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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FORTUNE 500 / 70년에 걸친 자멸의 역사

FORTUNE 500 COMPANY STORY

  • 기사입력 2019.08.05 10:13
  • 기자명 GEOFF COLVIN 기자

◆기업명: 시어스 홀딩스 SEARS HOLDINGS, 500대 기업 순위: 진입 실패, 매출: 132억 달러, 영업이익: -17억 달러, 직원 수: 8만 9,000명, 총 주주수익률(2008~2018년 평균): -37.2%(시어스 홀딩스는 2018년 10월 15일 파산신청. 매출과 이익은 2018년 10월 31일까지 12개월간 수치. 직원 숫자는 2018년 1월 31일 기준)

지난해 시어스의 파산신청은 현 경영진에 대한 거센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한때 포춘 500대 기업 리스트에도 올랐던 이 대기업을 무너뜨린 문제는 아이젠하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 서서히 붕괴한 이 사례에서, 리더들은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By GEOFF COLVIN with PHIL WAHBA

지난 4월 시어스는 최근 몇 년간 언론으로부터 가장 호의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회사는 소규모 매장 3곳을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USA투데이의 희망적인 헤드라인은 ‘새로운 시어스 시대의 시작? 이 소매업체가 휴업이 아니라 개점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미국 내 다른 매체들도 비슷한 논조를 드러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보도에서는 낙관보다는 동정심이 느껴진다. 한때 글로벌 소매업계의 거인으로 군림했던 시어스의 좋은 뉴스는 현재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3개 매장 중 한 곳은 알래스카에 위치하고, 각각의 크기는 오너 에디 램퍼트 Eddie Lampert의 저택보다도 작다. 제품군도 대부분 가전제품과 매트리스로 구성돼 있어 다소 당혹스럽다. 시어스는 이 작은 조치가 ‘더 탄탄하고 수익성 있는 사업’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첨단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소매업 관계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소매업 컨설팅을 해온 버트 플리킨저 Burt Flickinger는 "램퍼트가 최근 시작한 포맷은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시어스 임원을 지낸 컨설턴트 스티브 데니스 Steve Dennis가 내린 평결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도가 무위에 그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반복하다 결국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할 것이다.”

지난 14년간 3,500개 이상의 점포를 폐쇄하고 작년 가을 파산 신청을 한 후, 시어스는 몇 가지 진짜 좋은 뉴스를 활용할 수 있었다. 회사 대변인은 비록 파산을 했지만 소매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많은 자산과 이점을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실상 램퍼트 외에는 아무도 운명의 반전을 기대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 2005년 이후 전파해 온 행복한 뉴스를 믿지 말라고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됐다. 램퍼트가 운영하는 ESL인베스트먼트 헤지펀드는 당시 시어스를 인수한 후, K마트와 합병했다.

램퍼트는 시어스가 “진짜 훌륭한 소매업체로 탈바꿈하는 전략적 쇄신”을 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그 뒤로 회사 매출은 단 한 해도 성장하지 못했다. 또 2010년 이후 단 한 푼의 수익도 올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램퍼트에게 자산을 매각한 파산 기업 시어스 홀딩스는 그와 다른 사람들을 고소했다. 그가 CEO 시절 회사에서 수십억 달러를 빼돌렸다는 혐의다. 하지만 램퍼트와 ESL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시어스는 순전히 ‘관성’ 덕분에 그 브랜드를 유지할지도 모른다. 회사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작년 10월 31일까지 12개월 동안 132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시어스가 안고 있는 유일한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이다. 데니스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시어스 브랜드가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1980~90년대 시어스에서 중역을 지낸 톰 윌슨 Tom Wilson 올스테이트 CEO도 "램퍼트는 마지막 잿더미를 청소하는 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램퍼트 시대는 결국 비극적인 실적과 부정적인 헤드라인 기사의 떠들썩한 소동 속에 막을 내렸다. 시어스는 그 기간 동안 고유의 장점과 재혁신의 기회를 낭비했다(이런 패착 사례는 오른쪽 박스 기사 참조). 경영과 리더십을 배우는 학생들은 오늘날 죽음(파산)의 극심한 고통을 단지 시어스 드라마의 종영으로 볼 뿐이다. 그러나 회사를 망친 정말 심각한 갈등은 오래 전에 일어났다. 당시 시어스는 시장을 지배했기 때문에 파산은 상상할 수 없었다. 오늘날 리더들이 교훈을 배울 대목이다. 물론 시어스의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들은 훨씬 이전에 일어났다.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시어스의 결정적인 실수는 보편적이며, 앞으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사례다.

