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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인터뷰 | 김원일 신창제지공업 대표
포춘코리아 인터뷰 | 김원일 신창제지공업 대표
  • 하제헌 기자
  • 승인 2020.03.09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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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입•재고•생산중단 없는 3無 회사
- 안정적 경영 기반 미래를 준비한다

이 콘텐츠는 포춘코리아 2020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창제지공업은 국내에서 1~2위를 다투는 위생지(화장지) 생산 기업이다. 3세 경영인인 김원일 대표를 만나 신창제지공업이 걸어 온 길에 대해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공장에서 생산한 점보롤을 들고 있는 김원일 신창제지공업 대표. 사진 차병선 기자.

신창제지공업은 위생지(두루마리 화장지) 전문 제조업체다. 국내에선 신창제지공업과 함께 유한킴벌리, 깨끗한나라, 모나리자, 쌍용, 삼정펄프, 대왕제지가 위생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신창제지공업은 특히 휴게소•대형건물 화장실용 대용량 위생지(흔히 점보롤이라고 한다)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다. 높은 기술력 덕분에 유한킴벌리나 깨끗한나라 같은 대기업도 신창제지공업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을 맡기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신창제지공업에서 김원일 대표를 만났다. 김원일 대표는 3세 경영인이다. 김원일 대표는 대왕제지를 창업한 고(故) 김창규 회장의 장손이다. 김원일 대표는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먼저 풀어냈다. 이는 신창제지공업을 들여다 보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배경지식을 얻는 과정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고 김창규 회장은 17세에 일본 제지회사의 한국 지사 중 한 곳이었던 군산제지 공장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다. 성실했던 김창규 회장은 우수사원으로 선발돼 일본에서 기술연수를 받을 기회를 잡았다.
이후 제지 업계에서 한 우물을 판 김창규 회장은 1986년, 자본금 3억6,000만 원으로 대왕제지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이어서 신창제지공업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대왕제지를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경쟁사 중 한곳이었던 동신제지를 2001년에 인수하셨습니다. 동신제지 법인명을 신창제지공업으로 바꾸고 제 아버지인 김석구 회장님이 20년 동안 경영을 했습니다.”
당시 동신제지는 동신약품 계열사로 대왕제지보다 규모가 큰 회사였다. 하지만 동신제지는 흑자를 내본 적 없는 기업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동신제지는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당시 동신제지 공장 가동률은 50%를 밑돌았다. 고 김창규 회장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판단하고 2001년 동신제지를 인수했다. 인수 대금 100억 원은 모두 현금으로 지급했다.
김원일 대표는 말한다. “인수 이후 아버지이신 김석구 회장님은 회사가 번 돈을 유보금으로 계속 적립하고 계셨어요. 오래된 기계와 건물들을 보수하고 다지는 것은 회사를 창업하는 것 보다 몇 배는 힘듭니다. 김석구 회장님은 초기 5년동안은 월급도 받지 않으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인수한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데만 몰두하셨습니다. 그 결과 회사에 현금을 쌓아둘 수 있었죠. 차입금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늘이 맑을 때, 비바람 불고 삭풍이 부는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게 선대 회장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신창제지공업에서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대왕제지가 신창제지공업의 모기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엄연히 별도 법인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높은 기술력으로 만드는 점보롤 위생지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철학(복수전공)을 전공한 김원일 대표는 10여년 전 신창제지공업 경영에 참여했다. 3년 전부터 실질적으로 회사를 이끌다가 올해 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 대표는 3세 경영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현장을 가까이 했다. 그는 3세 경영인이라는 꼬리표가 주홍글씨가 되지 않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현장을 잘 모르는 책상물림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어요. 입사한 뒤 6개월 이상을 원료를 쌓아두는 창고에 들어가 청소만 했습니다. 현장을 잘 아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위생지를 만드는 건 그다지 우아한 일이 아니다. 위생지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공정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대부분 위생지 회사들은 펄프나 재활용 종이(고지)를 단독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신창제지공업은 펄프와 고지를 섞어서 사용한다. 신창제지공업의 특징이다. 고지를 사용해 품질 좋은 화장지를 만드는 게 신창제지공업이 가진 핵심 기술이다. 원료비도 절감할 수 있다 보니 이익률도 높은 편이다.
김원일 대표가 말한다. “펄프와 고지를 섞는 노하우에 신창제지공업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배합 기술력이 좋습니다. 두 원료를 배합하는 비율에 따라 인장강도, 백색도, 평량(坪量•1㎡ 면적의 종이 중량을 그램(g)으로 나타낸 것) 등이 달라지고 이것에 따라 품질차이가 납니다. 신창제지공업은 점보롤 시장에서 압도적인 품질을 자랑합니다.”
화장지 제조 공정은 크게 다섯 단계로 이뤄진다. ‘해리’, ‘정선’, ‘초지’, ‘합지’, ‘가공’ 순서다. 해리는 코팅지(우유팩, 종이컵지 등)와 일반지(인쇄된 A4용지, 노트 등) 두 종류의 원료들을 각각 약품과 함께 섞은 뒤 거대한 믹서기로 분쇄하는 과정이다. 코팅지의 경우 이 과정에서 종이와 비닐이 분리되며 일반지는 잉크가 제거된다.
정선은 앞선 해리 과정에서 미처 제거하지 못한 비닐이나 잉크, 이물질을 완벽에 가깝게 걸러내는 공정이다. 김 대표는 정선 공정에 회사의 핵심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선 공정에서 이뤄지는 구체적인 작업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후 초지 공정은 저장탱크(체스트)에 두 원료를 합친 뒤 위생지 원단으로 생산하는 과정이다. 헤드박스라는 장치가 배합된 원료를 길이 약 3m짜리 모포 위로 빠르게 분사한다. 이를 드라이어라 부르는 건조기계가 순간적으로 말려 위생지 모양을 갖춘 뒤 원통(롤) 형태로 감는다. 이 롤 형태 제품을 원단이라고 하는데 무게만 약 1톤에 달한다.
이후 합지 공정은 초지 공정에서 완성된 원단을 거래처 발주에 맞춰 재단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가공 공정에선 재단된 원단을 받아 가정이나 공중 화장실에서 쓸 수 있는 최종 위생지 제품으로 만든다.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원일 대표. 사진 차병선 기자.

