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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제임스 다이슨의 ‘충격 선언’

JAMES DYSON’S ELECTRIC SHOCK

  • 기사입력 2020.01.02 09:42
  • 기자명 Jeremy Kahn 기자

전설적인 영국 발명가가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오랜 숙원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이유를 들여다본다. By Jeremy Kahn

영국의 억만장자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제임스 다이슨 James Dyson이 소규모 무대 위에 서 있다. 지난 9월 중순, 파리에서 다이슨 대표 매장을 여는 개업 행사장이었다. 이 곳은 가전제품 마트보다 고급 아트 갤러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무광의 흑색 벽과 천장, 회색 타일이 깔린 바닥, 조각상처럼 진열된 세련된 제품들, 흰 단상 위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었다.   

활기 넘치고 멀쑥한 72세의 다이슨은 파란 테의 둥근 안경을 쓰고, 허벅지 길이의 구리 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정신 나간 과학자의 실험실 코트가 연상되는 옷이었다. 그는 명료한 영국식 발음으로 회사의 최신 제품들을 소개했다. 열 손상 방지를 위해 순환 기류를 사용하는 헤어 드라이어, 공기 소용돌이를 활용해 머리에 컬을 넣는 헤어 스타일러, 따뜻한 공기와 찬 공기를 내보내는 날개 없는 타원형의 공기 청정기, 수도꼭지와 손 건조기가 조합된 기기 등 끝없이 이어졌다. 마지막에 소개된 제품은 당연히 무선 진공 청소기였다. 소비자들이 다이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제품이다.
 
다이슨 제품은 하나같이 눈길을 끄는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을 자랑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게 기대하던 발표가 하나 있었다. 아직 판매되지는 않지만 숱한 논의가 있던 다이슨 제품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이슨은 청중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자동차’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항공사진을 띄웠다. 자동차 사진이 아닌 영국 교외 지역에 위치한 옛 공군 기지 사진이었다. 이 곳에서 그의 팀이 극비로 전기차를 디자인 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저녁 자동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뿐”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그 이후 자신의 47세 아들이자 후계자인 제이크 Jake가 디자인한 LED 램프에 대해 열정적으로 발표했다.

몇 주 만에, 다이슨이 차에 대해 말을 아꼈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는 이미 자동차 사업이 실패했다고 단정짓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진공 청소기와 헤어 스타일러를 열정적으로 홍보하는 동안, 다이슨 담당 은행 임원들은 전기차 사업 인수자를 찾고자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다이슨은 자동차 사업에 4년의 시간, 수백 명의 엔지니어, 20억 파운드(25억 달러)를 투자했다. 10월 10일, 그는 자신의 비상장 회사가 해당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며 첫 모델을 조립라인에서 생산하기도 전에 전기차에 대한 꿈을 접었다.

다이슨으로서는 대담한 결정이었고 흔치 않은 공개적 실패였다. 다이슨은 가족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이 자동차에 자신의 명예를 걸었다. 경험 많은 경쟁사 차보다 기능이 좋고, “혁신적인”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근본적으로 다른” 차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것도 2021년까지 시중에 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막 시장에 뛰어든 자동차 제조기업으로선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결국 다이슨은 유감스러워하며 “이 결정이 단순한 사업 제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사업 중단을 발표한 며칠 후 포춘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사업성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다이슨의 정예 자동차 사업 팀이 혁신적인 신차 제작에는 성공했지만, 경쟁사처럼 비용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할 마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술자들이 정말 멋진 작업을 해냈기 때문에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이슨이 수익을 내는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은 현 전기차 산업의 위태로운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중국 스타트업 니오 Nio는 매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흑자를 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과감했지만 결국엔 실패로 끝난 사업 이야기는 다이슨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는 비현실적인 이상과 냉철한 재정원칙을 함께 가진 몇 안 되는 경영인이다. 모든 기업이 혁신에 대해 말하는 상황에서, 전기차를 포기하기로 한 그의 결정은 수익에 신경 쓰면서 독창성은 포용하는 균형 추구의 대표 사례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돌이켜 보면 제임스 다이슨이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도전을 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전기화’는 자동차 산업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만한 기회였다. 다이슨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이를 인지했다. 전기 구동장치는 움직이는 부품 20개면 충분했다.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차가 2,000개 이상의 부품을 필요로 했던 것과 비교된다. 이는 이론적으로 진입 장벽을 낮춰주었다. 더욱이 테슬라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에 대한 결정을 숙고하던 시점에 시장에 진입했다. 몇 년 전에는 더 많은 기업들이 진입할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구글과 애플이 자동차 부문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자동차 전문 애널리스트 메리앤 켈러 Maryann Keller는 “어느 기업이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 이 분야는 열린 운동장”이라고 표현한다.

