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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유통, 업태는 다른지만 전략은 '닮은꼴'

  • 기사입력 2019.09.26 14:09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은행업은 돈을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통업과 비슷하다. 최근 두 업계 모두 온라인과 모바일을 이용한 거래가 급증하면서 그 전략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이미지=셔터스톡
이미지=셔터스톡

[Fortune Korea] “시중은행들이 그동안 디지털 전환을 참 열심히 잘해왔잖아요.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핀테크 기업들을 참고해 가면서 수준을 많이 높였습니다.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병행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이제 전부 수준이 엇비슷해지다 보니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는 겁니다. 동종업계에서는 더 새로운 어떤 걸 발견하기 어렵겠다 싶어 외부로 눈을 돌리다 보니 유통업에 주목하게 된 거죠. 은행업과 유통업은 비슷한 측면이 많거든요.” 시중은행 한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유통업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돈을 유통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은행이 본질적으로 유통사와 크게 다르지 않고, 또 온라인을 넘어 모바일을 이용한 거래가 급증하고 있는 최근 상황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7조 2,147억 원으로 전년 동기 5조 9,385억 원 대비 21.5% 급증한 모습(통계청 ‘온라인쇼핑 동향’ 통계 참고)을 보였고, 2017년 모바일뱅킹 사용 건수는 214억 건으로 전년 193억 건 대비 10.4% 성장한 모습(한국은행 ‘전자금융서비스현황’ 통계 참고)을 보였다.

◆ 은행·유통, 동조화 진행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은행업은 수년 전부터 유통업과 급격히 동조화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은행권이 유통권 전략과 발전 과정을 참고한 데 따른 것이다. 과거엔 두 업종 사이에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찾기 어려웠지만,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공통된 영업환경이 조성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해석이다.

이런 경향은 최근 더욱 도드라져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 인터넷 보급이 일반화하고 이후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던 초기까지만 해도 유통업과 은행업은 5~6년 시차를 두고 발전했다. 소비자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통사들과 달리 비교적 무겁고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은행들의 변화가 더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은행권에도 세찬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이 격차가 1~2년으로 줄어들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말한다. “과거 어느 시점부터 이마트, 쿠팡, GS홈쇼핑, G마켓 등 서로 다른 채널을 기반으로 한 유통업체들이 온라인에서 세게 부딪히기 시작했잖아요. 물론 같은 시기 은행들도 온라인 이슈를 겪었지만 이들보단 비교적 여유로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업체들이 대두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경쟁이 일어나면서 은행권도 피치를 올리다 보니 유통권하고의 격차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 2017년 이후 은행 변화 속도↑

‘유통 컨버전스 시대’ 용어가 유행했던 2010년대 초기, 유통업체들의 온라인 대전은 주로 가격 경쟁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오프라인에서 벌였던 10원 전쟁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이후 가격 경쟁이 비교적 완화할 즈음에는 웹이나 앱 개선 등 소비자 편의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365일 24시간 고객센터 등 서비스가 생겨났고 이에 발맞춰 백오피스에 IT전문가들이 대거 영입됐다. 이들 덕분에 재고 관리의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로보프로세서자동화) 같은 업무 효율화 부문에서도 장족의 발전이 일어났다.

은행권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뒤늦게 ‘집약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2017년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과 핀테크 업체들의 신규 서비스 출시가 강한 자극제 역할을 했던 덕분이다. 유통권의 가격 경쟁에 대응하는 금리 차별화 경쟁이 일어났고 동시에 소비자 편익 향상 경쟁도 불붙었다. 유통업체들의 온라인 상품 결제 과정이 쉽고 간단해진 것처럼 은행권의 온라인 이체·송금 과정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 앱은 더 가볍고 직관적으로 변했으며 이를 위해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이나 IT전문가 영입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은행 내부 프로세서도 고도화됐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말한다. “유통업이나 은행업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하겠다’는 생각을 한 지는 사실 얼마 안 됩니다. 저희보다야 전환이 빨랐지만, 유통업체들도 목 좋은 곳에 매장을 열고 물건을 싸게 파는 게 최고 전략이었던 시절이 그렇게 오래 전이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젠 모두 과거 얘기가 됐죠. 그 보수적이던 은행들이, 상품 차별성도 없고 각 업체 간 특징도 밋밋했던 은행들이 최근엔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했잖습니까. 몇몇 부문에서는 지금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는 전략들도 있습니다.”

