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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속의 시계 | HYT] 고대 파라오 물시계서 영감받은 독특한 브랜드

  • 기사입력 2020.03.27 15:14
  • 최종수정 2020.03.27 15:16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20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YT는 혜성같이 등장한 신진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다. 2012년 바젤월드에서 ‘압력 조절 유체 모듈’을 사용한 시계를 내놓으며 데뷔와 함께 업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시곗바늘 대신 액체의 이동 거리로 시간을 표시하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H5.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이 적용됐다. 다이얼 외곽을 따라 이어진 직경 0.8mm 유리 튜브 안 유색 액체가 이동하며 시간을 표시한다. 사진=HYT
H5.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이 적용됐다. 다이얼 외곽을 따라 이어진 직경 0.8mm 유리 튜브 안 유색 액체가 이동하며 시간을 표시한다. 사진=HYT

[Fortune Korea] 최근 명품시계 업계는 ‘혁신’ 단어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200여 년 전에 나온 기술에 아주 사소한 부품이나 소재 하나 바꾼 걸 가지고도 마치 세상을 바꿀 무엇이라도 개발했는 양 호들갑을 떨 정도이다. 작은 변화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는 ‘특수성’이 있는 곳임을 고려해도 가끔은 도가 지나친 혁신 자화자찬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명품시계 업계 동향은 시계 마니아들의 권태감을 촉발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업체들의 자화자찬 마케팅에 큰 기대를 했지만 실제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어느 시계나 새로울 것 없이 다 고만고만하다’는 마니아적 권태감이 시작된다. 명품시계 업체들이 시계 관련성이 떨어지는 데도 굳이 시계와 엮어 이벤트를 마련한다든가 유명인을 홍보대사로 내세운다든가 하는 것 등은 이런 마니아적 권태감을 덜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여기 마니아적 권태감에 찌든 이라도 눈이 번쩍 뜨일 말한 신진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가 하나 있다. 2012년 론칭한 HYT(Hydro Mechanical Horologists)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브랜드는 액체를 이용해 시간을 표시하는 ‘완전히 새로운’ 메커니즘을 선보이며 명품시계 업계에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물시계를 손목 위로

HYT의 시작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HYT 창립자인 뤼시앵 부야모스 Lucien Vouillamoz는 3,400년 전 고대 파라오 물시계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 고대 물시계는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물통의 수위를 올려 그 변한 수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고대 물시계에 꽂힌 뤼시앵 부야모스는 이 물시계를 손목시계로 만들고 싶다는 매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괴짜 곁에는 괴짜가 많은 법이었을까? 뤼시앙 부야모스의 이 황당한 아이디어에 오랜 친구들이 의기투합했다. 자동차 공학 전공자였던 패트릭 베도즈 Patrick Berdoz와 나노 테크놀로지 전문가였던 에마누엘 사비오즈 Emmanuel Savioz가 그들이었다.

이들은 진지하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우선 그들은 HYT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리고 ‘손목에 차는 물시계’라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사업 아이템으로 구체화했다. 또 투자자를 확보했으며 제품 개발을 현실화할 마이크로 엔지니어링 기업 프레시플렉스 Preciflex를 인수했다.

이들이 특별한 시계 제작을 위해 투자자와 시계 전문 마이크로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소문은 마침내 하이엔드 시계 업계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2010년, 독특한 무브먼트 개발자로 이름이 높은 장-프랑소아 모잔 Jean-François Mojon과 그 휘하의 크로노드 Chronode R&D팀 그리고 거물 워치메이커 장-프랑소아 르슈네 Jean-François Ruchonnet와 촉망받는 시계 디자이너 뱅상 페리야르 Vincent Perriard가 합류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2012년 3월, HYT가 마침내 엉뚱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첫 시계 H1을 세계 시계 브랜드 경연장 바젤월드에서 공개했다. H1은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2012 바젤월드의 주인공이 됐다. 같은 해 HYT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계 시상식인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를 비롯해 3개 시상식에서 연달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HYT는 세계 시계 시장 데뷔와 동시에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타이틀을 거머쥐며 단번에 업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 설명도. 이미지=HYT

◆ 고대 물시계와 차이점

HYT가 개발한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이 적용된 H1 시계는 어떤 것이었기에 그토록 화제가 됐을까? 기사 서두의 H5 모델을 보면 이해가 쉽다.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이 적용된 이 시계는 시침이 없는 대신, 다이얼 외곽을 따라 이어진 직경 0.8mm 유리 튜브 안 유색 액체가 이동하며 시간을 대신 표시한다. 6시 방향부터 이어진 유색 액체가 멈춰선 끝 부분이 현재 시간이다.