다이슨은 자신이 다른 대부분의 경우보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2018년 매출이 56억 달러를 기록하며 25%나 상승할 만큼 번창하고 있었다. 아시아 지역 내에서 다이슨 제품은 일종의 지위를 상징하는 고급 소비자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높은 수요로 인해 기업의 세전영업이익이 최초로 10억 달러를 넘었다. 진공 청소기를 통해, 다이슨은 이미 전기 모터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다. 무선 제품들 덕에 배터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기류와 기후 통제와 같은 전기차의 주요 개념들도 모든 다이슨의 가전제품에 적용됐다. 다이슨은 “우리에게 전기차를 만들 기술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깨달았을 때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도전해 보기로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2015년 최초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문 루프/*역주: 개폐식 기능이 있는 차 지붕/ 차량 시장에서 전기차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재고할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4~5년 전만해도 전기차 시장에는 테슬라 밖에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당시는 지금과 매우 다른 환경이었다”고 회고한다. 

다이슨은 매번 회의론자들의 의견이 틀렸음을 입증해 온 사람이다. 그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제품들을 하나씩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혁신은 1974년 탄생한 정원용 손수레였다. 그는 먼지 봉투가 필요 없는 백리스 bagless 타입 진공 청소기로 이름을 알렸고, 많은 돈을 벌었다. 공기 중 먼지를 빨아들이기 위해 ‘사이클론’ 효과를 사용한 청소기였다. 1993년 출시한 이 진공청소기는 얼마나 많은 먼지를 빨아들였는지를 정확히 볼 수 있는 투명 통이 특징이었다(“아무도 먼지가 보이는 청소기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혹평한 마케팅 전문가들의 말을 뒤집은 사례로 유명하다). 이후 좁은 모퉁이 공간도 청소가 가능하도록 부착된 공 모양의 핸들 등 여러 개선 사항들이 포함된 신모델이 출시됐다. 기업의 전기모터 연구를 통해, 슬림형 무선 직립 청소기도 만들었다. 다이슨은 자신의 전문성을 신규 부문에 확장 적용하는 데도 능했다. 에어블레이드 손 건조기와 날개 없는 선풍기, 공기 청정기가 대표적이다.

자동차는 급작스러운 도약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다이슨은 몇 년간 자동차 디자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내연 엔진의 대체재를 발명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다. 그는 디젤 엔진에서 나오는 냄새와 연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백리스 진공청소기에서 사용된 기술을 바탕으로 트럭이 내뿜는 오염물질들을 걸러내는 필터를 개발했다. 그러나 트럭 회사들이 이 필터를 구입하는 것을 거부했다. 매번 필터를 비워줘야 하는 수고로움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디젤 엔진이 건강에 해롭다는 수많은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디젤이 ‘친환경적이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미국과 유럽의 규제당국을 비판했다. 그는 “약간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며 “그 때부터 조용히 신기술을 추구해왔다”고 덧붙였다. 대형 프로젝트들을 규모에 비해 다소 불확실한 이유로 시작한 셈이다.

