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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속의 시계 | 로저드뷔] 아서 왕의 전설, 그리고 왕의 귀환

  • 기사입력 2019.09.27 10:52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로저드뷔가 Knights of the Round Table 네 번째 모델을 선보였다. Knights of the Round Table 시리즈는 로저드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라인이다. 로저드뷔는 한때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왕의 귀환과 함께, 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출시와 함께 다시 옛 영광을 되찾았다.◀

2013년 론칭한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Ⅰ.
2013년 론칭한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Ⅰ.

[Fortune Korea] 「아서 왕은 그의 마지막 싸움에서 결국 적을 물리쳤다. 하지만 장렬한 싸움에 자신도 치명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은 아서 왕은 치료를 위해 요정의 섬 아발론으로 향했다.」

위 내용은 전설 속 아서 왕의 최후 묘사이다. 아서 왕은 그 유명한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명검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는 자기의 백성들을 지켰으며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아서 왕은 이야기 밖 현실 세계 사람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아서 왕 전설의 무대가 된 브리튼 지역에서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곳에는 아직도 나라에 큰 재앙이 닥치면 왕이 아발론에서 돌아와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의 일치일까? 컬렉션과 시계 이름에 원탁의 기사들과 엑스칼리버 이름을 사용하는 로저드뷔에는 아서 왕의 후일담 같은 이야기가 있어 눈길을 끈다.

◆ 로저드뷔의 방황

로저드뷔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계 마스터였던 로저 드뷔 Roger Dubuis(1938~2017)가 1995년 SOGEM(Société Genevoise des Montres·제네바시계회사)이란 이름으로 론칭한 브랜드이다. 1999년 창업자인 로저 드뷔가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명을 바꾸면서 현재의 로저드뷔가 됐다.

창업자인 로저 드뷔는 2001년 돌연 로저드뷔를 떠났다. 소수 정예 인원으로 시작한 로저드뷔가 규모가 커지면서 생겨난 불협화음 때문이었다. 장인이 긴 시간을 할애해 마침내 그 손끝에서 피워내는, 그런 시계 이상의 특별한 의미와 완성도를 중시하던 로저 드뷔에게 효율과 상업성을 더 강조하는 새로운 조직 문화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로저 드뷔가 떠난 로저드뷔에는 곧바로 문제가 나타났다. 완고한 성격의 책임자가 사라지자 로저드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시계들이 낮은 완성도로 출시됐다.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명품 시계 마니아들이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로저드뷔의 하이엔드 타이틀에 점점 녹이 슬기 시작했다.

로저드뷔 창업주인 로저 드뷔.
로저드뷔 창업주인 로저 드뷔.

◆ 리치몬트 품에 안겨

재밌는 점은, 이 시기에 로저드뷔 아이코닉 컬렉션 Excalibur가 론칭됐다는 것이다. Excalibur 컬렉션은 그 명칭 그대로 아서 왕의 명검 엑스칼리버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설적이면서도 강하고 품위 있는 엑스칼리버의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Excalibur 컬렉션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다급해진 로저드뷔는 Excalibur 컬렉션을 마케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주요 장인들이 이탈하면서 품질을 담보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 결과 로저드뷔 사세는 절반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결국 로저드뷔는 2008년 리치몬트그룹에 매각됐다. 리치몬트그룹에 매각된 건 로저드뷔로서는 매우 행운이었다. 리치몬트그룹은 과거 완전히 몰락할 뻔한 세계 유수의 명품시계 브랜드를 부흥시킨 경험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리치몬트그룹은 로저드뷔가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책을 폈다.

◆ 기다리던 왕의 귀환

로저드뷔는 리치몬트그룹 산하에서 다시 경쟁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아직 2%가 부족했다. 고작 2%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이엔드와 일반 명품은 그 2%의 차이로 구별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로저드뷔는 과거의 영광을 온전히 회복하는 데 필요한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로저드뷔 창업자이자 하이엔드 시계 마스터인 로저 드뷔가 자신의 브랜드에 복귀했다.

로저 드뷔는 여전했다. 리치몬트그룹 산하에서 다시 과거의 수준급 공정을 회복한 로저드뷔였지만, 하이엔드 시계 마스터 로저 드뷔는 그 이상을 요구했다. 게다가 로저 드뷔에게는 로저드뷔의 창조주가 돌아왔다는, 그리고 그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릴 회심의 이벤트도 필요했다.

