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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포춘] 디자인이 기업을 만든다

BUSINESS BY DESIGN

  • 기사입력 2019.04.01 17:03
  • 기자명 Barry Katz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디자인중심 사고는 기업의 제품개발과 소비자 접근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과연 디자인은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까?◀

[포춘코리아] 1991년 창립된 세계적 디자인기업 IDEO는 애플의 컴퓨터 마우스부터 대형 제약사 일라이 릴리 Eli Lily를 위한 인슐린 전달 시스템까지, 진보적이고 유용한 제품들을 창조했다. IDEO는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실천하는 가장 유명한 기업이기도 하다. ‘디자인적 사고’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대규모 접근법을 통해 근로자, 기술, 소비자, 제품 간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경영 문제를 협업으로 풀고자 한다.

IDEO의 사장 겸 CEO 팀 브라운 Tim Brown은 자신의 2009년 베스트셀러 ’디자인에 집중하라(Change by Design)‘에서, IDEO 선임연구원 배리 캐츠 Barry Katz와 함께 경영계에 디자인적 사고를 전파했다. 3월 출간 예정인 개정판에서, 두 사람은 디자인적 사고가 그 적용범위를 확대해 미국 사회 최대의 ’난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년 전, ’디자인에 집중하라‘를 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디자인적 사고는 기업·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디자인을 그릴 캔버스를 확장한다. 디자인적 사고는 인간중심적·창조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새롭고 효과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디자인적 사고는 정식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의 기술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를 줘야 한다.

출간 이후, 전 세계 각지의 기업과 사회단체, 학술단체에서 우리가 디자인적 사고로 분류하는 각종 접근법을 채택했다. 애플, 알파벳, IBM, SAP 등 세계 최대의 영향력을 지닌 기업들 중에서도 디자인을 기업활동의 중심에 놓은 사례들이 등장했다. 디자이너들은 실리콘밸리 등 세계 각지에서 산업을 파괴하는 벤처기업의 창업에도 동참하고 있다. 병원, 금융서비스기업, 경영 컨설팅 업체들이 디자이너를 정기적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고학년까지의 전 과정에서 디자인적 사고를 도입하는 움직임이 있다.

디자인적 사고는 이제 분명 성숙기를 맞았다. 하지만 서둘러 축포를 터트리진 않겠다. ’디자인적 사고가 의미 있는 효과를 낳기 위한 필요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SNS, 인공지능, 인터넷의 사업모델에서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 질문은 디자인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특히 큰 울림을 갖는다. 디자인적 사고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디자인이 낳을 결과를 이해해야 할 책임이 있다. 디자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기술이 인류에게 봉사하는 방식에 대해 자신의 의도를 담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디자인적 사고의 소유자들은 디자이너보다 훨씬 배경이 다양하다. 이들과 협력해 디자이너들이 관심을 쏟아야 할 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21세기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사회제도 중 다수가 최초의 설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다. 현행 제도는 19~20세기 초, 일명 ‘기계 시대(Machine Age)’에 당대의 필요에 맞춰 설계됐다. 이후 근본적 변화는 한 번도 없었다. 디자인적 사고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저주받은 문제’에 접근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사회문제는 규모가 방대하고, 종료 시점도 없다. 그럼에도 디자인이 유망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지난 10년간 IDEO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이를 소개한다.

Redesigning institutions
제도를 다시 디자인하다

2011년, 우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카를로스 로드리게스-파스토르 Carlos Rodriguez-Pastor라는 페루 기업가의 의뢰였다. 페루는 과학·수학·독해력에서 꾸준히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페루 경제는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교육 받은 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성장이 가져온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로드리게스-파스토르는 새 교육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증가 추세이나 아직 부유하지 않은 페루 중산층이 접근할 수 있고, 전국적 확대가 가능한 학교가 필요했다.

