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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S EXPERT] 안병민의 ‘경영 수다’

재미의 경영학 “즐기면 이긴다”

  • 기사입력 2019.09.02 15:01
  • 기자명 포춘코리아

기업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이 악물고 열심히 일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현재, 기업 경쟁력의 근본은 ‘재미’에 있다.◀

6월17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대표팀 환영식. 대표팀은 “더 즐기고 싶어 이긴다”는 자세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다.

전인미답(前人未踏).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습니다.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 얼핏 얘기는 들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정은 경이로웠고, 결과는 자랑스러웠습니다. U-20 월드컵 축구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의 연속. 우리 선수들은 거칠 게 없었습니다. 파죽지세였습니다.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지만 시쳇말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입니다. “더 즐기고 싶어 이긴다”고 했던 우리 선수들은 그렇게 게임을 지배했습니다.
예전에는 ‘일’과 ‘놀이’의 구분이 엄격했습니다. 내일의 놀이를 위해 오늘은 일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일이 즐거울 리 없습니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였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해도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양(量)이 중요했던 산업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요한 건 질(質)이자 창의력입니다. 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 해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일과 놀이의 구분 없이 ‘즐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정해진 정답과 주어진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했던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자고로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욕망을 거슬러 고통을 감수해야만 성공한다’라는 이상한 공감대가 부지불식간에 형성되었습니다. 놀이는 금기(禁忌)였고, 재미는 터부시되었습니다. 일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하면서 노는 것만큼은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기껏해야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노래방 가서 넥타이를 이마에 둘러 묶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우리 기성세대의 유흥문화는 그래서 참 애처롭습니다. 제대로 즐길 줄을 모르는 겁니다.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경영을 강의하고 자문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스타트업 CEO들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어쩌다 이런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신 건가요?” 제가 주로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돈이 될 것 같아서요.” 안타깝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CEO는 그리 잘되는 것 같지 않더군요. 설령 잘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행복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복한 성장을 빚어내는 CEO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거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그렇게 반문하는 그들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들은 돈과 상관없이 진심으로 이 일을 즐기고 있는 겁니다.
직원들이 웃어야 회사도 웃을 수 있습니다. 내 업무가 재미있다면 기업 성과는 따라 오르게 마련입니다.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히는 회사들을 보면 이런 공식에 딱 들어맞습니다. “제 소리에 제가 미쳐 득음을 하면 부귀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판인 것이여.” 영화 <서편제>의 대사 한 대목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어 거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미있어야 잘되고, 재미있어야 잘할 수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야구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행복해서 하는 겁니다. 언제든 야구장 가는 길이 즐겁지 않으면 미련 없이 그만둘 겁니다.” 야구의 월드클래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4년 동안 개인통산 1,500개의 안타를 쳐낸 추신수 선수의 말입니다. 돈과 명예를 좇는 강박이나 의무감에서 하는 야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관건은 재미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 설레야 합니다.
1938년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책을 통해 ‘놀이하는 인간’을 조명합니다. 인간은 생각도 하고(호모 사피엔스), 일하기도 하지만(호모 파베르), 놀이를 통해서 문화를 형성해 왔다는 겁니다(호모 루덴스). 즉, 인간은 놀이를 통해 비일상성, 탈일상성을 실천하는 유희적 존재라는 게 골간입니다. 국민가수 조용필 씨의 데뷔 50주년 인터뷰가 겹쳐 보이는 대목입니다. 국내 최초 단일 앨범 판매량 100만 장 돌파, 국내 최초 음반 총 판매량 1,000만 장 돌파, 〈가요톱텐〉 69주 1위, 방송국 가수왕 11회 등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에게 ‘국민가수’라는 호칭은 맞춤인 듯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상이 뭔지, 기록이 뭔지 이런 건 잘 모릅니다. 그
저 음악이 좋아서 오랫동안 하다 보니 생겨난 것일 뿐 딱히 도전한 것은 아니거든요.” 이게 진실이었습니다. 특정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를 이루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음악이 좋아 즐겁게 몰입했더니 따라온 결과라는 겁니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집념’이 중요했습니다. ‘하면 된다’라며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던 끈기 말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비즈니스 현장은 끈기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하는 게 중요합니다. 달라진 세상, 그래서 필요한 건 ‘재미’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재미있을 리 만무합니다. 결과 이전에 과정이 즐거워야 합니다. 세상만사에 호기심의 돋보기를 들이대야 합니다. 일단 한번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재미가 있다면 파고드는 겁니다. 아니, 파고들게 됩니다. 재미로 인해 생겨나는 자발적 몰입입니다. 재미가 있으니 절로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게 되니 자연스레 성과가 납니다. 즐거우니 일단 해보는 것이고, 재미있으니 남이 가지 않은 길도 가보는 겁니다. 그게 바로 내 일과 삶의 기업가정신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하급수적 경영환경 변화 속에서 창의성을 목놓아 부르짖는 작금의 수많은 기업들에게 재미는 그래서 경쟁력입니다. 제대로 변화하고 제대로 혁신하려면? 놀이 문화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재미가 열정과 창의, 도전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여서입니다.
축구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축구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대한민국 축구사의 또 다른 기적이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경기에 임했던 36년 전 선수들. 경기를 ‘놀이’처럼 즐겼던 이번 2019년의 후배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축구라는 ‘전쟁’을 치렀던 1983년의 선배들을 그렇게 극복했습니다. 강박이나 의무가 아닌, 재미가 만들어낸 혁신입니다. “좋은 대회에서 좋은 형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 최선을 다했기에 울 이유가 없다.”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로서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 선수의 말입니다. 단언컨대, 재미있어야 경영입니다.

■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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