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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포춘] 아일랜드는 브렉시트를 기회 삼아 왕관을 쓸 수 있을까?

IN BREXIT, COULD IRELAND WEAR THE CROWN?

  • 기사입력 2019.04.01 16:48
  • 기자명 Aaron Pressman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영국이 브렉시트 혼란으로 우왕좌왕하자, 기업들이 아일랜드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멋지고, 자신감 넘치고, 일관성까지 있는 아일랜드는 이제 기업들의 유럽사업 운영에 있어 ‘보물’ 같은 존재로 각광 받고 있다. 영국보다 아일랜드가 정말 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일까? 리처드 모건 Richard Morgan은 과연 이 나라가 새로운 국제적 정체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일랜드 해를 건넜다. 그는 아일랜드가 (정반대로) 영국 내 소동을 경제적 이익으로 활용하는 뜻밖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취재했다.◀

이미지=US포춘
이미지=US포춘

[포춘코리아] 아일랜드 총리 티셔흐 리오 버라드커 TAOISEACH LEO VARADKAR에게 2019년은 원래 순조로운 한 해가 예상됐다.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 1월 예산 흑자를 발표했다. 사실 아일랜드는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3년까지 IMF 감독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급진적인 생존전략이 성공을 거뒀다. 이 중에는 공공부문 임금의 20% 감축 및 전 공공부문의 고용과 승진을 동결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켈트의 호랑이‘ 거품이 꺼지면서 파산, 대량해고, 압류사태가 발생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이제 흑자로 전환했다. 그런데도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언론을 향해 “아무도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Nobody will go hungry)”라고 네 단어로 엄숙하게 말하는 건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버라드커의 예산발표 전, 1위 무역상대국인 영국의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 Hard Brexit‘ /*역주: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동시 탈퇴/의 망령으로 식량부족에 대한 공포가 국가 전체를 사로 잡았다(아일랜드의 식량, 축산 수입품의 절반 가량이 영국산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거시경제와 무역, 섹터 별로 심각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긴급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긴장감 넘치는 헤드라인 뉴스들이 잇따랐다.

2019년 아일랜드가 맞은 역설적 상황이다. 아일랜드 경제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4년 연속 가장 빠르게 급성장하고 있다. GDP는 2012년 2,260억 달러에서 2017년 3,340억 달러로 증가했다. 덴마크 GDP보다 높은 수치이며, 1인당 GDP로는 프랑스나 스페인의 약 2배 되는 규모다. 그럼에도 2015년 이후 불안감이 서서히 퍼졌다. 그 해 아일랜드 GDP는 26% 급증했다. 부분적인 이유로는 미국기업들이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발생한 소위 ’재편성(reclassification)‘ 효과를 들 수 있다. 아일랜드는 ’슈뢰딩거 경제(Schr?dinger‘s economy)’처럼 보였다. 즉, 번창은 하지만 실체가 모호했다. 그 누구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런 호황의 원인이 현실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교묘한 금융 속임수에 불과한지를 마주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브렉시트가 찾아왔다. 같은 대륙에 자리한 유일한 이웃국가이면서 한 때는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이 2016년 투표를 통해, EU와 17조 3,000억 달러 규모의 유럽경제공동체 탈퇴를 결정했다. 브렉시트라 불리는 영국의 EU 탈퇴는 국민투표에서 아슬아슬하게 과반(51.9%) 찬성을 얻으며 결정됐다. 이후 런던에서는 무분별한 자만과 허영으로 가득한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상황이 전개됐다. 가히 희극적인 수준의 정치적 혼란이 이런 상황을 더욱 고조시켰다. 1886년 당시 영국 윌리엄 글래드스톤 William Gladstone 총리가 아일랜드 자치법(Irish Home Rule)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이후, 영국의 강력한 힘은 정당 탈당과 의회 패배, 국민들의 반감으로 인해 분열을 경험한 역사가 없다. 하지만 10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던 영국은 혼란과 재앙에 빠졌다. 이런 상황은 침착함과 명료한 태도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결단력 있는 명성을 더욱 빛나게 했다. 런던시 자체 통계에 따르면, 한때 영국인들이 차지했던 1만 2,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변모한 아일랜드로 옮겨가고 있다.