다이슨이 애스턴 마틴과 재규어 랜드로버의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을 채용한 2015년, 자동차 사업이 비밀리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기업은 극비 운영에 익숙했다. 다이슨은 발명가 활동 초기에 겪었던 쓴 경험으로 인해, 기업가가 된 후 병적일 정도로 비밀 유지에 집착했다. 그는 당시 경쟁자가 자신의 외수레 디자인을 훔쳤다고 말했다. 기업 내 제품들도 공개 발표 전까지는 오직 숫자로만 불렀다(실패로 끝난 자동차의 초기 버전 명칭은 ‘N526’이었다). 또한 지문 판독기를 설치, 실험실 접근을 통제했다. 

제임스 다이슨은 수 년간 준비해왔던 전기차 프로젝트에 실패했지만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사진=포춘US

그러나 이번엔 비밀이 샜다. 영국 정부가 온라인에 공표하는 산업 전략 보고서에 실수로 다이슨의 전기차 작업을 공개한 것이다. 또한 해당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다이슨도 공개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차량 디자인 및 테스트 허브로 사용하기 위해 낡은 공군 비행장을 개조하는 공사에 2억 파운드(약 2억 5,7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수 백 명을 고용했다. 그는 2017년 9월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배터리 기술의 혁신을 위한 10억 파운드(약 12억 8,500만 달러)를 포함, 이 사업에 20억 파운드(약 25억 6,99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실제 차 제작에 필요한 금액에 비하면, 적은 투자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이슨이 그 어떤 신제품에 투자한 것보다 큰 규모였다. 일례로 다이슨이 2016년 출시한 슈퍼소닉 헤어 드라이어는 개발에 4년이 걸렸고 7,100만 달러가 들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다이슨의 기술 노하우가 전기차에 활용될 것이라는 전제에 의구심을 품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에너지저장공동연구센터(JCESR) 소장 조지 크랩트리 George Crabtree는 “전기차는 단순히 대형 헤어 드라이어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다이슨은 단념하지 않았다. 가장 원칙적인 부분에서부터 차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고자 했다. 이는 다이슨 가전제품 부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철학이다. 다이슨은 “우리는 모든 것을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디자인 도면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회사는 모터에서 앞 유리 와이퍼에 이르는 모든 부품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다이슨의 기술연구책임자 앤드루 클로디어 Andrew Clothier는 “다른 자동차 기업들의 운영 방식을 보면, 그 기업들은 부품을 블랙박스처럼 다룬다”고 지적한다. 기성품들을 구매, 함께 조립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그는 그 방법이 더 저렴하고 빠르긴 하지만 혁신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다이슨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시도해 보려 했다(테슬라 역시 자사만의 전기모터, 배터리 팩, 충전기를 직접 디자인한다).
 
5월 공개된 특허출원서류에 따르면 다이슨 팀이 제작한 자동차는 레인지로버 크기이지만 축간거리(차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 간격)는 좀 더 넓고, 지붕윤곽이 낮으며, 앞 부분이 짧아 앞 유리가 상당히 경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후 다이슨은 시중의 어떤 전기차보다 긴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대형 배터리 팩을 넣기 위해선 넓은 축간거리가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타이어도 일반 타이어보다 더 길고 좁았다. 이는 ‘굴림 저항(rolling resistance)’/*역주: 주행 중 타이어가 노면으로부터 받는 저항/을 줄일 뿐만 아니라 내부 공간을 넓혔고, 타이어 압력을 낮춰 좀 더 편한 승차감을 제공했다. 다이슨은 “우리 팀은 공기 역학, 굴림 저항, 전기 모터, 배터리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도로 위의 모든 전기차가 ’액상’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배터리 안에서는 리튬과 다른 금속들(주로 니켈, 망간, 코발트)로 이뤄진 음극이 전해질 용액으로 인해 전해판(graphite anode)과 분리된다. 따라서 배터리는 효율적이지만, 충전 시간이 길고 불이 붙기 쉽다. 다이슨은 고체 상태의 배터리를 대신 활용하면, 그에 따른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액체 상태의 전해액 대신, 세라믹 물질 및 순수 리튬 금속 양극을 사용하는 이런 배터리들은 전기차가 추구하는 꿈의 배터리였다. 이 배터리는 무게에 비해 공급 전력이 더 크고, 궁극적으로 차의 주행 거리를 상당히 늘릴 수 있다. 충전 시간도 훨씬 짧고 더욱 안전하다.