뤼시앙 부야모스가 영감을 받은 3,400년 전 고대 파라오 물시계와 액체 유동 메커니즘이 적용된 HYT 시계를 비교해보면 초기 HYT 엔지니어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두 시계는 액체를 이용한다는 것과 액체 끝 부분의 이동 경과를 보고 시간을 파악한다는 기본 구조는 같다.

하지만 두 시계의 구동 원리는 전혀 다르다. 중력이 두 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고대 물시계는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이용하는 만큼 중력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고정돼 있지 않은 손목시계는 떨어지는 물방울을 이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중력을 거스르기도 해야 해 중력이 오히려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됐다.

HYT 엔지니어들의 고민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2002년 의기투합 이후 첫 시계를 선보이기까지 무려 10년이나 걸렸을 정도였다. 이들은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대체하는 데는 현대 기계식 시계 메커니즘을, 중력을 극복하며 물이 흐르는 코스를 만드는 데는 벨로우를 이용한 압력 조절 유체 모듈을 사용했다.

순나우. 2015년 론칭한 스컬을 리뉴얼한 모델이다. 2018년 처음 선보였다. 팝아트 혹은 미디어아트를 연상케 하는 해골 다이얼이 인상적이다. 코팅 유리관 안쪽과 바깥쪽을 대비해 안으로는 313개에 달하는 18K 골드핀을 박아 입체적인 해골 모양을 구현했다. 이전까지 다이얼 외곽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 시간 인덱스는 해골 윤곽을 따라 영문으로 바뀌었다. 해골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각각 초와 파워리저브를 표시하는 인디케이터로 사용한 아이디어가 재밌다. 사진=HYT
순나우. 2015년 론칭한 스컬을 리뉴얼한 모델이다. 2018년 처음 선보였다. 팝아트 혹은 미디어아트를 연상케 하는 해골 다이얼이 인상적이다. 코팅 유리관 안쪽과 바깥쪽을 대비해 안으로는 313개에 달하는 18K 골드핀을 박아 입체적인 해골 모양을 구현했다. 이전까지 다이얼 외곽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 시간 인덱스는 해골 윤곽을 따라 영문으로 바뀌었다. 해골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각각 초와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로 사용한 아이디어가 재밌다. 사진=HYT

◆ 액체 유동 방식 원리

이 중 액체 유동 방식 메커니즘의 핵심은 후자인 벨로우를 이용한 압력 조절 유체 모듈이다. 다이얼 6시 방향에 위치한 이 장치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 각각의 액체를 왼쪽과 오른쪽 벨로우에 구별해 넣은 다음, 시간의 흐름에 맞게 양쪽의 압력을 조절해 시간을 표시한다. 왼쪽 벨로우에는 유색 액체를, 오른쪽 벨로우에는 무색 액체를 넣어 두 액체가 영토 싸움을 하듯이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HYT에 따르면 이 유체 모듈 개발에만 1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의기투합 이후 첫 시계를 내놓을 때까지의 시간과 일치한다. 이 아이디어를 생각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유체 모듈에 들어가는 부품 제작이 워낙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유체 모듈에 사용되는 부품은 프레시플렉스 주도로 개발·제작됐다. 프레시플렉스는 2002년까지만 해도 의료기기 제작업체로 이름이 높았지만 이 프로젝트 이후부턴 마이크로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더 유명해졌다. 두께가 사람 머리카락 4분의 1에 불과한 미세 벽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지속적인 압축과 팽창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벨로우와 가시성·심미성·내구성·자외선 저항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반발력을 가지고 있어 섞이지 않는 두 액체 염료, 그리고 이 염료가 흐를 때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굴곡면을 살릴 수 있는 수 있는 0.8mm 코팅 유리관 등이 프레시플렉스의 작품이다.

