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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세계 500대 기업 / BP는 ‘석유의 그늘’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을까?

FORTUNE GLOBAL 500 / IS BP FINALLY READY TO ‘THINK OUTSIDE THE BARREL’?

  • 기사입력 2020.09.07 10:13
  • 기자명 VIVIENNE WALT 기자

※500대 기업 순위: 8위, 기업 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국가: 영국, 2019년 매출: 2,830억 달러

버나드 루니 Bernard Looney 신임 CEO는 BP의 주력 사업을 석유에서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감한 계획을 갖고 있다.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큰 위기에 봉착했고, 주주들이 변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모든 것이 “재탕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By VIVIENNE WALT

BP는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위해 수 개월 동안 세련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왔다. 회사의 신임 CEO는 런던의 엑셀 ExCel 컨벤션 센터 무대에 올라, 수백 명의 주주들을 향해 녹색 혁명을 선언하려고 했다. 하지만 2020년이 되자,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내 총회가 열리는 5월 하순이 됐지만, 청중도 박수갈채도 없었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 중 한 곳의 수장인 버나드 루니는 (코로나바이러스로) 폐쇄된 BP의 런던 본사에 있는 텅 빈 방안에 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이사진과 일부 회사 관계자들만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카메라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영국은 대유행으로 3만 8,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엑셀 센터는 BP의 대규모 행사를 주최하는 대신,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분류하기 위한 ‘환자 분류 병원(Triage Hospital)’으로 바뀌어 있었다. 루니 자신도 수개월 동안 자택에 갇혀 있다가 온라인 주총을 위해 잠시 외출했던 것이다. 그는 111년 역사를 가진 권위있는 대기업의 CEO라기 보다는, 문제가 생긴 우주선에서 지구로 나쁜 뉴스를 전하는 선장처럼 보였다. 그는 "오늘의 도전과제는 이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규모"라고 온라인 비대면 주총에 참석한 투자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직면해 있는 현실을 “잔인한 환경”이라고 칭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루니는 BP에 대한 과감한 개혁안을 발표하며 신임 CEO로서의 임기를 멋지게 시작했다. 그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순 제로(Net-Zero)’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전략으로 회사가 획기적인 전환을 맞을 것이라는 청사진이었다. 한편 일부 경쟁사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비슷한 전략을 서둘러 내놓았다.

그러나 루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지진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기 전까지, 개혁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몇 개월 동안 비행기와 자동차의 운행은 금지됐고, 봉쇄조치 명령으로 루니와 그의 팀을 포함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실내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BP 경영진은 집에서 글로벌 석유수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가파르게 하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팔리지 않는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보관할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4월 원유 선물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0달러 아래로 잠시 떨어졌다.

당시의 상황은 정말 ‘잔인’했다. BP의 1분기 실적을 보면, 60억 달러 이상의 부채와 44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에는 거의 30억 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지난 6월 회사는 글로벌 인력 7명 중 1명에 해당하는 1만 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 나쁜 뉴스는 ‘순 제로’를 향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간주됐다. 같은 달에 회사는 최대 175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의 감가상각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실제 수치는 174억 달러로 밝혀졌다). 그리고 8월 초에는 더 암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2분기 적자는 168억 달러에 달했고, 올해 배당금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유행이 아니어도 석유산업은 이미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바이러스가 지구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기도 전에, 석유회사들의 주가는 주요 글로벌 지수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었다. 운영 비용은 증가한 반면 원유 가격은 낮게 유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BP 같은 석유 메이저들은 붕괴 직전까지 가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그것은 올해 글로벌 500대 기업 명단이다. 상위 10위권 중 5곳이 석유 및 가스 기업들이다. BP는 2019년 매출 2,830억 달러, 이익 40억 달러로 8위에 올랐다.