‘벙커 실험실’: 사진에서 보이는 격납고처럼, 2차 세계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이전 공군기지에 남아 있다. 다이슨이 실패로 끝난 자동차의 시제품을 만든 곳이다. 사진=포춘US

다이슨은 2018년 미래 전기차 공장 부지로 싱가포르를 선정했다. 이 기업은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다른 제품들을 생산했고, 이 지역을 잠재력이 큰 주요 자동차 시장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2019년 초, 다이슨은 싱가포르로 글로벌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5,400만 달러의 싱가포르 펜트하우스 아파트를 구매하기도 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국내 산업의 부흥을 주창하고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다이슨이 영국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다이슨은 여전히 기업이 영국 내에서 5,000명을 고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제임스 다이슨은 이 사업이 전에 시도했던 어떤 사업들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는 제너럴 모터스, 폭스바겐 등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기 전이었다. 그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고, 테슬라처럼 대리점 네트워크 없이 디지털 채널을 통한 직접 판매에 의존해야 하며, 판매 이후의 지원 및 서비스 방법을 찾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 자체가 직면할 어려움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경쟁이었다.

향후 수십 년 간 가스 엔진을 금지하겠다는 유럽과 중국 규제당국의 움직임은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산업에 뛰어든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 기업들은 앞으로 10년 간 전기차 개발에 3,0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싱가포르에 제조설비를 설치하려고 했던 다이슨 팀은 갑자기 비용을 계산하게 됐다. 다이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데는 비용이 더 들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는 “많은 제조 물량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급업자들과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 수십 년 간 다이슨이 가전제품을 제조하면서 겪은 환경과는 달랐다. 다이슨은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기업이 쓰려던 배터리가 산업 표준보다 훨씬 비쌌다고 토로했다.

다이슨은 이 차의 가격이 저렴하지 않을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도 기자들에게 “차의 표시가격보다는 계약금 얘기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그러나 비싸도 지나치게 비싼 금액이었다. 다이슨은 그의 전기차가 수익을 내려면 시중 ‘최고가 제품’이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이슨이 전기차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던 반면, 테슬라 모델 X의 가격은 10만 4,000달러부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영업 중인 중국 스타트업 패러데이 퓨처 Faraday Future는 18만 달러 상당의 초호화 SUV를 출시할 계획이었다. 다이슨은 “이 가격으로 차를 팔 수는 있겠지만 만족할만한 금액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이슨은 이미 전기차 사업에 투자한 자본의 ‘매몰 비용’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투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돈을 썼다”고 말한다. 재정적으로 보수적인 그는 전기차 때문에 회사를 자금난에 빠트릴 생각은 전혀 없다고 언급했다. 2018년 말, 기업 부채는 대부분 관리 가능한 장기채로 3억 6,800만 파운드(4억 9,200만 달러)였다. 그는 과도한 빚을 지거나 회사를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느 쪽이든 그의 통제권은 약화될 것이었다. 또한 그는 “회사에 무한한 주주자금이 있는 것도, 주주 자금을 융통할 잠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가족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다이슨은 자동차 ‘제작 및 자재비용’에 집중, 괜찮은 마진을 낼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가 걱정한 것은 경쟁자들이 전기차에 쏟아 붓는 수십억 달러의 투자금이 아니었다. 그는 경쟁사들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기차를 판매하려는 사실을 우려했다. 컨설팅 기업 내비건트 Navigant의 전기차 부문 애널리스트 샘 아부엘사미드 Sam Abuelsamid는 “일반적인 전기차의 손익분기 가격이 약 8만 달러”라고 말한다. 메르세데스, BMW와 재규어는 모두 올해 고급 SUV 전기차를 출시했으며, 판매가격은 약 7만 달러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테슬라와 니오는 대중용 전기차를 그 절반가격에 판매하고 있다(테슬라는 2018년 연간 경비로 35억 달러를 지출했다. 다이슨이 전기차 사업에 투자한 총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다이슨은 경쟁사와 비교해 자사 전기차가 더욱 비싸 보일 것을 우려했다.

