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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협력적 노사관계로 120년 후에도 살아남는 은행 만들 것”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협력적 노사관계로 120년 후에도 살아남는 은행 만들 것”
  • 김타영 기자
  • 승인 2019.03.27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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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9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질곡의 역사였다. 네 차례에 걸친 민영화 실패와 지주사 해체는 우리은행 임직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이 같은 경험은 우리은행 노사가 신뢰관계를 구축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2016년 민영화 성공에 이어 올해 지주사 전환까지 최근 우리은행에 날아든 낭보는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을 만나 우리은행의 협력적 노사관계 비결을 들어봤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이 우리은행 본점 16층 노동조합 사무실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차병선 기자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이 우리은행 본점 16층 노동조합 사무실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차병선 기자

[Fortune Korea] 지난 3월 5일, 서울 중구 소공로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16층 우리은행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한 개 층이 모두 노동조합 관련 시설인 16층은 매우 조용했다. 로비에 붙은 ‘힘이 되는 강한 노조’ 현수막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선 굵은 노동 구호가 노동조합 공간임을 실감케 했다. 복도를 지나 사무실에 들어서자 ‘우리원의 보편적 가치를 위하여 오늘도 뛰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위원장실이 보였다.

“다른 곳에서 저희를 보고 ‘노사관계가 좋다, (노동조합의) 애사심이 좋다’고 얘기하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1970~1980년대 산업화시대를 넘어 4차산업의 길목에 서 있잖습니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21세기형 노사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까지도 노사갈등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은행권에서 유독 우리은행만이 노사관계가 좋다는 평가를 듣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그는 우리은행 노조가 사측과 직원을 연결하는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신뢰관계 형성의 배경

우리은행 역시 처음부터 노사관계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가장 먼저 유탄을 맞았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이듬해인 1998년 합병(당시 사명은 한빛은행, 2002년 평화은행 등을 흡수합병하면서 현재 사명이 됨)하면서 탄생한 우리은행은 이질적인 두 조직 간 결합으로, 또 당시 강력한 구조조정 압박 등으로 오랜 기간 강성노조 노선을 고수했다. 2010년대 들어 우리금융지주 해체와 민영화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은행 노조는 상당히 강경한 편에 속했다.

박 위원장은 말한다. “정말 많이 싸웠습니다. IMF 당시부터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사측은 물론 재정부, 금융당국 등과도 대립각을 세웠죠. 이런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우리은행이 이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사측과 노조가 서로 이해하려 노력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치고받는 과정에서 사측이나 노조나 우리은행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는 노사가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우리은행 노조와 사측은 오랜 다툼의 과정에서 ‘우리은행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한때 총자산 1위에 빛났던 지주사 과거는 구성원들의 자긍심이었으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진 네 차례 민영화 시도와 그 실패는 과거의 영광을 퇴색시키고 말았다. 특히 2014년 지주사 해체는 우리은행 구성원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 책임지는 모습이 중요

길고 지난했던 민영화 과정은 노조와 사측을 결속시켰다. 우리은행 노조는 2014년 12월 예금보험공사가 가지고 있던 우리은행 주식을 우리사주로 대량 편입하며 사측의 민영화 노력에 힘을 보탰다. 박 위원장은 말한다.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 주식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저희가 우리사주로 약 4%(3,067억 원 규모)를 사들였습니다. 주당 1만 1,350원에 매입했어요. 당시 시장에서 거래되던 가격이 8,900원 정도였으니까 주당 2,000원 이상 비싸게 산 겁니다. 우리은행 민영화를 위해 직원들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뭉친 거였죠.”

사측 역시 ‘과거 영광 재현’이라는 대승적 목표를 위해 필요할 때 책임지는 모습으로 화답해 노조의 신뢰를 얻었다. 박 위원장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2017년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의 자진사퇴를 들었다. 지주사 전환 논의가 한창이던 2017년 11월, 이 전 행장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채용비리 의혹에 ‘빠른 자진사퇴 카드’로 우리은행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했다. 이 전 행장은 민영화 진두지휘로 조직 위아래에서 받는 신뢰가 두터웠지만,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 논의에 누가 될까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말한다. “우리은행에서 채용비리가 있었다면 정말 대단히 잘못한 게 맞습니다. 다만 우리은행이 다른 은행들과 구별되는 건, 채용비리 의혹 양상은 비슷했는데 그냥 뭉개고 버티기에 들어간 다른 곳들과 달리 책임져야 할 사측 인물들이 깔끔하게 일단락을 지었다는 거예요. 아직도 이것 때문에 나가라 마라 하면서 노조와 감정싸움을 벌이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곳들의 노사관계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지는 모습 없이는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없죠.”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맨 왼쪽)과 노조위원들이 노조강의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이다. 사진=차병선 기자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맨 왼쪽)과 노조위원들이 노조강의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이다. 사진=차병선 기자

