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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부부 주얼리 사업가

The Family Jewels

  • 기사입력 2020.09.04 12:41
  • 기자명 DINAH ENG 기자

두 명의 브롱크스 출신 비트족 /*역주: 기성세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를 주창하며 현대적인 재즈를 좋아했던 1950~1960년대 초의 청년 그룹/은 어떻게 디자이너 보석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을까. By DINAH ENG

1세대 귀금속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유먼 David YURMAN은 아내 시빌 Sybil에게 결혼 선물로 주기 위해, 3만 달러에 회사를 팔 뻔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매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올해 77세 동갑인 두 사람은 이후 수백만 달러짜리 브랜드를 만들었다.

데이비드 유먼: 나는 브롱크스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장신구 회사를 운영했다.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난 난독증과 주의력 결핍증(ADD)도 있었지만, 1975년쯤 되어서야 알았다.

시빌 유먼: 나는 데이비드 집에서 10블록 떨어진 곳에서 자랐지만, 그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시인 겸 작가였고, 가구와 휘장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가족 보험 중개업을 했다. 나 또한 ADD를 갖고 있어, 당시 ‘시각 언어’로 소통했다.

데이비드: 나는 열 여섯 살 때 용접과 납땜질을 배웠다. 나는 작은 동물 모형들을 만들고,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 알파벳을 조각했다. 그것들을 학교에서 5~15달러에 팔았다.

시빌: 교장이 아버지에게 내가 가난한 학생이고, 절대 졸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열 다섯 살쯤에 학교를 자퇴했다. 나는 가출한 후, 캘리포니아로 떠날 만큼 충분한 돈을 벌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픈 하우스 Hyphen House에 살면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작가 잭 케루악 Jack Kerouac과 시인 필립 월렌 Philip Whalen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내 삶은 순간을 즐기기, 그림 그리기, 참선 하기,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기가 전부였다.

데이비드: 1964년에 나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를 알았던 입체파 조각가 자크 립시츠 Jacques Lipchitz와 함께 견습 생활을 하며, 주당 150달러를 벌었다. 당시는 비트 시대의 절정이었다. 그 이후 나는 네덜란드 출신의 추상파 조각가 한스 반 데 보벤캄프 Hans Van de Bovenkamp를 위해 일하면서, 그리니치 빌리지에 내 스튜디오를 열었다.

자택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데이비드 유먼과 시빌 유먼. 이 부부는 1969년 이후 함께 해왔다. 사진=포춘US
자택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데이비드 유먼과 시빌 유먼. 이 부부는 1969년 이후 함께 해왔다. 사진=포춘US

시빌: 나는 뉴욕으로 돌아갔고, 일하던 한스네에서 데이비드를 만났다. 우리는 바로 사랑에 빠졌다. 하루는 그가 나를 위해 목걸이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화랑에 차고 갔다. 한 여성이 감탄을 하며, 그 목걸이를 팔 수 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는 싫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는 목걸이를 그녀에게 맡겼고,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벌써 목걸이를 4개나 팔았다. 그것이 그가 조각 보석을 제작하게 된 계기였다.

데이비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도록 그 사업을 만들었다. 우리는 1972년 뉴욕 퍼트넘 밸리 Putnam Valley로 이사했다. 내가 과거 그곳 공방에 스튜디오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예품 전시회에서 팔기 위한 주얼리를 만들었다…

시빌: … 그리고 그 보석을 갤러리에서 판매했다. 사업규모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뉴욕에서 열리는 소매 보석쇼로 향했다. 블루밍데일 백화점의 바이어가 왔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먼저 주문을 했으니 당신이 먼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보석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주문을 했느냐”고 물었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이었다.

데이비드: 나는 그에게 먼저 대금 반을 지급하고, 인도할 때 반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우리가 딴 세상에서 온 사람들인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시빌: 하지만 그는 우리 제안에 동의했다. 그 이후 삶은 더욱 꼬였다. 어떤 은행도 우리에게 자재 대금을 빌려주거나, 공급업체에 지급해야 할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주류로 편입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업을 매각하기로 했다.

데이비드: 우리는 1979년 결혼해 친구들과 피로연을 가졌다. 그 이후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귀금속 매장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방문했다. 나는 그에게 "사업 매각이 아내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미술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

시빌: … 나는 “금액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그는 3만 달러를 제안했다.

데이비드: 내가 그 정도 돈은 공예품 전시회에서 벌었기 때문이다.

시빌: 그래서 우리는 자리를 떴고, 1980년 법인을 설립했다. 그 당시 매장들은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다. 일례로 한 대형 소매업체는 납품 이틀 전에 주문을 취소하는 바람에, 우리가 파산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의사 친구가 5만 달러를 빌려준 덕분에 우리는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소매업체들이 준수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데이비드: 어려운 부분은 그 매장들에서 우리 이름을 쓰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시빌: 당시에는 자수정 반지와 금 목걸이, 시계가 모두 예외 없이 카테고리 별로 판매됐다. 우리는 그 매장들이 우리 컬렉션—귀걸이, 목걸이, 반지—을 한꺼번에 사길 원했다.

데이비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는 미국의 장인들이다. 또한 디자이너다. 이것은 우리의 예술 형태다. 그 제품에는 특별한 개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빌: 그들은 우리 방식을 원했다. 그래서 동의했다. 

데이비드: 경기 침체로 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달에 20%를 지불하고, 다음 달에 좀 더 많은 금액을 결제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시빌: 한 때는 잡화점에서 한 남자가 내가 아들의 기저귀를 살 돈이 부족한 걸 보고, 50센트를 준 적도 있었다.

데이비드: 그러나 우리는 계속 회사를 키워 나갔다.

시빌: 우리는 1990년대에 니먼 마커스의 주요 판매업체 중 하나였다. 우리는 1999년 11월 뉴욕에서 첫 부티크 매장을 열었다.

데이비드: 우리는 미국에서 매우 수익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 후 파리로 진출했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파리 시민들에게 미국 보석 브랜드를 팔 수 있다면,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파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해냈다. 쁘렝땅 Printemps에서 판매한 지 2~3년 만에 우리는 그 백화점의 가장 충성스러운 고객 그룹을 확보했다.

시빌: 우리의 성공은 줄곧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한 덕분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우리 성공을 위해 기꺼이 밤을 새워 일을 하는 그런 돈독한 관계 말이다.

데이비드: 시빌과 50년간 함께 지내면서, 나는 옳은 것보다 친절한 것이 더 낫다는 점을 배웠다. 사업을 만드는 것은 가족을 만드는 것과 같다. 보석은 그저 부산물일 뿐이다.
 

■데이비드와 시빌이 들려주는 최고의 조언

함께 가능성을 꿈꿔라. 우리 둘 다 비트 세대의 실존주의자로 성장했다. 우리가 소매업체에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손을 잡으면, 시장에서 당신이 필요한 니즈와 우리가 만들어 낼 니즈를 모두 충족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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