시어스는 1991년만 해도 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소매업체였다. 시카고대학 부스 경영대학원의 주식가격 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실질 달러로 계산한 시어스의 시장 가치는 1965년 5월 4일 최고조에 달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다. 시어스는 50여 전 봄날을 누린 이후(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시장 가치는 921억 달러였다), 단 한번도 그 가치가 상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어스 자체적으로는 회사의 소매업 지배가 1969년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 해 시어스 매출은 미국 전체 경제의 1%를 차지했다. 또 어떤 분기를 기준으로 삼아도, 미국인 3분의 2가 그곳에서 쇼핑을 했다. 미국 가정의 절반은 시어스 신용카드를 보유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0년간, 시어스는 생존을 위해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패배했다. 세계최대 소매업체의 붕괴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또 갑자기 한 순간에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두 가지 중대한 오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물론 시어스는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거의 모든 기업의 붕괴는 CEO 승계 문제가 터지면서 발생한다. 그것이 시어스의 첫 번째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실제로 회사 이사회가 20년 동안 계속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에, 5~6차례나 승계 작업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실수를 계기로, 거의 극복할 수 없게 된 문제들이 서서히 누적됐다.

두 번째 결정적인 실수는 잘못된 전략적 선택이었다. 즉, 금융 서비스에 집중하며 사업을 다각화한 것이다. 그 계획은 당시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고, 몇 년 동안은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1981년 이 전략을 채택했을 때만 해도, 시어스는 소매업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2년 후 금융 서비스를 완전히 접을 무렵, 시어스는 쇠퇴기에 접어 들었다. 더 이상 세계 최대나 미국 최대 소매업체가 아니었고, 그 타이틀을 되찾을 기회도 영원히 잃어버렸다.

승계 작업의 실패는 1954년 시어스 이사회가 이른바 한 ‘위인(Great Man)’에 예속되면서 시작됐다. 물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당시 이사회 의장인 로버트 E. 우드 Robert E. Wood 장군은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세 가지 결정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었다. 1925년 채택한 첫 전략은 카탈로그 전용 유통업체에서 벗어나 매장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1931년 자동차 보험회사 올스테이트의 창설이었다. 세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우드가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특히 교외와 서부 지역의 매장을 공격적으로 증설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라이벌 몽고메리 워드 Montgomery Ward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전후에 불경기가 이어지자 매장을 철수한 것이다. 그 이후 경기는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 1월 폐점한 뉴욕 나뉴엣에 있는 시어스 매장. 사진=포춘US

우드(75)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결정했다. 이사회가 시어스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의욕적인 젊은 경영자를 임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우드가 너무 오래 버티는 바람에, 몇 명의 잠재적 후계자들은 문 밖에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나이만 들어갔다. 그러나 이사들은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각자에게 한 번씩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후 평균적으로 간신히 3년여를 채운 CEO 4명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회사가 새롭게 정한 정년 연령 65세에 물러났다.

이 경영자들은 특출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1950~60년대에 시어스가 꾸준한 궤도를 유지하도록 이끌었다. 당시 회사는 성장했고, 주식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회사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사업 모델—광범위한 제품군, 양질의 서비스, 큰 폭의 정기 할인판매가 기반을 이룬다—이 ‘골동품’이 돼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시어스는 노스웨스턴대학의 경제학자 로버트 J. 고든 Robert J. Gordon이 “1870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경제가 팽창한 특별한 세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미국의 대표 기업으로 우뚝 섰다(고든은 “딱 한번 급성장을 이룬 이 시기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1886년 설립된 시어스의 특별한 세기는 그 때가 사실 마지막이었다. 이 시기에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고, 이런 성장을 뒷받침한 젊은 블루칼라 가족들은 풍요를 맛봤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특별한 세기’가 쇠퇴하면서, 새로운 블루칼라 가족은 더 이상 탄생하지 않았다. 기존 근로자들의 지출여력도 감소했다. 

