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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S EXPERT] 안병민의 ‘경영 수다’

공수신퇴: 공이 이루어지면 몸을 물리다

  • 기사입력 2020.08.03 13:38
  • 기자명 하제헌 기자
세계 최고의 필름회사였던 코닥의 몰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진 셔터스톡.

노자의 도덕경 9장 마지막 구절은 ‘공수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을 물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혁신을 위한 통찰을 읽을 수 있다. 혁신은 무언가를 바꾸는 거다. 바꾸려면 과거의 방식을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 월왕 구천에 의해 죽은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왕 부차는 절치부심 했다. 딱딱한 장작 위에 누워 잠을 자면서 패배의 치욕을 되새겼다. 와신(臥薪)이다. 결국 구천에게서 항복을 받아낸 부차. 후환을 없애기 위해 구천을 사살하려는데 다행히 구천에게는 범려라는 명재상이 있었다. 범려의 계책으로 무사히 풀려난 구천, 복수의 일념으로 매일 쓰디쓴 쓸개를 핥는다. 상담(嘗膽)이다. 몇 년 후 세상은 바뀌어 다시 구천의 승리. 모든 것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 월왕 구천의 절대공신이었던 범려는 세속의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홀연히 떠난다. 떠나기 직전, 오랜 시간 함께 고생했던 대부 문종에게 충언한다. “월왕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니 대부께서도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십시오.”
이 얘기를 흘려 들은 문종은 구천에게서 자결을 명 받아 유명을 달리한다. 토사구팽의 고사다.
세상만사, 영원은 없다. 불멸도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그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우리네 삶이 달라진다.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는 사람은 그래서 아름답다.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의 운명은 다한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꿰뚫어 보아내야 하는 이유다. 노자 역시 이를 역설한다. 도덕경 9장에서다. 
‘지이영지 불여기이(持而盈之 不如其已) 췌이예지 불가장보(揣而銳之 不可長保)’라 했다. 쌓아서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때 그만 두는 것만 못하다. 날을 두드려 너무 날카롭게 만들면 곧 무뎌져 오래 가지 못한다. 이어지는 노자의 가르침이다. 
‘금옥만당 막지능수(金玉滿堂 莫之能守) 부귀이교 자유기구(富貴而驕 自遺其咎)’.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면 그걸 지키기가 어렵고, 부귀로 교만하면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게 된다.
과유불급.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만 같다. 균형점을 찾아 거기서 그쳐야 한다. 이런 지혜를 사람들은 외면한다. 끝없이 채우려 들고, 끝없이 오르려 한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탐욕과 오만의 바벨탑이 지금도 세상 여기저기서 올라간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언제든 할 수 있다. ‘멈춤’은 다르다. 통찰의 이슈다.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타이밍에 멈출 수 있다. 그런 통찰이 없으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따로 없다. 거칠 것 없으니 폭주한다. 종국에는 사달이 난다.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지지(知止)’의 깨달음이다. 성공하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진퇴의 미학이다. 성공의 정점에서 물러날 때를 생각했던 범려는 ‘지지’를 지렛대 삼아 문종과 달리 누구보다도 평화로운 말년을 누렸다.
도덕경 9장의 마지막 구절은 그래서 백미다. 공수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 공이 이루어지면 몸을 물리라는 거다.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거다. 그게 하늘의 도(道)라는 거다. 세상만사, 극에 달하면 되돌아오고 가득 차면 저물게 마련이다. 자연의 섭리다. 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다. 늘 푸른 여름일 것 같지만 어느 샌가 앙상한 겨울이다. 늘 가득 찬 보름일 줄 알았건만 어느 샌가 텅 빈 그믐이다. 그러니 박수 칠 때 물러나야 한다. 그 박수가 원망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도덕경 9장이 리더에게 전하는 교훈은 ‘겸양’이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거다. 자랑하지 않고 사양하는 거다. 그쳐야 할 때를 알고 그치는 거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알량한 능력을 넘어 웅숭깊은 인품이 필요한 대목이다. 리더십 관점에서의 또 다른 교훈은 ‘혁신’이다. 혁신은 무언가를 바꾸는 거다. 바꾸려면 과거의 방식을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하지만 멈추지 못한다. 편해서다. 익숙해서다. 그러니 계속 간다. 혁신의 이유는 허공에 흩어진다. 소리 없이 사라진다. 어제의 나로 살면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의 나로 다시 태어나려면 어제의 나를 죽여야 한다.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이다. 그래서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고통을 수반한다.
세계 최고의 필름회사였던 코닥의 몰락은 극적이다. ‘코닥 모먼트(kodak moment)’라 하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은유하는 의미로까지 쓰였던 코닥이다. 그랬던 코닥이 ‘코닥당했다(be kodaked)’. 세상의 변화에 맞춤하여 혁신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거다. 코닥을 수렁으로 밀어넣었던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기업이 코닥이란 사실은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아날로그 필름’을 버리지 못했던 코닥은, ‘디지털 이미징 솔루션 기업’으로 비상할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파산 신청.
코닥과 쌍벽을 이뤘던 또 다른 필름 회사가 있었다. 후지필름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빚어낸 역량파괴적 환경변화에 후지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필름 매출은 급전직하했다. 하지만 후지의 대응은 코닥과 달랐다. 후지는 과거의 성공방식을 버렸다.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렸다. 화장품 사업이다. 필름과 화장품이 무슨 상관? 필름의 주원료는 콜라겐이다. 여기에 기존 기술을 접목해 피부재생 노화방지 화장품을 개발했다. 관련 바이오 기업, 제약 기업들도 사들였다. 카메라 필름을 만들던 후지는 이제 종합 헬스케어 컴퍼니를 지향한다. 다가 아니다. 그간 축적했던 필름 제조 원천기술을 활용해 화학, 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멈춤으로써 빚어낸 혁신이었다.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고,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 멈추어야 할 것은 생각이 아니라 달리기다. 도전하는 사람은 그래서 멈춘다. 안주하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추지 못한다. 그저 달린다. 답습이다. 멈춤은 또 다른 시작을 잉태한다. 멈춤은 그래서 혁신이다. 후지는 멈추었고, 코닥은 멈추지 못했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천장에 도달하기 전에 그 사업을 떠나 새 사업을 찾아라.”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 교수의 말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을 물리라는 노자의 얘기와 맥이 닿아있다.
“저도 한때는 미래였습니다.” 50세에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의 은퇴사다. 그는 그쳐야 할 때 그칠 줄 알았다. ‘지지(知止)'의 리더다. 그러고 보니 ‘Good Game(좋은 게임이었다)’의 의미로 게임을 마무리할 때 쓰는 게임용어 ‘GG’도 ‘지지’다. 내 일과 삶의 정점에서 ‘GG’를 선언하며 기꺼이 내려올 수 있는 리더. 그럼으로써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리더. 그가 진짜 혁신가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혁신가이드안병민TV>를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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