조급할 법도 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어중간하게 제품을 내놔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덕분이었다. 자신이 떠난 이후 이 브랜드가 어떻게 몰락해가는지를 똑똑히 지켜봤던 로저 드뷔였다.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Ⅰ 다이얼을 확대한 모습. 기사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Ⅰ 다이얼을 확대한 모습. 기사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 원탁의 기사 이야기 담아

로저 드뷔가 다시 로저드뷔에 복귀한 지 2년 만인 2013년, 마침내 ‘왕의 귀환’을 알리는 시계 한 피스가 세상에 공개됐다. Excalibur 컬렉션의 Knights of the Round Table 모델이었다. 이름처럼 ‘원탁의 기사’를 표현한 이 시계는 12명의 기사가 원탁에서 아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다이얼에 표현한 시계였다.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은 많은 이야기가 응축된 시계였다. 아서 왕의 전설과 로저드뷔의 이야기가 묘한 대응과 은유를 이루며 시계의 스토리텔링 소재가 됐다. 아서 왕의 귀환을 바라는 브리튼 주민들의 비원은 결말 없이 막을 내렸지만 로저 드뷔는 당당히 복귀해 자신의 브랜드를 다시 하이엔드에 올려놓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은 하이엔드 브랜드 로저드뷔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호사가들은 재밌는 해석을 덧붙이며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스토리텔링을 즐겼다. 여기에는 Excalibur 컬렉션이 ‘로저 드뷔 왕의 귀환 스토리’를 위해 아서 왕이 그랬던 것처럼 운명적인 선택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로저 드뷔가 새로운 컬렉션을 론칭하는 대신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론칭한 Excalibur 컬렉션에서 복귀작을 낸 데 따른 해석이다. 하지만 이는 호사가들이 말하는 운명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로저 드뷔가 자신의 복귀 이야기를 담는데 Excalibur 컬렉션만한 그릇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

◆ 하이엔드 유산 이어가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은 그 스토리텔링이 비할 데 없이 매력적이지만 시계 자체가 가진 매력도 끝판왕급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로저 드뷔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장인이 긴 시간을 할애해 마침내 그 손끝에서 피워낸 특별한 예술작품’ 의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계의 백미는 단연 다이얼 위 12인의 기사상이다. 각 인덱스에 자리하고 있는 12개의 기사 피규어는 순금으로 주조된 인덱스에 마이크로 인그레이빙 작업을 더해 제작됐다. 겨우 6.5mm 인덱스여서 맨눈으로는 그 수준을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확대경으로 보면 놀랄 만치 정교한 묘사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기사들은 취한 동작만 같을 뿐 얼굴, 복장, 심지어 왼손에 들고 있는 투구까지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다. 기사들이 향하는 원탁 모양 다이얼은 영국 윈체스터 사원 중앙 홀에 있는 13세기 원탁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자리 각각에는 기사의 이름과 맹세 등을 음각해 세밀함을 더했다. 핸즈가 위치하는 다이얼 중심부는 스위스의 전통 클루아조네 그랑 푸 에나멜 기법을 사용해 특유의 질감과 윤기를 더한 것이 마치 진짜 나무 재질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최고 수준의 완성도 덕분에 다이얼 하나 제작에만 무려 석 달 이상 시간이 걸린다니 ‘하이엔드’ 타이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있다.

로저 드뷔는 이렇듯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로저드뷔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고 2017년 그 화려한 삶을 마감했다. 로저드뷔는 다시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로저 드뷔 작고 이후에도 하이엔드 공정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연간 생산되는 시계 수는 고작 4,000여 피스에 불과하다. 로저드뷔는 2013년에 이어 2015년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Ⅱ를 발표했고 로저 드뷔 작고 이듬해인 2018년에는 Ⅲ를, 올해는 Ⅳ 모델을 발표했다.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Ⅱ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두 번째 모델로 2015년 출시했다. 첫 번째 모델이 12기사를 순금으로 주조한 데 반해 두 번째 모델은 기사들을 청동으로 만들어 눈길을 끈다. 로저드뷔가 청동을 소재로 사용한 건 이 모델이 처음이다.

원탁의 테이블은 흑옥 소재에 아르누보풍 인그레이빙으로 마무리해 중세시대 분위기를 연출했다. 첫 번째 모델이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화려한 이미지를 선택한 것과 대비된다. 덕분에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네 개 모델 가운데 가장 정적이고 고요한 이미지의 시계로 꼽힌다.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Ⅳ

Excalibur Knights of the Round Table 네 번째 모델로 올해 출시했다. Ⅰ, Ⅱ 모델이 비교적 고풍스러운 이미지였던 데 반해 Ⅲ, Ⅳ 모델은 다이얼 각 구성 요소를 모두 로우폴리 기법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로우폴리는 대상을 다각형의 집합으로 표현하는 최신 예술 기법이다. 과거 정적인 이미지였던 원탁의 테이블 형상 다이얼은 중심에서 외곽을 향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로우폴리형 다이얼로 바뀌었다. 덕분에 입체감과 역동적인 이미지를 더해 마치 현대 미술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2018년 출시한 Ⅲ 모델은 파란색 계열의 배색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Ⅳ 모델과 비슷한 디자인이다. Ⅲ과 Ⅳ는 쌍둥이 모델인 듯한 느낌도 든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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