이 기업들은 수천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음에도, 내부에선 불안감이 꾸준히 커지고 있었다. 점점 더 친환경적으로 변하고 있고, 전 세계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복합적인 요소들로 인해, 변화를 요구하는 외부 압박도 가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빠르게 악화하는 기후 변화, 이에 대한 분노와 동기부여를 느끼는 젊은 세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는, 상당한 변화가 없다면 석유 및 가스 관련 주식에서 자금을 빼겠다고 위협하는 주주들이 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작년 기후변화 행진에서,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지구 온난화를 야기한 석유회사들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대기에 있는 온실 가스의 약 3분의 1이 석유 및 가스 산업과 관련돼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시위대는 지난해 10월 런던에서 열린 오일&머니 Oil & Money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에게 비트 주스를 뿌렸다. 그리고 지난 2월 루니가 CEO로 취임한 첫 날,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BP 런던 본사 앞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때문에 본사는 일시적으로 폐쇄되기까지 했다. 현명하게도 루니는 그 날 하루를 독일의 BP 정유 공장을 방문하며 보내기로 선택했다.

비트 주스와 바리케이드를 피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석유회사들이 직면한 더 큰 문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향후 수십년 이내로, 핵심 사업의 급격한 붕괴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오랜 역사상 가장 과감한 전환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적어도 업계 종사자가 아닌 많은 외부인들은 그 같은 결론을 내렸다. 루니가 최고경영자의 업무를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 1월, 7조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펀드 블랙록의 창업자 겸 CEO 래리 핑크 Larry Fink는 연례 서한에서 "기후변화가 기업의 장기 전망에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고 밝히며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신세대들이 투자자와 CEO로 성장함에 따라, 그것은 점점 더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간단히 말해, 기업들은 기후변화와의 싸움에 동참하거나, 아니면 서서히 소멸할 수 있다.

에너지 대기업들에 그 선택은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어쩌면 개발되지 않은 수십억 배럴의 석유와 수조 톤의 천연가스를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기업들의 설립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비영리 환경보호기금 의 프레드 크루프 Fred Krupp 회장은 "석유산업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BP 내부에서도 그런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핑크가 주주들을 위해 블랙록 서한을 발표했을 무렵, 루니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CEO 취임 후 일주일이 지난 2월 12일, 그는 ‘에너지 재편(Reimagining Energy)으로 BP의 재탄생을(Reinventing BP)’이라는 투박한 구호 하에서 회사의 과감한 개혁안을 공개했다. 핵심 내용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후 과학자들이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조치를 반영했다.

