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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구의 ‘리더십 레슨’] 슬픈 리더를 외면하는 조직은 위험하다
[신제구의 ‘리더십 레슨’] 슬픈 리더를 외면하는 조직은 위험하다
  • 신제구 교수
  • 승인 2019.07.26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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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8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갈수록 리더가 옥죄이는 세상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리더는 무척 슬프다. 모두가 리더의 잘못이라고 하고 조직은 뒤에 숨어 비겁하게 모른 척한다. 하지만 슬픈 리더를 외면하는 조직은 위험해질 수 있다. / 신제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이미지=셔터스톡
이미지=셔터스톡

[Fortune Korea] 리더십 관련 글을 쓸 소재가 점차 줄고 있다. 필자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크겠으나 작금의 현실을 보면 갈수록 초라해지는 리더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더 잘해야 한다고 떠들어댈 염치가 없는 이유가 더 크다. 그들 보고 더이상 어떻게 하라는 걸까? 리더만 죽을죄를 지었단 말인가? 패자부활전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한 번만 실수해도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품고 사는 그들이다. 그래서 조직의 모든 문제가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몰아붙이는 습관적 현상을 접할 때마다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리더들이 갈수록 옥죄이고 있다. 최근엔 리더들의 실수를 통제하겠다는 법까지 생겼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예가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 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법에서 정의하고 있다.

좋은 법이다. 그러나 리더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법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런 법까지 만들게 된 걸까? 성희롱 방지법과 부패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제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국민이 된 걸까? 법에 의존하지 않으면 성희롱을 방지할 수 없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지 못하며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할 수 없단 말인가? 이 정도면 갈 데까지 간 사회 아닐까?

리더를 겨냥한 부정적 통제 메커니즘이 많아졌다는 것은 이전에 리더들이 잘못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슬픈 리더들의 슬픈 리더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나쁜 리더는 드물다. 나빠졌을 뿐이다.

리더가 처음 되던 날 세상에서 가장 기뻤던 사람은 바로 리더 본인이고 조직을 구하겠다는 심정으로 훌륭한 리더십을 꿈꾼 사람도 리더 본인이다. 이런 리더를 무엇이 나빠지게 만들었을까. 리더의 타락이 시대와 조직을 초월하여 공통으로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조직이 목표 달성을 위해 주문했던 모든 명령과 지시가, 또 그 전달되는 과정이 어쩌면 처음부터 순수한 리더를 나쁘게 변질시키는 특성을 잉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조직생활 과정에서 많은 것을 관찰하며 리더가 되고 또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서 리더는 자기도 모르게 어디서 본 듯한 매우 익숙한 리더로 변해간다. 조직을 위해 헌신했던 선배들이 잘 풀렸던 사례를 관찰한 리더는 조직에 대한 헌신을 가치로 학습하며 조직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지만 헌신했던 조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선배를 관찰한 리더는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게 된다. 이렇게 조직에서 리더가 조직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분명해지는 반면, 가해자는 불분명해진다.

기꺼이 나빠진 리더는 때때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한다. 성희롱으로 해석되는 나쁜 짓을 감행하거나 얼떨결에 부정부패에 동참하기도 하며 종종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물론 해당 법의 탄생을 부정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리더를 비롯한 인물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조직의 목표는 달성하되 나빠지지는 않기를 바라는 조직이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일해서 높은 성과도 내고 직원들 만족도도 최고조로 만들며 리더 본인은 절대 나빠지면 안 된다는 가정을 조직이 품고 있었다면 그것은 범죄에 가깝다.

그렇다면 관련 법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직장 내 리더 타락 방조죄’를 만들어 조직에서 리더들을 나빠지게 만든 조직 혹은 그 조직의 주인을 벌하는 법 말이다. 이 법이 생긴 후에도 나쁜 리더가 출몰한다면 해당 리더에게 보다 엄중한 처벌을 해도 무관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는 리더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현재 상황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일 뿐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양심이 있었다.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권위주의에 가까운 권한부여, 사적인 사용이 우려되기는 했지만 눈치 보며 사용했던 법인카드, 스스로 가져봤던 성공한 인생에 대한 만족감 등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과거부터 그랬을 것이란 리더에 대한 편견과 아련한 분노만 남았다. 이제 리더들에게 남은 것은 없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떤 독자는 반대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수용하고 용서를 구한다. 최근에도 나쁜 리더 때문에 고통받는 분이라면 특히 더.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진짜 가해자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조직은 늘 뒤에 숨어있다. 개처럼 버는 일은 리더가 하고 정승처럼 쓰는 일만 조직이 한다면 문제 아닌가. 이런 조직이라면 조직에 들어오기 전에 알렸어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리더가 될 직원들이 그 조직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은 지나고 난 뒤에야 명확해진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또 한 번 실감한다.

이젠 세상도 많이 변했다. 더이상 기꺼이 나빠질 리더도 별로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더로서 대접받거나 스스로 리더라고 자부했던 사람이 점차 자신감을 잃고 리더의 자리를 거부하기까지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차피 권한도 없고 책임만 남았는데 공연히 힘만 쓰고 고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힘없는 직원들을 괴롭히는 힘센 리더가 가해자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힘없는 리더에게 가차 없이 도전하는 힘 있는 직원들의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리더가 힘자랑하던 시절의 잘못을 지금 리더들에게 따진다면 조직이 먼저 매를 맞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리더는 무척 슬프다. 모두가 리더의 잘못이라고 하고 조직은 비겁하게 모른 척한다. 조직이 먼저 리더에게 사과하고 힘겨운 리더를 도와야 한다. 지금까지 리더를 앞세워 성과를 얻었다면 이제는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희생된 리더의 명예를 조직이 회복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슬픈 리더의 슬픈 이야기를 조직이 외면한다면 조직도 슬퍼질 공산이 크다.

조직과 리더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법 앞에 리더를 홀로 남겨두지 말고 조직이 리더 곁에 머물러야 한다. 또한 리더가 조직에 머물러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리더를 방치한다면 조직의 운명도 슬퍼질 수 있음을 잘 인식해야 한다. 비록 리더는 조직보다 약하지만 조직에 치명적인 흠집을 낼 수 있는 위험한 약점은 방치된 리더가 가장 많이 잘 알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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