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장난감’으로 인식돼온 블록 완구 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색다른 아이디어와 남다른 퀄리티의 제품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는 것. 그 중 창업 5년차 블록 완구 기업 ‘앤스브릭'이 디자인 기반의 블록 완구로 업계의 부활을 선도하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추억의 블록 완구 ‘레고(lego)’를 기억할 것이다. 형형색색의 네모반듯한 블록을 켜켜이 쌓다보면 어느새 근사한 자동차, 비행기, 성(城) 등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줘야만 했던 부모들의 선택지에는 언제나 레고가 포함돼있었다.
그랬던 레고의 인기가 어느순간부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이들은 레고 블록을 갖고 놀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PC와 스마트폰 게임이 차지했다. 한때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장난감’의 대명사였지만 부모들은 레고 대신 학원들을 보내기에 바빴다.
레고의 인기가 식자 자연스레 레고로 대표되는 블록 완구 시장이 덩달아 위축되기 시작했다. 블록 완구 시장에 뛰어들었던 국내 몇몇 업체들도 업종을 바꾸거나 사업을 접는 선택을 해애 했다.
그렇게 사양산업이 될 것처럼 보였던 블록 완구 시장이 최근 들어 다시금 도약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업계 내부에선 사실상의 ‘화려한 부활’을 선언하는 다소 성급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허종승 앤스브릭 대표는 말한다. “죽어가던 블록 완구 시장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기 캐릭터의 지적재산권(IP)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 ‘어벤져스’, ‘해리포터’ 시리즈 등 인기 영화 캐릭터에 기반한 레고 제품이 등장하면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시킨거죠. 특히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어릴 적 향수를 다시 느끼려는 어른들, 소위 ‘키덜트’ 들의 지갑도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레고의 반전과 더불어 전제 블록 완구 시장도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죠. 앤스브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레고가 타사의 IP를 활용해 반전을 도모했다면, 저희 앤스브릭은 이미 처음부터 독자 캐릭터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어왔다는 점이죠.”
앤스브릭은 창업 5년차를 맞이한 토종 블록 완구 기업이다. 앞서 언급했듯 앤스브릭은 단순한 블록 ‘조립’ 완구 기업은 아니다. 기본적인 조립형태의 장난감에 ‘디자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사실 기존 블록 장난감에도 일정한 디자인 요소는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갖고 노는 장난감도 디자인 된 후 출시된다. 하지만 앤스브릭이 ‘디자인 기반의 블록 완구 기업’을 표방하는 이유는 기존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제품 출시 과정 때문이다.
허종승 대표는 말한다. “현재 앤스브릭 뿐 아니라 국내 대다수 블록 조립 완구 기업들은 중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현지 공장을 이용해 제품을 제조·공급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 그대로를 받아 국내에 판매하죠. 쉽게 말해 ‘유통 업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물론 디자인 요소에 대해 신경을 쓰긴 합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사진, 그림 등 일정한 디자인을 중국 공장에 보낸 후,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용역을 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앤스브릭은 달라요. 저희가 직접 만든 디자인을 중국 현지 공장에 보내 제품을 만들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존에 중국 공장에서 갖고 있는 금형(블록 완구의 가장 기본 형태인 ‘브릭(Brick)’를 만들어 내는 틀)으로는 저희가 디자인한 제품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런 까닭에 중국에서 저희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은 모두 저희 앤스브릭이 직접 고안한 금형을 갖고 있습니다. 보다 디테일하고 작은 부분의 브릭까지 만들 수 있어 중국 현지 업계 내에서 주목받기도 했죠.”
현재 전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블록 완구 기업들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대부분은 중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앤스브릭의 기술력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앤스브릭의 기술력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일 수 있다.
허종승 대표는 “중국 업계에서 앤스브릭은 평범한 ‘블록 완구 기업’이 아닌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내는 ‘블록 완구 인벤터(inventer)’로 불리고 있다”며 “중국 뿐 아니라 글로벌 블록 완구 시장에서 앤스브릭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한 앤스브릭 본사는 마치 거대한 블록완구 진열장을 방불케 했다. 곳곳에 앤스브릭 제품이 직접 디자인하거나 기존 기업들과 협업해 만든 제품이 마치 ‘멋진 작품’처럼 전시돼있었다.
더 놀랐던 곳은 인터뷰가 진행된 회의실이었다. 회의실 벽면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브릭이 색상, 크기별로 구비돼있었다. 허 대표의 말에 따르면 현재 앤스브릭에서 보유하고 있는 브릭의 종류는 무려 5만 여종에 이른다. 5만 종의 브릭이 모여 하나의 블록, 하나의 완제품을 구성하게 된다.