캠브리지대 유럽법학 교수이자 ’브렉시트 타임 Brexit Time‘의 저자 케네스 암스트롱 Kenneth Armstrong은 “브렉시트는 과거 존재하지 않던 대조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에는 악령이 출몰했지만 아일랜드는 후광을 입었다. 뒤죽박죽 엉켜버린 정치상황으로 인해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반면, 아일랜드는 현대적 감성을 물씬 풍긴다”고 덧붙였다.

즉, 영국은 자멸의 길을 택한 반면, 아일랜드는 젊은 노동력과 낮은 세율, 유창한 영어를 무기로 반격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아일랜드 대도시들에서는 경제적 야망의 증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서 깊은 트리니티대학은 1592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분교’를 수도 더블린에 건립 중이다. 건설 규모는 5.5에이커이며, 10억 달러 유로의 예산이 투입됐다. 400개의 스타트업이 운집한 이른바 ‘혁신 지구’를 만들어 유럽의 MIT나 스탠퍼드대로 탈바꿈 시킨다는 계획이다. 1980년부터 아일랜드 남부 코크 Cork에 자리잡은 애플은 지난해 캠퍼스 규모를 확장, 직원 수를 5,000명에서 6,000명으로 늘렸다. EY-DKM 경제자문서비스(EY-DKM Economic Advisory Services)의 추산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리머릭 Limerick에는 지난 10년 동안 약 20억 유로 규모의 프로젝트 기획안들이 제출됐다. 서부 해안지대에 위치한 골웨이 Galway는 2에이커의 부지에 1억 유로를 들여 37만 제곱피트 규모의 해안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기업 사무실 공간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따른 행보다. 갑자기 아일랜드는 ‘거구의 야수들’이 우글거리는 보금자리가 됐다. 과거에는 환상 속에나 나오는 대상이었다: 바로 건설 크레인들이다.

전 세계 대형 은행의 일부 경영진은 이런 조짐을 눈치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와 바클레이즈는 브렉시트 시한을 앞두고 그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런던 본사를 각각 더블린으로 이전했다. 바클레이즈 혼자만 자산관리액 2,150억 달러 가량을 아일랜드 수도로 옮겼다(두 은행 모두 해당 조치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시티그룹과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먼삭스 등 경쟁업체들도 런던 사무실은 유지하지만, 영국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더블린 지사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일랜드에 지사를 둔 몇몇 다국적 기술기업들 역시 투자 확대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일부는 해당 투자 확대가 브렉시트와는 관계없다고 말한다. 일례로, 페이스북은 아일랜드 4개 지사의 사업장 규모를 확장했다. 미국 지사를 제외하면 최대 규모다. 또한 올해 직원 1,000명을 추가 고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아일랜드 내 직원 수가 4,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구글은 최근 직원 1,000명을 고용했고, 클라우드 컴퓨팅 팀이 근무할 건물을 짓고 있다. 이 거대 테크 기업 두 곳은 아일랜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동산 거래도 성사시켰다. 동시에 런던 킹스 크로스 Kings Cross 지구 내 사무공간을 크게 확장한 점도 눈 여겨 봐야 한다(양사 경영진은 해당 내용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1985년부터 아일랜드에서 사업을 해온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 2,200명을 고용할 예정이다. 레퍼즈타운 Leopardstown 지사에 필요한 고용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조치다. 이 지역은 더블린 중심지에서 약 7마일 떨어져 있다.

작년 기준, 아일랜드 내 다국적 기업이 고용한 현지 직원은 사상 최고치인 23만 명을 기록했다. 아일랜드 총 인구 480만명 중 상당한 비율이다. 아일랜드의 해외투자기관 산업개발청(Industrial Development Authority)에 따르면, 브렉시트의 직접적인 여파로 4,5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런던에서 더블린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EY회계법인은 이로 인해 1조 달러의 자산도 영국에서 빠져나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이먼 코베니 Simon Coveney 아일랜드 부총리는 더블린 성-1204년 이후 아일랜드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다-내의 한 개인 회의실에서 보좌진에 둘러 싸여 있다. 사용한 단어에서 묻어나는 열정과 달리, 그는 차분한 어조로 “브렉시트 여부와 관계없이 아일랜드의 경제적 입지에는 불안한 요소가 없다”고 단언한다. “아일랜드 경제는 어느 때보다 지속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열린 경제가 되고자 한다. 아마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 국가는 될 것이다”고 강조한다.

