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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이슈|① 디지털 의료혁명을 준비하라

FORTUNE Cover Story|The Future Issue The Future of HEALTH|① Prepare for the disigtal health revolution

  • 기사입력 2017.07.17 17:43
  • 최종수정 2018.09.04 16:20
  • 기자명 Mukherjee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미지=US 포춘

낙관주의자는 갈망하고 비관주의자는 두려워한다. 하지만 개인적 성향과 관계 없이, 미래는 인간에게 매혹적인 대상이다. 포춘은 내일의 세계를 만들어갈 사고와 기술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이번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제약·미디어·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향후 세상을 바꿀 기업 41곳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만 성공한다 해도 미래를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질 미래의 이슈 것이다.
 

이미지=US 포춘

비효율과 고비용으로 신음하던 의료업계에 창조적 파괴가 무르익고 있다. 신기술로 의료업계를 혁신해 우리 삶을 바꿔 놓을 21개 기업을 소개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중에는 아침에 입을 옷 고르는 것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도 있지만, 직업 선택처럼 인생의 항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고민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고를 수 없는 선택이 하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과 그로 인해 온갖 질병과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고장’을 겪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료업계가 다른 분야와 다른 점이다. 의학은 말 그대로 생사의 문제를 다룬다. 의료업계는 세계 어디를 가도 무질서와 비효율, 고비용이 만연해 있어 급진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가슴 아픈 통계를 몇 가지 살펴보자. 2015년, 비(非)노년층 미국인 네 명 중 한 명은 의료비를 제때 내지 못했다. 그 비율이 30%에 육박했던 2012년보단 그나마 개선된 상황이다(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 덕분에 의료보험 보장범위가 확대된 것이 한 가지 요인으로 보인다). 미시시피 주의 경우, 전체 인구의 37%가 의료서비스업자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을 연체했다. 의료비는 미국 개인파산의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연방정부는 미국의 1인당 의료비가 사상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공공과 민간이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치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의사 얼굴 한번 보는 데에만 몇 주가 걸리고, 의사 수가 환자 수요를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지역만 공식적으로 6,500곳에 이르고 있다. 다른 선진국(그리고 심지어 몇몇 개도국)에 비해 변변치 않은 보건 관련 결과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창조적 파괴의 필요성이 무르익은 셈이다. 물론 정부, 업계, 보건소비자 등 모든 이해 관계자가 동참하지 않는 한, 진정한 개혁을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21세기 미국 의료를 억지로라도 사지에서 끌어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헬스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모바일 기술을 활용해 병원이 없는 지역에서 물리적 의료 제약을 극복하고, 약 챙겨먹는 번거로움을 줄여 주고, 난치병 치료를 위한 생물학적 연구 기반을 쌓아 나가는 일 등을 하고 있다.

기술로 최적화된 미래의 모습을 엿보기 위해, 포춘은 의료계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도전장을 던진 5개 분야 혁신 기업 21곳을 선정했다. 디지털 의료 혁명의 신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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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격의료 : 보건서비스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미국에서 진료는 대개 의사들이 환자 집을 방문하는 것을 의미했다. 손에는 의료기기가 가득한 수수한 검은색 가방, 머리에는 구식 치료법이 가득 찬 의사들이 직접 환자의 침대 곁으로 찾아가곤 했다.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모습에서 미래의 보건서비스를 엿볼 수 있다. 신기술의 대두와 함께 (디지털) 왕진이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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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기업들이 있나?

보스턴에 본사를 둔 아메리칸 웰 American Well부터 샌프란시스코 벤처기업 닥터 온 디맨드 Doctor On Demand까지, 우후죽순 생겨난 원격의료 업체들이 환자의 가정이나 직장(후자가 더 많다)에서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건강기업연합(National Business Group on Health) *역주: 의료보험에 관해 대기업들을 대변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은 총 1,5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미국 대기업 133곳을 대상으로 복지 혜택에 관한 설문을 실시한 바 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90%는 올해쯤이면 직원 대상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이 일부 가능해지고, 2019년에는 전체 서비스로 그 폭이 확대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이 멋진 신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직장에서 야근 중 갑자기 열이 나고, 머리가 띵해졌다고 상상해보자. 사무실 복도에 위치한 디지털의료 현장시설(‘부스 booth’를 근사하게 표현한 ‘키오스크 kiosk’ 를 더욱 멋지게 묘사한 용어다)에 가서, 긴급 전화나 영상을 통해 의사의 자문을 구할 수 있다. 그 의사는 환자의 체온, 맥박, 혈압 등을 확인해 필요할 경우 근처 약국에 처방전을 전송해 줄 것이다. 아니면 ’퇴근 후 휴식‘을 처방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아메리칸 웰은 미국 40개 주에 300개 의료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콘센트라 Concentra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화상진료 전문의를 일부 확보하기도 했다.