아울러 소비자들은 새로운 구매방식에 열광했다: 서비스는 최소화하는 대신,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제품 회전율을 제공하는 할인점이었다. 1962년은 소매업에는 기적 같은 해였다. 월마트와 K마트, 타깃이 모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이 3개사는 모두 2005년 램퍼트가 인수할 당시에는 시어스 매출을 능가했다). 시어스 경영진도 그 현상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 위협이 안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시어스가 할인업계의 군주”라고 자기최면을 건 셈이다. 경영진은 이 신업종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3개사의 쇼핑 환경은 시어스에 비해 열악했지만, 훨씬 저렴한 가격을 제공했다). 그러나 고객들은 그 차이를 알아챘다.

경영진은 분명 시어스가 너무 잘 하고 있어, 회사의 통제 및 원가계산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관리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혹은 못하는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게 됐다. 회사 전체에 걸쳐 너무나 많은 비용들(상품 구비와 물류, 자본 등)을 그냥 평균으로 두루뭉술하게 산정했다. 따라서 어디서 돈을 벌고 잃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월마트에서 잔뼈가 굵은 근로자들은 창업자 샘 월튼의 어휘에서 “빌어먹을컴퓨터(damncomputer)”는 두 단어가 아니라 한 단어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월튼은 IT를 활용, 회사가 물류관리와 운영분석에 있어 동종업계를 훨씬 앞서도록 만들었다. 시어스는 초기에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수십 년 동안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경쟁자들에 뒤처졌다.

시어스가 한창 잘 나가던 1960년대 보였던 현상안주적 태도도 고난을 자초했다. 이사회가 로버트 우드의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일도 상황을 더욱 꼬이게 했다. 회사는 1967년이 돼서야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보다 부유한 쇼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고가 상품을 구비하는 새 계획은 반짝 효과를 봤다. 총 마진이 1969년 거의 40%에 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미국 대중들에게 ‘훌륭한 공급자’로 오랫동안 쌓아온 시어스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그 후 불황이 닥쳤고, 몇 년 뒤에는 더 깊은 불황과 두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특별한 세기’는 막을 내렸고, 시어스의 새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제품을 원했고, 다른 모든 할인점들은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완벽한 태세를 갖췄다.

1970년대 중반 들어, 시어스는 이런 문제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의 ‘현실 부정’으로 넘어갔다: 실적 하락이 회사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시어스를 연구한 사람들은 “회사는 ‘경제가 문제다. 또한 미국에는 매장이 너무 많다. 게다가 이익률은 업계 전반에 걸쳐 줄어들고 있다. 인구는 늙어가고 있다. 결론은 우리만 빼고 모두가 문제’라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도,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돈을 벌기란 더 어려워질 뿐이다.’ 도널드 카츠 Donald Katz가 그의 저서 ‘더 빅 스토어’에서 1970년대의 사내 상황을 요약한 표현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시어스 내부 회의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었다.

회사가 내린 궁극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전 세계가 시어스라고 알고 있는 것, 즉 소매업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쓸데 없는 짓이다. 카츠의 전언에 따르면, 1978년 CEO에 오른 에드워드 텔링 Edward Telling은 ‘시어스 제국이 기존 사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모든 다른 기업들에 비해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믿었다. “텔링은 완전히 새로운 시어스의 존재 이유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만약 텔링이 그 임무를 완수했을 때 시어스가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면, 그는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어스는 두 번째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소매업계를 (물론 공개적으로 그렇게 밝히지 않고) 2등급으로 분류하는 동시에, 매우 가능성이 희박한 합병의 장밋빛 전망을 좇은 것이다. 합병 파트너의 초기 희망목록에는 AT&T, 셰브런, 존 디어, IBM, 월트 디즈니가 포함됐다. 하지만 모든 후보들은 내부적으로 혹은 시어스가 목표물에 접근했을 때 합병 논의를 접었다. 결국 전략기획자들은 “신사업은 시어스의 기존 강점을 크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당시 로퍼 여론조사(Roper poll)는 ‘시어스가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에서 가장 큰 신뢰를 받았는가? 기획자들은 금융 서비스라고 판단했다.

