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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패션 30년 한우물, '여성 자수성가의 아이콘'

[포춘코리아 COVER STORY]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

  • 기사입력 2020.01.02 13:07
  • 기자명 김병주 기자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은 대기업과 해외브랜드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패션업계에서 몇 안되는 자수성가형 여성 CEO. 지난 1993년 회사를 창업한 그는 던필드그룹을 명실공히 국내 패션업계의 대표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여성 기업인들의 대표 롤모델로서 후배 여성 경영인의 양성·육성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포춘코리아가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차병선 기자] 지난 12월 중순, 서울 중구 회현동 던필드그룹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차병선 기자] 지난 12월 중순, 서울 중구 회현동 던필드그룹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서순희 던필드그룹 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실 던필드그룹이라는 회사는 독자 여러분에게 다소 낯설 게 느껴질 수 있다. 기자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인 크로커다일’, ‘피에르가르뎅’, ‘던필드레이디는 꽤나 친숙한 이름이었다.

크로커다일은 꽤 오랜 기간 사랑을 받고 있는 남성 패션 브랜드다. 최근에는 인기드라마 보좌관2’에서 주인공 장태준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가 이 브랜드 옷을 입고 등장해 주목받기도 했다. 던필드레이디 역시 브리티시 클래식 감성의 스타일로 주목받는 여성 패션 브랜드다. 피에르가르뎅도 기자와 동시대를 살아온 3040세대라면 한번쯤 입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요 브랜드의 인지도 만큼이나 던필드그룹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회사를 창업해 경영하고 있는 서순희 회장의 존재감이다. 서 회장은 유리천장이 공고한 국내 산업계에서 자신의 힘으로 회사를 만들고 일구어 성장시킨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여성 기업인이다. 사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서순희 회장처럼 상징성을 갖고 있는 여성 기업인이 국내 산업계 전반에서 재조명받아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번 기획을 준비했다. 그리고 기자의 생각은 서순희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30년 간 한 우물을 파다

지난 1216, 서울 중구 회현동 던필드그룹 본사에서 만난 서 회장은 연말을 맞아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피곤한 기색 없이 반갑게 웃으며 기자를 맞아주었다. 우선 던필드그룹이라는 회사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했다. 앞서 언급했듯, 다소 부족해 보이는 듯 한 인지도와는 달리 던필드그룹의 포트폴리오는 업계에서 탄탄한 경쟁력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브랜드로 구성됐다.

서순희 회장은 말한다. “던필드그룹은 지난 1993년에 창업한 대한민국 대표 남성복 전문 회사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최초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크로커다일의 라이센스를 확보한 회사예요. 아시다시피 크로커다일은 국민 대다수가 알 정도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광범위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브랜드입니다. 무엇보다 저희 던필드그룹은 창업 후 30여년 간, 전문적으로 남성복과 남성패션을 연구하고 유통해왔습니다. 누구보다 남성 패션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회사라고 자부해요.”

서 회장의 말처럼 던필드그룹은 남성패션 시장에서 남다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 유통채널은 400여개, 연간 생산 물동량은 220만 장에 육박한다. 라이센스 기반의 남성패션 전문 브랜드에서 이정도의 유통망과 생산량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서순희 회장 역시 “200~220만 장의 연간 생산 물동량은 곧 220만명의 국민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남다른 자부심을 표현했다.

던필드그룹의 연매출은 1,500억 원대에 이르고, 2020년에는 2,0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역시 점차 위축되고 있는 국내 패션업계의 상황 속에서 의미있는 수치다.

하지만 단순 매출을 넘어 던필드그룹과 여하 브랜드가 갖고 있는 파급력과 인지도, 그리고 영향력은 이 회사가 국내 패션업계의 든든한 중심축이자 중견기업으로 평가받는데 모자람이 없다.

이러한 성장의 중심에는 지난 30여년 간 이 회사의 경영전략을 진두지휘한 서순희 회장이 서있다. 물론 모든 임직원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기업과 글로벌 패션브랜드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패션업계에서 던필드그룹이 생존을 넘어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서순희 회장은 지난 30여 년 간 회사를 이끌어온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우물이라는 단어로 답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저는 회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를 직접 챙기려고 합니다. 단순히 챙기는 것을 넘어 책임을 지는 것 역시 오롯이 리더인 저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회장이라는 직책을 달고는 있지만 여전히 디자인부터 생산, 제품 출고, 분배, 영업에 이르는 모든 프로세스에 전문성을 갖고 책임있는 역할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생산 공정의 경우, 지금도 직접 생산 공장을 다니면서 제품을 테스트하고 공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회장이라는 직함 이전에 전문가로서 문제에 접근해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죠. 제가 한 우물이라는 단어를 말씀드린 것 역시 이러한 업무 스타일과 연관돼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시대가 변하고, 직책이 올라가더라도 트렌드에 맞게 끊임없이 개혁하고 창조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창업 후 지금까지 남성패션 시장이라는 한 우물만을 파오며 전문성을 갖춰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의 던필드그룹을 있게 한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여성, 남성복 시장에 도전하다