석유 전문가들과 환경론자들의 반응에는 희망과 의심이 혼재해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일부 관계자들은 BP가 1990년대 후반 마지막 주요 브랜드의 개편과 함께 선언한 ‘석유를 넘어(Beyond Petroleum)’라는 슬로건을 지적했다. 이 구호는 업계가 ‘청정 에너지 탐사’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표적인 상징물이 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BP는 명목상으로는 다시 그 슬로건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루니는 회사가 이번에는 사활을 걸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2월 "방향은 정해졌다. 그리고 순 제로를 향해 가고 있다. 후퇴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처럼 된다면, 루니의 계획은 BP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1909년 이후 육지와 바다에서 석유와 가스를 시추 및 정제, 전 세계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것이 회사의 주된 사업 목적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 최대 30년 안에 BP는 대기에 방출하는 4억 1,500만 톤의 탄소를, 풍력 터빈이나 태양 발전소 같은 비탄소 재생 에너지로 모두 상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석유 시설에서 새어 나오는 메탄 방출량을 감축하고, 탄소를 지하 깊숙한 곳에 저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숲을 보호하고,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만 애초에 일부 탄소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루니는 8월 초 투자자들에게 “BP가 10년 안에 석유와 가스 생산을 40% 감축하고, 신규 국가들에서의 화석연료 탐사를 중단할 것”이라며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BP는 이제 ‘종합 에너지 회사’로 변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 전환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BP의 신임 CEO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루니는 포춘과의 장시간 인터뷰에서 "이 방향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되돌아 보면, 투자자들의 압박이 극심한 상황에서 서둘러 방향을 선회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인다. 런던에 위치한 투자자문회사 샌퍼드 C. 번스타인 Sanford C. Bernstein의 선임 애널리스트 오즈월드 클린트 Oswald Clint는 "그 충격은 엄청나게 크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석유회사 경영진 스스로도 기후 변화에 훨씬 더 걱정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지못해 하는 행동이 아니다. 아마도 기업들이 변화를 강요 받았을 수는 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변화를 완전히 수용하고 있다. 기업 문화가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많은 사람들은 BP가 이런 역사적인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초창기에 BP는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등의 정치적 격변을 발판으로 세워졌다. 더 최근에는 위험한 업무 환경을 방치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미국인들은 아마도 BP하면, 2개의 대형 사고를 가장 잘 기억할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부실한 관행의 결과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텍사스 주 텍사스 시티에 있는 BP 정유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며, 근로자 15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10년 루이지애나 해안에서 발생한 시추 시설 딥워터 호라이즌 Deepwater Horizon 폭발로 11명이 사망했고, 멕시코 만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박스 기사 참조).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다. BP는 아직도 그 지역 사회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루니가 CEO에 오르면서, 회사는 마침내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위한 기회를 가졌다. 그가 순 제로 계획을 발표한지 몇 주 만에, BP의 유럽 경쟁업체들은 서둘러 동일한 결정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루니의 연설 이후 몇 주 만에, 로열 더치 셸과 이탈리아의 석유 메이저 ENI,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 Total 모두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순 제로를 목표로 발표했다. 스페인 석유회사 렙솔 Repsol과 노르웨이의 에퀴노르 Equinor는 앞서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석유 생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버나드 루니 BP CEO. 사진=포춘US

지난 8월 루니가 공개한 계획으로 BP는 획기적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2030년까지 저탄소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는 10배 늘리고, 궁극적으로 석유 및 가스 탐사는 최고 수준에서 75%가량 감축할 계획이다. 그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위해 옳은 결정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계획은 BP의 모든 결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BP의 새로운 전략 및 지속가능성 담당 부사장으로 4월 합류한 줄리아 치에르치아 Giulia Chierchia는 "저탄소가 증가하고 장기적으로 화석연료는 감소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순 제로’ 전환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저탄소가 될 것이다."