‘엘도라도’를 발견한 시어스는 그 중 일부를 손에 넣기 시작했다. 회사는 1981년 콜드웰 뱅커 Coldwell Banker 주거용 부동산 회사와 딘 위터 레이널즈 Dean Witter Reynolds 중개 회사를 인수했다. 두 기업이 올스테이트와 합병하면서, 시어스는 단숨에 매출 기준으로 미국 최대 금융서비스 회사에 등극했다. 시어스가 크게 꿈꿨던 전략들이 차근차근 실행된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실패의 조짐은 뚜렷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많은 전략가들처럼, 회사의 기획 책임자들도 고객들을 봉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채굴해야 할 ‘천연자원’으로 여겼다. 두 회사의 인수를 발표한 후, 도널드 크레이브 Donald Craib 부회장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딘 위터와 콜드웰 뱅커가 시어스의 엄청난 고객층을 적극 활용하도록 할 것이다." 고객 니즈가 아니라 회사 요구에 의해 파생된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또 다른 불길한 징조는 시어스가 투자자들에게 설명한 인수 이유였다. 회사는 시너지와 교차판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거의 모든 인수기업들이 이 두 가지 ‘축복’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과대평가한다. 시어스도 분명 그랬다. 하지만 시어스 매장에 입점한 딘 위터 지점은 외부의 독립 지점들보다 실적이 부진했다.

새 전략을 실행한 4년 동안, 시어스 파이낸셜 센터 Sears Financial Centers는 312개 매장에서 올스테이트와 콜드웰 뱅커, 딘 위터를 다양하게 결합하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 별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효과적인 교차판매를 위해, 고객 데이터를 병합하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 물론 일부 계획은 성공했다. 딘 위터가 출시한 디스커버 신용카드가 큰 인기를 누린 것이다(회사가 1992년 시어스에서 다시 분사하고, 다른 소매업체들이 경쟁을 벌이지 않고 이 카드와 제휴하며 더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당시 시어스를 컨설팅했던 존 피팅어는 “전반적으로 다른 회사들과 시너지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시어스는 다각화를 시도했지만, 금융과 소매업 모두에서 최악의 실패를 맛봤다. 우선, 금융 서비스에서 기대했던 시너지를 달성하지 못했다. 소매업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핵심사업의 위상을 잃었다. 올스테이트의 윌슨은 "그들도 나름 상품군을 다양화하려 시도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는 소매업체가 잠깐 한눈만 팔아도 큰 실패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홈디포와 스테이플스, 베스트 바이, 베드 배스 & 비욘드처럼 경쟁력이 뛰어난 대형 유통업체들(big-box category killers)이 등장하며, 업계 판도를 완전히 바꿨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마트가 유통거인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피팅어는 “시어스 이사회는 단지 매장들을 캐시 카우로 봤고, 실제로 또 그랬다"라며 “이사들은 그저 소매업을 그만 둘 때까지 그 ‘젖소’에서 우유를 짜낼 계획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극명했다. 1981년 사업 다각화를 발표했을 때, 시어스 소매 그룹의 판매 이익률은 이미 업계의 중간치보다 36%나 더 나빴다. 시어스도 금융회사를 소유했던 기간 동안, 평균 49%나 더 부진했다. 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이미 악화일로에 있던 소매업을 결합한 결과, 1988년에는 시어스의 실질 달러 기준 시장가치가 1965년 최고치보다 66%나 폭락했다. 급기야 월가는 시어스를 인수 목표로 지목했다.

시어스는 1992년 마침내 금융 서비스 전략을 포기했다. 콜드웰 뱅커와 딘 위터뿐만 아니라, 61년간 자회사 관계였던 올스테이트도 매각하거나 분리할 것이라 발표한 것이다. 이 세 회사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결국 시어스로부터 해방된 이후, 모두 꽃을 피우고 번창했다.

에디 램퍼트가 2006년 포춘 취재에 응해 뉴욕 용커스 Yonkers 시어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포춘US

그러나 정작 소매업(대부분 사람들이 ‘시어스’라는 단어로 떠올리는 것)이 영광을 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15년 만에 최악의 연말연시 휴가 시즌을 보낸 1991년 초, 시어스가 ‘한 때 촌구석의 할인 잡화점(onetime backwoods bargain barn)’에 불과했던 월마트에 북미 최대 소매업체 자리를 내줬음을 보여주는 새 통계가 공개됐다. 타임지는 당시 기사에서 월마트를 이렇게 묘사하며, 새로운 왕의 등극을 알렸다. 하지만 시어스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이 비교가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회사 대변인은 “월마트와 경쟁을 벌이는 부분은 판매상품의 30%에 불과하다”고 콧방귀를 뀌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어스가 소비자들이 가장 원했던 상품의 30%만 팔고 있었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시어스가 근본적으로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월마트의 매출은 급증했다. 따라서 시어스는 왕위를 되찾을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피팅어는 “1990년대 초, 이미 게임은 끝났다”라며 “전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사적으로 올바른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지적한다.  