수십년 간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웬만한 고집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실 서순희 회장의 고집과 열정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같았다. 젊은 나이에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가장이 돼버린 서순희 회장에게 창업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사진=차병선 기자] 던필드그룹 디자인팀 직원들과 원단 회의를 하고 있는 서순희 회장.
[사진=차병선 기자] 던필드그룹 디자인팀 직원들과 원단 회의를 하고 있는 서순희 회장.

우선 창업 당시 상황에 대해 서순희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저의 20대는 결코 행복한 기억만 가득한 건 아닙니다. 행복했다고 추억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진 않았어요. 나름의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창업만큼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도전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창업아이템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패션이었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세가지 요소는 의(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것)이다. 이 중 서순희 대표는 에 주목했다. 우리나라는 의식주 중 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 문화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의, 패션은 당시 뿐 아니라 먼 미래에도 사업아이템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여기서 서 회장은 다소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패션 중에서도 남성 패션에 주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면 당연히 여성 패션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전반적인 패션시장은 여성패션이 중심이 돼 규모를 키우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서 회장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다봤다. 그가 창업을 고민할 당시만 해도 사회의 기득권층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여성은 가정, 남성은 사회생활이라는 고정관념은 여전히 공고했다.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 역시 대부분 남자였다.

서 회장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복 브랜드를 창업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일단 본인 스스로가 남성 패션에 대해 아는바가 적었다. 부랴부랴 공부에 나섰지만 남성패션은 서 회장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어렵고 복잡한 업종이었다.

당시 상황을 서 회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막연히 생각했던 남성복 현황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어요. 디자인과 소재, 디테일 측면에서 여성복 못지않게 예민하거든요. 특히 남성복은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들에게 일종의 자부심과도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그 사람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잖아요. 트렌드의 변화, 경제지표, 소비자의 소득, 심지어 기후변화와 거주지의 지역색을 컬러와 디자인 그리고 소재에 담아 한 벌의 남성복을 만들어야 했죠. 그만큼 남성복 시장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저에겐 일종의 동기부여가 됐어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저 스스로를 부단히 발전시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됐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노력과 현실 사이에 있는 커다란 간극을 좁히기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창업을 준비했던 19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국내 패션업계는 대기업과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들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특정 브랜드 없이 도매상가에서 유통되는 소위 보세의류가 아주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새로운 신생 브랜드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 환경이었던 것이다.

서순희 회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대형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패션 브랜드로의 성장을 노렸다. 남들과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면 빠른 시간내에 목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해외 브랜드와의 라이센스 체결이었다. 네임밸류가 있는,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정식 출시되지 않은 해외 브랜드와 라이센스를 체결해 국내에 들여온다면 빠른 시간내에 승부를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했다.

서순희 회장은 말한다. “당시만 해도 라이선스 브랜드의 국내 론칭 역시 대기업의 전유물 이었습니다. 작은 기업은 라이센스는커녕 글로벌 업체와의 접촉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하지만 전 반대로 생각했어요. 작은 기업이라고 라이센스 사업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이죠. 그리고 남성복과 해외 라이센스라는 키워드로 타깃 브랜드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크로커다일이었어요. 전 세계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고유명사 그 자체가 브랜드인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이러한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가장 처음 선보인다면 단시간에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브랜드가 바로 크로커다일이었습니다. 크로커다일의 브랜드 로고(Logo)인 악어가 갖고 있는 강한 이미지가 남성복과 어울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크로커다일 측과의 협상을 통해 국내 라이센스 체결에 성공했죠.”

물론 서순희 회장뿐만 아니라 크로커다일 본사차원에서도 던필드그룹과의 계약은 모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양사는 돈독한 신뢰를 구축하며 걱정을 기우로 만들었다. 특히 다소 감추고 싶은 사업적 문제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논의하며 신뢰 구축에 최선을 다했다. 실제로 양사의 계약은 라이센스 형태이지만, 브랜드 사용은 영구적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조건은 그동안 쌓아온 양사의 신뢰가 바탕이 돼 이뤄낸 결과물이다.

