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뉴욕, 런던, 홍콩 등 세계 11개 주요 도시에서 매년 개최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스카이런(SKY RUN)’이 지난 4월 6일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렸다. 롯데월드타워는 국제 수직마라톤 대회 개최 단체인 ISF(International Skyrunning Federation) 산하 VWC(Vertical World Circuit)가 공식 인증한 세계 최다 계단(2,917개) 대회장이다. 포춘코리아 기자가 이 행사에 참가해 세계 최대 계단 수를 자랑하는 롯데월드타워를 등정(?)해봤다.◀
[포춘코리아] 4월 6일 토요일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아레나 광장은 각종 행사부스와 대기자들, 나들이를 나왔다 구경을 하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일반 비경쟁부문으로 신청한 기자의 스카이런 출발 시각은 12시 54분으로 대회 가장 끄트머리였지만, 이미 등정을 마친 참가자들의 기념 촬영과 부스 관람이 이어지면서 행사장엔 여전히 많은 참가자 무리가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스카이런 참가자들의 대회장 관람은 대부분 등정 이후인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를 치르기 전엔 정신이 황황해 주위 환경이 눈에 잘 안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 엄청난 높이(무려 123층 555m이다)와 외양 때문에 ‘사우론의 탑(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그날따라 더욱 거대해 보였다.
기자는 주최 측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참가등록을 마치고 레이스 팔찌를 받았다. 등록 부스 바로 옆 탈의실에서 미리 배부받은 스카이런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고 여분 물품은 탈의실 옆 물품보관함에 맡겼다. 다소 과격한 운동이다 보니 40대 이상 참가자들은 추가로 메디컬 테스트를 필수로 받아야 했지만 30대인 기자는 이 과정을 생략했다. 애초에 이 대회에 참가한 것 자체가 건강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므로 대부분은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기자가 속한 일반 비경쟁부문 경쟁이 시작됐다. 대기 줄에 서 있는 동안 오전 9시 30분 가장 먼저 시작한 남자 엘리트경쟁부문에서 폴란드의 피오트르 로보진스키 선수가 15분 37초 76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왔다. 2등과 몇 분이나 차이 나는, 상당히 좋은 기록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드디어 기자가 속한 팀이 출발 라인에 섰다. 떨리던 몸과 마음이 오히려 경쾌해졌다. 긴장이 풀리며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 성별, 나이 대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레이스가 시작됐다. 쉬지 않고 꾸준히 오르는 것을 목표로 했던 까닭에 마음이 여유로웠다. 우직한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 고사성어가 떠오르자 더욱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층 곳곳에는 중간 응원을 해주는 도우미나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의료지원센터 및 식수대 위치), 롯데 계열사들의 유쾌한 표어 등이 위치해 있었다. 사방이 막힌 공간이다 보니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레이스를 좀 더 재밌게 즐기게 하려는 주최 측의 배려였다. 덕분에 50층까지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도우미와 농담 따먹기도 하고 각종 표어와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으며 올라갈 수 있었다.
50층까지는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갔지만 70층부터는 거의 혼자만의 레이스였다. 위아래 2개 층에 다른 참가자 없이 혼자 몇 개 층을 더 올라갔다. 휴식 공간에 앉거나 누워 쉬는 참가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며 묘한 자긍심이 벅차올랐다.
90층부터는 다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오를 때의 적막함은 덜했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점점 허리가 앞으로 굽고 호흡이 가빠졌다. 90층부터는 아래만 보고 오로지 계단을 오르는 데에만 주력했다. 저층에선 도우미들의 응원에 화답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이제는 작은 체력이라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한참을 올라가는 도중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걸 깨달았다. 이미 100층 이상을 오르고 있었다. 이전 층들과 달리 배경이 어두운 색으로 바뀌었고 포토존으로 꾸며놓은 듯한 연출 공간이 중간중간 나타났다.
고지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몸에 생기가 돌았다. 십 여 개 층이 더 남아있었다. 마지막 힘을 모아 좀도 속도를 냈다. 오를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중간중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 때문이었다. 기자는 그들을 뒤로 하고 계속 뛰어올랐다.
123층에 도착했다. 꼭대기 층답게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차가운 시골 (출신) 남자였던 기자는 잘 꾸며진 포토존을 무시(사실은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하고 시크하게 데스크로 향했다. 데스크에는 멋들어진 기념 메달과 식수가 준비돼 있었다. 꼭대기 층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은 꽤나 찌푸린 날씨에도 정말 아름다웠다.
롯데월드타워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제서야 아레나 광장의 크고 작은 행사와 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스를 마친 후 바라본 롯데월드타워는 사우론의 탑 위용 대신 한없이 친숙하고 낮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1층 행사 도우미가 뻘겋게 상기된 기자를 보고 힘들지 않았느냐고 어림짐작해 물었다. 기자는 롯데월드타워를 한번 올려다보곤 말했다. “아닌데요, 완전 쉬웠는데요?”
◇ 행사 이모저모
- 올해 스카이런 엘리트경쟁부문에선 폴란드의 피오트르 로보진스키 선수와 대한민국의 김지은 선수가 각각 15분 37초 76, 19분 5초 22의 기록으로 남녀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김지은 선수는 한국 선수 최초로 2018년 VWC리그 순위권자(2등)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2019 시즌 한국인 최초 우승자로 등극했다.
- 올해 롯데월드타워 스카이런 대회에는 총 210명의 외국인 참가자가 경쟁에 참여했다. 지난해 대비 35% 늘어난 수치다. 롯데물산은 경쟁부문에 참가한 순위권 엘리트선수들에게 세계 11개 스카이런 대회 중 최대 규모인 총 1,000만 원(약 1만 달러)의 상금과 트로피를 증정했다.
- 이번 대회에는 롯데물산이 매년 후원하는 송파구 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족 26명이 참가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송파구청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도 25명이 참여해 자선 릴레이를 펼쳤다. 롯데물산은 전체 대회 참가비 중 대회 운영비를 제외한 전액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지원할 계획이다.
- 대회 다음날인 7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롯데 임직원이 참여하는 제2회 롯데 패밀리 수직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을 비롯해 47개 롯데그룹 계열사 1,3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