기존 의료체계와 비교해 원격의료가 가진 한 가지 확실한 장점은 의사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수백만 명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면서, 미국 전역의 수많은 병원들이 호소하던 만성적 의료인 부족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은 이 문제의 해결에도 나섰다. 뉴욕의 벤처기업 노매드 헬스 Nomad Health는 내과, 응급의학과, 정신의학과 3개 분야의 병원과 의사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노매드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알렉시내젬 Alexi Nazem CEO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회사의 의료인력 배치 방식을 에어비앤비에 비유했다. 노매드는 전문적인 매칭 절차를 통해 기관이 특정 자격조건(예컨대 7월부터 뉴욕 지역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경력 5년의 외과의사)을 갖춘 의사를(혹은 반대로 의사가 기관을) 찾도록 도와 주고 있다. 이 플랫폼은 매칭된 병원과 의사가 계약을 체결할 경우, 의료과실 보험처리 같은 업무도 자동으로 처리해주고 있다.

의료 인적자원 활용의 편리성이 전부는 아니다. 이 플랫폼은 IT에 익숙한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인기인 ‘기그 이코노미 gig economy *역주: 기업이 필요할 때마다 단기 임시직으로 인력을 고용하는 형태 ’의 발전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내젬은 “프리랜서형 단기 유연근무를 선호하는 의사가 워낙 많아 인적자원 확보가 어렵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밀레니얼 세대 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프리랜서 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을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 덕분에 이런 형태의 일이 실제로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노매드는 퍼스트 라운드 캐피털 First Round Capital과 RRE 벤처스 RRE Ventures가 주관한 초기 투자 유치로 400만 달러를 확보하기도 했다.

의료벤처 외에도 모바일 의료의 부상을 이끄는 주역은 또 있다. 대표적인 교통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와 리프트 Lyft가 병원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위해 비응급 의료수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버는 작년 가을에 출시한 서큘레이션 Circulation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우버 API *역주: 운영체제나 프로그래밍언어를 제어할 수 있게 해 주는 인터페이스에 각종 의료 기록을 통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간호사, 간병인, 병원 수송담당자가 환자 수송 일정을 수월하게 잡고, 환자의 요구조건(휠체어가 필요하거나 시력에 문제가 있는 등의 문제)에 맞는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언젠가는 위에서 소개한 기술들이 의료서비스의 전달과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먼저 일어나야 할 변화가 있다. 의료보험에 새로운 변제 조항을 도입하고, 정책적으로도 별도의 허가나 인증 없이 주 경계를 넘는 의료 행위가 허가돼야 한다. 모바일 의료가 국가의 의료 비용을 절감해줄 지도 두고 볼 일이다. ‘기술 진보로 진료가 쉬워지면 환자들에 대한 과잉치료가 많아질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최근 한 건 이상 발표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세를 거스르는 건 어리석은 선택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늘 편리함을 선호해왔다. 편리하면서 저렴하기까지 하다면, 그걸 꺾을 방법은 없다.
 

이미지=US 포춘

■ 알고리듬 의료 : 빅데이터와 AI 기반의 학습형 의료

‘빅데이터’라는 용어를 워낙 자주 쓰다 보니 실제로 얼마나 ‘큰’ 데이터인지를 망각하기 십상이다. IBM에 따르면, 하루에 생성되는 데이터의 양은 250경바이트에 달한다. 매 시간 의료계에 새 연구논문, 임상시험, 연구, 환자 건강정보가 눈사태처럼 쏟아진다는 얘기다. 그 중 극히 작은 일부분을 따라잡는 것도 의사나 연구자들에겐 버거울 정도다.

