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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US]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창업스토리
[포춘US]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창업스토리
  • Dinah Eng 기자
  • 승인 2019.01.03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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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의 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Interview by Dinah Eng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랭크 오웬 게리 Frank Owen Gehry(89)는 포스트 모던 스타일 건축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으론 로스엔젤레스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설립한 게리 파트너스에는 160명의 직원이 있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고 있다.

 

나는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그 곳에서 철물점을 운영했다. 할아버지는 유대교 회당(synagogue)의 회장이었는데, 어린 내게 탈무드를 읽어주곤 하셨다. 탈무드는 한마디로 호기심 천국이었다. 이야기는 언제나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탈무드를 듣고 대화를 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믿음과 생각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심장마비에 걸렸고, 철물점을 정리해야 했다. 이후 1947년 우리 가족은 삼촌을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주류 판매점에서 일했다. 우리 가족은 그 곳에서 네 블록 정도 떨어진 LA 시내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거주했다.

[사진=포춘US] 2018년 로스앤젤레스 게리 파트너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프랭크 게리.
[사진=포춘US] 2018년 로스앤젤레스 게리 파트너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프랭크 게리.

 

우리 가족은 가난했다. 나는 17세 때 트럭 운전수로 일하며 로스앤젤레스 시립 대학에서 야간 수업을 들었다. 목공작업을 좋아했던 나는 이후 건축 설계 수업을 들었고, 서던 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 이끌려 그곳에 입학하게 됐다. 1950년 대는 반유대주의가 만연했던 시기였다. USC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수들은 내게 성공하려면 개명을 하라고 조언했다. 아내 애니타가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1954, 나는 성을 게리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USC를 졸업한 후 미 육군에 입대했다. 전역 후에는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도시 설계를 전공했다. 하지만 수업이 재미 없어 중간에 자퇴했다. 이후 건축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LA로 돌아왔고, 1962년 내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당시 친구 중 한 명이 공동주택 6채를 짓자고 제안해 그와 동업을 했다. 둘이 자금을 모아, 우리에게는 거액이었던 5,000달러를 주고 부지를 구입했다. 그 친구에겐 보석 소매업체 케이 주얼러스 Kay Jewelers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매장 몇 곳과 물류창고를 설계해줬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프랭크 게리 설계 사무소가 닻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특정한 일을 따내기 위해 친교를 쌓지 않는다. 다만 예술가 친구들을 위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작품 설치를 도운 후, 몇몇 투자자들이 참여한 그룹과 관계를 맺게 됐다. 그 무렵 LA 시는 현대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 나는 LA 현대미술관이 1984년 올림픽 기간 중 폐장을 하자 미술관 임시 전시장을 설계했다.

 

세계 무대에서 일하려면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 차이를 알고 그것을 업무에 일체화시켜야 한다. 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하기 전, 현지 바스크 가족과 바스크 문화(및 언어정책) 장관 등 많은 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용주들이 초창기에 당신을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거나, 당신을 헐값에 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당신이 명성을 얻으면, 그들은 당신이 이름값을 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현재 내가 건축한 빌딩에서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에도 건축주의 지향점이 내 생각과 완전히 상충할 경우엔 일을 맡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면, 돈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나의 두 번째 아내인 베르타는 현재 CFO를 맡아 재정 측면에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콘서트 홀 디자인이다. 최근에는 서동시집 관현악단(West-Eastern Divan Orchestra)을 위해 무료 재능기부를 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지역 음악가들이 함께 연주를 하며 음악을 교류하는 장이다. 그 동안 내가 받은 수많은 상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줄리어드 음대 박사학위였다. 나는 연주를 못한다. 하지만 음악을 위한 공간을 건축한 공로로 그 학위를 받았다.

 

건축물을 예술로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은 건물들을 상업적인 형태로만 짓고 있는데, 거기에 조금만 노력을 더해도 특별해질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즐기며, 그들에게 희망과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는 디자인의 건물을 짓는 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정체불명의 공격적 디자인 대신 말이다.

 

 

[사진=포춘US]LA 다운타운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2003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사진=포춘US]LA 다운타운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2003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프랭크 게리(프랭크 게리 건축회사 및 게리 파트너스 설립자)가 들려주는 최고의 조언

 

-모든 작업에 똑같이 집중하라: “프로젝트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라. 그 프로젝트가 기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확인을 하라. 가장 사소한 부분에서 당신의 전체 작업이 판단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실험하라: ”나는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어떤 예상도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내 아이디어들을 실험하고 질문을 던질 뿐이다. 나는 실제로 프로젝트 별로 20~30개의 모델을 만든다. 어떤 작업에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쉽다는 이유로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선 안 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이다.

 

번역 위미정 pleiades14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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