서순희 회장은 본사와 우리는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넘어 서로 공생하는 동반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앞으로도 더욱 진실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서로간의 문제에 접근하고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해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장애물을 넘다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생존 그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던필드그룹은 크로커다일과 피에르가르뎅 등 글로벌 라이센스 브랜드와 자체 브랜드의 힘을 앞세워 국내 패션업계의 든든한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패션업계에서 바라보는 던필드그룹의 성장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은 한결같이 서순희 회장의 리더십을 첫 손에 꼽았다. 누구보다 한 발 먼저 뛰고, 누구보다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서 회장 특유의 꼼꼼 리더십이야 말로 던필드그룹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세간의 평가에 대해 서순희 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만의 경영 철학을 설명하는 서 회장의 표정에서는 그동안의 내공과 경험이 담긴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서 회장은 말한다. “항상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남들보다 1년을 앞서 산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예요. 1년 전부터 향후 선보일 제품을 기획·테스트하고 상황에 따라선 직접 해외 공장을 찾아다니면서 내년 전략을 수립합니다.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노력이죠. 또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신뢰입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약속과 신뢰를 지키는 것이 곧 매출과 이익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저희 브랜드 매장점주들의 생존과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 리더로서 그들과의 사소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키는 것은 중요하거든요. 사실 크로커다일은 원래 협동조합체제로 운영됐습니다. 협동조합원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크로커다일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를 믿고 따라준 점주분들을 위해서라도 그들과의 절대적인 신뢰구축은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경영 전략 중 하나일 것 입니다.”

[사진=차병선 기자] 서순희 회장은 옷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사진=차병선 기자] 서순희 회장은 옷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서순희 회장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협동조합 체제로 시작됐다는 그의 말에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 했다.

창업, 그리고 크로커다일과의 라이센스 계약 체결 과정에서 서순희 회장이 맞닥뜨린 첫 번째 장애물은 의류를 생산할 인력이나 공장을 찾는 것이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서 회장에게 생산 인프라가 있을 리 만무했다. 더구나 계약을 위한 자금 역시 부족한 상황.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한참을 고민한 그는 우선 탁월한 전문 기술은 가지고 있지만 영세한 규모의 매장을 운영중인 상인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약 60여명의 상인을 모아 일종의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크로커다일 옷을 생산해주면 무조건 팔아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첫 단추는 꿰었지만 난관은 여전했다.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를 팔아주겠다는 매장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 회장 스스로 매장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1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매장을 찾는데 주력했다. 마침내 광주의 한 메리야스 가게에서 숍인숍형태로 3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제품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야말로 서순희 회장 특유의 투지와 기지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서 회장은 첫 계약 이후 3개월 만에 3개의 대리점을 냈고, 1년 만에 전국에 180개의 대리점 특약을 맺을 수 있었다봉고차에서 쪽잠을 자는 고생 끝에 나온 결과라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크로커다일은 입소문을 타며 점차 매장을 늘려나갔다. 특히 시장 의류상인들 사이에서 저렴한 가격과 좋은 퀄리티, 그리고 돋보이는 디자인의 가성비 브랜드로 불리며 제품을 찾는 문의가 쏟아졌다. 크로커다일의 성장세는 서순희 회장의 사업에 날개를 달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 브랜드 라이센스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한 서 회장은 이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피에르가르뎅의 라이센스를 도입, 사세 확장에 나섰다. 그리고 던필드레이디와 같은 자체 브랜드도 론칭하며 종합 패션기업으로의 도약에 도전하고 있다.

서순희 회장과 한 시간 여 남짓 대화를 이어가며 기자는 진심이라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인터뷰 내내 그는 회사의 성과와 업적, 그리고 비전을 설명하기 보단 자신과 회사가 가맹점주. 그리고 소비자에게 어떻게 진심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수차례 강조했다. 여기에는 거창한 목표나 포부보다는 이번 기회를 통해 회사의 진심을 알리고 신뢰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서 회장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그의 진심은 제품에 대한 확신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부분은 그저 많은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고,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려는 패션 기업의 일반화된 전략과는 차별화되는 포인트였다.

인터뷰 도중 서순희 회장은 소위 재고털이를 위한 창고행사를 예를 들며 난 우리 제품이 절대 바닥에 굴러다니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회사 제품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고스란히 담은 한 마디였다.