거의 30년이 지난 현재, 시어스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회사는 1990년대에 잠깐 활기를 되찾았다. 절박했던 최고 경영진과 이사회가 한 세기에 걸친 전통을 깨고, 외부인에게 경영을 맡긴 덕분이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 Saks Fifth Avenue 경영진을 지낸 아서 마르티네스 Arthur Martinez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조직이 여전히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마르티네스는 “모두들 내부 지향적이었고 위만 쳐다봤다"며 “모든 것이 최고경영진에 집중됐다. 직원들의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외부인들로 팀을 꾸렸다. 그리고 매출과 영업이익, 주가, 사기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가 2000년 물러나자, 주가는 그가 처음 이 조직을 맡았던 당시의 수준으로 즉각 회귀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앨런 레이시 Alan Lacy가 그 뒤를 이었다. 그는 시어스를 쇼핑몰에서 빼내려고 노력했다. 레이시는 이 매장들이 “고객들이 흔쾌히 지갑을 열지 않으려는 서비스 기반 모델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신 그는 월마트 같은 오프라인 몰 스타일의 시어스 그랜드 Sears Grand라는 매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자 주가는 급락했다. 그리고 2004년 에디 램퍼트가 등장했을 때, 이사회는 그의 매수 제안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결정했다.

이 길고 슬픈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베스트셀러 경영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과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위대한 기업의 선택(Great by Choice)’의 저자 혹은 공동저자인 짐 콜린스 Jim Collins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라는 책도 썼다(앞서 언급한 베스트셀러들보다 분량이 적고 덜 알려졌다). 콜린스는 실패에 대한 분석과 글쓰기가 성공에 대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이라고 토로한다. 그는 “훌륭한 회사가 되기 위해선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당신이 써야 할 주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실패의 프레임을 잡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것은 마치 포켓볼 당구대 같다. 공을 삼각대로 고정시키는 방법은 몇 가지뿐이지만, 그것들을 흩트리는 방법은 무한하다."

콜린스는 책을 쓰기 위해 시어스를 공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찾은 프레임과 최근 인터뷰에서 상세히 설명한 그 틀은 시어스의 실패와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시어스가 맘모스처럼 몸집이 커지면서 생긴 오만에서 시작된다. 회사 소매사업부는 1970년대 곤경에 처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았다. 외부인이 자신들에게 결코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어스 직원들은 스스로를 ‘상류층’이라 생각한 나머지, 소매업계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오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상징이 1960년대에 건축을 의뢰한 110층 높이의 시어스 타워였다. 당시 CEO였던 고든 메트칼프 Gordon Metcalf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최대 유통업체가 된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본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2000년경에는 직원들이 110층을 모두 채울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시어스는 성장을 하기는커녕 몸집이 계속 줄어, 1995년까지 지속적으로 건물을 비웠다. 현재 이 마천루는 윌리스 타워 Willis Tower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만은 원칙을 훼손한다(원칙은 콜린스가 기업의 쇠퇴를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특히 비용에 대한 원칙이 가장 먼저 깨진다. 시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부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시어스가 규모의 경제 덕분에 상품가격을 책정할 때, 비용상의 이점을 공고히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회사는 다른 어떤 경쟁자들보다 싸게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소모성 간접비가 지나치게 많아—시어스 타워를 생각하면 된다—전체 비용이 업계 평균을 훨씬 초과할 정도로 급증했다.

성공은 성장을 만들고, 성장은 관료주의를 낳고, 관료주의는 원칙을 무너뜨린다. 콜린스는 "이런 기업에서는 이유보다는 목적 그 자체를 중시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비대화된 조직에서는 10명, 100명, 1000명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모든 사람에게 ‘요리책(recipe book)’을 주는 것이다. 아이러니는 그 모든 조직원들이 정작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독단적이 된다"고 분석한다. 시어스는 그 덩치만큼이나 문제도 컸다. 실제로 직원용 매뉴얼이 2만 9,000페이지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콜린스는 “몰락의 다음 단계에서, 기업 경영진은 보통 잘못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고 설명한다. 분명 시어스가 1970년대에 그랬다. 관련 증상이 바로 ‘근본적인 성장동력의 축 (fundamental flywheel)’—회사 설립의 근간이 되는 기본 사업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태도다. 콜린스는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바퀴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과소평가하곤 한다"고 지적한다. 시어스 경영진은 자신들의 주축인 소매업이 40년 전에 이미 성장을 멈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금융 서비스에 투자했다. 하지만 홈디포와 로우스, 월마트 등은 그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보여줬다.    

