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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S EXPERT | 안병민의 경영 수다

씨름의 희열, 그리고 씨름의 혁신

  • 기사입력 2020.01.02 10:56
  • 기자명 하제헌 기자

▶KBS TV에서 방영하는 ‘씨름의 희열’이 인기를 끌고 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새로운 촬영 편집 방식,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차별적 가치가 더해진 결과다. 씨름의 희열이 보여주는 ‘모래판 혁신’을 보며 내 일과 내 삶의 경영을 돌아볼 수 있었다. 글 안병민 대표◀

KBS 홈페이지 '씨름의 희열' 홍보 사진. 사진 KBS 홈페이지.

박빙(薄氷). 살짝 얼어 두께가 얇은 얼음이니 혹여 깨질까 조마조마합니다. ‘박빙의 승부’라는 말은 그만큼 차이가 없어 예측을 불허하는 경기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매 경기가 박빙입니다. 엄청난 스피드로 화려한 기술이 펼쳐지니 순간을 놓칠새라 두 눈 부릅뜨고 보게 됩니다. 씨름이란 게 이렇게나 심장 쫄깃거리게 만드는 스포츠였나요? 얼마 전 새로 시작한 KBS TV ‘씨름의 희열’ 이야기입니다.
씨름의 희열은 태백(80Kg 이하), 금강(90kg 이하)급의 씨름선수 열 여섯 명이 출연하는 경량급 천하장사 대회입니다. 한물간 씨름으로 웬 방송이냐고요? 씨름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인간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스타들이 모래판을 달구었더랬지요. 천하장사 씨름 경기가 벌어지면 9시뉴스도 뒤로 미루며 씨름 중계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십년 붉은 꽃 없다 했던가요? 그 뜨겁던 씨름의 인기도 어느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렸습니다. 연세 지긋한 몇몇 어르신들만 보는, 스포츠 아닌 스포츠로 전락해버린 겁니다. 
어두컴컴한 뒷방으로 밀려났던 그 씨름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밀레니얼 세대를 등에 업고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이 좋은 걸 할아버지들만 봤다니.” 유튜브를 통해 ‘씨름돌’의 경기장면을 접한 젊은 여성팬들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근육질 탄탄한 몸에 외모마저 받쳐주니 씨름판의 아이돌입니다. 덩치 큰 선수들의 지루한 힘싸움이 아니라 기술로 무장한 선수들의 역동적인 씨름이 펼쳐지니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씨름의 희열은 이 작은 불씨를 더 크게 키워내고 있습니다. 그 풀무질의 혁신 요소들을 짚어봅니다. 
먼저 ‘스토리텔링’입니다. 전성기가 지난 씨름판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선수들의 전적이나 경기스타일은 물론, 어떤 선수들이 뛰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씨름의 희열은 여기에 돋보기를 들이댑니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주특기와 그들의 프로필, 짧으나마 인생스토리까지 보여주니, 선수가 그냥 선수가 아닙니다. 모를 때는 남이지만, 알고 나니 애정이 생깁니다. 
선수의 성장과정이나 주로 쓰는 기술, 씨름 스타일까지 알게 되니 별명도 생겨납니다. 씨름의 희열 경기 중 상대선수의 샅바를 찢어놓을 정도로 손아귀 힘이 좋은 한 선수는 ‘샅찢남’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0초 승부사’, ‘감각씨름의 달인’, ‘모래판의 터미네이터’, ‘씨름 천재’, ‘차세대 금강장사’ 등 각자의 특징에 따라 별명이 붙고, 캐릭터가 생겼습니다. 캐릭터는 곧 개성이며, 개성은 곧 팬덤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숱한 영웅호걸들처럼 씨름판에도 저마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팬들이 생겨납니다. 경기 결과만 중요하던 씨름에 스토리가 접목되니, 시청자의 공감이 빚어집니다. 씨름의 희열에서 읽어내는 첫 번째 혁신입니다.
두 번째 혁신은 편집과 앵글입니다. 예전 씨름에는 중계용 카메라가 몇 대 없었습니다. 그러니 화면으로 만나는 씨름은 단조롭기 짝이 없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같은 화면이 이어지니, 하나 둘씩 시청자는 떠나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씨름의 희열이 씨름을 찍고 보여주는 방식은 예전과 다릅니다. 수많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양한 각도에서 경기를 촬영합니다. 오른쪽에서도 찍고, 왼쪽에서도 찍고, 위에서도 찍고, 아래에서도 찍습니다. 사각(死角)은 사라지고, 화면은 다이내믹합니다.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반대쪽 모습도 잡아내며,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캐치해내니, 순식간에 끝난 경기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합니다. 
그 미려한 영상에 씨름 기술에 대한 정보가 덧붙습니다. 앞무릎치기나 오금당기기 등의 손기술, 안다리나 밭다리 등의 발기술, 배지기나 들배지기 등의 허리기술들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설명해줍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습니다. 예전에는 안 보이던 씨름의 기술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 펼쳐지는, 선수들의 치열한 공방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재미는 커지고, 몰입은 깊어집니다. 촬영 편집 방식의 혁신으로 빚어낸 개가입니다.
차별화라는 관점에서도 씨름의 희열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카테고리 경계를 최대한도로 밀어붙이면 새로운 장르가 탄생합니다. 기존 카테고리 내부에 있기도 하고, 외부에 있기도 한 브랜드.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문영미 교수는 이를 ‘일탈브랜드’라 칭합니다. 카테고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생경한 가치들의 창의적 조합으로 무장함으로써 차별화를 획득한 브랜드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를테면 ‘심슨가족’ 같은 겁니다. 아이들만 보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성인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 겁니다. 이름하여 ‘성인용 애니메이션’. 이질적 요소들이 한데 어울리니 고객의 눈길이 모입니다. ‘발견되는 힘’으로서의 발견력이 이렇게 확보됩니다.
씨름의 희열도 똑같습니다. 스포츠 방송의 경계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능 프로그램과의 접점이 생겼습니다. 기존 예능 방송과 기존 스포츠 방송의 내외부에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긴 겁니다. 이른바 ‘씨름예능’입니다. 기저귀 시장에서 팬티를 출시함으로써 ‘팬티형 기저귀’라는 신규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운동화의 패션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패션운동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처럼, 씨름의 희열은 씨름예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습니다. 
기존 씨름 경기였다면 있을 수 없는, 서로 다른 체급 사이의 대결도 그래서 가능합니다. 태백급과 금강급 선수들이 모래판에서 격돌합니다. 비유컨대, 천둥의 신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의 대결입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던 일입니다. 같은 소속팀 선수들도 라이벌전이라는 이름으로 맞붙습니다. 파격이자 일탈입니다. 시청자들이 TV 앞으로 바싹 다가앉게 되는 이유입니다. 씨름의 희열에서 읽어내는 세 번째 혁신 요소입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에, 새로운 방식의 촬영 편집에,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차별적 가치까지 더해지니, 씨름을 외면하던, 씨름에 관심 없던 고객들이 씨름판으로 몰려듭니다.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역설했던 ‘비고객의 고객화’, 즉 블루오션의 창출입니다. 
왕년의 씨름팬이자 경영혁신을 쓰고 말하는 혁신가이드로서, 씨름의 희열에서 혁신을 찾아 읽는 희열이 참 큽니다. 다들 힘들다 아우성치는 요즘입니다만 그래도 가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씨름의 희열이 보여주는 ‘모래판 혁신’을 보며 내 일과 내 삶의 경영을 돌아봅니다. 혁신해야 경영입니다.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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