서 회장이 말을 이었다. “패션업계에서는 이월제품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업체들은 이월제품을 창고행사나 마트 매대에서 판매해소진하곤 하죠. 하지만 저희는 그러지 않습니다. 우선 이월제품을 매장에서 반품 받은 후, 물류창고로 이동해 제품을 검수합니다. 그리고 검수가 완료된 제품은 다시 완성공장으로 보내 정리 후 포장작업까지 마치죠. 이후 물류센터에서 다시 최종 검수를 거친 이월상품을 매장에 재공급합니다. 솔직히 비용적인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서 회장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수십억의 비용이 소비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비록 할인폭이 큰 이월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고객들이 크로커다일의 품격과 가치를 잃지 않은 제품을 입으셨으면 합니다. 또 이러한 노력을 통해 기존 가맹 점주들과 크로커다일을 사랑해주시는 고객들의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장을 위해 1년을 앞서 산다

패션업계는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시장이다. 아무리 가성비 최고의 제품을 선보인다고 해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디자인이나 기능성을 가졌다면 결코 선택 받을 수 없다. 던필드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크로커다일을 포함한 던필드그룹의 핵심 브랜드들은 명확한 타깃층을 갖고 있다. 이들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서순희 회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언급하는 서 회장의 얼굴에서는 여유로운 미소와 더불어 자신감이 읽혔다. 자신감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서 회장은 사무실 뒷켠에서 최근 출시된 남성 바지 하나를 들고 왔다. 그리고 이 바지에 바로 정답이 있다며 빙긋 웃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나이가 들면 체형이 바뀝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남성들은 40대를 전후로 배가 나오고

엉덩이가 조금씩 들어가죠. 허벅지도 얇아지고요. 이는 자기 관리의 측면과 무관하게 나이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하지만 바지 한 벌로 모든 체형 변화를 커버하기란 불가능하죠. 적어도 이러한 체형 변화를 미리 분석하고 이를 디자인 과정에 반영하는 정도의 노력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가장 잘,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저희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크로커다일의 핵심 타깃층인 40대 이후 남성들은 소비자 개개인이 세련된 코디네이터들이예요. 저마다 확고부동한 스타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스타일의 평균치를 아는게 중요하죠. 저희는 내부적으로 직업, 연령, 지출비용, 실용성, 문화, 예술, 여행, 니즈 등으로 고객의 기호를 세분화해 분석하는 파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구축하고 있죠. 특히 지난해에는 수개월간 소비자 자료 조사 분석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프로젝트는 패션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도전이었기에 업계 내부에서도 꽤 화제가 됐었죠.”

[사진=차병선 기자] 사내 영업팀과 회의를 하고 있는 서순희 회장.
[사진=차병선 기자] 사내 영업팀과 회의를 하고 있는 서순희 회장.

당시 분석된 자료는 기획, 디자인, R&D 등 핵심 파트를 거쳐 실제 제품에 반영됐다. 올해도 던필드그룹은 2020년 전략의 일환으로 1년 앞서 제품 개발 및 트렌드 분석에 집중했다. 그 결과 우선 내년 생산 물량 30% 증가, 원단 선정 및 디자인 작업 등을 골자로 한 마무리 전략 수립에 한창이다.

이처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서순희 회장에게 최근 새로운 책임감 하나가 더 부여됐다. 바로 국내 여성경영인들의 성장과 동반성장을 도모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기업인 단체 대한민국 여성경제인협회의 특별 부회장에 선임된 것. 이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지금의 회사를 창업, 중견기업의 반열까지 성장시킨 서순희 회장의 성과와 그 과정에서의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감동과 울림이 돼 돌아온 결과다.

서순희 회장은 특별 부회장으로서 그동안 긍정적인 마인드로 역경을 헤쳐가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 및 동료 기업인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서 회장은 말한다. “얼마 전 경제인협회 주최로 열린 여성 CEO 조찬 포럼에서 강연을 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난 30여년 간 여성 기업인으로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과 그 속에서 느꼈던 소회를 담담히 쏟아냈죠. 그런데 놀랍게도 제 이야기를 듣던 청중들 상당수가 눈물을 흘리고 계셨어요. 그 눈물에는 그들이 현재 처해있는 어려움을 앞서 겪었던 저의 경험에 함께 공감해주고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진심이 담겨있다고 믿었습니다. 저 역시 그 눈물을 보면서 큰 울림을 받았고요. 앞으로도 선배 기업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후배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공감하고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잘 하는 것잘 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반드시 잘 안다고 해서 그것을 잘 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반대로 무언가 잘 하는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서순희 회장은 던필드그룹에 대해 남성복을 가장 잘 아는기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리고 고객과 임직원들, 가맹점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남성 패션을 잘 하는 기업이 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남성복 시장의 대표 브랜드, 나아가 대표 기업을 꿈꾸는 던필드그룹 그리고 서순희 회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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