리더들이 해결책을 모색할 때, 그들은 보통(때로는 강박에 사로 잡혀) 회사를 재정비한다. 시어스도 하는 시늉은 했다. 회사는 1970~1980년대의 여러 시기에, 지주회사 구조를 채택했다. 아울러 수시로 그 모습이 바뀐 ‘지배 영토(fiefdoms)’—서로에게 적대적인 경영자들이 다스렸다—가운데서도, 금융 서비스 ‘제국’에 이것저것 변화를 가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마지막 쇠퇴기에 외부 구세주에게 희망을 걸 수도 있다. 이들의 리더십 하에서, 초기에는 보통 반짝 상승세를 보이지만 결국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아서 마르티네스 시대가 정확히 그랬다.

마지막 단계는 말 그대로 기업의 사망—능력을 잃고 완전히 도태되는 상황—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아무 쓸모도 없게 됐을지도 모른다. 시어스라는 이름을 가진 기업은 몇 년 동안 존속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문화의 한 요소로서, 그리고 장기 성장의 전망이 밝은 소매업체로서 시어스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시어스는 최전성기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덕분에, 다른 대부분의 기업들보다 추락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더 작은 기업들에서조차 거의 항상, 실패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게 진행된다. 콜린스는 “위대함은 매우 천천히 만들어진다. 월마트나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보라”고 말한다. “몰락은 상승처럼 누적의 결과다. 위대한 기업의 추락이 순간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당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걸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함정이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시어스의 사망을 애도하며 너무 오래 울 필요는 없다. 어떤 회사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어스는 충분히 오랫동안, 칭송 받을 만한 생산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시어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 사례는 모든 재계 리더들에게 ‘사업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시장지배적이라 해도, 그것을 무너뜨릴 힘이 현재 진행 중일 수 있다. 그 파괴를 초래하는 것은 다름아닌 성공이다. 성공에 취해 위험을 알아 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동안 일궈 놓은 모든 성과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기 전에, 이런 위험을 간파할 혜안을 가진 경영자는 거의 없다.

 
◆침몰하는 시어스 매장들: 이 소매업체의 노쇠한 쇼핑몰 매장들은 오프라인 사업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2005년 K마트와 시어스의 합병을 성사시킨 이후, 시어스 홀딩스 CEO 에디 램퍼트는 백화점보다 전자상거래를 우선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두 사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그 방침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현재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소매업 연구 학장으로, 시어스 캐나다 CEO를 지낸 마크 코헨 Mark Cohen은 “매출 500억 달러 규모의 오프라인 소매업체라면, 사업의 근간을 이루는 일반 매장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어스는 2005~2012년 매장 개선에 33억 달러를 지출하는 데 그쳤다(반면 그 기간 동안 주식은 60억 달러어치나 환매했다). 한 애널리스트의 추산에 따르면, 월마트와 타깃 등 직접적인 경쟁자들은 시어스보다 평방피트당 5배나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기본적 유지에 들어가는 자금마저 끊는 바람에, 시어스 매장들은 점점 더 노후화했다. 그로 인해 매장을 새 단장할 수 있는 매출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하지만 쇠퇴하는 매장들을 폐쇄해도 시어스닷컴의 방문자 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매장들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시어스 홀딩스는 단 한 해도 ‘동일점포 매출성장(comparable sales growth)’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 지표는 신규 폐점 매장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말이다.

램퍼트와 그의 전임자들은 트렌드에 좀 더 기민하게 대처한 경쟁자들을 모델로 삼아, 매장들을 실험했다. 먼저, 회사는 2003년 시어스 그랜드—식품과 약품을 파는 소규모 ‘오프라인 몰’이다—를 시험적으로 선보였다. 앨런 레이시 전 CEO는 “시어즈 그랜드가 연간 4,500만~6,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두 배 되는 일부 쇼핑몰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시어스는 그랜즈 매장을 12개만 열었다. 그 수가 너무 적어 다른 매장들의 붉은 잉크(적자)와 벗겨지는 페인트(노후화)의 충격을 완화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홈 어드밴티지’를 상실한 가전사업: 주택 소유자들은 부엌을 채우고, 신용 이력을 쌓는 과정에서 왜 시어스를 저버렸을까?