코베니라면 잘 알 것이다.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자, 브렉시트 수석협상가인 그는 아일랜드가 “확장 모드”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코베니는 아일랜드 대사관과 영사관의 대규모 증축도 감독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전 세계가 “영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데 대한 브렉시트 대응 조치라고 부른다. 이어 “우리는 독립 이래 보지 못했던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조치에는 암만, 보고타, 키에브, 마닐라, 몬로비아, 라바트, 산티아고, 웰링턴의 아일랜드 대사관과 카디프, 프랑크프루트, 자이푸르, LA, 뭄바이, 밴쿠버 영사관 및 ‘아일랜드 하우스’로 불리는 도쿄의 범문화 허브가 포함된다. 2022년 독립 100주년을 맞는 아일랜드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성을 발휘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경제 발전을 위한 ’서구식 만능효과‘를 내걸며 아시아에 건넨 구애의 손길은 아직 유효하다. 작년 11월, 중국 전자기업 샤오미는 홍콩통신업체 스리 Three와 제휴를 맺고 신상품들을 대거 출시했다. 더블린 매장을 개설한다고 발표한 이후 보인 행보다. 더블린에 지사를 두고 있는 화웨이도 지난해 보다폰과의 제휴계약의 일환으로, 아일랜드 내 50개 타운에 광대역 광섬유를 설치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작년 6월 글로벌 시범사업으로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더블린에서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베니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아일랜드의 새로운 자신감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일랜드가 새 입지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분명 최선을 다하는 인상적인 모습이지만, 코베니의 열정적인 선전에는 몇 가지 의문이 따른다: 세상이 싱가포르의 유럽 버전을 필요로 하는가? 또 진짜 원하기는 하는가?

아일랜드 정부관료들은 12.5%의 낮은 법인세율로 인해 아일랜드가 ’조세도피처‘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종종 EU에서 법인세율이 가장 낮은 헝가리(9%)를 대신 가리킨다(영국 법인세율은 19%이며 2020년 17%로 낮아질 예정이다. 세제재단(Tax Foundation)에 따르면, EU 국가들의 평균 법인세율은 21.68%이다). 하지만 아일랜드로 이주하는 노동자들은 케이만 제도에 등록한 유령회사 우편함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효과로 인해, 아일랜드는 ’유럽의 싱가포르‘보다는 ’유럽의 델라웨어‘ /*역주: 미국에서 둘째로 작은 주인 델라웨어에는 미국 상장법인의 50% 이상이 등기부상 본사 소재지를 두고 있다. 법인세 수입으로 열악한 재정을 만회하려는 주 정부가 기업들에 각종 혜택을 제공한 결과다/에 가깝게 인식되고 있다. 아일랜드에 너무 많은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탓에, 전체 물이 흐려지는 셈이다.

