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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엘리트의 위선을 정조준하는 내부자

세상을 바꾸는 기업들 / An Insider Takes Aim at ‘Elite Charade’

  • 기사입력 2019.10.02 10:39
  • 기자명 Adam Lashinsky 기자

작가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Anand Giridharadas는 인기 콘퍼런스 연사이자 전직 맥킨지 컨설턴트로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 기업들의 노력을 직접 목격했다. 그가 이런 노력이 세상을 바꾸기보단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믿게 된 이유를 소개한다. By Adam Lashinsky

기리다라다스와 늦은 오후 칵테일 한 잔을 함께할 장소가 결정된 후, 필자는 약간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는 선의의 부자들과 맞설 최악의 적수임을 자처하며,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승자독식 사회: 세상을 바꾸고 있는 엘리트들의 위선(Winners Take All: The Elite Charade of Changing the World)'을 지난해 출간했다. 그런 그가 잡은 약속 장소는 자신이 묵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헌팅턴 호텔 내 빅 포 Big 4 레스토랑 바였다. 우리 둘은 부유함이 배어나는 어두운 나무 패널과 흰 식탁보를 배경으로 칵테일을 홀짝거렸다. 벽에는 바의 이름처럼 '빅 포'라 불렸던 19세기 미국 4대 철도재벌 중 리랜드 스탠퍼드 Leland Stanford와 마크 홉킨스 Mark Hopkins의 유화 초상이 걸려 있었다. 초상화 속 두 남자는 기리다라다스가 “21세기판 '강도 귀족(robber baron)'/*역주: 19세기 미국에서 불공정 관행으로 부를 축적한 사업가들/들의 행동이 치명적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엄격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리다라다스의 이야기 속 악당들은 포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세상에 존재한다. 그는 이 영역을 “시장세상(MarketWorld)”이라 불렀다. 공공보건·초등교육 등 상식적으로 정부나 대규모의 공공 재정지원을 받는 기관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조차도 시장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다. 기리다라다스는 시장세상의 정신으로 인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편안하게 명령만 내리면서도 자신이 희생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를 통해 그들의 높은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공립학교에 수천 대의 컴퓨터를 기증하면서, 세율 상승을 막으려는 로비를 펼치는 경우가 시장세상의 전형에 해당한다. "지난 40년간, 가장 큰 부를 얻은 집단은 자신들이 주요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주장을 펼치며 미래를 독점했다."

그는 이 사태의 범인 혹은 공범으로 많은 유명인을 지목했다. 먼저, 의식 있는 비평가와 달리 돈으로 움직이는 '선도적 사상가(thought leaders)'가 있다. 자선가와 '임팩트 투자자'는 무지몽매한 수혜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없이 처방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테드와 다보스, 애스펀 Aspen 콘퍼런스’의 단골들이 있다. 이 집단은 극소수만이 공유하는 자신들의 선악론을 서로서로 강화해 준다. 혹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라 칭송하는 행위는 기리다라다스에게는 부당한 사적거래나 다름없다.

올해 37세의 이 저널리스트가 엘리트에 대해 잘 아는 이유는 자신도 그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찌 보면 가장 위험한 형태의 비판론자, 즉 '자기를 길러 준 손을 무는 개'에 해당한다. 오하이오 주 태생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키가 큰 기리다라다스는 글로벌 엘리트의 모든 정의에 부합한다. 하버드를 졸업했고,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경력을 시작했다. 테드 강연을 두 차례 했으며, 애스펀 연구소의 헨리 크라운 연구원(Henry Crown Fellow) 겸 타임지 기고가다. 기리다라다스는 유료 연설자로 초청되고, 화려한 파티의 초대장을 받는다. 최상위 1퍼센트와 어깨를 스치는 삶이다. 그는 트위터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급격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부자들이 부자 짓 한다"고 날카로운 조소를 보낸다. 기리다라다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다른 이상주의적 '내부자'들도 있다(그는 '엘리트 독식사회'에서 이들 중 일부가 겪었던 양심의 위기를 소개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 각자가 속한 기업을 바꾸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리다라다스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재력가들의 선한 의도 자체에는 이의가 없다. 그의 불만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개인과 기업이 선물을 뿌리는 행동으로 인해, 정부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엘리트는 결과가 '윈-윈'일 때만 도움을 제공하려 한다. 즉, 세율 상승이나 탐욕적 행위를 규제하는 정책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에서만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리다라다스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부 사람들이 지금보다 일을 잘 못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믿는다. 물론 특권층이 원치 않을 해결책이다.

