서 열린 '올바른 농축산물 유통혁신 실천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성희(왼쪽 다섯 번째) 농협중앙회 회장과 주요 관계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농협은 4대 추진 전략을 공개하고 실행에 나섰다. 사진=농협경제지주

◆ 판매조직 통합 남아

하지만 도매조직 외 유통 계열사, 즉 판매조직 통합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농협 판매조직은 5개 유통 계열사로 나뉘어 있다. △농협하나로유통 △농협유통 △농협충북유통 △농협대전유통 △농협부산경남유통 등이다.

이들 5개 유통 계열사는 농협경제지주 산하 조직으로 지역 하나로마트를 운영한다. 하나로마트 출점 과정에서 지역 특수성이나 상생 등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나뉘어 설립됐다. ‘농축산물 판매 창구’ 설립 목적은 같지만 특정 계열사는 매입을 병행하는 등 각 사 업무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유통 계열사 통합 논의는 꽤 역사가 길다.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노조 반발과 인력 재배치의 난관을 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는 김병원 전 농업중앙회 회장이 추진한 바 있었으나 결국 끝을 보지 못하고 퇴임했다.

◆ 절실한 통합

매번 실패하면서도 지리한 논의가 계속된 것은 그만큼 통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다른 유통업체들은 경쟁이 격화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 효율성을 이미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다. 하지만 농협 유통 계열사들은 그렇지 못해 타 유통업체들과 경쟁력 차이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매출 감소이다. 농협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개 유통 계열사 총 매출액은 3조3,000억 원이었다. 직전년 5조 원 가까운 매출액을 올린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외형 축소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e커머스에 밀려 고전할지언정 매출액과 거래액은 지속해 우상향한 것과 비교된다.

농협 유통 계열사들의 통합 시너지 효과는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 회장 때 연구용역이 진행돼 이미 구체적인 숫자까지 나온 상황이다.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농협경제지주 유통자회사 통합추진 전략’ 보고서에서 5개 농협 유통 계열사가 통합할 경우 신용카드 수수료, IT 운영·구축, 상품, 마케팅, 구매 등 분야에서 향후 5년간 누적 454억 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이번엔 성공할까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 회장 역시 농협 유통 계열사 통합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 내 5개 유통 계열사 지분 인수를 통해 합병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이 취임 초부터 농축산물 유통 혁신을 강조해왔던 터라 관련 부서에서도 강력한 동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김병원 전 회장도 굉장히 노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안 됐어요. 여러 이해관계인을 납득시킨다고 외부 용역 보고서까지 뽑아서 진행했는데도 안 됐죠. 그 정도로 관성이 큰 문제인데 쉽게 바뀌긴 어렵지 않을까요. 만약 성공한다면 이성희 회장의 가장 큰 치적이 될 겁니다.”

농협은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농협경제지주 한 관계자는 말한다. “현재 5개 계열사 가운데 두 곳은 거의 완료된 상태입니다. 농협충북유통은 100% 지분을 인수했고요, 농협대전유통 지분도 99.3% 인수한 상태입니다. (농협대전유통 소속) 남대전농협 1개소 지분이 남았는데 이것도 1분기 중 인수할 예정이에요. 나머지 3개 계열사도 순차적 지분 인수를 통해 합병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 통합해도 글쎄...

어렵게 통합에 성공한다고 해도 농협 유통의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보고서가 나온 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난 만큼 시장 환경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비해 현재는 유통업체들의 배송·물류 고도화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진행됐고 e커머스 비중도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e커머스 소비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농협 역시 유통 계열사 통합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앞서 언급한 4대 추진 전략도 이 같은 위기의식에 기초한다. 협동조합 정체성 확립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 전략은 유통 환경·체계 혁신과 온라인 전환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이들 내용이 유통으로 정평이 난 기업들에게도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롯데나 신세계 같은 유통거인들도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밀려나는 판국입니다. 농협은 뒤늦게 피치를 올리는 건데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신선식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내산으로 제한돼 있고 또 반대로 말하면 공산품 쪽은 약하다는 거거든요. (필요한 여러 상품 구매를 한 곳에서 해결하고 싶은) 일반 소비자 심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죠. 이름값에 비해 본원 경쟁력이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물류 강점 부각

하지만 시장에서는 전국 읍·면 단위까지 뻗은 물류 인프라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농협의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기본 점유율을 바탕으로 ‘전략형 슬로 스타터 모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견을 요약하면 이렇다. 비수도권 지역은 물류 인프라 대비 커버해야할 지역이 매우 넓고 인력 확보도 쉽지 않아 라스트 마일 비용이 매우 높다. 투자 효율이 떨어져 기업들의 투자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일반 유통업체들은 물류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한정돼 있지만, 농협은 비수도권에서도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이들 지역 수요를 기반으로 기본 점유율을 깔고 갈 수 있다.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확장해야 하는 다른 업체들과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확장해야 하는 농협을 비교하면 농협의 확장성이 비용이나 속도 면에서 훨씬 나을 수밖에 없다. 업체에 따라선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비수도권 인프라 구축을 포기하거나 외주화할 수도 있다. 이런 배경 덕분에 농협이 비수도권 점유율을 맷집 삼아 ‘버티면서’ 차근차근 수도권으로 치고 올라온다면 현재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농협 유통의 향방은?

농협은 서울 및 6대 광역시 도시농협을 중심으로 온라인 사업 참여매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전국 농축협 2,200여 개 지점의 당일 배송망을 2023년까지 구축 완료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3km 이내 배송지 2시간 내 배송’을 목표로 하는 싱싱배송 서비스 역시 추진 중이다. 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이 모든 서비스를 자체 물류 인프라로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 같은 계획이나 슬로 스타터 같은 장밋빛 미래의 기본 전제는 농협 유통 사업 부문이 민첩하고 전략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 첫 단추는 조직 통합이 될 가능성이 크다. 5개 유통 계열사 통합 과정은 농협 유통의 향방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주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일단 배경은 나쁘지 않다. 워낙 오랫동안 논의가 진행된 데다 전임 회장의 적극적인 경험치가 쌓여 있고 현 회장의 의지도 강력하다. 농협 유통 사업부가 다시 비상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지리한 논의를 반복할지 빠르면 올 상반기에는 대략적인 유추가 가능할 듯하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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