루니(49)는 많은 고민 끝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는 6월 말 1시간여에 걸친 화상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한편 회사는 하루 380만 배럴의 석유 및 가스를 시추하고 있다. 이 둘의 균형을 맞출 방법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해결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루니는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조류를 역행하며 수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런던 인근을 3마일 정도 달린 후 본사 사무실로 돌아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필자는 만약 BP와 다른 대형 석유회사들이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물었다. 그는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다소 암울한 미래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루니는 BP의 미래를 생각하는데 있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두 그룹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바로 직원들과 투자자들이었다. 두 집단 모두 분명히 몹시 동요하고 있었다. 그는 "투자자들이 실제로 우리의 사업 목표를 압박하고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그것이 우리 섹터의 실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며 "아울러 직원들은 개인의 목표와 기업의 목표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나의 지적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불안감을 느꼈던 직원들 중 한 명이 조 알렉산더 Jo Alexander였다. 덥수룩한 장발의 빨간 머리를 가진 지구과학자인 그녀는 2003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BP에 입사했다. 그리고 리비아와 호주 등의 나라에서 주요 석유 프로젝트를 맡으며 10년을 보냈다. 그녀는 “그것은 모험과 출장으로 채워진 삶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고뇌가 심해지자, 마침내 그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녀는 2015년 BP로부터 퇴직 보상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그 후 책임 있는 투자에 초점을 맞춘 런던의 비영리 단체 셰어액션 ShareAction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 BP의 주주총회에서 알렉산더는 발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경영진을 향해 “BP 내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동일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BP는 언제쯤 회사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맡길 것인가?’”라고 물었다. 경영진은 당황했다. 주총이 끝난 후, 루니는 그녀에게 다가와 "나를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BP 내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를 조용히 파악하면서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작년 말, 그녀는 BP 본사에서 루니를 만났다. BP의 원유 생산 사업부를 이끌었던 루니는 이미 밥 더들리 Bob Dudley의 뒤를 잇는 차기 CEO로 하마평이 돌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BP 직원들의 견해에 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공유했다. 그러자 루니는 그녀에게 “내가 지금까지와는 180도 다른 경영 전략을 막 발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즉각적으로 그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당시 나는 '당신은 나 없이는 그걸 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내가 여태껏 한 말 중에 가장 건방진 말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녀의 대담한 발언은 효과가 있었다. 루니는 알렉산더(39)를 위해 ‘목표 실행 관리자’라는 직책을 신설했다. BP 직원들이 ‘에너지 재편’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오늘날 루니는 2월의 ‘순 제로’ 연설과 필자와의 인터뷰 등에서 매번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단지 루니를 돋보이도록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나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그 계획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한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BP의 순 제로 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도 그녀는 "모든 사람이 우리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정말로 자긍심을 회복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런 낙관론이 모든 전 BP 직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처럼 환경 문제 때문에 BP를 그만둔 또 다른 엔지니어 마이크 코핀 Mike Coffin의 사례를 들어보자. 코핀(34)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008년 지질학자로 BP에 입사했다. 알렉산더처럼, 그는 BP의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일 덕분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부분을 얻었다고 말한다. 가령 흥미진진한 업무도 맡았고, 주택을 마련해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경력도 쌓았다고 한다. 그는 "10~12년 전, 그것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핀은 석유 생산으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해 점점 더 큰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BP가 에너지 전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더라도, 새로운 대형 원유 탐사를 해야하는 나 같은 엔지니어들은 쓸모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석유 및 가스는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지난해 초 코핀은 마침내 BP를 떠나 영국의 금융 싱크탱크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 Carbon Tracker Initiative의 석유 및 가스 담당 애널리스트로 전직했다(런던에 기반을 둔 이 비영리단체는 석유회사들이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와 금융시장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다). 루니가 지난 여름 발표한 충격적인 화석연료 감축안에 관해, 코핀은 "BP는 이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그는 석유회사들이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감하게 스스로를 바꿀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아울러 대형 석유회사들이 화석연료 생산에 직원의 보너스를 연동하는 오랜 관행을 타파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BP는 이제부터 보너스 고려사항으로 환경적 가중치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점점 더 조직화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적인 우려와 재무적인 위험의 이유로, 포트폴리오에서 에너지 주식을 매도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전직 BP 엔지니어였던 조 알렉산더(39)는 기후 변화 우려 때문에 퇴사했다. 현재 그녀는 직원들의 ‘에너지 재편’ 참여를 바라며 회사로 돌아와있다. 사진=포춘US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의 석유, 가스 및 광산 책임자인 앤드루 그랜트 Andrew Grant는 "투자자들은 기후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그들은 고객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투자를 고려할 때, 재무적 측면 못지 않게 환경적 측면도 중요해 진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수십 개 연기금과 정부들이 수십억 달러어치의 화석연료 업체 주식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파슬 프리 Fossil Free에 따르면, 총 14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기관들은 현재 주식 매각을 약속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민간단체인 참여과학자연대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캠페인을 총괄하는 캐시 멀베이 Kathy Mulvey는 "투자자들은 이 석유회사들에 대해 더욱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론자들은 기업들이 순 제로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실제로 감축하지 않고 ‘꼼수’를 부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꽤 많다"고 덧붙였다.

주주들은 또한 회사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6년부터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표결에 필요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주주들을 결집해 석유회사들의 주주총회에서 기후변화 결의안을 추진해 왔다.