이 때 머신러닝과 인공지능(AI)이 진가를 발휘한다. 컴퓨터는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인간적인 약점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방대한 연구 자료는 물론, CT스캔, 전자의료기록, 대량의 임상시험 및 게놈 연구 데이터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다. AI는 치료 효과가 가장 큰 환자를 판별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면서 병원의 행정 사무를 관리하는 방법도 바꿔놓고 있다.

▶ 어떤 기업들이 있나?

100년 역사를 가진 화이트칼라 기업, IBM의 변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졌다. 한때 둔감한 이미지를 가졌던 컴퓨터 메인프레임 및 컨설팅 업체 ‘빅 블루 Big Blue(IBM의 애칭)’는 AI에 힘입어 순식간에 디지털 헬스의 개척자로 부상했다. 변화의 일등 공신은 제퍼디! 퀴즈쇼 우승으로 유명세를 탄 인지컴퓨팅의 슈퍼스타 왓슨Watson이다. 산하 사업부 IBM 왓슨 헬스 IBM Watson Health의 의욕적 행보가 AI의 적용 범위를 매일 새롭게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왓슨 헬스는 출범 2년 만에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등 쟁쟁한 연구 기관들 뿐만 아니라 화이자 Pfizer, 메드트로닉 Medtronic, 존슨&존슨 Johnson & Johnson 같은 거대 제약 회사들과도 협력관계를 체결했다. 이들과의 계약에서 왓슨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산더미 같은 데이터 속을 누비며 숨겨진 패턴을 (운이 좋다면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왓슨은 (엑스레이나 뇌스캔 이미지 속 데이터 등) 비구조화된 데이터는 물론, 전자의료기록을 대상으로도 이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원격의료처럼 왓슨의 통찰력도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올해 왓슨의 종양학연구 부문은 병상 327개를 보유한 플로리다 주 주피터 Jupiter의 한 지역종합병원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왓슨의 슈퍼컴퓨터 성능을 활용해 암 환자들에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치료법을 추천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이를 위해 사용된 임상자료는 메모리얼 슬론케터링의 전문가 검토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의사가 스캔이나 검사 없이 환자의 얼굴만 보고 AI와 딥러닝의 도움을 받아 병명을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스턴의 벤처기업 FDNA가 페이스투진 Face2Gene이라는 플랫폼을 개발한 이유다. FDNA는 2,000개 희귀 유전병 환자들의 사진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왔다. 의사가 환자의 병변 사진을 찍어 FDNA의 모바일 앱에 올리면, 이를 분석해 연관성 있는 질병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이 기술은 진단 기법이라기보단 질병의 원인이 될 만한 유전적 요인을 추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FDNA는 이 앱이 희귀병 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진단의 여정’을 크게 줄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현재 희귀병 환자들은 평균 7명의 의사를 거쳐 정확한 진단을 받고 있다.

알고리듬 의료기술의 주요 목표는 비용절감과 조기 진단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긴 대기 시간 등 행정적 불편을 해소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지난해 10월 GE 헬스케어 GE Healthcare와 존스홉킨스 병원 Johns Hopkins Hospital은 병원의 운영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100% 디지털화한 허브를 개설한 바 있다. 주디 라이츠 가동제어센터(Judy Reitz Capacity Command Center)라 명명된 이 허브는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주요 상황 관련 정보를 끊임없이 전송 받고 있다. 10종이 넘는 존스홉킨스의 내부 IT시스템은 이 센터로 분당 500개가 넘는 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다. 센터는 이 데이터에 예측분석기술을 적용해 병목 현상을 예방하고, 환자가 신속하게 병원을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로를 추천해주고 있다.

존스홉킨스 측에 따르면, 이 센터의 초기 실적은 매우 인상적이다. 병원은 센터 도입 이후 타 의료기관으로 응급차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과거 대비 1시간 이상, 응급실 환자가 침대를 배정받는 시간이 30% 정도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변할까?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컴퓨터라 해도 기초 자료로 쓸 데이터가 공유되지 않으면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백악관 ‘암 문샷(White House Cancer Moonshot)’ *역주: 오바마 행정부의 암 치료 연구지원 프로그램 의 총괄 디렉터였던 그레그 사이먼 Greg Simon은 “의료계는 여전히 정보를 구하기가 힘든 곳”이라고 지적했다.