예전에도 다이슨은 비슷한 딜레마를 겪은 적이 있다. 회사는 2000년 11월 콘트라로테이터 Contrarotator라는 이름의 세탁기를 출시했다.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개의 통을 갖춘 기발한 디자인의 세탁기였다. 그러나 다이슨은 이번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당시 참신한 디자인과 적은 용량의 세탁기가 공급업체들에 큰 매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세탁기를 만드는 데는 일반세탁기보다 적어도 2.5배의 비용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다이슨은 그 세탁기의 판매가를 약 1,000파운드(당시 1,500달러)로 책정했다. 경쟁사 제품보다 30%는 높은 금액이었지만, 한 대를 팔 때마다 손실을 낼 수 밖에 없었다. 회사는 결국 2005년 이 세탁기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이슨은 이후 다시는 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전기차 사업을 접기 전, 다이슨은 이 부문을 매각하기 위해 은행가들을 고용했다. 그는 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업”의 의사를 타진해 봤다고 말한다(파이낸셜 타임스는 재규어 랜드로버도 그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아무 기업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9월 말, 다이슨은 전기차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

사실 다이슨에게 개발 초기 제품들을 접는 것이 그리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회사의 콘셉트 책임자 스티븐 코트니 Stephen Courtney는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는 연구 분야의 자연스러운 특징”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비상장 기업은 실패할 때도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다. 그러나 전기차 부문에 있어선 경쟁사, 자동차광, 배터리 전문가와 기업 저널리스트들이 기업의 모든 행보를 감시하고 있었다. 다이슨은 “회사가 내려야 했던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이 차에 무수한 노력을 쏟았으나,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는 전기차 사업에 종사했던 최대 523명의 직원들에게 다른 대체 부서를 찾아줄 계획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진 맘스버리 Malmesbury에 다이슨의 기업 캠퍼스가 있다. 부지 규모는 약 67 에이커(약 8만 2,020평)다. 이 캠퍼스에서 참신한 산업 디자인의 대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알렉 이시고니스 Alec Issigonis가 디자인한 독창적인 미니 쿠퍼도 있다. 이 차는 뛰어난 내부공간 활용을 보여주기 위해, 이등분된 상태로 전시돼 있다. 여기서 혼다 슈퍼 커브 모터사이클과 두 대의 영국 제트기도 볼 수 있다. 다이슨의 전기차 초기 모델 역시 언젠가 이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 그 동안 자동차에 쏟은 기업의 노력이 헛되진 않을 것이라는 조짐이 이미 보인다.

화려한 거울 유리로 둘러싸인 다이슨의 D9 연구실 뒤에는 창문 없는 작업장이 있다. 회사는 이 곳에 고체 배터리 연구를 위한 첨단 시제품 연구실을 지었다. 유럽 내 최대 규모다. 고체 상태의 배터리는 전기차 외에도 휴대폰, 가전제품,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이슨은 계속 이 배터리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한다. 회사의 에너지저장산업화 책임자 마이크 렌달 Mike Rendall은 “우리에게는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D9A라는 명칭의 새로운 배터리 시제품 연구실을 통해 다이슨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고체 상태의 배터리를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는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로봇공학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D9 건물 내 한 구역에서, 65명의 로봇공학 연구자들로 이뤄진 팀이 기계를 두고 작업하고 있었다. 기자의 방문 때문에, 대부분이 방수포 아래에 가려져 있다. 얼핏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다이슨의 기존 로봇청소기 360 아이 Eye를 단순히 개조한 기기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흥미롭게도 테이블 위에 큰 갈색 안락의자가 놓인 것처럼 보였다. 그 의자 위에 또 무언가 큰 것이 놓여 있었으나 방수포에 가려져 있었다). 다이슨의 로봇공학연구 책임자 빈센트 클럭 Vincent Clerc은 예전에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Pepper와 로메오 Romeo의 디자인 책임자였다. 다이슨이 완전한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 집사나 가정부를 개발하는 것일까? 클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3차원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음은 인정했다.