지난 수십 년간, 집을 가진 사람들은 세탁기와 오븐 같은 비싼 가전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시어스를 매장을 즐겨 찾았다. 회사는 2001년 당시 미국 가전 시장의 41%를 지배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매출 120억 달러를 올리며, 여전히 29%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가전 사업 매출은 전성기의 극히 일부분에 그치고 있다. 시어스의 과거 핵심 브랜드였던 켄모어 Kenmore도 별도의 지주 회사로 분사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회사 제품들은 현재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다.

뭐가 잘못됐을까? 시어스는 부분적으로 신용카드 사업을 통해 가전제품에서 우위를 점했다. 소비자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어스 제휴카드로 가전제품을 구매하고 신용등급을 올렸다. 하지만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성장하며, 이 부문에서 시어스의 영향력이 약화됐다. 

더 결정적으로, 대형 할인 경쟁사인 홈디포나 로우스가 쇼핑객들에게 더 편리한 교외의 스트립 몰/*역주: 번화가에 상점과 식당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곳/에 매장을 늘리기 시작했다. 스트립 몰은 전통적인 도심 쇼핑몰들보다 제품을 적재하는 데 제약이 적었다. 그래서 신규업체들은 목재 같은 대형 상품들을 더 많이 구비하고, 고객들이 더 쉽게 운반할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시내 쇼핑몰에 틀어박혀 있던 시어스는 그들의 공격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2000~2005년 시어스 CEO를 지낸 앨런 레이시는 “재임 기간 동안 회사가 로우스 인수에 매우 큰 관심을 가졌다”며 “하지만 결국 놓쳐 버렸다”고 한탄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시어스 기사들은 가전제품 배달과 수리를 위해 연간 800만 가구를 방문, 중요한 고객 정보를 수집했다. 덕분에 회사는 스마트 홈과 스마트 가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날로 악화하는 자금사정으로, 시어스는 ‘홈 서비스’ 사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베스트 바이와 아마존이 현재 이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P.W.

◆맹맥만 유지한 시어스의 의류 및 가정용품 사업: 쇼핑객들이 몰 매장보다 중고 할인점을 선호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엄청난 규모의 시어스 가정용품 및 공구 사업부는 의류로 잘 알려진 J.C. 페니, 메이시스 같은 경쟁업체들과 차별화됐다. 문제는 사람들이 냉장고와 파워 드릴은 몇 년에 한번 사지만, 옷은 일년에 3~4번씩 구매한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당시 CEO를 역임한 아서 마르티네스는 고품질의 의류와 가정용품을 판매하며, 이런 딜레마에 대처했다. 회사는 ‘시어스의 좀 더 부드러운 면(Softer Side of Sears)’이라는 영리한 광고 캠페인을 펼치며 판매 전략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소매업체는 의류 사업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전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전 시어스 온라인 의류담당 임원으로, 현재 리서치회사 가트너 L2에서 대형 할인매장 섹터를 총괄하고 있는 채드 브라이트 Chad Bright는 “회사는 당시 시어스와 엮이고 싶지 않은 브랜드들과 쓸데 없는 씨름을 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페니와 메이시스는 판매의류를 공급하는 유명업체들을 상대로, 시어스 같은 다른 체인에 옷을 팔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위험을 자초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시어스가 패션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시어스는 호감이 가는 브랜드들에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갈수록 매력을 잃어가는 매장이 걸림돌이 됐다. 실제로 2010년 패스트 패션 소매업체 포에버 21과의 제휴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카다시안 자매의 인기도 카다시안 컬렉션 Kardashian Kollection의 실패를 막을 수 없었다. 상황은 갈수록 더욱 악화했다. 여성 쇼핑객들이 2016년 설문에서 “의류를 구매할 때 시어스보다 중고 판매점 굿윌을 더 선호한다”고 답할 정도였다.