생산 제품 모두 판매하고 무차입 경영 중
전체 임직원 100여명이 근무하는 신창제지공업은 지난해 약 450억 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올렸다. 신창제지공업은 사업을 하며 위험을 겪은 일이 없는 견실한 기업이다. 고 김창규 선대 회장에 이어 김석구 회장도 무차입 경영을 실천하면서 회사를 탄탄하게 경영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위생지가 생필품이라 회사 경영 상태가 안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꾸준히 소비가 이뤄지고 재구매가 일어나는 제품이니 경기를 탈 일이 없을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원일 대표의 설명이다. 위생지를 만드는 원료는 모두 수입해야 한다. 국제 펄프 가격 등락에 따라 원자재 수입 가격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 환율 변동에 따라 원가가 달라지기는 건 기본이다. 기계 특성상 24시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가스비와 전기세도 많이 나간다.
김원일 대표가 말한다. “20년 동안 기계가 멈춘 적이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계속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요. 생산한 제품은 모두 팔립니다. 재고가 없어요. 지금 저희가 올리는 1년 매출액은 최대 생산, 전량 판매로 얻은 겁니다. 매출액을 늘리려면 공장을 확장해 생산능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어요.”
대부분 제지회사는 서울에 본사가 있고 공장은 지방에 있다. 구매와 관리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신창제지공업은 사무실과 공장이 붙어있어 소통이 빠르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저희는 다른 위생지 회사들과 달리 20~30대 젊은 직원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무실 직원들이 최소 일주일에 2번 공장을 둘러보고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생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토론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김원일 대표는 예전과 같지 않은 시대에 대표를 맡았다. 시대 변화와 불경기가 사업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경기는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보통은 경기가 좋을 때 재투자를 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럴 경우 시장에선 경쟁이 치열해진다.
김원일 대표가 말한다. “경기가 나쁘고 시장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현금 확보가 중요합니다. 저희는 공장 설비 투자에는 아끼지 않되 최대한 현금을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금이 있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그래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이를 설명하며 “선대 회장 때부터 지켜온 신창제지공업의 경영철학”이라고 설명했다.

김원일 대표는 신창제지공업을 ‘사원증이 자랑스러운 회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 차병선 기자.

폐합성수지 사업 구상 중
김원일 대표는 신창제지공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안정적으로 매출을 내는 견실한 회사지만 현실에 안주할 수만은 없어서다. “저는 환경 산업에서 신창제지공업의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위생지 사업과 연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해 봤어요. 환경 분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는 폐합성수지를 활용한 새로운 환경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신창제지공업은 해리와 정선 공정에서 분리된 비닐(폐합성수지)을 수거한 뒤 압축해 모아두고 있다. 그런데 이 폐합성수지를 팰릿(알갱이•pellet) 형태로 가공할 경우 PVC파이프와 시멘트 첨가물 또는 발전소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소각 시 높은 열량을 내는 최고급 원료에 속한다.
김 대표가 설명한다. “위생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폐합성수지를 직접 팰릿 형태로 가공해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 수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희가 위생지를 만들면서 내는 영업이익률이 5% 정도입니다. 반면 폐합성수지를 이용한 팰릿은 영업이익률이 40% 정도죠. 좋은 사업 아이템입니다. 이 사업의 성공 관건은 환경과 관련한 허가 문제와 중국 내 판매처 확보에 있습니다.”
신창제지공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로서 그는 직원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시대가 변할수록 단순하게 행동하자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임직원들에게 생각을 줄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만 집중해서 최고가 되라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대표를 믿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분석하고 해결하는 일은 제 몫이라고요.”
김원일 대표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티슈프린스’라고 불렸다. 김 대표 집에서 위생지 사업을 하고 있는걸 아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는 이 별명이 무척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위생지 사업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넘쳤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자신을 넘어 임직원들에게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 있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20대 때부터 사람들에게 ‘신창제지공업을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사원증이 자랑스러운 회사로 만들겠다고요.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신창제지공업 사원증을 보여줬을 때 ‘좋은 회사 다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목
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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