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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의 ‘법과 생활’] 기획부동산과 자본주의

  • 기사입력 2021.01.28 12:02
  • 기자명 조민근 안심 대표변호사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2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자본주의 이면에는 자유와 책임이 있다. 결정의 자유와 판단에 따른 책임이다. 최근 논란이 많은 기획부동산 사건들을 통해 자본주의 활용법의 기초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 조민근 안심 대표변호사◀

[Fortune Korea] ‘기획부동산에 속아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는 보도가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기획부동산이라는 용어가 공식명칭이 아니고 따라서 혼선의 여지가 있지만, 일반적 인식에 비춰 그 개념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경매회사 또는 토지정보회사 등의 이름을 사용해 부동산 개발계획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토지를 매매,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행위 또는 그 업체.

최근 기획부동산 이름을 달고 문제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는 개발이 불가능한 땅을 개발호재가 있는 것으로 광고해 매도 △기획부동산 직원이거나 직원의 지인을 상대로 고용 유지를 위해 땅을 매입하도록 강요 △부동산치고는 상대적으로 소액 투자임을 강조해 실물을 확인하지 않고 거래하도록 유도 △필지 분할이 되지 않는 땅임에도 지분 개념을 끌어들여 가상의 권리를 매매.

아주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해발 500m가 넘는 청계산 이수봉과 국사봉 사이 능선 토지 1필지는 무려 4,800여 명이 지분 형태로 공동소유하고 있다. 이곳은 개발계획조차 전무한 곳이어서 사회통념상 이런 토지는 개발 가능성이 없다(가능성이라는 게 현재 상태에서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고 봐야 하는 데도 4,800여 명이나 묶인 것이다. 매수인들이 서울 경계에 있는 땅이라는 조건에 매혹돼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청계산 이수봉과 국사봉 사이의 토지 1필지를 4,800여 명이 지분 형태로 샀다는 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매를 주관한 쪽의 위법행위가 충분히 의심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개발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속여 지분을 팔았다면 이는 사기죄 성립 여부를 다퉈야 할 정도로 범죄에 가까운 행위가 될 것이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매도한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갈 법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어쩌면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볼 요량이다.

앞서 제시한 기획부동산 개념에서 ‘개발계획 허위정보를 퍼뜨린다’는 내용을 제외하면 기획부동산 역시 자본주의사회에서 허용되는 일반적인 부동산매매계약과 별다를 것이 없다. SRT역사가 지어질 예정부지로부터 반경 500m 이내에 있는 토지라든가 대기업집단이 공장부지로 대규모 개발하는 땅으로부터 반경 300m 이내에 있는 토지라든가 하는 매물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개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분으로 매수하더라도 추후 보상과정에서 매매차익을 남길 여지가 있어서다. 즉, 이들 매물의 매매는 누가 기획부동산이라는 딱지를 붙이더라도 자본주의 프로세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계약이 될 확률이 높다.

개발가능성이 있는 토지를 매수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실제로 본인이 현장답사를 나서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곳에 어떤 행정 제한이 있고, 한 필지를 단독으로 소유할 때와 지분으로 공유할 때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토지를 매수한 후 앞으로 어떻게 출구전략을 짜야할지는 모두 매수인 개인의 책임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분석했을 때 이익이 남길 수 있는 매물이라면 언론 등에서 기획부동산 이름을 붙이더라도 무조건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주식투자자들은 주식을 매수함으로써 회사 지분을 공유하게 된다. 회사가 성장하여 이익을 남기면 배당을 받기도 하고, 많은 차익을 남기며 되팔 수도 있다. 반대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주식은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도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거나 일부러 주가를 조작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종종 생기지만, 그럼에도 주식은 여전히 개인의 주요 투자수단으로 기능한다.

필자는 수차례 기획부동산 사건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은 실제 개발계획이 있는 부동산에 관한 것이었고, 지분을 공유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고지된 사건이 많았다. 문제가 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주로 필자의 고객이 되는 매수인들은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또는 등기까지 완료한 후 비로소 자신의 투자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내려 회사 측에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기혐의로 고소하려는 목적으로 필자를 찾았다.

지난 판례들을 돌아보건데, 또 경험적으로 판단컨대, 이 같은 사례 대부분은 회사 측의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고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매수인은 억울해하며 잘못된 수사라고 주장한다. 여러모로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결과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기획부동산이나 수사기관을 탓하기에 앞서 매매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아쉽지만 미래를 위해선 더 나은 행동일 것이다. 피해자를 변론하다 보면 측은지심에 더해 항상 아쉬운 게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자본주의의 이면에는 자유와 책임이 있다. 결정하는 것도 자유이고, 타인이 권유한다고 해서 이를 따르지 않는 것도 자유이다. 그러나 판단착오가 있을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것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자본주의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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