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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FORTUNE'S EXPERT | 안병민의 ‘경영 수다’

혁신군주 세종, 그리고 영화 '천문'

  • 기사입력 2020.01.28 11:32
  • 기자명 포춘코리아 기자

▶세종대왕과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천문>을 보면 혁신에 대한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일하는 목적을 알고, 저항을 극복해야 하며, 이 모든 걸 함께할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 안병민 대표◀

※ 이 콘텐츠는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2020년 2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천문> 포스터.

코끼리가 커다란 물통을 지고 있는 중국의 물시계 그림을 보면서 세종이 묻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똑같이 만들어 볼 수 있겠느냐?” 장영실이 대답합니다. “이 코끼리 그림은 그저 허상일 뿐이옵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조선의 것으로 조선에 맞는 것을 만들면 됩니다.” 이 말에 세종은 ‘심쿵'합니다. 독립적 주체로 우뚝 서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내 뜻을 알아주는 이를 찾은 겁니다. 세종과 장영실이 ‘통(通)’하는 장면입니다. 
영화 <천문>을 보았습니다. 조선의 하늘로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물론 100퍼센트 사실은 아닙니다. 감독도 영화 첫머리에서 이를 밝힙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상상의 산물임을. 그럼에도 영화 속 세종과 장영실이 빚어내는 혁신의 드라마는 이 시대 리더들에겐 또 하나의 혁신 교재입니다. 영화 <천문> 속 혁신 키워드를 뽑아봅니다.
당시 조선에는 ‘앙부일구(仰釜日晷)’라는 해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를 이용하는 해시계는 해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법. 흐린 날이나 해가 진 밤에는 무용지물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세종의 눈에 들어온 중국의 물시계 그림. 그걸 똑같이 만들려는 세종에게 장영실이 얘기합니다. 조선에 맞는 조선의 물시계를 만들겠다고요. 중국의 생각을 베끼거나 따라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혁신군주 세종도 바라던 바였습니다. 제2의 중국, 즉 명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제1의 조선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독립선언이었으니까요. 
영화 <천문>에서 읽을 수 있는 혁신의 첫 번째 키워드는, 그래서 ‘목적(目的)’입니다.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을 알아야 열정이 생깁니다.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일에 영혼이 담길 리 없습니다. 혁신의 목적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백성들을 시간의 암흑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겠다는 애민(愛民)의 목적, 중국을 모방하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주(自主)의 목적.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자격루(自擊漏)’ 입니다. 물을 이용한 자동 알람 시계이지요. “이제 우리의 백성들은 낮이고 밤이고 이 자격루의 종소리에 맞추어 생활하게 될 것이다.” 명확한 목적이 만들어 낸 위대한 혁신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더 큰 꿈을 꿉니다. “백성들을 만나 직접 들어보니 명나라 절기가 우리와 맞지 않아 씨를 뿌리고 거두는 데 아주 애를 먹고 있다 하더이다. 우리 땅에 맞는 우리의 절기를 과인이 한번 정확하게 측정해보려 하오.” 우리의 절기를 직접 측정하기로 마음먹은 세종. ‘조선 시계’에 이은 ‘조선 달력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혁신의 선순환입니다. 목적을 가진 일은 이렇게 사명감으로 이어집니다. 내 삶의 소명이 되는 거지요. 
혁신의 시도에는 저항 또한 거셉니다. 오랜 기간 과거를 답습하면서 퇴적된 꼰대 근성입니다. “하늘을 여는 천문역법은 명나라 황제만이 다룰 수 있는 것이옵니다. 비록 명력에 흠이 있다 하더라도 자식이 아비의 뜻을 거스르지 않듯이 조선은 명나라를 따라야 하옵니다.” 천문(天文). 하늘의 질서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통해 시간과 절기의 변화를 알아내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늘의 움직임을 보고 읽는 일은 중국 황제만의 특권이었습니다. 하늘의 뜻은 오직 황제만 알아야 했기에 다른 사람들은 알 수도 없었고, 알려 해서도 안 되었지요. 중신들의 반대 이유였습니다. 
혁신에 대한 이런 저항은 노비 출신 장영실에게 벼슬을 내릴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신분체계는 조선의 근간입니다. 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대신들의 반대가 빗발쳤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말합니다. “과인은 재주 있는 자에게 관직을 내려 이 나라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오.” 신분을 초월한 인재 등용이지요. 천품은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반대의견에 “백성들의 천품을 교화시킬 수 없다면 그대들은 정치를 왜 하는 것이오? 단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세를 누리기 위함인가?” 되물으며 뜻을 관철시킵니다. 
‘저항과 극복’. 영화 <천문> 속 혁신의 두 번째 열쇳말입니다. 저항 없는 혁신은 없습니다. 저항이 없으면 혁신이 아닙니다. 저항을 극복할 때 혁신은 완성됩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도전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종의 용기와 도전은 조선 역대 최고의 혁신을 빚어냈습니다. 기존 관습으로부터 일탈했고, 기존 관행을 전복시킨 결과입니다.
세 번째 혁신 키워드? ‘혁신의 동반자’입니다. 우리의 달력을 갖겠다는 세종의 원대한 비전이 마침내 조선의 천문관측 기기 ‘간의(簡儀)’로 현실화됩니다. 역시 장영실의 공입니다. 우리도 우리 땅에 맞는 우리 조선의 달력을 갖게 된 것이지요. “자네는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 조선의 하늘을 열었네.” 세종이 치하합니다. “전하께서 그런 꿈을 꾸시지 않으셨다면 어찌 그런 일을 이룰 수 있겠사옵니까?” 장영실의 화답입니다. 조선의 시간과 조선의 하늘을 갖겠다는 것.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세종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턱 하니 현실로 만들어준 이가 다름 아닌 장영실입니다. 
하늘의 별을 보며 세종이 묻습니다. “자네 눈에는 뭐가 보이나? 영실이.” 장영실이 대답합니다. “전하의 나라가 보이옵니다.” 나의 소리를 알아주는 이, ‘지음(知音)’이 따로 없습니다. 장영실이 있어 세종의 혁신은 꿈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현실이 되었습니다. 혁신에는 이런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홀로 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과인은 홀로 서있는 그런 조선을 꿈꾸는 것뿐이오.” “전하, 왜 그리 힘든 길을 혼자 가시려 하시옵니까?” 장영실은 세종의 혁신 구상에 자신의 머리와 손을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혁신의 동반자입니다. 혁신 동지입니다. 
모든 일을 리더 혼자 다 할 수 없습니다. 리더십은 다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내는 동태적 과정입니다. 그러려면 다른 이를 움직여야 합니다. 지시와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리더의 꿈이 팔로워를 움직입니다. “신분이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같은 하늘을 보면서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세종의 말은 장영실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장영실이 세종의 혁신 행보에 발 벗고 나선 이유입니다. 혁신 동지를 불러모으는 건 리더의 담대한 비전입니다. 리더가 꿈꿔야 하는 이유입니다. 
요컨대, 제가 본 <천문>은 장영실의 영화가 아닙니다. 세종의 영화입니다. 아니, 장영실과 함께 한, 세종의 혁신 영화입니다. '혁신의 목적'을 명확히 정립하고, '혁신의 동반자'와 힘을 모아, '혁신에의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 비로소 혁신은 완성됩니다. 혁신의 앵글로 바라본 영화 <천문> 후기입니다.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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