◆ 일방적 희생은 No

우리은행 노사는 이후에도 끈끈한 동반자적 관계로 위기를 극복했다. 이 전 행장 사퇴로 인한 경영 공백 기간 손태승 당시 글로벌그룹장 대행 체제 아래 조직이 더욱 결속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그 예다. 우리은행 노조는 손태승 대행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이후 행장 선임 과정은 물론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우리은행 노사는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우리금융지주 겸임을 먼저 건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특히 지난 12월에는 임금단체협상을 시중은행 중 가장 빨리,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주목을 받았다. 합의안 내용은 △임금피크제 진입 연령 1년 연장 △1시간 점심시간 보장 △퇴근 이후 전화·문자·SNS 등을 통한 업무지시 자제 △남자 직원 출산휴가 확대 △태아 검진휴가 신설 등으로 9월 산별교섭 당시 노조 요구가 상당 부분 그대로 반영됐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말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노사가 동반자적 관계인 이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양보할 건 하고 양보받을 건 받는 깔끔한 협상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노사관계에선 참을 줄 아는 내공도 필요합니다. 당장은 노조가 혹은 사측이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지금 한발 양보하면 나중에 상대방에게 더 큰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거든요. 물론 서로 신뢰하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노사관계는 약속을 잘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외이사 추천 보류 왜?

우리은행 노조는 최근 은행권 화두로 떠오른 노동이사제나 사외이사 추천제 역시 보류하는 선택을 했다. 우리사주 6.39%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 노조가 사외이사 추천제를 보류한 건 의외의 행보였다. 우리은행 노조는 예금보험공사(18.4%)와 국민연금(9.23%)의 뒤를 잇는 우리금융지주 3대 주주로 경영에 참여할 명분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옛 위용을 되찾기 위해선 노사화합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박 위원장은 말한다. “저희가 최근 임금단체협상 등에서 사외이사 추천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건 사측을 배려한 가장 큰 양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은행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많이 남아있거든요. 우리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사측이나 투자자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선명성 경쟁을 한다든가 해서 아직 한참 더 성장해야 할 우리금융지주 앞길을 어둡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당장은 우리금융지주가 예전 위상을 되찾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우리은행 노조가 사외이사 추천제를 보류한 건 과점주주들에게 보내는 암묵적 메시지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덧붙인다. “과점주주들은 수익 추구라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에서도 한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가 3대 주주라도 실제 액션은 제한될 확률이 높죠. 저희가 올린 안건을 부결시키면 그만이거든요. 물론 저희도 적지 않은 지분이기에 사측이나 투자자들을 괴롭히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희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는 사외이사 추천 대신 과점주주들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예요. 잘할 것이라 믿고 있을 테니, 우리은행을 건강하게 잘 지켜달라는 메시지 말입니다.”

◆ 건강한 우리사주 추구

우리은행 노조를 비롯한 임직원들은 6%가 넘는 높은 우리사주 비율에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다. 4.64% 지분을 보유한 신한금융 우리사주조합 정도만이 한 자릿수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 나머지 지주사들의 우리사주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우리은행 노조는 예금보험공사 지분을 더 사들여 궁극적으론 우리금융지주 1대 주주가 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10%까지 꾸준히 우리사주 지분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말한다. “예금보험공사가 가지고 있는 18.4% 우리금융 지분을 매각할 때 저희한테도 매수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2% 정도는 더 살 여력이 있거든요. 우리는 투기자본이 아닌 건강한 자본입니다. 직원들 급여와 복지 인상에 우리사주를 이용할 생각도 없고요. 120년 된 우리은행을 앞으로도 120년 동안 물려줄 수 있는 건강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사용할 계획입니다. 경영진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임기도 보장해주고 또 외부 간섭에 영향받지 않도록 차단도 해주고요.”

우리은행 노동조합 역대 위원장들. 사진=차병선 기자
우리은행 노동조합 역대 위원장들. 사진=차병선 기자

◆ 건강한 은행 물려주는 게 목표

우리은행 노조는 우리은행이 예전의 지주사 위용을 갖출 때까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할 계획이다. 과거 영광 회복은 우리은행이 민영화에 성공한 이후부터 우리은행 임직원 모두의 바람이자 숙제이기도 했다. 우리금융지주가 정식 출범한 게 올해 1월이니 다소 서두르는 감이 있지만, 이는 우리은행의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말한다. “우리금융지주로 간판은 바꿨지만 아직 덩치는 그대로입니다. 편입한 새 계열사가 현재까지 하나도 없거든요. 지주사 간 경쟁에서 체급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체급이 어느 정도 맞아야 싸움이 되고 체력도 유지할 수 있죠. 저희가 생각한 수준으로 체급을 올리는 데엔 2~3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우리 노동조합의 중간조정자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해요. 사측에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잘 전달하는 한편, 직원들을 잘 다독여 노조와 사측 모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과거 영광을 되찾겠다는 우리은행 노사의 의지는 확고하다. 덕분에 만족할만한 규모를 갖출 때까지 서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최대한 협력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은행 노조가 바라는 미래 우리은행은 어떤 모습일까?

박 위원장은 말한다. “단기적으론 우리금융지주에서 우리은행(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70%대까지 낮추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98%거든요. 은행 외 부문의 규모를 키워 은행 비중을 낮추는 거죠. 우리금융지주가 덩치를 키우고 지주사로서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리며 진용을 갖추는 건 직원 복지를 위해서도 굉장히 필요한 일입니다. 어떤 계열이든 언제까지나 호황만 누릴 수는 없잖아요. 여기서 숨이 차면 다른 곳이 대신 페달을 밟아주고 하는 시스템이 돼야 직원들도 숨을 돌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좋은 문화를 만들고 이어가 건강한 우리은행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 120년 후에도 우리은행이 좋은 은행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자 목표입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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