2016년 기계공학자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로 변신한 네덜란드인 마크 밴 바알 Mark van Baal은 주주그룹인 폴로 디스 Follow This를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주주 결의안을 통해 석유회사들이 환경 정책에 신경 쓰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정말 석유회사 셸 Shell을 바꾸고 싶어? 꿈도 꾸지마'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셸의 2016년 주주총회에서 매우 직설적인 첫 결의안을 공개했다. "우리는 ‘회사가 석유 및 가스 탐사를 중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석유 및 가스 탐사는 거대 석유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결의안이 2.6%의 지지를 받은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이 단체의 전략은 그 이후 더욱 정교해졌다. 현재는 석유회사 경영진과의 직접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작년 11월, 밴 바알은 암스테르담에서 유로스타 열차를 타고 루니를 만나기 위해 BP의 런던 본사로 향했다. 당시 루니는 차기 CEO로 지명된 상태였다. 두 사람은 밀폐된 방에 자리를 잡았다. 루니는 그곳에서 밴 바알에게 ‘대전환’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밴 바알은 "그는 자신이 지휘봉을 잡을 때, 중대 발표를 통해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고 전한다. 밴 바알은 5월 말 루니의 첫번째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결의안을 밀어붙이지 않기로 합의했다. 오히려 BP가 순 제로 계획을 이행할 수 있도록, 내년 주총에서 공동 결의안을 루니와 함께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제대로 이행한다면 과감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밴 바알은 셸, 토탈, 에퀴노르, BP 등의 주총에서 관련 결의안을 상정해 표결을 실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엑손 모빌과 셰브론의 주주총회를 포함해 유사한 행동주의 결의안을 막았다. 투자자들이 회사 경영 결정에 간섭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밴 바알은 낙관적이다. 석유산업이 현실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대형 석유회사 CEO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 꿈을 꾸곤 했다"며,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루니는 주주들의 노력으로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그 역시 석유 및 가스 회사의 이익을 옹호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밴 바알은 BP의 ‘바로 그 남자’가 마침내 협력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CEO라고 믿는다. 그는 루니가 8월 간략하게 설명했던 계획이 업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2050년이라는 먼 미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BP는 지금 당장이라도 계획을 이행할 수 있는 최초의 석유 대기업이다. 석유 생산량을 40%나 감축한다는 계획은 정말 엄청난 일"이라며, "만약 어느 석유 메이저가 일종의 업계 카르텔을 깨고 나왔을 때, 주주가 그 행동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면, 다른 석유 메이저들도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루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을 때, 그가 어떤 형태로든 업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의외로 보였다. 그는 BP에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는 "내 출신 배경을 고려하면, 회사는 내가 결코 꿈꿀 수 없었던 기회를 줬다. 제대로 된 학교 출신도 아니고, 제대로 된 배경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절제된 표현일 정도로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루니의 부모는 11세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 아일랜드 케리 카운티 County Kerry 시골 마을의 낙농장에서 14마리의 젖소를 돌보며 5명의 자녀를 키웠다. 돈도 부족했다. 그는 “형제들과 어린 나이에 추가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법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필자가 루니에게 런던의 집 책장에 놓여있던 녹색 장난감 트랙터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흔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좋은 기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좋은 것을 원했다. 우리는 낡은 트랙터를 사서 팔며 돈을 벌었다. 몇 파운드라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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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정해졌다. 우리는 탄소 순제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후퇴는 없다.” -버나드 루니 | BP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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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자신이 또래들과는 달랐다는 점이었다. 그는 "소년들은 헐링[라크로스와 비슷한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과 럭비를 잘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나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며 "나는 농장에서도 손을 쓰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손을 쓰는 일이 전부인 농장에서 말이다"라고 회상한다.

루니는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더블린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시추기술자로 BP에 입사했다. 그리고 수년간 영국의 북해, 알래스카, 노르웨이, 그리고 미국 등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결국 존 브라운 John Browne 전 CEO가 그를 수석 비서—닌자 거북이의 이름을 따서, ‘터틀’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CEO가 될 가능성이 높은 엘리트 코스다—로 발탁했다. 경영자 수업의 일환으로, 브라운은 그를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1년 동안 보냈다.

