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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가 적자기업 쿠팡에 '조 단위' 돈 밀어 넣는 이유?
손정의가 적자기업 쿠팡에 '조 단위' 돈 밀어 넣는 이유?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4.25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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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쿠팡이 지난해 1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왜 이 같이 막대한 손실을 지속하는 쿠팡에 투자하는 것일까?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 회장과 김범석 쿠팡 대표가 2018년 11월 2차 투자를 확정하고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쿠팡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 회장과 김범석 쿠팡 대표가 2018년 11월 2차 투자를 확정하고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쿠팡

[Fortune Korea] 지난 4월 15일 쿠팡이 2018년 실적을 공개했다. 4조 4,227억 원 매출에 1조 970억 원 영업손실이었다. 시장 확대를 위해 ‘계획된 적자’ 전략을 쓰고 있다는 쿠팡이지만, 영업손실 1조 원 문을 열어젖히자 쿠팡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 역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18년 11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oftBank Vision Fund·이하 SVF)로부터 받은 20억 달러(2조 2,700억 원) 투자금도 올해나 내년쯤 바닥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쿠팡은 과거 이미 한 차례 자본잠식에 빠진 적이 있다. 2015년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를 투자받은 쿠팡은 2017년 자본금을 모두 소진하며 자본잠식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후 2018년 1분기 유상증자를 통해 3,021억 원을 확보하면서 자본잠식을 벗어났고, 같은 해 SVF로부터 2조 원대 투자를 받으며 기사회생했다. 2020년 쿠팡이 또다시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든다면 ‘쿠팡의 계획된 적자=투자 받은 지 2년 만에 모든 투자금을 태우는 것’이라는 시장 일각의 우스갯소리 해석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게 된다.

◆ SVF라는 든든한 배경

쿠팡의 대규모 적자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과거와 같은 수준은 아니다. 과거엔 쿠팡 존폐를 염두에 둔 우려가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엔 이 같은 시각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쿠팡이 다시 자본잠식 상황에 내몰려도 SVF가 추가 수혈을 해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이 같이 변화된 시각은 투자업계를 넘어 심지어 쿠팡 경쟁사들에서도 확인될 만큼 확산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소프트뱅크의 1차 투자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실수하는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2차 투자까지 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 회장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죠. 쿠팡이 턴어라운드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는데도 또다시 막대한 투자금을 밀어 넣은 거니까요. 손 회장의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비전펀드 결산 설명회에서 쿠팡을 치켜세우는 발언으로 글로벌 벤처캐피탈 업체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그는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으로, 한국 이커머스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회사로 급성장하고 있다”며 “쿠팡을 더욱 강도 높게 뒷받침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이 SVF GP(General Partner)인 만큼, 더욱 강도 높게 뒷받침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SVF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쿠팡 투자를 계속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 왜 투자하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손 회장은 왜 쿠팡에 투자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투자는 미래 수익을 기대하고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쿠팡은 미래 수익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쿠팡 시스템으론 미래에도 수익사업 전환이 어렵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수익사업 전환을 위해 현재 시스템을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 쿠팡이 지금과 같은 서비스 편의 확대 정책에서 수익 추구로 스탠스를 전환하는 순간, 현재 구축한 시장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제조업과 달리 유통업은 브랜드 파워나 충성고객이라는 개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이커머스 소비자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조사에서 한 20위권이나 될까요? 이커머스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건 결국 가격, 배송, 반품 정책 등 서비스입니다. 쿠팡이 이 점을 잘 파고들어 현재의 지위에 올라선 거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서비스 수준을 낮춘다? 결과가 뻔하죠. 아마 손 회장도 그런 시나리오는 원치 않을 겁니다.”

쿠팡이 서비스 확대 정책을 유지하면서 수익 전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아마존과 같이 압도적인 시장 1위 사업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쿠팡과 비등한 수준의 이커머스 서비스 경쟁력을 보여주는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쿠팡이 획기적인 서비스를 기획한대도 이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이들 대기업이 순식간에 같은 서비스를 출시해 쿠팡 경쟁력을 희석시킬 가능성이 높다. 쿠팡이 스타트업인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준비 3개월 만에 내놓은 것과 같은 이치다.

◆ 탐나는 데이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손 회장은 왜 쿠팡에 투자하는 걸까?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투자는 미래 수익을 기대하고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쿠팡은 미래 수익을 기대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 생각의 전환을 해볼 수 있다. 손 회장이 쿠팡에 기대하는 것이 몇 배의 투자금 회수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이에 대해 최근 외국계 투자사들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말한다. “쿠팡이 현재의 유통사업으로 유의미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손 회장조차도 그렇게 낙관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쿠팡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유통 플랫폼 운영이 쿠팡의 다가 아니잖아요. 쿠팡의 주력사업이 뭐냐고 물으면, 물론 저도 유통이라고 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쿠팡의 데이터 수집 능력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데이터는 미래의 자본이라고도 하잖아요. 손 회장 입장에선 이커머스가 가장 발달한 나라의 고객, 쇼핑, 물류 데이터와 그 흐름을 매년 1조 원 비용으로 사들일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언뜻 황당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근거가 없지는 않다.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12월 자신이 설립한 재단 행사에서 비전펀드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AI 관련 기업에만 관심이 있다”며 “앞으로 AI와 관련 없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데이터는 AI 구동의 핵심으로 꼽힌다. 쿠팡의 데이터 가치가 SVF에서 상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14년 소프트뱅크에 합류해 현재 SVF 투자고문과 쿠팡 이사직을 겸하고 있는 리디아 제트는 SVF 홈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로 “포트폴리오 회사들 전체에 걸쳐 학습을 연결하는 것”을 들었다. 각각의 시장에서 서로 다른 발전 단계에 있는 기업들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말이지만, 생산자원의 공유나 결합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의 투자업계 관계자 멘트를 더해 생각해보면 SVF는 가장 선진화된 국내 이커머스 시장 데이터와 경험을 다른 시장 이커머스 업체에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쿠팡은 “쉿!”

올해 2월 제프리 하우젠볼드 SVF MP(Managing Partner)가 해외 매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SVF 투자의 공통적인 테마가 있다면 그것은 데이터입니다. 우리는 깊음보다는 넓음을 추구합니다. 아마존은 아마도 당신이 아마존에서 쇼핑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25개 이커머스 사이트를 통해 당신의 쇼핑 습관에 대해 (아마존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소프트뱅크가 반드시 모든 데이터를 소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투자 포트폴리오에 속한 회사들이 있으니까요.”

쿠팡 역시 데이터 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쿠팡은 시애틀, 실리콘밸리 등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개발자 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이들 오피스는 유능한 개발자를 모셔오려는 쿠팡 노력의 일환 중 하나이다. 쿠팡 관계자는 “개발자가 본국에서 일하고 싶어 할 경우 이를 수용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국내 유통사업자가 ‘유능한 개발자 확보를 위해 글로벌하게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데이터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선 납득하기 어렵다. 쿠팡 관계자는 “전체 사무직 인력 가운데 40% 이상이 개발자이고, 그 수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선다”고도 했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SVF가 (수익 전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쿠팡에 거액의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를 데이터라고 유추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개발자 수가 1,000명이 넘고 하루에 100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기업이 이를 사업화하지 않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세간의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쿠팡 측은 여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데이터 관련 사업 내용은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데이터 기업’ 쿠팡의 행보에 주목해보자. 상당히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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