인간중심적 디자인 절차의 1단계는 문제의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페루 현지에 연구팀을 파견했다. 이들은 교사와 행정인력, 기업가와 교육부 관계자, 학부모 그리고 물론 학생 등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삶에 침투했다. 연구진은 가정 관찰, 집단 인터뷰, 현장에서의 사례수집, 현장방문, 계량화된 자료 등을 활용했다. 그리고 문제의 실체 및 이를 둘러싼 제약과 내재된 기회가 무엇인지 평가했다. 이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인원을 보강한 연구팀은 이제 디자이너의 작업 수단을 심도 있게 활용, 향후 확대가 가능한 새 초중등학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전략뿐만 아니라 실행과 관리에 필요한 사항, 즉 교육과정, 교수법과 자료, 교사 역량계발, 건물, 운영계획, 데이터 대시보드 data dashboard /*역주: 조직의 주요 활동지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수단/, 지식공유시스템과 더불어 월 130달러라는 상당히 저렴한 수업료를 납부할 수 있는 재무모델 등을 설계했다(통상적 시장 원리로 유지될 수 없는 비전은 비전으로 남을 뿐이다). 2018학년도에 페루 전역에서 총 49개의 이노바 스쿨 Innova School이 개교했다. 등록 학생 수는 3만 7,000여 명, 교사는 2,000명에 달한다. 멕시코에서도 현지화를 거쳐 시험 운영을 하고 있다.

우리는 페루에서 여러 교훈을 배웠다. 시스템 전반을 통합하는 디자인의 가치(절대적이고 필수적이다)와 더불어, 문제를 근본부터 이해하고 최대한 넓은 맥락 속에서 문제가 차지하는 지점을 찾는 것, 그리고 해결을 위해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의 가치도 배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글라스·도로 표지판·전기 스쿠터 등 인간 문명의 모든 산물과 마찬가지로, 학교도 잘 디자인된 학교가 있는 한편 그렇지 않은, 혹은 구시대적 목표에 따라 디자인된 학교가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딘 로건 Dean Logan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주민등록 기록관 겸 서기관(county clerk)/*역주: 고위 행정직의 일종/이다. 디자인과 한 치의 인연도 없어 보이는 직업이다. 그는 미국 최대의 선거구를 담당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총 유권자 수는 미국 50개 주 중 42개 주보다 많으며, 행정 서비스를 10개 이상의 언어로 제공해야 한다. 로건이 우리에게 한 의뢰는 아주 단순했다. “모든 유권자를 위한 새 선거 시스템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다시 디자인하기? 물론 가능하다.

과거였다면 이 문제는 50년 전에 발명된 투표기의 재설계에 그쳤을 것이다. 사실, 이 투표기의 디자인은 업계에서 일하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현대의 디자이너는 단일 상품뿐만이 아니라 그 상품이 속한 체계, 즉 의미·행동·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 네트워크로 시야를 넓히는 법을 익히고 있다. 명사(‘투표기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가 아닌 동사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방식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다. 명사에 집중하면 더 나은 칫솔, 더 편한 책상의자, 더 조용한 에어컨 등 뭔가를 더하는 사고방식에 갇힌다. 하지만 동사로 생각하면 ‘사고의 지붕’을 뚫고 올라가,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의 본질 전체를 조망하는 접근법이 가능해진다. 이게 바로 진정한 혁신의 조건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및 컨설팅업체 디지털 파운드리 Digital Foundry와의 협력으로 최종 출시한 새 기본 디자인은 기계·소프트웨어 공학만큼이나 사회·행동과학적 연구에 바탕하고 있다. 개발팀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관찰·의견청취·인터뷰·사용자 시험 세션 등을 수백 시간 진행했다. 휠체어를 타는 유권자,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가수 스티비 원더도 일부 모델의 검증에 참여했다) 등을 만났다. 연구진은 4,800개 투표소로 운송될 투표기를 트럭에 싣는 노동자들을 지켜봤고, 현장에 도착한 투표기를 조립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인터뷰했다. 연구팀은 물리적 장애 외에도 보안, 개인정보보호, 신뢰 등 무형의 문제들을 파악했고, 온갖 난관이 도사리는 정치적·법적·규제적 환경을 헤쳐나가는 법을 배웠다. 연구팀은 이 광범위한 연구를 기반으로 일련의 디자인 원칙을 확립하고, 수십 개의 원형 모델을 시험했다. 그 결과, ‘모두를 위한 하나의 기계’라는 단 하나의 핵심 원칙에 기반, 사용이 가능한 최종 모델이 탄생했다.