지금도 루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말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그는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됐다고 믿는다. CEO로 임명된 이후 그가 가진 일부 인터뷰 중 하나는 성전환 시민 운동가 겸 영화제작자 제이크 그라프 Jake Graf와의 인터뷰였다. 루니는 그에게 “만약 BP 직원이 동성애자(LGBTQ+) 권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 회사에 속하지 못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는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폭발적인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그는 6월 1일 BP의 전 세계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사내에서뿐만 아니라, 개인 삶에서 인종차별을 퇴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후 직원들과 화상회의 가졌다. 눈물을 흘리고, 울음을 터트리는 등 가슴 아픈 장면들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루니는 CEO로서 BP가 후원하는 핵심 분야로 ‘정신 건강’을 선정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영국의 정신건강 단체 마인드 Mind에 거액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 정신 건강 문제를 기업 내부의 중대한 현안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 대유행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그는 "나도 나만의 인간 관계 문제가 있다. 상담도 받고, 이것 저것 많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말했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봉쇄 조치 하에서, 루니는 BP 직원들에게 명상 앱 헤드스페이스 Headspace에 접속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자신도 이 앱을 매일 밤 쓴다고 한다. 그는 "그 앱을 내 침대 옆에 둔다. 앱 속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말한다.

루니는 전형적인 대기업 총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그는 BP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버나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평범한 회사 사진들 사이로 동성애를 뜻하는 ‘자랑스러운 무지개(Pride Rainbow)’와 환경 보호를 암시하는 열대 우림 등 수십 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아울러, 사진 속 버나드는 보통 청바지 차림으로 좀처럼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심지어 5월 주주총회에서도 착용하지 않았다.

이 신임 CEO는 직원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독려했다. 일부 직원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조치를 온라인상에서 그와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어느 화상통화에서 영국의 주유소 직원들은 루니에게 저임금을 받는 필수 최전방 노동자로서, 대유행을 극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후 루니는 그들의 임금을 인상해 줬다. 스페인 톨레도 Toledo에서 BP-허스키 정유공장의 운영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호세 로드리게스 Jose Rodriguez는 회사 내부에서 사용하는 트위터의 기업용 버전인 야머 Yammer를 이용, 즉흥적으로 루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를 직원 회의에 초대했던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답장을 받고선 깜짝 놀랐다. 루니는 재빨리 날짜를 정하고, 정유공장 직원들과 20분 가량 화상 채팅을 가졌다.

로드리게스는 "실제로 우리를 아끼는 것처럼 느꼈다. 지난 29년간 BP에 몸담았던 4명의 전임 CEO들과 그는 분명 달랐다"고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어 "어느 공장장의 엄마가 최근 돌아가셨다"며, "버나드는 '홀로 남은 아버지를 잊지 말라. 그가 슬픈 감정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로드리게스와 루니는 그 후에도 계속 연락하고 있다.

이 모든 에피소드가 BP의 이미지 변신을 위한 ‘보여주기식 경영’으로 치부되기 쉽다. 회사가 과감한 전환을 약속하고 있는 시점에는 더욱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루니의 실제 경영 스타일과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 CEO가 기업에 대해 오랜 기억을 갖고 있는 외부인들의 의심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997년 시작된 '석유를 넘어'라는 브랜드 재편 작업은 오길비 PR 월드와이드 Ogilvy Public Relations Worldwide가 맡아 기획한 2억 달러 규모의 홍보 캠페인이었다. 전 세계는 그 회사가 석유회사 이미지를 탈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최고 경영자였던 브라운은 사명을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에서 BP로 바꾸기까지 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루니의 ‘에너지 재편’ 슬로건도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릴 것이다. 참여 과학자 모임의 멀베이는 "우리가 전에 '석유를 넘어'라는 슬로건을 들은 적이 있다"며, "당시 사람들은 꽤 희망적이었다. 돌파구처럼 느꼈다. 하지만 환경보호론자들은 이번에 또 다시 실망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브라운은 “우리 노력이 당시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회사는 탄소 배출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석유 메이저들과는 다르게 행동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업계는 우리의 행보에 큰 위협을 느꼈다. 우리에게 ‘기독교 신자가 교회를 떠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환경을 악용할 의도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 캠페인의 시작 시점이 BP가 미국에서 태양광 패널에 80억 달러를 투자했던 시기와 절묘하게 일치했다. BP는 그 투자로 인해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 당시 중국이 저렴한 가격으로 태양광 패널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던 때였다. 이후 BP는 영국의 태양광 회사 라이트하우스 Lightsource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로써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지 않고, 태양광 공장의 건설 및 운영을 하게 됐다. 브라운은 “석유회사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탄소 배출이 세계 기후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절박함이 없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준비할 시간이 많았다"고 아쉬워한다.