기리다라다스의 분노는 수많은 명사를 겨냥한다.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엘리트 독식사회’의 한 장을 거의 다 할애했다. 현재는 사라진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Clinton Global Initiative 콘퍼런스는 가진 자들이 과거의 잘못이나 해당 사업의 가치와 상관없이, 본인이 추진하는 자선사업을 홍보하는 장이었다. IT업계는 특히 거센 비판의 대상이다. 이상주의의 이름으로 힘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면엔 이기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버는 미국에 소규모 창업가들을 양성하고 싶을 뿐이다. 구글은 세계의 모든 정보를 정리하고 싶을 뿐이다. 페이스북은 인류 단일 공동체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나는 IT 대기업들이 이런 목표를 진심으로 믿는다고 본다. (...) 우리 사회는 현실론자보다 이상론자에게 더 약하다. 이상론자들은 제대로 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어느 정도 그들의 이야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기리다라다스가 ‘엘리트 독식사회’ 저술을 위해 조사를 시작한 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Alexandria Ocasio-Cortez 하원의원 등 민주당 좌파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오카시오-코르테스와 공감하는 면이 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이 없으며, 깊이 분석하지도 않는다. 기리다라다스는 민주와 공화 양당 모두에 지쳤다. 공화당에는 투명성 면에서 점수를 주면서도, 지난 수십 년간 정부 수준을 떨어뜨렸다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상 캠페인이 벌어졌다. 덕분에 정부는 나쁘고 기업만이 선하다는 일종의 이론이 전 세계에 퍼졌다." 하지만 그의 가장 신랄한 비판은 교조적 반정부주의를 채택한 민주당 인사들에게 쏟아졌다. "오바마가 만든 사회혁신 및 시민참여청(Office of Social Innovation and Civic Participation)의 설립 헌장을 보라. 중앙정부의 하향식 정책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써 있다. 정말인가? (흑인인) 오바마가 투표권을 행사한 것은 중앙정부의 하향식 정책 덕분이다.” 투표에 관한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한 1965년 선거권법(Voting Rights Act of 1965)을 뜻한다. “그 정책은 상당히 잘 작동했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사진=포춘US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사진=포춘US

그는 왜 선의로 노력하는 부자와 기업들을 공격할까? 기리다라다스는 "그저 그런 선행이 훨씬 더 큰 악행을 사주한다면, 그 선행의 순효과는 마이너스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언론이 페이스북의 데이터 보안 문제를 금방 파악하지 못하면서, 마크 저커버그의 자선 활동에는 관심을 쏟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선행에 대한 그 많은 언론보도가 없었다면 저커버그는 한 8년 전쯤 언론과 규제 당국으로부터 몰매를 맞았을 것이다." 여성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1만명의 여성들(10,000 Women)’을 운영 중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도 예외는 아니다. 기리다라다스는 골드먼삭스가 금융위기의 발생에 일조했다고 본다. "여성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경제위기 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1만 명이 훨씬 넘는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는 자선 행위가 "공공의 분노를 가라앉혀 결국 삶의 진정한 개선을 가져올 사회적 행동을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비교적 호평을 받은 부자도 있다. 기리다라다스는 빌 게이츠에 대해 좋은 평을 내렸다.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는 일부 정부가 존재하는 아프리카에서 게이츠 재단이 거둔 성취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게이츠 류의 사람들이 특히 미국에서 갖는 부의 힘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미국의 국부들이 훗날 우리가 게이츠 같은 부자들의 관점에서 공공정책을 계획할 것이라고 상상했을 것 같진 않다. 100년 전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훨씬 강한 반대가 있었다. 바로 '사회에 대한 결정은 누가 내리는가?'라는 질문이다."

기리다라다스가 언급한 반대는 혁신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을 뜻한다. 이 운동은 빅 포 레스토랑의 초상화 속 백인 남성들이 거머쥐었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직접적 반발이었다. 기리다라다스는 그 때처럼, 강한 정부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강자를 통제하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빅 포의 초상화도, 그 후계자들의 위치도 공고할 뿐이다.

번역 김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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