미 연방정부와 민간 단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 공유를 권장해왔다. 연구 내용 공개를 통해 암 치료 개발 속도를 높이고자 하는, ‘데이터의 통합 저장소’를 표방하는 유전자 데이터 공공재(Genomic Data Commons) 운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공공이나 민간 차원의 캠페인만으로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금과는 다른, 공유를 꺼리지 않는 태도가 의료계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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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세대 캡슐 : 의약품 투약 방법의 진화.

1850년대에 등장한, 당시 의료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피하주사기는 두 가지 발명품의 결합이었다: 기존 주사기(약물 계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금속에서 유리로 재질을 바꿨다)와 속이 빈 날카로운 바늘이었다. 혁신적인 피하주사기는 처음에는 아편유사제 *역주: 아편(모르핀)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 향정신성 물질 같은 진통제 주입에 사용되었지만, 1921년 인슐린의 등장 이후 게임 체인저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인슐린은 진통제와 달리 소화를 통한 흡수가 불가능해, 주사나 펌프 형태로 인체에 주입해야 혈당조절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후 수십 년간, 의약품의 투약 방법은 진화를 거듭했다. 1회용 주사기의 사용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지금도 발전은 진행 되고 있다.

▶ 어떤 기업들이 있나?

최근 몇 년간 브래번 제약 Braeburn Pharmaceuticals, 인타시아 테라퓨틱스 Intarcia Therapeutics,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 Proteus Digital Health 등 여러 기업이 기존 약물의 효능을 높여 주는 투약 장비를 개발해왔다. 이는 당뇨병 환자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매일같이 손끝을 따서 혈당수치를 재거나, 인슐린 용량을 일일이 손으로 조절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런 기술은 엄격한 처방을 따르지 않아 중독 증세가 재발할 위험에 처해 있는 아편유사제 중독자에게도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지난해 5월 브래번이 파트너사인 타이탄 제약 Titan Pharmaceuticals과 함께 허가를 신청한 삽입형 아편유사제 중독치료제가 동종 약물 최초로 미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승인을 받았다. 프로부핀 Probuphine이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성냥개비만한 크기로, 간단한 외래 수술로 환자의 팔에 이식할 수 있다. 이 제품에는 부프레노르핀 buprenorphine이라는 약품이 들어 있다. 부프레노르핀은 아편유사제이긴 하지만, 더 효과가 강한 옥시콘틴 OxyContin이나 모르핀 같은 쾌감이나 중독적 고양감은 유발하지 않는다.

환자가 직접 투약해야 했던 기존 치료제와 달리, 프로부핀은 소량의 부프레노르핀을 계속 혈관에 주입한다. 따라서 환자는 자연스럽게 처방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프로부핀은 한 번 이식하면 최대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장기 자동투약 시스템은 뇌 질환부터 당뇨까지 거의 모든 질병에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특히 당뇨는 인타시아가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이다. 인타시아는 6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당뇨 치료제를 혈관에 주입할 수 있는 피하 삽입형 펌프를 자체 개발했는데, 현재 FDA의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아직 시판 허가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 기술을 다른 질병과의 싸움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HIV다.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은 ‘인타시아 제품을 활용해 HIV 감염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에게 예방약을 투여할 수 있다는 분석에 따라, 최대 1억 4,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에 소개한 혁신들은 모두 ‘약을 개발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환자가 실제로 투약하지 않으면 제대로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 정해진 투약법을 따르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비용도 결코 적지가 않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잘못된 투약으로 인해 매년 약 3,0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투약의 자동화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임에 틀림 없지만,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 프로테우스의 ‘스마트 알약’ 플랫폼인 디스커버 Discover는 스마트폰 앱과 부착형 센서, 그리고 삼킬 수 있는 센서로 구성되어 있다. 의료진은 이 디스커버 앱을 통해 환자의 생체 정보를 파악하고, 환자가 정해진 처방전을 따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나 담당 의사가 최적의 투약 방식을 찾는 데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다.