루니는 지체할 여유가 없다. 30년 안에 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는 지금 당장 BP의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브라운은 “게다가 투자자들이 위선의 징후를 본다면 1990년대보다 더 강한 거부감을 표시할 것”이라며, “나무를 심거나 기존 숲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진정성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투자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은 마침내 ‘진정성 있는 무언가’를 위해 루니의 계획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은 탄소를 상쇄하는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BP의 새로운 전략 책임자 키에르치아는 “대유행으로 변화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며, "무엇보다도 대유행은 우리가 매우 폭발력이 강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사업을 다각화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평가한다. 그녀는 “나는 올해 초 매킨지에서 퇴사했다. BP가 탄소 배출량 감축에 전념하고,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루니는 내게 확신을 줬다. 나는 '와! 이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올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설명한다.

뉴욕의 환경보호기금 책임자 크루프는 팬데믹 동안 화상 회의를 포함해 루니와 여러 차례 만나 BP의 순 제로 계획을 논의했다. 그는 “BP가 205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무수히 많은 솔루션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크루프는 루니에게 화석 연료에서 저탄소 에너지 생산으로 빠르게 전환하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석유시설 주변에서 발생하는 메탄과 같은 오염물질을 줄이고, 현존하는 열대 우림 보호를 포함해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것을 제거할 것을 권고했다. 그는 “모든 것을 대규모로 단행해야 한다. 그들은 더 많은 석유 및 가스에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버나드에게 ‘그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에너지 대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석유 및 가스를 기꺼이 포기하려고 할까? BP는 석유 및 가스 생산을 통해 번 돈으로 저탄소 에너지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현재 장부상으로 193억 배럴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순 제로 계획에 따르면, 수백만 배럴의 석유가 땅속에 영원히 묻혀 있어야 한다. 금융 용어로 소위 좌초자산(Stranded Asset)/*역주: 예상치 못한 조기 상각, 평가 절하 또는 부채의 전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산/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한편 환경론자들은 BP가 유가 상승에 따라 시추 물량을 늘리려는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는 석유회사들과 OPEC의 석유 부국들이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관행이다. 회사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152억 달러의 자본 지출 중 재생 에너지에 3% 미만을 투자했다. 시장정보 회사 라이스타드 에너지 Rystad Energy의 에너지 서비스 리서치 부사장 매슈 피츠시먼스 Matthew Fitzsimmons는 “오늘날 업계의 총 자본 지출 가운데 약 9%가 향후 5년간 청정 에너지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환경 보호론자들은 그 수치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런던에 기반을 둔 NGO 클라이언트어스 ClientEarth의 변호사 소피 마르자낙 Sophie Marjanac은 "업계는 지난 20년 동안 문제를 뒤로 미뤄왔다"며, "이제는 장난을 멈추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주주들이 요구하는 수익률을 안겨줄 방법을 찾으면서, 동시에 기업 체질을 바꾸는 것이 루니와 대형 석유회사들이 직면한 궁극적인 과제이다. 한 가지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즉, BP와 다른 회사들이 석유와 가스를 수년 간 계속 생산할 것 같다는 점이다. 루니는 지난 8월 자신의 계획을 공개하면서 "110년 된 회사의 전환을 위해 석유생산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파리에 소재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그들이 태양광 발전, 전기 자동차, 그리고 풍력 터빈에 많은 투자를 하더라도, 석유 수요는 적어도 10년 동안 꾸준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루니에게 “BP가 화석연료 생산에서 한발 빼려고 한다. 수익성 저하는 불가피한 결과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반대로 BP가 에너지 전환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을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각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일례로 유럽연합은 수조 달러 규모의 팬데믹 회복안을 계획하고 있다. 게다가 수천 명의 기술자와 세계적인 공급망을 보유한 석유 메이저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투자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루니는 "세계의 에너지 체계를 다시 짜는데 수조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며, "그것은 우리 정도의 기술을 가진 회사에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루니는 점점 더 진정한 기후 신봉자처럼 들리고 있다. 그는 "나는 한 가지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이것저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세상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BP의 이익과 우리 모두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만들 것이다.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는 BP를 어떻게 바꿨을까?