이렇게 완성된 유체 모듈은 기계식 무브먼트로 동력을 전달받는다.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대체하는 데는 시간의 역사에 깊이 이름을 새긴 기계식 무브먼트가 상징성 면에서 제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태엽이 풀리면서 생긴 에너지가 기어 트레인과 밸런스 휠, 이스케이프먼트 휠을 거쳐 일정한 속도로 조절되는 모습은 고대 물시계의 핵심 부품인 물방울 낙하장치가 그 속도를 일정하게 제어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H3. 2020년 3월 현재 HYT에서 유일하게 사각형 케이스와 직선형 코팅 유리관을 사용한 모델이다. HYT 다른 모델들이 라운드형 케이스와 코팅 유리관, 혹은 해골 모양 코팅 유리관을 사용한 것과 비교된다. 코팅 유리관 하단에는 알루미늄 큐브 6개가 일렬로 늘어서 시간 인덱스 역할을 대신한다. 4개 면을 가지고 있는 큐브가 6시간 단위로 회전해 모든 시간을 표시한다. 큐브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선형 사파이어 글라스는 분 표시 인덱스이다. 스켈레톤 처리한 다이얼과 어울려 메카닉한 매력을 뽐낸다. 사진=HYT
H3. 2020년 3월 현재 HYT에서 유일하게 사각형 케이스와 직선형 코팅 유리관을 사용한 모델이다. HYT 다른 모델들이 라운드형 케이스와 코팅 유리관, 혹은 해골 모양 코팅 유리관을 사용한 것과 비교된다. 코팅 유리관 하단에는 알루미늄 큐브 6개가 일렬로 늘어서 시간 인덱스 역할을 대신한다. 4개 면을 가지고 있는 큐브가 6시간 단위로 회전해 모든 시간을 표시한다. 큐브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선형 사파이어 글라스는 분 표시 인덱스이다. 스켈레톤 처리한 다이얼과 어울려 메카닉한 매력을 뽐낸다. 사진=HYT

◆ 질적인 도약 계속

등장과 동시에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타이틀을 얻은 HYT는 이후 오데마 피게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 제조사로 유명한 르노 파피 Renaud & Papi와 파트너 관계를 맺으며 명품시계 제조사로서 더욱 질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HYT 산하 프레시플렉스와 르노 파피가 협업하면서 시계 제작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와 기술·디자인 융통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누적된 워치메이킹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HYT는 2015년 스컬(2018년 순나우 컬렉션으로 리뉴얼됐다), H3, H4 모델을 연달아 론칭하며 업그레이드한 실력을 과시했다. 이 세 모델은 모두 빼어난 아이디어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들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름과 같이 해골을 모티프로 한 스컬은 0.8mm 코팅 유리관을 해골 모양으로 굴곡을 줘 눈길을 끌었다. 이전까지 다이얼 외곽을 따라 둥글게 배열했던 유리관이 일정 각도 이상 꺾여도 성능을 담보할 수 있게끔 기술력을 확보한 덕분이었다. 꺾이는 부분 영향으로 관에 아주 작은 기포라도 남게 되면 시계 정밀도에 악영향(고도에 따라 기포가 팽창하거나 수축하기 때문)을 끼치는 데다 벨로우 압력 조절 타이밍도 더 섬세히 조절해야 해 이전까지는 구현하지 못하던 기술이었다. 코팅 유리관 제작은 HYT 시계 제작에서 가장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으로 꼽힌다.

H3는 가로로 길쭉한 사각형 케이스를 사용한 데다 코팅 유리관도 기존의 라운드형이 아닌 직선 형태를 사용(이전에 나온 H1, H2, 스컬 모델은 모두 라운드형 코팅 유리관과 케이스를 사용했다)해 주목받았다. 벨로우를 이용한 압력 조절 유체 모듈 장치는 같지만, 하루 시간을 4등분해 이를 코팅 유리관 아래 회전 큐브 인덱스로 표현하는 깜찍한 아이디어가 인상 깊은 모델이었다. 여기에 다이얼을 스켈레톤 처리한 덕분에 자동차 엔진을 연상케 하는 메카닉한 매력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2015년의 대미를 장식한 H4 메트로폴리스는 시계 업계 최초로 마이크로 제너레이터를 내재한 모델로 화제가 됐다. HYT 브랜드 최초의 더블 크라운 모델이기도 한 이 시계는 아래쪽 크라운을 돌리면 제너레이터가 충전돼 이후 크라운 상단을 누르면 다이얼 6시 방향의 두 개 LED가 빛을 발하는 구조였다.

명품시계 업계의 루키이자 혁신가인 HYT의 발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6년에는 불투명한 검은 액체와 슈퍼 루미노바를 대비시킨 H1 고스트 모델을 출시했고 2018년에는 입체감을 더 극대화한 돔형 케이스의 H0를 론칭했다. 올해는 팝아트, 미디어아트를 연상시키는 순나우 드롭 쓰리 모델을 론칭하며 디자인 부문에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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