▶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투약 방식의 개선은 선진국 국민들의 생명을 구해 보건비용을 매년 수십억 달러씩 절감하게 해줄 것이다. 패치형 백신, 장기적인 사용이 가능한 삽입형 HIV/AIDS 치료제 등은 세계 최빈국들의 질병 예방 및 치료법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이제는 콘텐츠의 ‘전달 방식’이 혁명의 중심에 서있는 듯하다.
 

이미지=US 포춘

■ 유전자 혁명 : 생명의 설계도를 정밀 편집하다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 생명의 기원을 구성하는 네 가지 물질이다. 이 네 개의 ‘글자’가 모여 DNA의 유전암호가 구성된다. 이들의 조합에 따라 신체적 특징부터 끔찍한 선천성 질환 보유 여부까지 모든 개인의 구성요소가 결정된다.

의학계의 가장 큰 꿈 중 하나가 인간을 구성하는 화학적 설계도를 조작하는 것이란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퍼-카스9 Crispr-Cas9 유전자 가위라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등장한 덕분에, 그 꿈이 이뤄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 어떤 기업들이 있나?

크리스퍼는 21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바이오테크 기술(혹은 최소한 그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유전자 편집 자체가 신기술이어서가 아니다(과거에도 있었다). 크리스퍼 덕분에 분자 가위로 유전암호 내 비정상적인 부분을 올바른 것으로 대체하는 과정이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크리스퍼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이론상으로는 겸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 등 각종 유전병 치료부터 HIV 퇴치를 위한 유전자 발견까지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암 면역학 연구를 후원해 온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션 파커 Sean Parker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협력 연구소에서 인간 대상 1차 크리스퍼 임상시험을 연내에 시작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 3월에는 아일랜드의 제약대기업 앨러건 Allergan이 크리스퍼 전문 기업 에디타스 메디신 Editas Medicine과 9,00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중증 안구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에디타스의 실험적 치료법에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유전자 가위에는 크리스퍼 카스9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4월 12일 텍사스주립대 남서부 의료센터(University of Texas Southwestern Medical)의 연구진은 Cpf1이라는 이름의 효소와 유전자 편집 가위를 활용해 뒤시엔느 근육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병은 근세포 괴사를 유발하는 질환이다. 크리스퍼-Cpf1은 카스9 계열보다 더욱 잠재력이 큰데, Cpf1 효소의 크기가 더 작아 카스9가 닿지 못하는 부분까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퍼는 그 정확성 덕분에 예전에는 유전자 편집 비용이나 난이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연구 기관들에게 새로운 혁신의 장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의를 가진다. 크리스퍼와 연관된 여러 효소들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놓고 연구진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 청두에 위치한 쓰촨대학교의 연구진은 지난해 10월,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최초의 인간 크리스퍼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미국의 과학자 칼 준 Carl June은 이 시험에 대해 “스푸트니크 2.0의 도래를 촉발시켜 미ㆍ중 간의 바이오의학 결투를 가져올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전자 혁명은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규제의 혁명도 시작됐다. 유전자 관련 기술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신에 대한 두려움(혹은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규제 당국은 유전자 기술의 실제 적용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23앤드미 23andMe가 지난 4월 초 받은 FDA 승인은 큰 의미를 가진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 Alphabet의 투자를 받은 이 기업의 시장가치는 11억 달러로 평가된다. 23앤드미는 10개 질병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및 이와 관련된 건강상의 위험 보고)를 처방전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사상 최초로 획득했다. 10개 질병에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복강병(셀리악병)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늘 승리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23앤드미는 처방전이 필요 없는 검사 및 건강 보고서를 예전부터 판매해왔다. 하지만 2013년 11월, FDA가 이 상품이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의료기기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엄중한 경고를 23앤드미의 앤 워치츠키 Anne Wojcicki 공동창립자 겸 CEO에게 송부했다. 23앤드미는 자사의 유전자 검사가 정확하고, 소비자들에게 혼란이나 위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건강상의 위험 보고서가 명확하다는 사실을 관계 당국에 입증하기 위해 당시 제공하던 서비스 중 상당수를 잠정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23앤드미는 화려한 귀환에 성공했다. 바이오제약 업계에선 드문 일이다. 워치츠키는 FDA 승인을 공표하면서 “FDA는 이 정보에 대한 소비자의 직접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혁신을 수용하고 연구진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유전기술이 SF 소재에서 실제 현실로 진화하는 과정은 의학적·재정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일까?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Jennifer Doudna와 그녀의 연구 파트너인 독일 막스플랑크 감염생물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Infection Biology)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Emmanuelle Charpentier, 두 사람의 라이벌인 MIT·하버드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의 펑 장 Feng Zhang, 그리고 세 연구자와 제휴한 여러 바이오기술 기업들은 크리스퍼-카스9에 대한 권리를 둘러싸고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흙탕 같은 특허전쟁에 휘말려 들었다(올 초 미국에서 열린 핵심 지재권 재판에선 장과 브로드 연구소가 승리했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선 아직 분쟁이 진행 중이다).