전기차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다음 날, 다이슨은 다소 가라앉은 모습이었지만 달관한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제품라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흥미로운 제품들이 많다. 그 중 일부는 자동차 연구 결과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독한 결정 뒤에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우리가 그 제품들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이슨은 같은 억만장자 경쟁자인 일론 머스크를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발명가는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 다시 한 번 혁신적인 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날을 고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 다이슨의 활약상: 72세의 영국 발명가 다이슨은 성인이 된 후 삶을 혁신에 바쳤다. 그가 발명한 기기는 정원용 도구에서 헤어 스타일러까지 다양하다. 

-발명가: 다이슨은 1974년 첫 히트제품을 만들었다. 그가 디자인한 손수레에는 일반적인 좁은 고무바퀴 대신, 플라스틱 공이 달려 있어 진흙 밭에 수레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이 제품을 볼배로 Ballbarrow라 불렀다. 이후 다이슨은 백리스 진공 청소기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10년 간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들어 제품을 -환경운동가: 다이슨은 수십 년 동안 오염을 줄이기 위해 애를 썼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유럽에서 인기가 많았던 디젤 연소 엔진이 대기로 내뿜는 매연을 혐오했다. 그는 “그 냄새와 검은 연기가 싫다”고 말하고 있다. 다이슨은 디젤 입자를 포획하는 필터를 개발했으나, 트럭 회사들이 그 필터를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화석연료 연소 엔진에 대한 그의 반감은 뿌리가 깊다.

-지주, 자선가, 애국자: 다이슨은 본업 외에도 영리 농업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해 영국 내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가 설립한 제임스 다이슨 재단은 27개 국에서 매년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을 찾아 수상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그는 더 많은 영국 공학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제임스 다이슨 연구소를 설립, 학부생들이 공학학위를 취득하고 직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윌트셔 Wiltshire 지방의 기업 캠퍼스 위에 영국 발명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브렉시트 지지자인 다이슨은 기업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비밀 관리자: 다이슨은 직원 수가 1만 4,000명에 달하는 업체로, 기업 비밀을 지키려는 집착이 애플에 필적할 만큼 강한 기업이다. 이처럼 철저한 비밀 엄수의 배경에는 볼배로 디자인을 침해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다이슨은 특허 포트폴리오에 있어 적극적인 소송 당사자이며, 후버와 삼성 등의 기업들과 법적 다툼을 벌였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에게는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알려주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며, 직원들은 공용 구내식당을 포함해 팀 외부에서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 

▲다이슨의 인기제품들: 다이슨 제품들은 모두 전통적인 가전제품 카테고리에서 디자인과 기술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진공청소기: 다이슨은 대표적인 DC07과 같은 백리스 청소기로 이 산업을 변화시켰다. 백리스 청소기는 빨아들인 먼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 디자인을 반대했지만, 제임스 다이슨이

-에어블레이드: 다이슨이 진공 청소기 이후 첫 상업적 성공을 거둔 손 건조기도 이 분야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다이슨 손 건조기는 400mph의 공기를 분출해 증발이 아닌 공기 마찰 방법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선풍기: 에어블레이드를 따라 날개 없는 선풍기가 출시됐다.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지만, 고루하고 칙칙한 카테고리에 스타일을 가미했다. 다이슨이 가장 최근 출시한 선풍기는 공기청정기 역할도 한다.

-헤어 드라이어: 다이슨이 슈퍼소닉 헤어 드라이어를 테스트하고 정교화하기 위해 사용한 머리카락의 길이를 이으면 1,000마일(약 1,609km)이 넘는다. 이 제품으로 다이슨은 건강 및 뷰티 제품 부문에도 뛰어들었다.

-조명기구: 제임스 다이슨의 47세 아들 제이크가 디자인한 LED 램프는 변하는 빛 환경에 적응하고 전구의 열을 없애줘 최대 6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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