◆ 고객 분석 및 예측

최근 은행권과 유통권이 공통으로 주력하는 미래 전략 중 하나는 데이터 분석과 예측 고도화이다. 데이터 분석과 예측은 현재 유통권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상태이다. 과거엔 ‘기상청에서 올해 여름 무더위가 대단할 것이라고 하니 에어컨이나 빙과류 등 제품 재고를 늘려야겠구나’ 정도의 MD 경험에 기초한 아주 낮은 수준의 분석과 예측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그 수준이 매우 고도화됐다. 효율적인 물류창고 운영의 핵심이 되는 재고 오차가 1% 이하로 떨어졌을 정도이다. 고객 수요를 예상해 상품을 매입한 뒤 거의 전량을 ‘예상 그대로’ 판다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개별 고객 분석과 예측도 상당한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상품 검색·구매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예측해 추천해주기도 하며, 웹이나 앱에 이들 상품이 먼저 노출되도록 화면 구성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은행권 역시 데이터 분석과 예측 부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거 ‘전세 대출 상품을 알아본 고객은 5년 안에 주택 매입 수요가 생길 확률이 높다’와 같이 영업 현장 경험을 통해 내려오던 노하우들을 데이터로 검증, 전략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핀테크 기업 중에서는 기존 신용평가 외에 통신비 납부 내역 등을 추가로 데이터에 편입시켜 고객 예측 정확도를 높인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만들어 활용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은행권과 유통권은 모두 데이터 분석과 예측 고도화 수준을 더욱 높이려 애쓰는 중이다. 유통권에서는 아마존이 2013년 특허취득한 예측배송 모델처럼 고객이 주문하기 전에 이미 배송 프로세서가 시작되는 하이레벨 수준을 목표로 한다. 은행권 역시 개인 고객 부실 가능성 예측을 넘어 기업 고객 수요 예측까지 목표를 확대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이미 관련 데이터 확보 작업에 나서 2021년 전후 일부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이 디지털화하면서 사무공간도 변하고 있다. 최근엔 스타트업 분위기를 내려는 은행들도 늘고 있다. 사진=카카오뱅크
은행들이 디지털화하면서 사무공간도 변하고 있다. 최근엔 스타트업 분위기를 내려는 은행들도 늘고 있다. 사진=카카오뱅크

◆ 고객 시간을 잡아라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수년 전부터 노력 중인 ‘고객 시간 점유 확대’ 전략은 이제 온라인 유통채널은 물론 은행권에서도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이는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고객들을 온라인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썼던 전략이지만, 온라인 유통채널 역시 고객이 자기 웹이나 앱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수록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은행권 역시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같은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전략을 쓴 배경은 유통권과 비슷하다.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었던 기존 시중은행들이 오프라인 점포 활용을 극대화한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방문 횟수와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과 같이, 은행들의 오프라인 점포 역시 문화공간이나 휴게공간, 전문 매장 등으로 꾸며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은행권이 웹이나 앱 등 온라인에서 고객 시간 점유 확대 전략을 쓰는 것도 유통권이랑 같은 목적에서다. 고객이 자사 웹이나 앱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수록 관련 고객 정보가 쌓이고 이를 통해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고객이 모바일 앱을 통해 전세대출 관련 정보를 모니터링했다면 은행은 이 고객이 관련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그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하는 식이다. 고객이 더 자주 방문하고 더 오래 머물수록 은행 상품 콘텐츠를 접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고객 시간 점유 확대 전략은 최근 은행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전략파트 한 관계자는 말한다. “지금 은행권에서는 고객이 앱에 더 자주 방문하고 더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가령 예전에는 운세 보기 콘텐츠 같은 걸 많이 활용했습니다. 무작정 트래픽을 늘려보자는 식이었죠. 하지만 요즘엔 이런 단순 결합식 콘텐츠를 줄이고 은행이랑 연관된 기능이나 콘텐츠를 넣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내 금융생활이나 소비생활, 수입과 지출 같은 걸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든가 스마트한 금융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 등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앱의 최고 덕목은 절대적인 편의성이었는데 최근엔 여기에 더해 질적으로 우수한 콘텐츠 구성도 같이 꼽히고 있습니다.”

◆ 기술 인력 확보에도 박차

은행권과 유통권은 내부 프로세서 자동화와 이를 위한 ICT 기술 확보 노력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상품이 움직이는 유통권에서는 그간 관련 기술의 발달과 함께 내부 프로세서 자동화가 상당한 수준에서 이뤄졌다. 내부 프로세서 자동화는 상품 현황 파악이나 배송 등과 이어져 고객 만족도 제고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업 안팎에서 내부 프로세서 자동화 요구가 높아지면서 유통권은 이에 필요한 ICT 기술을 빠르게 내재화하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은행권의 내부 프로세서 자동화는 비교적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금융산업을 정보산업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업종 자체가 내부 프로세서 자동화를 받아들이는데 최적화된 모형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통권에서 챗봇을 활용한 고객 상담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데 반해 문의 내용이 복잡한 은행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챗봇의 고객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 등의 차이가 있다.

ICT 기술 확보에서는 두 업종 모두 그간 ICT 기업과의 협업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엔 인력 확보를 통해 직접 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주로 M&A나 기술 인력 채용, 내부 인력 양성 등을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 내 기술 개발 인력도 크게 늘어 롯데쇼핑의 경우 파견 인원 포함 300명 가까운 인력이 근무 중이다.

은행권에서도 ICT 기술 개발 인력이 크게 느는 추세이다. KEB하나은행처럼 이전부터 직접 ICT 기술 개발에 주력했던 곳이나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은 물론 최근엔 일반 시중은행들도 전체 채용 인원의 40% 이상을 기술 인력으로 뽑을 정도이다. ICT 기술 인력난이 심화하자 최근에는 은행 내에서 은행 실무를 경험한 수학, 통계학, 공학 전공자들을 선별해 기술 인력으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말한다. “기존에는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으로 결과를 만드는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것과 별개로 은행의 독립적인 기술 개발도 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만큼은 은행이 유통보다 앞서 가는 것 같습니다. 유통업계가 최근 물류 경쟁을 심하게 치르는 중인데 이에 대응하는 은행권의 다음 경쟁 아이템은 무엇이 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김타영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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