’프로젝트 복스 Project Vox‘라 명명된 이 도전이 과연 미국 민주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2020년 대선까지 도입될 3만 1,000개의 신형 투표기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순 있을 것이다.

Redesigning design itself
디자인을 다시 디자인하다

신기술이 계속 등장하고, 연결된 세계에서 끝없이 통합이 진행되는 현대에는 점점 높아지는 시스템의 복잡성에 대응할 디자인적 사고가 필요하다. IDEO의 ‘자동차의 미래(Future of Automobility)’ 팀은 자율주행차의 기반기술이 실제 가용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파악한다. 그리고 자율주행 기술이 도시를 어떻게 바꿀지를 연구하고 있다. IDEO가 작년에 인수한 데이터과학 업체 데이터스코프 Datascope는 ‘증강지능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ugmented Intelligence · D4AI)이라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표는 자동차·의류·약품·서비스 등 차세대 스마트 제품이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즉각적 대응이 가능한 방식으로 일상생활의 리듬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디자인적 사고를 활용한 재설계를 ’임종 경험‘으로까지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디자인적 사고의 소유자 앞에 놓인 가장 무거운 과제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역주: 자원의 환원과 재생이 가능한 경제시스템/의 실현일 듯하다. 우리의 현 세계는 인간이 가진 자원이 무한하며, 고갈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성립됐다. 석유나 삼림, 혹은 물고기가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우리의 물질적 풍요가 낳은 부산물을 버릴 공터가 없어질 가능성은? 그러나 인류가 광산·채석장·유정으로 출발해 매립지에서 끝나는 ’선형경제(linear economy)‘에 사로잡히면서, 바로 이런 사태가 현실로 다가왔다.

반면 ’순환경제‘는 제품·부품·자원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가치를 유지 및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세대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산업시스템을 어떻게 다시 디자인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산업시스템의 재생력과 복원력을 강화하고, 폐기물을 차세대 산업의 양분으로 변신시키고, 제품수명 주기엔 시작-중간-끝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재고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EU와 중국은 이미 재생적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목표임을 공언했다. 애플, 필립스, 사무환경업체 스틸케이스 Steelcase, 로레알 등 동참을 서약한 글로벌 기업도 늘고 있다. 2017년 IDEO는 엘런 맥아더 재단(Ellen MacArthur Foundation)과 함께 기업을 위한 실질적 로드맵 작성에 나섰다. IDEO의 순환경제 가이드(Circular Economy Guide, 온라인에서 무료 다운로드 가능)는 새 가치를 창조하고, 장기적 경제번영과 생태학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이윤도 창출하는 사업모델을 추구하는 경영계 리더들과 함께한다. 현재 우리는 시범제작·시험운영·추후 확장이 가능한 구체적·현실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노력 중이다.

최초의 산업디자이너들이 지붕널을 달고, 최초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인쇄면의 레이아웃을 짜고, 비정통적 교육을 받고 반체제적 성향이 강한 관습을 따르던 1세대 디지털 디자이너들이 인터넷이라는 미스터리를 풀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디자이너들이 긴급하고 복잡다단한 사회문제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오늘날, 모든 디자이너들의 지상과제는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디자인을 다시 디자인하는 것이다.

Barry Katz 기자

번역 김화윤 whayoo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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