런던정경대 경제학 교수 스와티 드힝그라 Swati Dhingra는 “더블린으로 회사를 이전한다고 해서 더블린이 런던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파리와 뮌헨 등 다른 곳으로 지사를 확장한다고 해서, 런던이 갖고 있던 대기업의 영향력을 그 누군가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이전보다 더 큰 몫의 파이를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파이 자체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승자는 없다. 런던은 날로 쇠퇴하고 있지만, 그 어느 곳도 제2의 런던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영국인들은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아일랜드의 부상과 두 국가간의 미묘한 권력 이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아직 의회에 남아있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이다. 한 보수당 의원은 아일랜드가 국경 문제에 지나치게 걱정하는 모습을 두고 “똥고집 정부”라고 조롱했다. 또 다른 보수당 의원은 작년 12월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영국 정부가 식량부족 등 경제적 타격을 위협, 더 유리한 협상조건에 아일랜드가 동의하도록 해야 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19세기 대기근 사태의 달갑지 않은 재현을 연상케 했다. 같은 달 익명의 한 의원은 BBC 칼럼니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일랜드가 이런 식으로 우리를 취급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며 “정말 아일랜드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표결이 실시된 후 2년 여가 지난 지금도 브렉시트 결정은 여전히 찬반논란이 뜨거운 이슈다. 그러나 영국 내 분분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브렉시트 결정이 ’존재론적 변곡점‘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에 따라 브렉시트로 촉발된 아일랜드의 재통일 논의가 힘을 얻고 있고,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 또한 계속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한 때 아일랜드 정부의 스타트업 관련 기관장을 역임한 니암 부슈널 Niamh Bushnell은 현재 비영리 고문단체 테크아일랜드 TechIreland를 이끌고 있다. 그녀는 브라질, 중국, 동유럽 식료품점, 한국 고깃집, 필리핀 점심 식당, 말레이시아 소규모 식당, 모로코 카페, 스시바 등 국제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더블린 케이플 가의 한 식당에 앉아 “아일랜드는 영국의 일시적인 혼란으로부터 수혜를 볼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양념한 병아리 콩, 비트뿌리 파우더, 초리조를 곁들인 샌프란시스코 식 아보카도 토스트를 베어 물며 “영국에겐 브렉시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이미 브렉시트의 시대다. 이런 혼란이 없었더라도, 영국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다. 영국은 ‘유럽의 트럼프’ 같은 모습이다. 미치광이 같으면서도, 불안을 조장하는 시대정신을 상징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더블린과 프랑크푸르트, 파리로 이전하는 기업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콜 센터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처럼 별 매력이 없는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아니다. 오히려 21세기 경제력의 기반이 되는 사무직, 친환경, 전문지식기술 일자리가 주를 이룬다. 아일랜드는 이런 일자리들을 모두 움켜쥘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160cm가 채 안 되는 부슈널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계속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이어 “우리는 단지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넓게 가는 게 아니라, 깊게 접근하는 것이다. 덕분에 아일랜드는 가치사슬에서 지금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콜 센터 같은 을의 위치가 아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불패신화를 희망하는 아찔한 낙관주의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실제가 그렇다: 아일랜드의 중위연령은 35.9세로, EU 국가 중 가장 젊다. 브라질, 중국, 카타르, 싱가포르, 태국의 급증하는 젊은 인구와 비견할 만한 수준이다(EU 국가들의 중위연령은 42.8세이고, 독일의 중위연령은 가장 높은 45.9세다). 영국과 독일, 인도에 이어 현재 주미 아일랜드 대사를 역임하고 있는 대니얼 멀홀 Daniel Mulhall은 “아일랜드는 늘 우리만의 특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영국이나 EU의 영향력에 편승하는 국가로 비춰졌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상황은 변했다. 그는 “우리는 이제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됐다. 마침내 우리만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부연한다.

더블린의 어느 상쾌한 겨울날, 필자는 현지 기업용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인터콤 Intercom의 창립자 데스 트레이노르 Des Traynor를 만났다. 그와 한낮에 스티븐 그린 Stephen’s Green 거리를 거닐었다. 이 공원은 1916년 부활절 봉기 /*역주: 1916년 4월 아일랜드 독립을 목표로 일어난 봉기/ 당시 반군들의 참호로 사용됐다. 이제는 붐비는 쇼핑거리 끝에 위치한 고요하고, 멋진 오아시스 같은 쉼터로 변모했다. 트레이노르(37)는 아일랜드의 덕목을 극찬한다. “과거에 아일랜드는 성자와 학자의 나라로 불렸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자와 학자다”.

이 기술 사업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최근 아일랜드의 경제적 운이 비단 브렉시트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의 진정한 재능은 희망과 친절이다. 우리는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를 보며 고소해하는 것이 아니라 멍해진 상태다. ’켈트의 호랑이‘ 아일랜드가 돈만 밝힌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차익거래, 마케팅, 사이버스쿼팅 cybersquatting /*역주: 특정 기업의 등록상표 이름이 포함된 인터넷 도메인을 선점하는 것/, 눈먼 돈의 어리석음이라는 꼬리표 역시 더더욱 틀렸다”고 반박한다. 그는 강 위에서 쉬고 있는 백조 무리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향기로운 공원의 공기를 마신다. 그러면서 “비즈니스에는 숫자 그 이상의 것들이 많다”고 강조한다.

