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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의 '경영 수다'] 일본에서 발견한 3가지 마케팅 장면

  • 기사입력 2018.12.10 14:44
  • 최종수정 2018.12.10 15:20
  • 기자명 안병민 대표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 닷새 간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푸른 바다를 찾아 다닌 평화롭고 고즈넉한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 와중에 제 눈에 띈 건 일상 속 경영마케팅의 풍경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펜을 들었습니다.

사진 안병민 대표 제공.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회전 초밥 식당. 로봇 ‘페퍼’가 손님들의 대기접수를 받고 있다.
사진 안병민 대표 제공.

식당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로봇

장면 하나. 익히 소문 난 회전 초밥 식당입니다. 이른바 가성비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재작년 여행 때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기꺼이 그곳을 찾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인산인해에 문전성시입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입구 대기 의자에 앉으려던 순간 제 눈에 들어온 게 있었습니다. 바로 ‘페퍼’였습니다. 페퍼는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입니다. 120cm 정도의 키에 귀여운 얼굴로 가슴에는 모니터를 달고 있습니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감정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스마트폰처럼 앱을 다운로드 받으면 그 기능도 늘어나는 로봇입니다. 이런 로봇 페퍼가 식당 입구에 서서 일본 전통 조리사 복장을 하고 손님들의 대기 접수를 받고 있는 겁니다. 첨단 IT 기업이나 대기업 로비가 아닌, 초밥 식당 입구에서 말입니다. 오키나와만 해도 이정도 로봇은 이미 일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여름엔 반 팔 옷을 입다가도 추워지면 긴소매 옷을 꺼내 입듯, 세상이 변하면 그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게 혁신입니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라는 말은 실과 바늘처럼 항상 서로를 따라다닙니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기하급수적인 변화가 한창인 요즘입니다. 디지털혁신과 관련해 초밥 식당에서 체감한 일본의 변화 속도가 인상적이었던 순간입니다.

면 굵기와 익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일본 라멘

장면 둘. 일본에 가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결코 빼놓으면 안 되는 음식이 ‘라멘’입니다. 면 요리를 좋아하는 터라 이번 여행에서도 라멘집을 두어 차례 찾았는데요. 주문을 하면서 보니 손님이 직접 골라야 할 항목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면 익힘 정도와 굵기 같은 것들입니다. 라멘을 주문할 때 면을 얼마나 익혀줄 지를 세 가지(하드, 레귤러, 소프트)로 나누어 선택할 수 있습니다. 면 굵기 또한 손님이 취향대로 고를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고명으로 얹어주는 돼지고기도 비계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비계가 전혀 없는 것, 좀 적은 것, 일반적인 것, 비계가 많은 것, 네가지 옵션입니다. 고객 기호와 취향을 저격하는 섬세한 배려입니다. 만원이 채 안 되는 라멘 하나를 팔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굵기의 면을, 고객이 원하는 정도로 익혀, 고객이 원하는 고기와 함께 내놓는 겁니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입니다.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는 정신. 그것이 장인정신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남다른 기술과 재능을 가진 장인들이 자신의 작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건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대충 해놓고 끝낸다? 장인정신 아래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님은 장인정신이 보여주는 외형적 특징으로 ‘디테일’을 꼽습니다. 20세기 최고 건축가 중 한 명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로에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합니다.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장르를 불문하고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습니다. 라멘 한 그릇 먹으러 왔다가 일본의 그런 디테일을 봅니다. 그래서인지 깊은 라멘 맛이 긴 여운을 줍니다. 

꼬마손님을 위한 키 작은 자판기

장면 셋. 꽤나 규모가 큰 어느 쇼핑몰이었습니다. 여느 한국 쇼핑몰과 별다를 바 없는 곳이었는데요. 윈도우 쇼핑을 즐기다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음료수 자판기였습니다. 아동복 코너 한 귀퉁이에 서 있던 자판기였습니다. 원래 ‘자판기 왕국’으로 유명하기에 특이한 자판기가 참 많은 곳이 일본입니다만, 이 자판기는 그리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눈을 잡아끈 이유는 키가 작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진, 높이 1m를 조금 넘는 키 작은 자판기였습니다. 허를 찔린 느낌이었습니다.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판기에는 아이들 손이 쉽게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자판기는 자그마한 꼬마 아이들이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아무런 불편 없이 동전을 넣고 음료수를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아동복 코너에 맞춤한 아이들 전용 자판기인 셈입니다. 고객 관점에서의 가치 창출입니다.

성공하는 마케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고객 입장에서의 재해석’입니다. 모든 걸 고객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겁니다. 최근 원룸에 사는 1인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들도 그에 따라 작아집니다. 공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러다 보니 2ℓ 생수통이 소형냉장고에 들어가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용량을 줄인 생수를 출시한 식품기업이 생겼습니다. 고객 입장에서의 재해석이란 이런 겁니다.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고객의 고통, 고민, 고충이 보입니다. 마케팅은 고객의 불편함을 제거해줌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겁니다. 꼬마 아이들을 위한 키 작은 자판기에서 고객을 위하는 크고 깊은 마음을 발견합니다. 이런 게 ‘고객가치’입니다.

세상은 학교, 여행은 공부다

여행은 곧 ‘낯섦’입니다.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묘한 긴장감을 채워줍니다. 낯선 곳에 가면 절로 예민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집이었다면 신경도 안 썼을 많은 것들이 달리 보입니다. 기존 관점에서의 탈피입니다. 섭씨 100도에서부터 물이 끓기 시작하듯, 우리의 ‘생각’ 또한 이 지점에서부터 싹을 틔웁니다. ‘생각’의 이전 단계는 ‘믿음’입니다. 믿음에 혁신이 있을 리 없습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오롯한 내 생각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왜? 왜? 왜?’ 계속 물어야 합니다. 그런 일탈과 질문의 과정이 나의 눈을 뜨게 하고 나의 귀를 틔워줍니다. 내 생각이 한 뼘 더 성장하는 겁니다.

오키나와 가족여행을 통해 일상 속 경영혁신을 짚어보았습니다. 낯선 환경이 빚어낸 예민함으로 건져 올린 풍경들입니다. 책에선 배울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지혜와 통찰이 ‘현장’에 녹아 있습니다.

“마케팅은 삶이고 일상이 경영이다.” 제가 글과 강의로 부르짖고 다니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학교이고 여행이 공부”라는 얘기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여행이다 싶습니다. 내일과 삶의 행복한 경영여행, 그래서 오늘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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