윤리적 우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전 기술은 아직 부모의 요구에 맞춘 ‘맞춤형 아기’를 만들 만큼 진보하지 못했다. 23앤드미의 가정용 DNA 키트조차도 논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대처할 방법이 없는 소비자들에게 알츠하이머병 발병 확률이 높다고 알려 주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지를 놓고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혁명은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이미지=US 포춘

■ 제약업계의 새로운 개척자 : 새롭고 과감한 신약 개발 방식.

대형 제약사와 소규모 바이오기술 업체 간의 구분이 흐려지고 있다. 대형 제약사들이 업계의 그리 불결하지 않은 작은 비밀 하나를 깨닫고 있다. 자체 연구소 안에서 획기적인 새 분자를 연구하기보단, 연구 아웃소싱 및 기술도입(inlicensing)을 활용하는 전략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도입과 M&A에 적극적인 앨러건의 브렌트 손더스 Brent Saunders CEO는 올해 포춘과 가진 인터뷰에서 “단일 회사의 힘만으론 업계 최고의 아이디어를 독점할 수 없다. 제아무리 연구소를 세워 신약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 해도, 우리끼리 우리 건물 안에서 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면, 작은 연못이 아닌 거대한 바다에서 혁신이라는 고기를 낚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약 개발 방식의 변화는 협업 모델로의 전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몇몇 기업은 의학 발전을 위해 새로운 사고 방식 도입 외에도 지구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 어떤 기업들이 있나?

지난 2월 일론 머스크 Elon Musk가 세운 민간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 SpaceX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의 상용 물자 재공급 계약에 따라 10번째 발사를 진행했다. 스페이스엑스의 우주선 드래건 Dragon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실어 나른 짐 중에는 머크 Merck 같은 제약회사가 맡긴 바이오기술 관련 화물도 들어 있었다.

NASA의 위탁을 받아 ISS 내 미국국립연구소(U.S. National Lab)를 관리 중인 미 우주과학발전센터(Center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in Space · CASIS)와 머크는 2012년부터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CASIS는 ‘(우주정거장이라는) 전대미문의 혁신 플랫폼 활용’을 촉진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는데, 머크는 신약개발 실험을 미소중력(microgravity) *역주: 무중력에 가까울 정도로 중력이 낮은 상태 공간에서 수행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머크 소속의 구조화학 전문가 폴 라이커트 Paul Reichert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주정거장은 지구 상에선 불가능한, 온갖 종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실험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분자가 밀도에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흩뿌려지는 확산 현상(과포화 상태의 유리컵에 설탕을 더 넣을 때 녹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은 중력에 의한 것이므로, 우주에선 찾아볼 수 없다. 머크는 중력이 극도로 낮아질 때 구조가 더 커지고 탄탄해지는 성질을 가진 단백질 결정을 재배하는 것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이 회사는 ISS에서 차세대 암 치료제 키트루다 Keytruda를 실험하고 있다. 라이커트에 따르면, 키트루다 같은 화합물의 “구조 및 전달, 정제 부문에서 미소중력 환경이 끼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것”이 머크의 실험 목표다. 중력으로 인한 분자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ISS 미국 국립연구소의 환경이 지구 상에서 진행되는 의약품 개발 및 전달 방식 개선에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창업지원 시설에서 세계적인 연구시설까지, 생물학적 설계도 변경에서 그 비밀을 푸는 컴퓨터의 발명까지, 지구 상의 실험에서 우주 실험까지, 다양한 의료혁명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정책 당국과 과학계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변하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술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이 혁명을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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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Sy Mukherj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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