문화적 혁명은 분명 아일랜드를 보다 매력 있는 국제적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아일랜드는 작년 총선거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낙태를 합법화했다. 국민투표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한 지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아울러 지난해, 정부를 대신해 학교 시스템의 90%를 운영하는 천주교회가 종교적 배경을 이유로 입학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티셔흐 버라드커 총리의 사례만 봐도 사회적인 진보의 수준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올해 38세의 이 남성은 게이에 미혼이고, 인도ㆍ아일랜드 혼혈 가정에서 자랐다. 현재 그는 1993년 동성애를 기소 대상에서만 제외한 아일랜드 정부를 이끌고 있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후 얼마 되지 않은 1888년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과 맞먹는 수준의 사건이다. 트레이노르는 “이곳에서 우리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아일랜드도 나름의 문제들이 있다. 무엇보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아일랜드 페이스북 직원의 평균 연봉은 15만 유로로, 평균 아일랜드 노동자 연봉의 3배 수준이다). 아일랜드가 받는 해외 투자의 37%가 미국발인 까닭에, 미국의 경기 침체에도 취약하다. 브렉시트 덕에 증가한 수치들이 영원히 유효할 수도 없다. 유럽위원회는 지난 2월 아일랜드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4.5%에서 4.1%로 하향 조정했다. 그 원인은 당연히 브렉시트 여파로 인한 불확실성이다.

패트릭 월시 PATRICK WALSH는 1899년부터 더블린의 한 호박색 건물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영업 중인 그로건 캐슬 라운지 Grogan‘s Castle Lounge의 단골이다. 이 곳은 변함이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 술집은 여전히 현금만 받고, 텔레비전이나 음악도 없다. 와이파이를 묻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월시가 설립한 인큐베이팅업체 도그패치 랩스 Dogpatch Labs는 영국 해리 왕자 같은 인사들이 “더블린의 스타트업 구세주”라고 칭찬했다. 그는 이 가게를 “진정성의 오아이스이자 척도”라고 극찬한다.

월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는지 모른다”며, 아일랜드 고유 게일어로 하는 건배사가 “부가 아니라 건강을 위하여”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부심과 고민을 나란히 드러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유럽인처럼 될 수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에겐 고유의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더블린을 고향이라 부르는 많은 IT기업가들처럼, 월시는 그 동안 아일랜드 경제의 기복을 목격해 왔다. 그의 사무실은 더블린 도크랜드 Docklands 지구에 위치해 있다(‘디지털 도크랜드’로도 알려져 있다).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사무실도 인접해 있다. JP모건과 모건스탠리, 시티그룹도 몇 걸음 거리다. 햄 치즈 토스트를 몇 입 베어 물고, 기네스 맥주 한 잔을 들이킨 월시는 역사적 교훈을 들려준다: “이곳이 전부 영국의 중심지였고, 아일랜드 게일어를 주로 사용하던 지역들을 배척한 때가 있었다. 당시 그들은 더블린과 이 전체 지역을 페일 Pale /*역주: 12세기 이후 영국 통치하에 들어간 더블린 지방/이라 불렀다. 장벽이 하나 생긴 것이다! 올바르고 명예로운 영국신사에게 최악의 행동은 바로 그 벽을 넘는 일이었다. 즉, 페일 지역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안전하지 않은 지대였기 때문이었다.”

월시는 아일랜드가 최근 경험하는 행운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지금 우리가 그 구역을 벗어나 있지 않은가? 날아가지 않도록 모자를 꽉 잡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 번에, 눈썹을 치켜 올리고 흥을 돋우며 맥주 파인트 잔을 집어 든다. 그리고 “이봐, 그런데 우리는 원래 모자를 갖고 있었어”라며 씨익 웃는다.

Aaron Pressman 기자

번역 최명인 Chm7interpr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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