좋지 않았던 타이밍도 파트너십 ‘시나리오’를 무산시켰다. 앨런 레이시 전 CEO는 “K마트에서 제품라인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마사 스튜어트 Martha Stewart와 2004년 자체 가정용품 출시를 협의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논의는 스튜어트가 내부자 거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레이시는 “우리는 정말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그런데 마사가 감옥에 갔다. 생각하지 못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P.W.

◆온라인 사업은 어떻게 실패했나: 시어스는 전자상거래 강자가 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진 이유가 있었다 

대규모 고객층과 광대한 유통망, 공급업체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 현재 아마존이 가진 대표적인 강점들이다. 30년 전 시어스도 그랬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로 인해, 오히려 시어스는 명확히 전자상거래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시어스는 1925년 첫 매장을 열기 전까지, 수십 년간 카탈로그만으로 사업을 벌이던 소매업체였다. 카탈로그 사업부 매출은 최고치를 찍었던 1980년대 당시, 연간 40억 달러를 기록했다. 엄청난 규모의 고객정보 보고(寶庫)도 구축했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카탈로그 사업에서 거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빅북 Big Book으로 알려진 1,500페이지짜리 카탈로그를 우편으로 부치는 비용이 문제였다. 게다가 카탈로그가 마진이 적은 상품에 집중했다는 점도 적자를 키웠다. 그 결과, 카탈로그 사업부는 하루에 100만 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었다.

시어스는 마침내 1993년 카탈로그 사업부를 해체하는 중대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 고객 리스트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1997년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열었을 때, 기본적인 많은 요소들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시작은 늦었지만, 시어스는 디지털 소매의 선구자가 됐다. 시어스닷컴은 메이시스나 타깃보다 몇 년이나 빨리, 온라인 주문 상품을 매장에서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사이트는 또 훌륭한 검색 기능을 자랑했고, 고객들이 온라인에서 옷을 입어 볼 수 있도록 ‘가상 모델’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어스닷컴은 여전히 시어스의 일부였다. 2000년대 후반까지 회사의 상품 분류는 너무나 형편이 없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마법을 부려도 신규 고객을 유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욱이 많은 매장들을 폐점한 탓에, 시어스는 소매업체들의 온ㆍ오프라인(bricks and clicks) 병용전략을 지탱하는 ‘존재감’을 잃었다.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2013~2017년 시어스 매장 수는 828곳에서 570곳으로 급감했고, 전자상거래 매출도 50% 감소한 13억 달러에 머물렀다. —P.W.

◆살아 남은 시어스 계열사들: 과거 ‘시어스 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일부 전국적 브랜드들은 현재 과거 모회사보다 훨씬 더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스스로 잘한 경우도 있고, 새 주인을 잘 만나 그런 경우도 있다.

-올스테이트: 시어스는 1931년 이 자동차 보험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금융 서비스 전략을 포기하면서, 1990년대 초 이 회사가 분사됐다. 현재 포춘 500대 기업 82위에 올라 있는 올스테이트는 지난해 거의 4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크래프츠먼: 92년 역사를 가진 이 공구 브랜드는 여전히 시어스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주인은 스탠리 블랙&데커(포춘 500대 기업 228위)이다. 이 회사는 2017년 시어스로부터 9억 달러에 크래프츠먼을 인수했다. 시어스는 현재 크래프츠먼 매출 중 일부 로열티만 받고 있다.
 
-딘 위터: 시어스는 1981년 이 중개업체를 인수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한번도 시어스 고객 덕을 본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반 개미투자자들의 기반이 워낙 튼튼했다. 그래서 월가의 콧대 높은 모건 스탠리(포춘 500대 기업 63위)가 호시탐탐 이 회사를 노렸고, 결국 1997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디스커버 파이낸셜 서비스: 1985년 설립된 더 디스커버 카드는 1990년대 초 딘 위터에 편입돼 시어스 가를 떠났다. 모건 스탠리는 2007년 디스커버 사업부를 독립 회사로 분사시켰다. 현재는 포춘 500대 기업 253위에 오를 정도로 크게 성장해있다.   

-랜즈 엔드: 시어스는 카탈로그 기반의 이 의류 소매업체를 2002년 인수했다. 하지만 모회사의 몰락과 함께 브랜드의 강점도 퇴색했다. 결국 시어스는 2014년 분사를 단행했다. 현재 매출 15억 달러 규모의 랜즈 엔드는 장기간 하락세 끝에 마침내 지난 한해 실적 성장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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