10년 전, BP 유정에서 일어난 폭발은 미국 역사상 최대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 회사는 여전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2010년 4월 20일, 딥워터 호라이즌 시설은 루이지애나 해안에서 마콘도 Macondo라고 불리는 극심층 석유 전망대에서 시추 작업을 하고 있었다(마콘도라는 이름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서사 소설 '100년의 고독'의 가상 도시에서 따왔다). 하지만 그 시설물은 대참사로 변했다.

가스가 그 유정을 뚫고 멕시코만 해저 1.5마일 지점에서 폭발해 시설 근로자 11명이 숨졌다. 우주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그리고 걸프만의 어업량과 습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87일 동안 약 320만 배럴의 기름이 걸프만에 쏟아졌고, BP는 그 중에서 81만 배럴을 회수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원유 유출 사고로 기록됐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트럼프 행정부는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 이후 도입된 몇 가지 핵심 감독규정을 폐지했다, 여기에는 폭발 방지를 위한 백업 시스템 등 독립적인 감독과 안전 수칙도 포함됐다.

그 사고는 몇 년 동안 BP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혔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 상처가 겨우 치유되기 시작했다. 당시 BP의 고위 임원으로 정화 작업 감독을 도왔던 루니는 "그것은 매우 힘든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법정에선 BP가 안전 규정을 간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회사를 “무모하다”고 비난했다. BP는 690억 달러 정도의 합의금 및 보조금 가운데 남아있는 금액을 걸프만 지역사회와 주들에 여전히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해 지급한 약 24억 달러도 포함돼 있다. 회사는 향후 13년 동안 연간 약 10억 달러를 지불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재난사고에도 불구하고 BP는 여전히 멕시코만의 심해 시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약 40만 배럴—폭발 사고 이전인 2009년 생산량과 동일하다—을 2020년대 중반까지 이 해역에서 매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루니는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가 회사를 영원히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BP 경영에 있어 안전 수칙이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일 특정 프로젝트에 너무 집착—비판자들이 2010년 사고 이후 BP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주장이다—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그 사고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잊어서도 안 된다"며 "우리는 겸손에 대해 많이 배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1년 내내 안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BP와 걸프만에 있어, 그 사고는 매우 값비싼 교훈이었다. —V.W.

▲숫자로 보는 BP의 도전 과제들

-174억 달러
BP가 2분기에 감가상각 처리한 금액. 자산 가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이다. 유가가 향후 수십 년간 예상한 것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만명
BP가 해고할 것이라고 밝힌 직원 수. 전체 인력의 7분의 1에 해당된다. 회사는 1분기에만 44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380만 배럴
BP가 매일 생산하는 석유 및 가스의 양.

-415톤
BP가 매년 대기로 배출하는 탄소량.

-152억 달러
2019년 BP의 총 자본 투자액. 이 가운데 3% 미만이 재생에너지에 투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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