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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세상 사는 이야기’] 브랜드, 무한 적응의 숙명을 떠안다

  • 기사입력 2020.12.28 14:01
  • 기자명 송길영 Mind Miner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1년 1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산업 생태계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중입니다. 무한히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생명체의 숙명을 이제 브랜드도 짊어지고 있습니다. /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

이미지=셔터스톡
이미지=셔터스톡

[Fortune Korea] 화장품 업계에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일제강점기. 한 화장품 사업가가 밀려드는 수요에 부응해 열심히 제품을 만들었지만, 열악한 도로사정에 포장용기가 많이 깨지는 바람에 큰 손실을 봤다고 합니다. 낙담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 사업가는 굴하지 않고 튼튼한 화장품 용기를 만들어 현재 유력 화장품 회사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화장품 사업가 이야기가 들려주는 교훈은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위기를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당시엔 화장품 사업자가 드물어 경쟁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생산이 곧 판매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성장하는 화장품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현실로 되돌아오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화장품산업 상황은 어떨까요? 도로망 같은 사회 인프라가 정비되고 생산 기술이 축적되면서 세계화와 분업화를 거쳐 글로벌 ODM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브랜딩을 위한 아이디어와 초도 물량을 주문할 정도의 자금만 갖췄다면 화장품 기업을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른바 제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화장품시장은 현재 무한경쟁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화장품시장만 해도 몇백, 몇천이 아니라 만 개가 넘는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빛나는 아이디어와 참신한 브랜딩으로 세계시장을 넘나들며 글로벌 화장품 대기업에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사례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요즘입니다. 우리가 늘 부러워했던 지적재산권을 사고 파는 선진국형 성공방정식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죠. 인구 정체로 성장이 고픈 국내 산업에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빛에는 항상 그늘이 따라붙는 법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선택지가 늘면서 각 브랜드가 소비자 인지의 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소비자 접점이 다변화하면서 사업자들의 고민은 배가 됐습니다. 목 좋은 상권에 멋진 인테리어를 한 매장을 차려 활발한 점원만 데려다 놓으면 되던 과거 성공 방정식이 변한 겁니다.

요즘 소비자들의 발길을 끄는 매장은 한 가지 브랜드로 구성된 매장이 아닙니다. 다양한 브랜드로 채워진 편집숍(드러그 스토어라는 이국적인 표현도 있습니다)이 인기입니다. 여기에 점원의 간섭 없이 혼자 살펴보기를 좋아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으로 매장 구성에 고민이 훨씬 늘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제품을 알리는 마케팅 행위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유명스타가 등장하는 TV광고로 프라임타임을 도배하기만 하면 되던 시절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습니다. 이는 종합편성채널이나 백여 개가 넘는 케이블 방송 때문만은 아닙니다. 넷플릭스와 왓챠, 유튜브 등의 OTT 서비스와 동영상 플랫폼의 등장으로 젊은 타깃 소비자의 정규 TV채널 이탈이 가속했기 때문입니다.

광고 메시지를 올릴 채널 역시 변했습니다. 지상파 위주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모델의 이미지와 그가 받게 될 거액의 보수가 화장품 기업의 신뢰도를 증명하는 보증서처럼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습니다. 케이블TV가 전문성을 무기로 지상파 위주 시장의 헤게모니를 이어받았습니다. 케이블 채널이 많아지면서 전문가들의 출연 역시 함께 늘어 이들이 긴 시간 설명과 추천을 병행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협찬성 콘텐츠들이 남발되면서 케이블TV 역시 헤게모니를 잃어버렸습니다. 소비자들은 좀 더 공정하고 독립적이라 생각되는 뷰티 유튜버들로 신뢰의 대상을 옮겼습니다. 그 결과 광고 메시지 채널 역시 이들로 이동했죠. 화장품 브랜드들은 영향력이 커진 유튜버들에게 협찬 방식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해달라 부탁했고 그 결과 이 채널 역시 혼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광고와 정보가 뒤섞인 상태가 혼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기존 채널이 상업적 메시지를 필터링하지 못하고 오염되면 새로운 채널이 득세하고, 이 채널 역시 상업적 메시지에 어뷰즈된 후 다른 채널에 힘을 뺏기는 ‘쫓고 쫓기는 구조’가 지상파에서 유튜브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재에는 갑남을녀가 차곡차곡 쌓은 리뷰를 정리해 발표하는 컨슈머 사이트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혼란한 와중에 유통업체들은 전체 가치사슬에서 더 큰 기회를 얻으려는 시도로 눈길을 끕니다. 단순 판매처를 넘어 플랫폼 역할을 도모하는 등 오프라인 매장의 기능을 확장하는 거죠.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을 추리고 공표함으로써 공정성을 표방하거나 인지도 낮은 상품을 매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브랜드와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물론 기여한 만큼의 보상을 브랜드에게 요구하기도 하죠.

더 나아갈 것도 같습니다. 어차피 ODM 방식으로 형성된 시장이니만큼 편집숍이 주체가 되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직접 판매하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미 편의점들이 자신들이 기획한 PB상품들로 매대를 채우고 고객들도 이들 제품에 팬심을 보여주는 터라 기획의 힘만 키운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보고만 있을 e커머스 업체들이 아닙니다. 이들 역시 최저가와 쇼핑 편의성을 무기로 화장품 판매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 1층에서만 매장을 여는 명품 브랜드들은 예외일 수 있으나 다양한 판매채널을 활용하는 대부분 브랜드 입장에선 보통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품이 많아 꼭 정규 매장에서만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이웃나라 상황과 달리, 우리나라는 e커머스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돼 리스크 없이 온라인 쇼핑의 장점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산업 생태계, 브랜드 생태계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섭리가 절로 생각납니다. 사업가 입장에서 보자면 고객들의 변하는 눈높이보다 앞서는 혁신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만이 이 냉혹한 무한경쟁 생태계에서 유전자(브랜드)를 후대에 남길 자격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 꾸준한 시도의 족적들이 이어질 때 진정한 국민 브랜드의 후광이 우리세대에 남게 될 것입니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자연과 생태계에 무한히 적응해야만 하는 숙명을, 이제 브랜드도 짊어져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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