최초 디자인 시작 시점부터 완제품이 나오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4달 수준이다. 단계 별 공정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은 바로 첫 번째 공정인 ‘콘셉트 설정’이다.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디자인 하는 과정만 마무리되면 이후 과정은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허종승 대표는 “브릭과 브릭을 조립했을 때 완벽한 ‘체결감’이 구현되는지 등 후속 관리 작업이 완료 되면 본격적으로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완벽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만큼 ‘높은 기술력’이라는 앤스브릭의 강점이 완제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국내 블록 완구 시장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앤스브릭이지만 초창기에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허종승 대표 역시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블록 완구 시장의 가능성을 그저 막연히 믿었을 뿐,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믿음은 창업으로, 그리고 투자와 도전으로 굳건히 이어졌다.
허종승 대표는 잘나가는 글로벌 가전기업의 제품 기획자였다. 그가 기획에 참여한 제품 중 30여개는 국제 가전박람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미국을 제집처럼 들락날락 하게 됐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창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허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업무차 미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차라리 미국에 거주하며 일을 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죠. 그러던 중 우연히 미국 한 유통회사에서 운영하는 체험 교육 프로그램 ‘빌드 앤 그로우(Build and Grow)’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나무로 장난감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진짜 나무, 망치, 못 등을 이용해 장난감을 만들었죠. 누가 봐도 아이들이 만지기에는 어려운 도구들이다보니 부모의 도움이 필요했고요. 그렇게 부모와 아이가 함께 나무를 잡고, 망치질을 하면서 스킨십을 하다보니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러한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교감하며 노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그저 키즈카페에 가거나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게 전부죠. 그래서 몸으로 부딪히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노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허 대표는 아이와 아내를 미국에 둔 채 혈혈단신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주요 기업, 투자자들을 만나 이 같은 프로그램의 효용성과 시장 가능성을 설명하며 투자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거의 모든 기업, 투자자들은 ‘수익성’을 근거로 투자에 난색을 표했다. 물론 대놓고 ‘수익성’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망치를 사용하는 놀이는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그것이 투자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당연히 아니었다.
난관에 부딪힌 허 대표는 발상을 전환해 ‘나무’대신 ‘블록 완구’로 사업 아이템을 전환했다. 블록 완구를 만든다면 제품을 판매해 수익성을 챙길 수 있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블록을 조립하며 서로를 교감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지금의 ‘앤스브릭’이다.
허 대표는 “앤스브릭에서 ‘앤스(ans)’는 정답을 뜻하는 앤서(answer)의 앞 세 글자를 딴 것”이라며 “블록 완구에서 아이와 부모를 교감케 하는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앤스브릭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귀띔했다.
현재 앤스브릭의 핵심 사업은 기존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 굿즈를 브릭형태로 디자인해 개발·제조·공급하는 것이다. 카카오, 다이소, MBC, 현대자동차, 진에어 등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과의 협업은 앤스브릭이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허종승 대표는 말한다. “한 완구 박람회에서 게임기업 ‘넷마블’로부터 자사 게임 ‘모두의 마블’과 ‘세븐나이츠’의 캐릭터를 블록 완구 제품으로 만들어 볼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제품을 만들어 선보였죠. 제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작을 의뢰하더군요. 이후 과정은 모든 것이 ‘처음’ 투성이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부터 시작해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등 모든 것이 저희에겐 ‘첫 경험’이었어요. 당시 경험을 통해 저희는 협업을 통한 제품 생산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운 좋게도 넷마블 사례를 확인한 다른 기업들로부터 많은 제안을 받을 수 있었어요.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 부재라는 어려움을 겪었던 앤스브릭이 반전할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도 아마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허종승 대표와 앤스브릭은 단순한 ‘블록 완구 기업’이 아닌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허 대표 역시 “일정 수준의 매출만 낼 수 있다면, 협업을 통한 완구 제조 물량은 가급적 줄이고 새로운 도전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도전은 바로 ‘구독형 가상화 완구 서비스’다.
구독형 가상화 완구 서비스는 쉽게 말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블록 완구 조립을 가상의 형태로 가능케 하고, 이러한 콘텐츠를 ‘서비스 내 결제’의 형태로 꾸준히 공급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아직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 어디에서도 시도한 바 없는 새로운 형태의 블록 완구 서비스다.
허종승 대표는 “구독형 가상화 완구 뿐 아니라 최근 뜨고 있는 교육 콘텐츠 ‘스팀(STEAM·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융합한 교육 방식)’과 코딩도 블록 완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라며 “늦어도 올해 12월까지는 해당 교육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앤스브릭의 궁극적인 목표는 ‘블록 완구 제조사’에서 벗어나 ‘블록 완구 기반의 기술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간에는 궁극적으로 부모와 아이가 블록 완구를 매개체로 교감할 수 있게 하겠다는 허 대표의 철학이 담겨있다.
허 대표는 말한다. “올해도 아마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올해 하반기부터 앞서 언급한 교육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집중해 체질 개선을 위한 변신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모쪼록 블록 완구에서 답을 찾기 위해 시작하는 앤스브릭의 여정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